사우디-이스라엘 밀월의 대가 : 팔레스타인을 위한 자리는 없다

[워커스] 인터내셔널

[출처: shiitenews]

사우디아라비아에서 발생한 반체제 언론인 암살이 여전히 논란이다. CIA는 터키 정부가 제공한 감청 파일 등을 근거로 사우디 왕세자 무함마드 빈 살만(MBS)이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의 암살을 직접 지시했다고 결론 내렸다. CIA의 조사 결과에도 아랑곳없이 트럼프 대통령은 어떤 상황에서든 사우디 왕국과 미국의 관계는 견고하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20일 뒤 미국 상원은 카슈끄지를 암살한 사우디 왕실과, MBS를 두둔하는 트럼프를 동시 규탄하는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이 소용돌이 속에 이스라엘 역시 카슈끄지 살해에 연루됐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사우디와 일종의 적대국가였던 이스라엘이 어떻게 적국의 반체제 인사 살해에 가담하게 됐을까?

카슈끄지 암살과 감청

자말 카슈끄지는 사우디 왕실 및 고위 정치인들과 가까운 저명한 가문의 일원이었다. 사우디 반체제 인사로도 알려져 있지만, 왕실을 해체해야 한다는 급진적인 주장을 했던 건 아니다. 오히려 카슈끄지는 MBS의 개혁을지지 했고, 트럼프 대통령이 결과적으로 이란의 헤게모니를 강화할 것이므로 국익의 관점에서 사우디 왕실이 트럼프를 신뢰하는 것이 부적절하다고 비판하는 정도였다. 알카에다를 취재했다는 이유로 이슬람 극단주의자라는 비난을 받기도 했지만, 온건한 이슬람주의를 정치적 실체로 인정하지 않으면 오히려 극단주의 세력이 득세할 것이라고 우려하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자유주의적 개혁가, 보수적 성직자 가릴 것 없이 왕실과 의견이 일치 하지 않으면 체포·감금하는 사우디의 정책 때문에, 그는 2017년 여름 자진해서 사우디를 떠났다. 미국에 자리 잡은 후 곧 미 일간지 워싱턴포스트에 지면을 갖게 됐고 카슈끄지에 대한 사우디 왕실의 탄압은 더욱 거세졌다.

2018년 10월 2일 카슈끄지는 터키인 약혼자와 결혼에 필요한 서류를 떼러 주-터키 사우디아라비아 영사관을 방문했다가 연락이 두절됐다. 사우디 정부가 보낸 15명의 암살팀에 살해당한 것이다. 살해 혐의를 부인하던 사우디 정부도 터키 정부가 암살 당시 감청 내용을 공개하자 영사관에서 살해된 것을 인정하고 관련자 일부를 해고하는 등의 조치를 취했다. 하지만 MBS의 직접 지시에 대해선 여전히 부정하고 있으며, 미국 상원의 규탄 결의안은 내정간섭이라며 반발했다.

카슈끄지는 ‘아랍 세계에 지금 바로 민주주의를(Democracy for Arab World Now)’이라는 재단을 설립해 중동 지역의 인권을 증진시키고자 했다. 그는 친구이자 캐나다로 망명한 사우디 반체제 인사 오마르 압둘아지즈에게 재단의 웹사이트 제작을 의뢰했다. 두 사람은 트위터 계정으로 사우디 정부를 비판하더라도 체포될 위험을 피할 수 있도록 사우디 활동가들에게 외국산 심카드를 보급하는 활동을 기획했고, 2017년 10월부터 11개월간 거의 매일 왓츠앱 메신저를 통해 문자를 주고받았다. 압둘아지즈는 사우디 정부가 자신의 폰에 설치한 스파이웨어를 통해 문자와 통화 기록 등이 감청됐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그는 2018년 6월, 택배회사 DHL에서 온 문자 메시지에 첨부된 배달추적링크를 아무 의심 없이 클릭했다. 어느 날 휴대폰의 이상을 느낀 그는 토론토대학 산하 싱크탱크 ‘시티즌랩’에 의뢰했고, 시티즌랩은 가짜 배달 문자의 피싱 링크를 통해 압둘아지즈의 휴대폰을 감청한 프로그램이 페가수스임을 밝혀냈다.

이 스파이웨어 ‘페가수스’의 제작자는 바로 이스라엘 사설 첩보기업 ‘NSO 그룹’이다. 페가수스는 대상자가 기기에 보내진 피싱 링크를 클릭하면 다운로드된다. 이렇게 휴대폰이 해킹당하면 페가수스에 통제력을 빼앗겨 스피커와 카메라는 대화를 녹음‧녹화하는 데 이용되고, 왓츠앱과 같은 암호화된 앱 역시 감청된다. GPS로 대상자의 위치도 파악된다.

압둘아지즈는 지난 12월 초 이스라엘 법원에 NSO 그룹을 상대로 약 1억 8천만 원 상당의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소장에는 NSO 그룹이 사우디 정부에 스파이웨어를 팔 수 없게 해달라는 내용도 담겨 있다.

사설 첩보기업과 이스라엘군

NSO 그룹은 압둘아지즈의 휴대폰 해킹에 자신들의 스파이웨어가 사용됐다는 증거가 없다며 혐의를 완강히 부인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일단 소프트웨어를 판매한 후에 고객들이 제품을 어떻게 사용하는지는 자신들이 관여할 문제가 아니며, 자신들은 이스라엘의 방산수출법에 근거해 적법하게 활동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스라엘의 유력 일간지 하레츠의 보도에 따르면 2017년 초, 이스라엘의 한 방위산업기술 판매상이 유럽과 터키의 중개상을 통해 사우디아라비아 등 걸프 국가들에 먼저 접촉했다고 한다. 몇 차례 회의 후 사우디는 NSO 그룹의 기술에 관심을 표했고, 이 판매상은 페가수스 3의 가격 으로 약 2,343억 원을 제시했다. 사우디 측은 판매상에게 수도 리야드로 와 왕실에서 페가수스를 시연해 줄 것을 요구했다. 이스라엘 국방부는 이 판매상의 사우디 방문을 허가하지 않았다. 그러자 2017년 7월, 판매상은 국방부를 무시한 채 작은 전세 비행기로 NSO 그룹의 창업자 1인을 동반해 걸프 국가를 방문했다. 이 방문을 통해 사우디는 NSO 그룹으로부터 페가수스 3을 약 620억 원에 구매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이와 같은 사실은 중개수수료를 받지 못한 유럽과 터키의 중개상이 이스라엘 판매상을 고소하며 알려졌다. 계약이 이뤄지고 몇 달 후 MBS 왕세자는 사우디 왕족과 자본가들을 체포·감금해 고문했고 고문 중 육군 소장 한 명은 살해당했다.

사우디 정부에 감시당한 것은 압둘아지즈만이 아니다. 영국에 망명한 또 다른 사우디 반체제 인사와 인권운동가 역시 페가수스에 휴대폰이 감염됐다. 그리고 이 세 사람은 모두 카슈끄지와 연락하는 사이였다.

이스라엘군에서 가장 규모가 크며 엘리트 부대로 손꼽히는 ‘8200 부대’는 비밀 정보 수집 부대다. 이 부대는 팔레스타인인의 일상에 세밀히 침투해 첩보를 수집하고, ‘신 베트’(이스라엘 국내첩보기관)는 이 첩보로 팔레스타인인 암살 혹은 체포 등의 비밀작전을 전개한다. 8200 부대가 개발한 사이버 감시 기술은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인을 감시하고 통제하는 데 사용된다.

NSO 그룹은 8200 부대 출신의 유능한 사이버 첩보 전문가들을 고용한다. 창업주 3인 중 한 명이 8200 부대 출신 해커이기도 하다. 이 전문가들은 NSO로 이직할 때 이스라엘 정보기관이 팔레스타인인들과 이스라엘의 다른 감시 대상자의 휴대폰을 해킹할 때 사용하는 기술과 암호를 가져온다. 이런 기술력을 바탕으로 NSO 그룹은 감청 스파이웨어를 만들고, 정부기관이 공식적으로 행할 수 없는 비밀 군사작전을 대신하기도 한다.

NSO 그룹은 페가수스를 사우디 정부에 판매했는지 여부를 밝히지 않았고, 방산무기의 해외 수출을 감독하는 이스라엘 국방부가 판매를 허가했는지 여부도 확실히 알려지진 않았다. 다만 NSO는 이전에도 반체제 인사를 감청하려는 멕시코, 아랍에미리트 등 많은 정부에 자사의 스파이웨어를 판매한 전력이 있다. 이것은 NSO만의 이야기도 아니다. 이스라엘에 기반을 둔 첩보 기업들로 부터 감시 기술과 장비를 수입한 독재정권과 왕정국가는 130여 개국에 달한다. 이스라엘 총리 벤야민 네타냐후는 재무장관 시절에 보안·감시 분야의 신생기업 지원을 주도했고, 지금도 보안 산업 육성은 중요한 국가 시책이다. 2016년 기준 전 세계 528개 첩보기업 중 이스라엘 기업은 27곳에 불과하지만 투자금은 국제 사이버안보 시장의 20%에 달한다.

사우디와 이스라엘, 밀월의 역사

카슈끄지 암살 논란으로 MBS 왕세자의 권력 장악이 순조로워 보이진 않지만, 적어도 미국과 이스라엘 정부의 지지는 흔들림 없어 보인다. 이스라엘의 네타냐후 총리는 지난 11월에 “사우디아라비아의 안정이 중동 지역과 전 세계의 안정을 위해 매우 중요하다”며 사우디 지지를 천명했다. 지난 12월 초에는 총리가 2019년 총선 전에 사우디와의 관계 정상화를 공식화할 것이라는 이스라엘 하다쇼트TV의 보도가 있었다. 상호 협정을 맺기 위해 이스라엘의 모사드(해외첩보기관) 수장과 미국이 외교적 노력을 경주하고 있다는 것이다. 20세기에 4차례 중동전쟁을 치른 후 이집트와 요르단 외의 아랍 국가는 이스라엘을 국가로 인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1980년대 이래 첩보를 공유하고 비밀리에 만남을 가졌다는 보도는 종종 있었다. 이스라엘 군정보기관장이었던 아모스 야딘은 자신이 재직 중이던 2006년 이란이라는 공동의 적에 대응하기 위해 사우디와 접촉했고, 특히 사우디로부터 헤즈볼라에 대한 첩보를 넘겨받은 적이 있다고 인정했다.

비밀리에 이어진 관계는 최근 몇 년 간 사우디를 위시한 아랍 국가들이 이스라엘과의 관계를 정상화하며 빠른 속도로 가시화됐다. 2017년 6월 이스라엘이 압승했던 3차 중동전쟁 50주년을 기념하는 행사에서, 이스라엘군 참모총장과 국방부장관을 역임한 모셰 야알론은 3차 중동전쟁 후 이스라엘을 위협하는 외부 세력은 사라졌다며 “우리에게 대항하는 아랍 연합 세력은 이제 아예 없다”고 단언했다. “유대 국가를 분쇄하려 했던 바로 그 아랍인들이 지금은 우리와 한 배를 탔다. 카타르를 제외한 순니파 아랍 국가들과 우리에겐 핵무기 국가 이란이라는 공동의 적이 있기 때문이다.”

2017년 11월에 현직 이스라엘군 참모총장 역시 같은 얘기를 했다. “(워싱턴의 한 회의에서) 사우디 장군들의 발표를 듣는데, 저 말을 하고 있는 게 바로 나일 수 있겠다 싶었다. 내가 직접 쓴 글을 읽고 있는 듯 한 느낌을 받을 정도였다.” 2018년 4월 MBS 왕세자 역시 미국 방문 중 “이란이라는 공동의 적을 둔 이스라엘과 사우디는 이해관계가 겹친다”며 똑같은 발언을 했고, 아랍 국가 지도자 중 최초로 “이스라엘이 땅에 대한 권리가 있다”라고까지 화답했다. 같은 기간 유대 로비 단체를 만나 이스라엘과 관계를 강화할 의지를 표명하기도 했다. 바로 직전인 3월에는 사우디 정부가 인도 뉴델리와 이스라엘 텔아비브 민항 노선에 사우디 상공 경유를 처음으로 허가했다. 2년에 걸친 협상 결과였다. 6월에는 MBS와 네타냐후 수상이 비밀 회동을 가졌다는 보도가 나왔다. 7월에 이스라엘 국회는 이스라엘 인구의 17%를 점하는 팔레스타인-아랍계 시민을 공식적으로 차별하는 ‘유대국가법’을 통과시키고 서안지구와 동예루살렘의 불법 유대인 정착촌이 “국가적 가치”가 있다고 규정했다. 중동 전역에서 반발했지만 MBS는 동요하지 않았다. 반대로 네타냐후 역시 카슈끄지 암살에 이스라엘이 연루되었다는 의혹은 안중에도 없이 오히려 사우디와 관계 정상화의 속도를 높이고 있다.

밀월의 대가

영국과 프랑스가 중동 점령 종식을 전후해 자의적으로 국가들을 구획함으로써 중동 지역 국경이 그려졌고, 당시 아랍 민중의 분노는 유럽에서 이주해 온 유대인에게 할당된 신생 국가 이스라엘로 수렴됐다. 그리고 지금까지 이어지는 이스라엘의 폭압적인 팔레스타인 군사점령과 그에 맞선 팔레스타인 민중의 투쟁으로 팔레스타인은 대의의 상징이었고, 그만큼 많은 중동 민중의 지지를 받았다. 중동의 많은 독재정권은 포퓰리즘 정책을 위해, 혹은 자국 민중의 반발을 두려워해 표면적이나마 이스라엘과 적대하는 정책을 취해왔다. 하지만 이런 분위기조차 지난 몇 년을 기점으로 급속히 달라졌다. 그 대가는 엉뚱하게도 팔레스타인 민중이 치루고 있다.

지난 11월 사우디는 팔레스타인 무슬림이 사우디로 성지순례를 올 수 없도록 비자 정책을 바꿨다. 그리고 왕실 재단을 통해 유엔 팔레스타인난민기구(UNRWA)에 563억 원을 후원했다. 사우디 왕실 재단은 자신들이 4년간 폭격한 예멘에도 후원을 아끼지 않았다. 재단은 예멘 소년 병사들이 성공적으로 가족의 품으로, 학교로, 지역사회로 돌아갈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고 밝혔다. 사우디의 침공으로 인해 직간접적으로 살해당한 5세 이하의 예멘 아동은 8만 5천여 명이다. 작년 8월에는 사우디 공군이 예멘의 통학버스를 폭격해 어린이 40명을 포함한 51명이 살해됐다. 이 때 쓰인 폭탄은 미국산이었다. 2017년 미국과 사우디가 체결한 무기거래는 약 125조 원이다.

2017년 3월 백악관에 몇몇 중동 국가가 테이블에 나란히 둘러앉아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의 ‘인도적 위기’의 타개책을 논했다. 이 자리에 사우디는 물론 ‘인도적 위기’를 일으킨 책임자인 이스라엘은 있었지만, 정작 위난을 당한 팔레스타인은 없었다. 트럼프는 팔레스타인을 배제한 중동 평화의 청사진을 기획하고 있고 사우디와 이스라엘은 이 청사진을 놓고 ‘한 배를 탔다’. 현 팔레스타인 지도부가 팔레스타인 민중의 신뢰를 잃은 지 오래지만, 점령자와 피점령자가 아닌 동등한 정치권력의 대등한 협상이라는 그림을 위해서나마 국제 정치 무대에 동원되던 팔레스타인 지도부는 이제 들러리라는 역할조차 잃었다. 이스라엘이 주장하던 서사대로 아랍 국가와 유대 국가의 대립과 화해, 이란을 상대로 한 공동전선 구축이라는 판이 짜이고 있다. 여기에 팔레스타인 민중의 자리는 없다. 우리는 역사의 후퇴를 목도하고 있다.[워커스 50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