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원돼야 할 것은 사회적 대화가 아닌 노동자의 권리다

[연속기고] 기울어진 운동장과 사회적 대화 (2)

경사노위 참가는 제안이 아니라 민주노총에 대한 사회적 압박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노동자-사용자-정부가 만나는 자리는 노사정위원회였다. 그런데 어느 순간 노사정위원회는 사라지고, 온통 ‘경사노위’라는 단어가 뒤덮었다. 경사노위는 기존의 노사정위원회에서 명칭을 변경한 기구로서, 2018년 5월 28일 노사정위원회법을 전면개정하며 경제사회노동위원회가 되었다. 경제사회노동위원회는 사회적 대화기구의 ‘범위를 확대’해 다양한 사회 계층의 주체가 참여하도록 하기 위해 변경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항상 범위를 확대하는 것이 ‘좋은 것’일까? 노동의 중요한 의제들이 여러 가지 사안들 속에서 ‘물타기’되는 것은 아닌가라는 우려를 지울 수 없다.

[출처: 노동과세계 변백선 기자]

우선 경제사회노동위원회의 소개를 살펴보자. 경제사회 노동위원회는 사회적 대화에 대해 ‘사회 경제 정책에 이해를 공유하는 정부, 사용자, 노동자 대표가 참여하는 모든 형태의 교섭, 자문, 정보 교환’으로서 ‘공공 정책결정 과정에 노사의 참여를 의미하는 사회적 협의보다 넓은 개념’이고, ‘기업, 산업, 지역정부, 국가 수준에 이르기까지 노·사·정 간의 다양하고 다면적인 공식 또는 비공식 접촉을 포함’한다고 하고 있다. 또한 이를 위한 기본조건으로 ‘결사의 자유와 단체 교섭을 포함한 노동기본권이 존중되어야 한다.’라며, 이를 위해 국가는 ‘노·사 단체가 불이익의 걱정 없이 자유롭게 행동하고 결정할 수 있는 안정적인 정치·사회적 환경을 조성’해야 하며 ‘주도적 행위자가 아니’라 ‘사회적 대화 절차를 적극 장려’해야 한다고 하고 있다.

그러나 과연 현재 한국의 노동조합의 상황, 노동자의 상황을 고려했을 때 사회적 대화를 위한 기본적 조건이 충족되고 있는가는 의문이다. 민주노총, 한국노총을 포함해 전체 노조 조직률이 10% 남짓, 비정규직의 노동조합 조직률은 최근 좋아져서 2% 남짓인 상황이다. 또한 비정규직 노동자와 특수고용노동자를 비롯해 수많은 노동자들이 노동조합 결성부터 해고/괴롭힘이라는 부당노동행위와 고용노동부의 불승인이 판치고, 노동조합의 단체교섭권은 창구단일화 절차로 막혔으며, 파업은 필수공익사업장 제도를 비롯해 하청사업장은 원청의 대체인력 사용, 직장폐쇄, 각종 민형사상 처벌로 범죄시되는 것이 이 나라 노동권의 적나라한 상황이다. 과연 경제사회노동위원회가 말하는 사회적 대화를 위한 ‘기본조건’은 충족되어 있는가?

경제사회노동위원회는 공공 정책결정 과정에 참여하는 것도 아니며, 자문-정보교환적 형태에 불과하고 다면적인 공식 또는 비공식적 접촉을 포함하는 개념으로서 강제가 아니다. 대화에 참여할지는 경사노위에 참여할 자격이 부여된 노동조합의 자율과 판단에 맡겨져 있다. 그러나 현재 언론과 정부, 국회, 기업뿐만 아니라 일부 노동단체들까지 민주노총의 경사노위 불참을 두고 죄인 취급이다. 경사노위에 조속히 참여해서 빨리 내줄 건 내주고 받을 건 받아야지, 제 이익만 챙기려고 기득권노조의 이익에 몰두하며 사회 양극화를 부추기면서 경사노위에 참여하지 않는다는 공격을 서슴지 않는다. 이것은 제안이 아니라 강제다.

경사노위에서 논의되는 것은 도대체 무엇인가

그렇다면 왜 이렇게까지 “사회적 대화”에 참여를 강제하고 있는 것인가?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사회적 대화에서 어떠한 내용이 오가고 있는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먼저 경사노위의 구성을 살펴보자. 경사노위에는 기존의 노사 대표자에 ‘청년, 여성, 비정규직, 중소기업, 중견기업, 소상공인의 참여를 확대’했다. 그러나 새롭게 노동자와 사용자의 대표가 추가된 것은 아니며, 기존의 대표자 자리를 나누어 가졌을 뿐이다. 총 18인의 위원회 위원 중, 근로자대표는 총 5인으로 민주노총, 한국노총의 대표자에 청년대표 1인, 여성대표 1인, 비정규직대표 1인으로 TO는 꽉 찼다고 할 수 있다. 나머지는 정부를 대표하는 위원 2인에 공익을 대표하는 위원 4명, 위원장과 상임위원으로, 노동자대표 5인을 제외한 나머지 위원들이 총 13인에 달한다. 사용자대표 5인, 노동자대표 5인에 정부/공익/전문가 7인의 구성은 타당하고 공정한가?

대한민국은 자본주의 사회로, 건립 이래로 노동자나 노동조합을 보호하거나 강화했던 적은 찾아보기 어렵고, 오히려 사용자의 편에서 사용자를 강화하고 경영하기 좋은 나라를 만들기 위해 적극 노력해왔다. 때로는 친노동자적인 정부가 들어서 노동자의 정부를 표방했지만, 오히려 그때마다 비정규직법의 입법, 파견법 도입, 사회양극화 심화 등 노동시장 유연화가 강화됐다. 이러한 상황을 고려할 때, 현 경사노위의 구성은 노동자대표 5인 대 반노동자대표 12인의 구성이라고 보아도 무방하다.

다음으로는 경사노위의 의제를 살펴보자. 현재 경사노위는 매우 복잡한 위원회 체계를 가지고 있다. 특별위원회와 의제별위원회, 업종별위원회에 더해 사회 각 계층 관련 위원회에 연구위원회까지 존재한다. 특별위원회 안에는 국민연금개혁과 노후소득보장특별위원회가 있으며, 업종별위원회에는 금융산업위원회와 해운산업위원회가 있다. 가장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는 위원회는 의제별위원회로서, 노동시간제도개선위원회를 빼고는 지난해 7월부터 논의를 시작하였으며, 노사관계제도관행개선위원회는 지금까지 총 12회의 전체회의를 진행했으며, 2019년 1월내에 소기의 결과를 도출하겠다는 포부를 밝힌바 있다.

디지털 전환과 노동의 미래위원회와 사회안전망개선위원회 총 11차씩, 산업안전보건위원회는 9차에 걸친 전체회의를 진행했다. 노동시간제도개선위원회는 지난해 12월에 시작돼 벌써 3차에 걸친 논의를 진행 중에 있다. 19년 1월 현재, 가장 쟁점이 되고 있는 상황은 바로 노사관계제도관행개선위원회(이하 ‘노개위’)에서 논의 중인 ILO 협약비준과 관계된 사항과 노동시간제도개선위원회에서 논의 중인 탄력적 근로시간제 확대에 관한 사항이다.

지난해 노개위 진행 내내 사용자단체는 노개위 내에서 ILO 결사의 자유에 대한 ‘대가’로 대체근로의 허용, 사용자 부당노동행위에 대한 처벌규정 삭제, 노동조합의 부당노동행위 신설, 사업장 내 쟁의행위 금지, 단체협약 유효기간 연장(3-4년), 쟁의행위 찬반절차 요건강화, 단체교섭 대상 명확화(인사경영사항, 정치적 문제를 교섭대상에서 제외 명시), 직장폐쇄 요건 완화(예방적 직장폐쇄 허용)를 주장했다.

이러한 사용자단체의 주장은 대놓고 노동3권을 무력화시키는 것을 넘어 허용하지 않겠다는 주장이다. 사용자단체의 주장의 수준이 이러한데도, 노개위는 이러한 주장을 매우 진지하게 검토하고 있다. 심지어 공익위원안은 사용자의 주장을 받는데 그치지 않고, 공무원의 단결권 및 단체행동권, 그리고 교원의 단체행동권 제한을 유지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특수고용노동자의 노조할 권리에 대하여는 어떠한 입장도 제시하고 있지 않으며, 원청을 상대로 한 노조 할 권리에 대해서도 역시 언급하고 있지 않다.

최근 노개위 전체회의 회의록을 보면, 특수고용노동자의 노조할 권리에 대해 내부에 이견이 커서 의견을 좁히기 위해 불가피하게 안건에서 제외했다고 한다. 누구의 이견인가? 노동계가 도저히 받을 수 없는 사용자측의 주장들은 온전히 담겨 있는 반면, 노동계의 요구는 이견을 이유로 제외돼 있는 이 상황에서 노동계가 계속해서 경사노위에 참여하는 것이, 참여를 강요받는 것이 과연 올바른 ‘사회적 대화’이고 사회적 교섭의 틀인가 하는 의문이 든다.

노동자에게 필요한 것은 그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게 하는 ‘힘’이다

지난해 12월 5일 여야정 국정상설협의체는 난데없이 탄력적 근로시간제 확대적용에 합의한다는 합의문을 발표하였다. 이후 경사노위는 신속하게 노동시간제도개선위원회를 만들어 논의를 시작했다. 첫 탄력적 근로시간제 확대 언급 이후 불과 한 달 남짓 만에 경사노위는 노동시간제도에 관한 해외사례 발표에 대한 결과발표를 마쳤고, 1월 말까지 탄력적 근로시간제 단위기간 확대에 대한 논의를 마치겠다는 입장을 발표했다. 이처럼 신속한 진행과 입장의 발표를 주도하고 있는 것은 누구인가?

[출처: 참세상 자료사진]

탄력적 근로시간제 확대를 통해 근로시간 단축으로 인한 피해를 최소화하고 연장근로수당 등 가산수당의 지급을 최소화한 채 노동을 보다 유연하게 사용하겠다는 사용자단체의 입장을 정부가 적극 수용하며 주도하고 있는 상황이다. 노동시간제도개선위원회에는 현재 민주노총의 참여거부로 노동계대표로 한국노총 대표 1인만이 참여하고 있는 상태다. 사용자단체들이 탄력적 근로시간제 단위기간 확대에 사활을 걸고 총력을 기울이고 있고 정부와 국회가 지지하는 상태에서, 과연 현행의 논의구조와 민주노총의 참여 강제는 공정한가? 노동자를 사지에 몰아넣고, 자신의 뜻을 따라주지 않는다고 떼쓰는 것은 오히려 정부와 사용자단체들이다.

현재 ILO 비준에 대한 건과 탄력적 근로시간제 단위기간 확대의 건은 논의하고 있는 위원회도 별개이며, 논의시기도 완전히 다르다. 그럼에도 현재 두 안건은 마치 패키지처럼 다뤄지고 있다. 언론은 끊임없이 노동계가 ILO 결사의 자유 협약 비준이라는 성과를 얻는 만큼 노동기본권과 탄력적 근로시간 제도를 양보하라고 한다. 그러나 ILO 협약비준은 노동계가 양보할 게 없는 사안이다. 이미 수차례 정부는 ILO 협약비준을 국제사회에 약속했다. 약속을 이행하면 되는 것을 두고 왜 노동계에게 양보하라고 하는가? ILO 협약비준은 이행해야 할 문제이지 노동기본권이나 탄력적 근로시간제 단위기간 확대와 교섭할 사항이 아니다.

정부와 사용자단체들은 사회적 합의라는 이름으로 노동자의 권리를 빼앗아 갔다. 1996년 김영상 정부 시절의 노사관계개선위원회도, 1998년 이후의 노사정위원회도 마찬가지였다. 사회적 합의 과정에서의 노동조합의 반박은 언제나 조합이기주의라고 비판받았다. 그리고 현재 경사노위는 민주노총이 사회적 대화를 거부하자 또다시 기득권 노조의 조합이기주의라며 동일한 주장을 반복하고 있다. 20년간 노동조합과 노동자들은 사회적 대화와 합의라는 ‘허울’에 속아 끊임없이 후퇴했다.

지금 정부에서 사회적 대화에 함께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들에게 묻는다. 이미 친 자본적 행보를 가시화 하고 있는 정부를 상대로, 노동존중을 되뇌는 정부에 기대 자본의 숙원을 하나하나 풀어가고 있는 지금의 이 시점에서, 경사노위는 과연 다르다 할 수 있는가? 사회적 대화 이전에, 노동조합이 스스로를 대표하고, 노동자로서 발언할 권리를 갖기 위해 먼저 회복돼야 할 것은 허울 좋은 사회적 대화의 복원이 아니라 노동자가 스스로 조직하고 투쟁할 권리가 아닌가? 정말 필요한 것은 ‘대화’가 아니라 오히려 노동자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도록 하는 노동자의 ‘힘’이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