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균 장례 한 달… 쏟아진 대책들에 먼지만 쌓여가는 시간

정규직 전환은 논의도 못 하고 진상규명위 배도 못 띄워

‘위험의 외주화’를 우리 사회 화두로 만든 청년 비정규직 노동자 김용균 씨가 사망한 지 곧 있으면 100일이 된다. 발전소의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다 죽은 김용균 씨는 산업안전보건법의 개정과 발전소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등을 진전시켰다. 그의 죽음 이후에 쏟아진 대책들은 마땅히 안전한 노동 환경을 앞당겨야 하지만 정규직 전환 논의는 멈춰있고, 발전소에서 벌어진 수많은 참사 원인을 규명하고 과제를 마련해야 할 진상규명위원회는 아직 배를 띄우지도 못하고 있다. 심지어 지난 5일엔 김용균 씨가 사망한 태안화력발전소에서 노동자가 컨베이어 벨트에 끼어 다치는 사고가 일어나기도 했다.


‘청년 비정규직 고 김용균 시민대책위원회’는 12일 서울 중구 프란치스코 교육회관 2층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김용균법이 통과되고 후속으로 나온 각종 대책이 현재 어떤 과정을 겪고 있는지 설명했다. 이야기를 종합하면 현장은 여전히 위험하고, 정규직 전환 역시 진척이 없으며, 4개월간의 활동을 보장받은 진상규명위는 합의된 총리령에 대해 법제처와의 이견이 존재해 발족이 늦어지고 있는 상태다.

앞서 정부와 여당은 지난 2월 5일 김용균 씨 사망사고 진상규명을 위한 진상규명위원회 구성, 2인 1조 근무체제 시행, 정규직화 방안 등을 발표한 바 있다.

발족도 못 한 진상규명위, 남은 활동 기간은 점점 짧아지는데…

독립적이고 권한을 가진 진상규명위원회의 구성과 운영은 시민대책위의 가장 중요한 요구안 중 하나였다. 고용노동부의 특별근로감독으로도 막을 수 없는 사고들을 제대로 규명하고, 사고 재발 방지를 위한 구조적-근본적 대책을 마련하자는 취지였다.

시민대책위와 국무조정실, 정부 관계 부처(고용노동부, 산업통상자원부, 기획재정부)는 국무총리 훈령을 제정하고 훈령에 따라 진상규명위를 운영하기로 했다. 하지만 시민대책위와 국무조정실 등이 합의한 총리령에 대해 법제처가 이견을 제시하며 발족이 늦어지고 있다.

이견들을 자세히 살펴보면, 조사 범위를 두고 시민대책위는 9개의 석탄발전소를 비롯해 다른 화력발전소까지 조사할 수 있어야 한다고 하지만, 법제처는 석탄발전소에 대해서만 조사하자는 입장이다. 정책수립범위에 있어서도 시민대책위는 고용구조라든가 노동 문제를 함께 다룰 수 있는 노동안전보건 정책 수립을 이야기하지만, 법제처에서는 산업안전보건 정책을 이야기하고 있다.

진상조사위의 권고 사항이 제대로 이행되고 있는지 점검하기 위한 방법도 다르다. 시민대책위는 위원회 활동 종료 후, 2년간 위원회에 참여했던 인사들이 점검회의를 개최하는 등의 방법을 요구하고 있지만, 법제처는 국무총리가 ‘특별히 관리해야 한다’로 단순화했다.


진상규명위원회 간사위원으로 추천받은 권영국 변호사는 “이견을 서로 조율하는 과정에서 시간이 길어지고 있다”라며 “3월 18일 전에 훈령이 마무리됐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전달하고 조율 중인데 시간이 조금 더 걸릴지 모르겠다”라고 밝혔다.

이어 “(진상규명위 발족이 지연되면) 조사활동 기간이 짧아질 수밖에 없다. 필요에 따라 연장할 수 있다는 부칙을 두고 있긴 하지만 애초 3월부터 6월까지가 활동 기간이다. 최대한 주어진 기간 안에서 집중하려고 했는데 한 달 이상 지연돼 7월 말까지로 변경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라고 말했다.

권 변호사에 의하면 현재 시민대책위와 정부의 추천으로 16명의 위원은 이미 구성된 상태다. 여기엔 위원장 1인과 간사위원 2명이 포함된다.

노사전협의체 구성도 못 한 정규직화 논의

정규직 전환 과정은 더욱 심각하다. 지난 2월 5일 당정의 연료환경설비 운전 분야의 정규직 전환 발표에 의하면 “통합 노·사·전 협의체의 대표성을 강화하기 위해 근로자 대표를 추가 참여시키는 방식으로 재구성하도록 적극 지원”하겠다고 밝혔으나 이를 위한 회의조차 열리지 않는 상황이다.

앞서 발전 5사는 당정 대책이 나오기 전인 1월 23일 회의를 열어 노·사·전 통합협의체 노동자대표를 선정했다. 공공운수노조는 위험의 외주화를 막기 위한 투쟁을 전개하고 있던 자신들을 배제한 합의이고, 당정 대책 또한 근로자 대표의 추가 참여를 이야기하므로 노사전 통합협의체 재구성을 요구하고 있다. 시민대책위는 새로운 통합 노사전 협의체 구성 과정에 있어 주도적 역할을 해야 할 발전 5사가 역할을 방기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태성 발전비정규직연대회의 간사는 "노사전 통합협의체 재구성을 위해 발전 5사에 공문을 보냈으나 노동자들이 알아서 하라는 무책임한 답변이 왔다”라며 “발전사는 근로자 대표 선정 과정에서 회의를 공지하고, 노동자들이 자율적으로 논의할 수 있도록 틀을 만들어야 하는데 한 달이 지나도록 전체 회의를 소집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경상정비 분야의 정규직화 논의 역시 첫발도 못 떼고 있다. 시민대책위 상황실장이었던 박준선 공공운수노조 조직국장은 “당정 대책에 따르면 위험의 외주화 방지를 위해 발전소 경상정비 노사전 협의체를 즉시 구성한다고 돼 있다. 하지만 발전소 측은 한 달이 지나도록 노사전 협의체 구성 계획을 이야기하자고 연락해도 답이 없다. 전화해도 받지 않는다”라고 토로했다.

2인 1조가 참사 막았다지만…여전히 인원 부족 시달려

시민대책위는 긴급안전조치로 2인 1조를 시행하고 있지만, 현장에선 안착되지 못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날 기자간담회에 청중으로 참석한 최규철 발전노조 한전산업개발지부 태안지회장은 “2인 1조를 하지만 (인원충원이 적절히 되지 않아) 하루 5번 순찰 돌아야 하는 것을 4번으로 줄이고 있다. 화재 사고가 나거나 인명사고가 나거나 둘 중 하나다”라며 “빠른 시일 내에 인원 충원돼 정상적 2인 1조가 돼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박준선 조직국장은 “2인 1조는 끼이면 풀코드 당겨주기 위해 하는 게 아니다. 작업 공간이 안전하게 확보되고, 설비 안전하게 운영되는 것이 근본적인 해결책”이라며 안전 설비 개선을 촉구했다.


한편, 이날 고 김용균 씨의 어머니 김미숙 씨도 참석해 이야기를 나눴다. 김 씨는 “이 세상에 내 아들이 현실에 없다는 게 너무 끔찍하고 받아들여야 하는데도 마음이 내키지 않고 공허한 마음 어떻게 해야 할 지 모르겠다”라면서 “자본가들이 예방을 소홀히 하거나 방치해 이런 사고가 발생할 수밖에 없는 현실을 만들어 놓은 것을 잊지 않고 기억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발전소 문제를 즉시 해결하겠다고 약속했는데 왜 이리 느려지고 있는지 모르겠다. 국민이 보는 앞에서 대책 발표했듯 합의한 내용들이 충실히 이행되고 있는지 정부에서 확인하고 하루빨리 진행되길 역할을 다 해주길 바란다”라고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