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정부도 아파르트헤이트...“차별금지법 제정을”

세계인종차별철폐의날 맞아 인권단체들, ‘모두의 목소리! 모두를 RESPECT!’ 공동행동

“처음 ‘당신의 나라로 돌아가라’는 말을 들었던 건 서울출입국관리사무소에서였다. 난민 지위를 신청하기 위해 각종 자료를 냈는데 인터뷰 25분 만에 돌아가라고 했다. 같은 말을 평택시 송탄출장소에서도 들었다. 3번째로 들은 것은 난민반대 단체들로부터였다. 한국 정부와 난민반대 단체는 같은 말을 했다. 정치적 박해를 피해 왔는데 더욱 추악한 박해에 시달렸다.”

말레이시아 출신의 무하마드 사브리 씨가 자신이 겪은 박해 사례를 증언했다. 유엔(UN)이 정한 3월 21일 세계인종차별철폐의날을 앞두고 난민인권네트워크, 외국인이주·노동운동협의회, 차별금지법제정연대가 17일 오후 서울 보신각 앞에서 주최한 집회에서 나온 발언이다. 난민과 이주노동자들이 증언한 한국에서의 인종차별의 심각성은 53년 전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아파르트헤이트 정책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참가자들은 특히 뉴질랜드에서 일어난 인종차별 테러를 지적하고 애도하며 한국에서의 차별금지법 제정이 시급하다고 경고했다.

  참가자들이 공동성명서를 각국 언어로 발표하고 있다.


세계인종차별철폐의 날은 1960년 3월 21일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인종분리정책인 아파르트헤이트(apartheid)에 반대하며 평화적 집회를 하다가 경찰이 쏜 총에 맞아 69명의 시민이 희생된 것을 기리는 날이다. 이 날을 전후해 전 세계 각국에서 인종차별에 반대하고 이주민의 권리 실현을 위한 행동이 전개된다.

세계인종차별철폐의날은 올해 53주년이 됐지만 인권활동가들은 한국 정부의 인종차별 정책이 여전히 심각하다고 지적한다. 미등록 이주노동자 강제단속이나 추방과 구금, 사업장 이동을 제한하고 사업주에 종속시키는 고용허가제, 이주여성에 대한 성차별과 성폭력, 차별적인 건강보험제도나 혐오와 차별을 부추기는 난민 정책과 법무부의 난민면접 조작 사건까지 그 심각성이 매우 크다는 것이 활동가들의 공동된 시각이다.

특히 지난해 12월 UN인종차별철폐위원회는 한국 정부에 또다시 인종차별에 대한 법적 정의를 만들고, 이를 금지하는 포괄적인 법률을 제정할 것과 인종차별에 기인한 범죄를 가중처벌 할 수 있는 형법을 개정하라고 권고했지만 이는 계속 미뤄지고 있는 실정이다.


실제로 이날 공동행동 집회에서 이주민들이 직접 제기한 사례들은 한국 정부의 정책으로 양산된 문제가 대부분이었다.

대표적으로 남양주 샬롬의 집에서 온 샐림 씨는 “잔업을 하는데도 월급이 항상 적다. 그런데도 사장은 제때 지급하지도 않는다. 이유를 물어봐도 설명하지 않고 가난한 나라에서 왔다는 이유로 무시만 한다. 왜 손으로 음식을 먹는지, 돼지고지를 왜 먹지 않는지 물어보지 않고 더럽다고만 한다. 고용허가제 때문에 우리는 강제노동을 할 수밖에 없다. 고용허가제를 폐지하고 사업장 이동의 자유를 보장하라”고 말했다.

이주여성으로서 느끼는 이중차별에 대한 문제의식도 팽배했다.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의 레티마이투 씨는 “여성이자 이주자인 이주여성의 현실은 더욱 열악하다”며 “성희롱과 성폭력에 노출되기 쉽지만 그럼에도 적극 나서지 못하는 사례들이 많다”고 지적했다.




이 때문에 인권단체 활동가들은 고용허가제 같은 제도를 근본적으로 뜯어고치고 차별금지법을 제정하는 등 인종차별을 철폐하기 위한 제도 개선에 서둘러야 한다고 말한다.

이종민 외국인이주·노동운동협의회 운영위원장은 “뉴질랜드에서 테러가 일어났지만 대부분은 이에 동의하지 않는다. 우리가 인종차별 없애기 위해 노력하지 않는다면 우리 안에서도 그런 테러가 자라날지 모른다”며 “서로를 존중하고 환대하는 사회를 만들자”고 제안했다.

차별금지법제정연대의 박한희 씨는 “차별과 혐오는 국가의 방조와 동조 속에서 자라난다. 작년 예멘 난민 혐오도 갑자기 나타난 것이 아니라 국가의 수십 년 동안의 방조 속에서 형성된 것이다. 차별을 금지하기 위한 사회적인 선언이 차별금지법이다. 그런데도 정부는 외면하고 있다. 모두의 목소리, 모두를 존중하기 위해 차별과 혐오의 구조를 바꿀 수 있도록 함께 나서자”라고 호소했다.



이날 공동행동은 아산이주노동센터의 리가쵸 잘라 씨의 사회로 진행됐다. 무대 발언 외에도 퀴어댄스팀 큐캔디의 공연과 난민인권센터의 퍼포먼스 등이 눈길을 모았다. 300여 명의 참가자들은 보신각에서 서울고용노동청을 통해 국가인권위원회까지 행진하고 행사를 마무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