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 26세 반도체 노동자, 투병 중 사망…"엄마 꼭 싸워서 이겨줘"

서울반도체에서 일하다 희귀병 진단…산재 승인에도 회사는 산재 취소 소송 제기


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던 젊은 노동자가 지난 8일 저녁 11시 43분 신촌 세브란스 병원 중환자실에서 악성 림프종에 걸려 투병하던 중 사망했다. ‘아름다운 꽃이 핀다’는 이름을 가진 이가영 씨는 돌아오는 봄, 피어나는 꽃들을 채 보지 못한 채 만 스물여섯살의 나이에 숨을 거뒀다.

이 씨가 악성림프종(역형성 대세포림프종) 진단을 처음 받은 건 2017년 9월. 서울반도체에서 일한 지 2년 7개월이 지나던 때였다. 이 씨는 2015년 2월 스탭스라는 파견업체를 통해 서울반도체에 약 2개월 정도 파견돼 일하다 그해 5월부터 정규직으로 입사해 일해왔다. 그전까지는 에스피반도체에서 약 3년 7개월 근무했다.

희귀병 진단을 받은 이 씨는 2017년 10월부터 6주의 항암치료를 끝냈지만 지난해 9월 림프종이 재발해 다시 한번 항암치료를 시작했다. 올해 1월엔 조혈모세포 이식수술을 받았다. 집으로 옮겨 감염관리를 하던 와중 지난 3월 이 씨의 상태가 급격하게 안 좋아졌다. 고열로 응급실을 찾는 날이 생겼다. 지난 3월 24일에도 가슴 통증을 호소하던 이 씨는 급하게 응급실을 찾았다. 이 씨와 가족들은 결국 의사에게 세포 변형이 있고, 전이된 것 같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다시 동종 조혈모세포 이식을 하려면 6개월 뒤에나 가능한 상황에서 표적 항암치료법을 선택했고, 고인이 사망한 날은 표적 항암치료에 들어가기 시작한 날이었다.

그 사이 근로복지공단은 고인의 악성 림프종을 산업재해로 인정했다.

2018년 10월, 근로복지공단 서울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는 “신청인(이가영 씨)은 장시간 근로와 주야간교대 근무, 배합(믹싱)업무, 테이핑 고정, 절단(쏘잉) 업무를 수행하며 안전 장비의 지급도 없었고 반도체 제조 공정이 갖고 있는 내재적 위험요인인 휘발성 유기화학물에 노출됐고, 동일 사업장의 타 재해자의 질병 관련 역학조사 자료에서 작업장 내에서 포름알데히드와 벤젠이 검출됐기에 신청상병은 업무상 재해로 인정돼야 한다”라고 밝혔다.

또 “업무내용 검토 결과, 사업장에서 신청 상병의 원인이 되는 물질인 포름알데히드가 미량이지만 검출된 점, 업무 환경을 고려하면 돌발적으로 상당 양의 포름알데히드 노출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점, 반도체 공장의 환기시스템을 고려하면 신청인이 직접 일하는 공정이 아니라 다른 공정에서 노출된 유해물질도 신청인에게 노출됐을 것으로 보이는 점, 여러 유해요인이 한꺼번에 노출되는 경우 상승작용을 고려해야 하는 점, 1일 10시간 주야간 교대근무를 하며 신체리듬이 매우 불규칙했던 것으로 보이는 점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면, 업무와 신청 상병과의 상당인과관계가 인정된다”라는 게 위원들의 다수 의견이었다.

실제 이 씨는 일하는 내내 유해물질과 장시간 노동 같은 위험에 노출돼 왔다. 이 씨는 근로복지공단에 제출한 자료를 통해 “식사 시간 30분씩 2차례, 쉬는 시간은 10분씩 2차례가 주어져 실 휴게 시간은 하루 1시간 20분에 불과했다. 수시로 처리해야 하는 물량에 관한 압박을 받았고, 이를 위해 추가 근무를 해야 했던 기록을 확인할 수 있다. 사소한 것 하나까지 지적할 정도로 엄격한 노무관리를 하고 있었다”고 주장했다. 주야 2교대 10시간 근무를 했던 이 씨는 추가 근무를 하면 12시간까지 일하기도 했다.

이 씨의 어머니 이미랑 씨는 마스크 같은 안전장비가 부실하고, 안전 교육도 부실했다고 강조했다. 이미랑 씨는 “가영이가 회사에서 제공하는 방독 마스크는 귀빈용이라는 말을 했다. 바이어가 오거나 높은 사람이 오면 쓰는 보여주기식이라는 거다. 실제로 회사가 나눠준 마스크는 1겹인데, 가영이 같은 경우는 이게 찜찜하다며 2겹짜리 마스크를 사서 썼고, 주변에도 나눠줬다”라고 말했다.

이미랑 씨는 또 “회사 관계자가 직원들이 답답해서 마스크를 벗기 때문에 자기들 책임은 아니라는 말을 하기도 했는데 안전 교육을 수차례 시켜서라도 위험을 충분히 알리고, 꼭 착용하도록 했어야 했다. 당신들 방관한 것은 그것대로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지적했다”라고 말했다.

서울반도체, 두번째 환자에도 “잘못 없다”

근로복지공단의 산재 인정에도 회사는 산재 인정 취소 소송에 나서 가족들을 절망케 했다. 2019년 2월 초, 서울반도체 인사팀장은 이 씨의 집을 찾아 회사가 산재 인정 취소 소송을 검토 중이라고 했다. 이식 수술을 받은 이씨가 퇴원한 지 사흘째인 날이었다. 검토 중이라는 말도 거짓말이었다. 회사는 이미 1월에 취소 소송을 제기한 뒤였다.

이 소식을 들은 ‘반도체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반올림’(이하 반올림)에서 서울반도체에 공문을 보내 이 소송이 이 씨와 가족들에게 얼마나 큰 고통을 주는지 설명하고 소송 취하를 정중히 부탁하였으나, 회사의 태도엔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반올림은 9일 추모성명을 통해 “서울반도체는 직업병의 고통에 위로를 건네지는 못할망정, 도리어 최소한의 치료와 생존의 권리를 위한 산재보험 보상마저 방해하기 위해 소송을 불사했다”라며 “무엇보다 재발과 치료로 몸과 마음이 허약해질대로 허약해진 상태에서 이런 회사의 통보가 가영님에게 얼마나 큰 충격이었을지를 생각하면 분노하지 않을 수 없다”라고 비판했다.

이미랑 씨는 딸이 두 회사에서 우수사원상을 받을 정도로 열심히 일했다고 호소했다. 그러면서 딸이 급작스럽게 세상을 떠나는 바람에 많은 이야기는 못 남겼지만, 꼭 싸워 이겨달라는 말을 유언으로 삼고 있다고 했다. 이미랑 씨는 “회사 관계자가 왔다 간 후에 딸이 내게 꼭 싸워서 이겨달라고 했다”라며 “딸에게 엄마가 어떻게든 해결하겠다고, 엄마는 청와대 가서도 피켓 들 자신 있고, 거기(서울반도체) 남아있는 사람들을 위해서라도 우리 소송이 첫 스타트를 잘 끊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으니까 걱정 말라고 말했는데 회사가 이렇게까지 나오는 게 속상하고 실망스럽다”라고 한숨을 쉬었다.

서울반도체에선 이전에도 백혈병 환자가 나온 바 있다. 2012년 10월부터 2013년 2월까지 서울반도체에서 일했던 당시 27세 여성 송영란 씨는 몰딩공정, 에폭시 제조 등에 투입돼 일하던 중 백혈병 판정을 받았다. 산재 인정을 다투다 끝내 불승인 받았지만 송 씨의 사건으로 서울반도체를 역학조사했고, 포름알데히드와 벤젠이 검출됐다는 것을 자료로 남겼다.

2014년 송영란 씨는 반올림을 통해 “제가 다루는 화학물질이 얼마나 위험한지 회사는 아무것도 알려주지 않았다. 저같은 젊은 사람들이 하나밖에 없는 생명을 담보로 앞으로도 이런 위험한 일을 할 것이라 생각하면 이 사회가 두렵기만 하다”라며 “적어도 어떤 위험한 화학물질을 내가 만지고 있는 것인지 알게 해달라”고 이야기한 바 있다.

평범하게 일하고 싶다던 딸의 꿈

9일 저녁 신촌 세브란스 병원 장례식장에서 만난 이미랑 씨는 딸의 이야기를 하다 몇 번씩 가슴을 쓸었다. 이미랑 씨는 딸이 병을 얻게 된 것이 모두 자기 탓이라고 여겼다.

[출처: 반올림]

“우리집에 빚이 많아서 가영이한테 너하고 나하고 같이 빚 갚아서 일어서자고 이야기했어요. 이전 직장 월급이 적어서 서울반도체를 알아봐준 것도 저예요. 제가 서울반도체 집어넣은 것이나 마찬가지예요. 지금은 저를 찍어버리고 싶어요. 그 회사가 직원도 1000명 가까이 되서 좋은 회사인 줄 알았죠. 그런데 아니었어요. 가영이에게 상처를 주고, 아프게 했잖아요. 회사에서 직원들이 불안해 한다고, 회사 명예가 실추됐다고 산재 취소 소송을 한다고 해요. 용납 못해요. 우리 가영이가 술담배를 했나요, 어디가서 딴 짓을 했나요. 12시간 그 회사 공기를 마시고, 끝나면 그대로 기숙사에 들어가서 바로 자기 바빴던 애예요.”

이미랑 씨는 딸이 아픈 뒤 오래오래 살았으면 좋겠다는 뜻에서 숫자 ‘5’에 매달렸다. 휴지를 뽑아도 5개씩 뽑고, 마트에 가서는 뭘 집어도 5개씩 샀다. 작명소에서 오래 살 수 있는 이름도 받아와 집에선 ‘하윤’이라고 불렀다. “50년만 더 살았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제가 기분이 안 좋으면 하트춤, 짱구춤을 추던 아이였어요. 짝꿍을 잃어버린 것 같아요. 뭘해도 같이 하자고 했는데, 저는 이제 혼자서 뭘 할 수 있을까요”라고 말하는 이 씨는 눈물을 훔치기도 했다.

가영 씨의 꿈은 무엇이었을까. 이미랑 씨는 “가영이가 컴퓨터 학원에 다니고 싶어했어요. 컴퓨터를 배워서 현장 안 가고 보통의 평범한 사무직처럼 일하고 싶다고요. 제가 빚내서라도 해준다고 했는데…”라며 말끝을 흐렸다.

한편, 이날 저녁 서울반도체의 사장 및 인사팀장 등이 장례식장을 찾아 소란이 벌어지기도 했다. 유족은 “아파서 병원에 누워있을 땐 아무리 오라고 해도 얼굴 한번 비추지 않더니, 죽고 나서야 확인하러 온 것이냐”라며 분개했다. 소송을 취하하지 않으면 장례절차를 무기한 연기하겠다고도 선포했다.

서울반도체 대표는 “10일 낮 12시까지 노사협의회를 통해 결정하겠다”라며 즉답을 피하고 돌아갔다. 이에 유족은 10일 새벽으로 예정된 발인을 취소하고 회사의 결정을 기다리고 있는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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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미하

    안타까운 꽃잎
    삼가고인의명복을빕니다!
    이땅에 가영씨같은 희생이 더이상 일어나지 안기를~

  • 박태수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오너가 조금만 직원들을 안으면 모든것이 해결되고 또한 자신의 목숨같이 내 가족같이 직원들을 대한다면 이러지는 않을것인데 많이 안타갑네요 내부 직원을 내 가족같이 안고 섬기면 모두가 존경하고 고마워 할것을 그들이 참 불쌍하다... 26세 꽃다운 나인데 마음이 아프네요 꼭 좋은결과가 있으리라 믿으면서 딸의 소원을 향한 엄마의 바램대로 되기를 기원드립니다 하늘나라 좋은곳에서 평안하세요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 익명

    얼마전 김동춘 교수가 한겨레 칼럼에서, "사교육 시장은 곧 ‘노동자 안 되기’ 전쟁터"라고 했는데, "현장 안 가고 보통의 평범한 사무직처럼 일하고 싶다"는 고인의 말을 들으니, 우리 사회 생산직의 노동 현실이 어떠한지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