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으로 온 13년 세월

[워커스 르포] 콜텍 교섭 타결, 정리해고 투쟁 마지막 날

[출처: 김한주 기자]

“이렇게 소개하는 것도 마지막일 것 같습니다. 금속노조 콜텍지회 지회장 이인근입니다.”

“목숨 살려줘서 고맙습니다.”
(금속노조 콜텍지회 임재춘 조합원)

“환호를 받을 만큼 열심히 살지 못했고, 잘 살지 못했습니다.”
(금속노조 콜텍지회 김경봉 조합원)

4월 23일 서울 강서구 콜텍 본사 앞 농성장. 금속노조 콜텍지회의 마지막 기자회견에서 3명의 노동자가 꺼낸 첫마디다. 노사 합의로 5월 복직하게 될 콜텍 노동자들은 꽃다발을 받아 들었다. 13년 투쟁을 함께 한 노동자와 시민들은 이들을 지켜보며 함께 눈물을 흘렸다. 4464일을 기다린 회사의 정리해고 사과. 노동자들은 만감이 교차했다.

콜텍지회 농성장과 단식농성장 천막 두 동, ‘4464’에서 멈춘 농성 알림판, 수많은 연대 시민의 이름이 적힌 ‘봉춘근(김경봉, 임재춘, 이인근)’ 기타 조형물, ‘해고 금지’로 바뀐 ‘주차 금지’ 표지판, 수많은 피켓과 현수막, 처음으로 기자회견 참가자보다 많이 몰려온 취재진. 콜텍지회 13년 투쟁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출처: 김한주 기자]

교섭 타결까지…해보지 않은 것이 없었다

13년의 정리해고 투쟁, 42일의 단식 끝에 합의서가 나왔다. 교섭 타결에 이를 때까지의 시간은 고통의 연속이었다. 금속노조 콜텍지회와 콜텍 투쟁 승리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의 핵심 요구는 정리해고 사과와 해고자 명예 복직, 해고기간 보상이었다. 콜텍 노사는 지난해 12월 26일부터 교섭을 시작했다. 하지만 사측은 노조의 요구를 단 하나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교섭은 결렬을 거듭했다. 사측을 압박 할 수단이 필요했고, 노조는 올해 1월 8일 끝장 투쟁을 선포했다. 이때 광화문 인근에 있던 농성장을 콜텍 본사 앞으로 옮겼다. 하지만 박영호 콜텍 대표이사는 교섭을 피했고, 대표이사 위임을 받아 교섭에 참여한 이희용 상무 이사는 노조 요구를 일체 거부하기만 했다. 이에 노조는 2월 18일 콜텍 본사 사장실을 기습 방문했다. 그 자리에서 박영호 대표는 직접 교섭에 참여하고 진전된 안을 내놓겠다고 약속했다.

3월 7일 박 대표가 참여한 교섭이 열렸지만 또다시 결렬됐다. 빈손으로 교섭에 나온 박 대표는 회사가 잘못한 게 없다고만 말했다. 3월 12일, 결국 임재춘 조합원이 무기한 단식에 돌입했다. 이인근 지회장은 2017년 4월~5월 광화문 광고탑 위에서 22일간의 단식을 했고, 올해 환갑을 맞은 김경봉 조합원은 건강이 좋지 않은 상태였다. 임재춘 조합원은 자신이 단식을 하겠노라며 직접 나섰다. 노조는 그의 단식이 20일을 넘기지 않도록 머리를 맞댔다. 하지만 사측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단식은 이어졌지만 상황은 달라진 것이 없었다. 이번에는 콜텍지회가 속한 금속노조 대전충북지부가 4월 2일 콜텍 본사 점거 농성을 시도했다. 사측이 진전된 안을 가지고 교섭에 나오겠다는 약속을 할 때까지 나가지 않을 계획이었다. 하지만 콜텍 사무실의 잠금장치는 굳건했고, 이들은 사무실에 진입하지 못한 채 옥상에서 농성을 시작했다. 경찰은 노동자들이 진입하지 못하도록 콜텍 사무실을 지켰다. 사측은 옥상 농성 8일 만에 교섭 요구에 응했고, 노동자들은 옥상 농성을 해제했다. 그렇게 4월 15일, 40일 만에 집중교섭이 시작됐다.

주말을 제외하고는 매일 교섭이 열렸다. 사측은 15일 첫 집중교섭에서 사과가 아닌 ‘유감 표명’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16일 교섭에선 ‘노조도 투쟁으로 사측에 피해를 입혔으니 노사 공동이 유감을 표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노조는 이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동안 노조의 투쟁에도 콜텍 회사는 피해를 입지 않았다. 콜텍은 지난해 매출 1378억 원, 당기순이익 74억 원을 기록한 명실상부 ‘ 동종 업계 1위’, 흑자 기업이었다. 노조는 ‘유감 표명’과 동시에 ‘사측은 향후 부당하게 정리해고를 하지 않는다’는 문구를 추가해야 한다고 맞섰다. 노조가 추가로 제시한 이 문구는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정리해고에 깊은 유감 표명’으로 쟁점이 겨우 정리됐다.

노조는 해고자들의 ‘복직 후 올해 말 퇴직’을 요구했다. 콜텍지회 김경봉 조합원이 올해 정년이고, 정년이 지나면 복직 요구가 힘을 잃기 때문이다. 노조는 집중 교섭에서 ‘복직 기간을 조절할 수 있다’는 의사를 타진했다. 그러자 사측은 도리어 ‘복직 당일 퇴사’ 카드를 꺼냈다. 13년간의 해고생활 끝에 복직한 회사를 하루 만에 그만두라는 말이었다. 교섭에 참여했던 이승열 금속노조 부위원장은 “회사는 ‘해고자가 복직하면 다시 노조 활동하지 않겠느냐, 회사에 하루라도 더 있으면 도저히 불안해 참지 못하겠다’는 식의 얘기를 꺼냈다”며 “월요일(4월 22일)이 돼서야 사측은 일부 수정한 안을 가져왔고, 복직 기간 한 달이 만들어졌다”고 말했다.

해고기간 보상 문제에서도 노사 이견이 좁혀지지 않았다. 지난 19일까지 노사가 여러 쟁점의 합의를 이끌어 나가는 과정에서도, 회사는 보상 문제에 있어서만큼은 사측 초안 만을 고집했다. 회사는 2007년 정리해고 당시 단체협약으로 규정한 위로금만을 지급하겠다는 입장을 굽히지 않았다. 노조 관계자에 따르면, 잠정합의에 이르기 전 주말 (4월 20~21일)에도 교섭대표단 간 통화에서 사측은 끊임없이 보상금에 대한 문제를 제기했다. 교섭대표단은 주말 사이 조합원의 의견을 수렴했고, 4월 22일 알려지지 않은 금액으로 사측과 합의했다. 하지만 합의문엔 ‘해고기간 보상’이 아닌 ‘합의금’이란 단어가 사용됐다. 공대위 관계자는 “사측이 보상은 해고기간을 인정하는 성격을 담고 있다며 이 단어를 사용하는 데 극렬히 반대했다”고 설명했다.

[출처: 김한주 기자]

“그래도, 행복한 투쟁이었어”

합의에 이르기까지 9차례 교섭, 14번의 노사 만남이 있었다. 4월 22일, 단식농성장에서 교섭단을 손꼽아 기다렸던 임재춘 조합원은 잠정합의문을 받고 눈물을 터뜨렸다. “이 한 장 받으려고 13년을 싸웠습니다.” 그리고는 42일 만에 첫 음식인 미음을 먹었다. 건강을 회복하면 ‘파 송송 사골곰탕’이 가장 먹고 싶다고 했다. 잠정 합의가 있던 날 밤, 《워커스》는 임재춘 조합원과 진솔한 이야기를 나눴다.

“합의가 마음에 들지는 않아. 사실 최악의 경우에서 합의한 거지. 사과는 단지 ‘유감 표명’, 복직 기간은 한 달. 우리가 생각했던 마지노선 수준이야. 우리가 교섭에 들어가면서 나는 정말 딱 두 가지를 바랐어. 사측이 진심으로 미안하다고 말하고, 앞으로 이런 행동(정리해고)을 하지 않겠다는 것이었어. 그런데 받아들여지지 않았지. 우리는 결국 돈에 굴복할 수 없었던 걸까.”


콜텍 정리해고에 문재인 정부의 역할은 없었다. 콜텍 노동자들은 정리해고법을 만든, 양승태 사법농단을 일으킨 정부의 책임을 물었지만 소리 없는 메아리로 남았다. 오히려 콜텍은 정부로부터 ‘세계 일류 상품’으로 선정돼 1억 7천만 원의 지원금을 받았다.

“우리는 정치로 희생된 노동자야. 정부가 해결해야 할 일이지. 그런데 재판거래 사업장이자 최장기 투쟁사업장인 콜텍에서 정부는 어디에도 없었어. 정부가 노동자를 외면만 했을까. 정리해고법, 비정규악법을 만든 더불어 민주당과 문재인 정부가 탄력근로제 확대하면서 노동자를 아예 탄압하고 있잖아. 어떻게 보면 이명박, 박근혜 정부 때보다 더 해. 그래서 우리 투쟁은 여기서 끝났지만 사법농단만큼은 끝까지 밝히고 싶어. 억울하잖아.

”스무살 청춘부터 기타를 만들어왔던 그의 나이는 58세. 기타를 만들었던 세월만큼, 투쟁 기간 수많은 사람들이 콜텍을 거쳐 갔다. 밥으로, 기도로, 말동무로, 기금으로 연대했던 이들이 지금은 가장 소중하다. “그래도 행복한 투쟁이었어. 13년 동안 많은 사람을 만났지. 기타라는 것 하나로 예술인, 종교인, 노동자 모두가 모여서 즐겼잖아. 특히 뮤지션들이 우릴 위해 공연도 열고 많은 도움을 줬어. 기타 생산자와 소비자의 만남이라고나 할까? 문화로 승부하는 새로운 투쟁 방법을 콜텍이 만들었다고 생각해. 이들이 있었기에 여기까지 온 건 분명한 사실이야. 이제 고마운 마음 가득 안고 가족들과 매일 함께 있어야지.”

4월 23일 콜텍지회의 마지막 기자회견. 현수막에는 ‘정리해고 없는 세상을 위해 싸우겠습니다’라는 문구가 적혀있었다. 이날 이인근 지회장은 기자회견에서 “이제 자본의 이윤만 대변하는 정리해고제는 폐지돼야 하지 않겠습니까. 당장 폐지하는 게 어렵다면 해고 요건만이라도 강화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노동자들이 더 이상 길거리에서 헤매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노동자들이 마음 놓고 일하고, 노동을 통해 자신의 삶과 꿈을 이뤄가는 사회가 됐으면 좋겠습니다”라고 말했다. 기자회견을 마치고, 임재춘 조합원은 녹생병원으로 옮겨졌다. 그의 곁에는 여전히 이인근 지회장, 김경봉 조합원이 있다. 이제 5월이면 이 세 사람은 13년 만의 출근을 한다. 13년 만에 일상으로 돌아간다. 길고 긴 세월을 거쳐, 다시 처음으로 돌아간다. 정리해고가 없는 세상을 꿈꾼다.[워커스 5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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