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을 위한 자본주의는 없다

[99%의 경제] 인구변화와 경제성장의 한계


자본주의 세계경제 성장의 발목을 잡는 요인으로는 산업생산의 기계대체(자본의 유기적 구성의 고도화), 노동생산성 약화, 기후변화 및 자원고갈 그리고 인구변화 등을 들 수 있다. 모두 근본적인 제약요인으로 사고되는데, 오늘은 인구변화에 따른 세계경제의 생산성 둔화 및 성장 지체 문제를 검토해 보고자 한다.

인구변화는 ‘저출산-고령화’로 압축된다. 저출산 문제는 경제적인 면에서 생산가능인구(15~64세)의 축소다. 한 마디로 노동력 공급이 부족해진다는 뜻이다. 반면 고령화 문제는 생산가능인구에 비해 고령인구(65세 이상)가 증가하는 데 따른 문제다.

경제성장률은 노동, 자본 등 요소투입 증가율과 생산성 증가율의 합으로 정의된다. 따라서 노동투입이 줄면 성장률이 줄게 된다. 이 성장률을 유지 또는 증가시키려면 줄어든 노동투입량 보다 큰 생산성 증가율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저출산-고령화는 노동투입 증가율을 줄일 뿐만 아니라(저출산), 일반적으로 생산성이 더 낮은 노동인구를 유지시켜(고령화) 생산성 증가율도 낮춘다. 결과적으로 경제성장의 두 발목을 다 붙잡는 것과 같다.


이런 저출산-고령화 문제는 국가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보편적인 일이다. 생산가능인구의 증가율보다 고령인구 증가율이 더 높아 세계경제성장의 심각한 장애로 여겨지고 있다. 알다시피 한국의 저출산 문제는 세계적으로도 가장 심각한 수준이다. 출생아 수는 1970년 100만7천 명에서 2018년 32만7천 명으로 1/3 이하 감소했다. 합계출산율도 1970년 4.53명에서 2018년 역대 최초로 1명 미만인 0.98명으로 감소했다. 이 같은 출산율 저하는 생산가능인구의 감소로 이어진다. 통계청 장래인구특별추계(2017∼2067년)에 따르면, 한국의 생산가능인구는 2018년 3765만 명을 정점으로 향후 지속적으로 감소해 2067년에는 1784만 명으로 줄어들 것으로 전망된다. 50년 동안 생산가능인구가 절반 이하로 줄어드는 셈이다.




고령화 문제는 더 심각하다. 고령화는 저출산과 연결돼 새로 유입되는 노동자 수보다 은퇴하는 연령이 많아져 노동력 부족 문제를 야기한다. 또한 노인이 자산을 줄이거나 청산하면서 살아가기 때문에 자산시장의 축소 또는 붕괴, 저축률 하락을 동반하고, 이로 인한 경제성장 둔화 양상이 가속화 된다. 노년기 질환은 치료비용이 매우 비싸기 때문에 의료비 증가로 의료보험 등 재정 부담을 가중시킨다. 또한, 인구 감소와 인구 구성 변화에 따른 소비수요의 축소와 변화도 예상된다. 젊은 층의 수요보다 노년층의 수요가 증가해 전반적인 활력을 떨어뜨리고 소비패턴과 대상도 변할 수 있다. 이처럼 고령화는 수요 및 노동시장, 자산과 금융시장, 재정 악화 등 (자본주의) 경제 전반에 대부분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친다.

이 같은 인구변동, 저출산-고령화에 따른 경제적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으로 크게 다섯 가지 방안을 생각할 수 있다. 첫째, 출산율 증가, 둘째, 이주노동자의 대체 유입, 셋째, 생산가능인구의 생산성 향상, 넷째, 생산가능인구의 고용률 상승, 다섯째, 노령인구의 노동시장
재진입이다.

고령화에도 불구하고 출산율이 (아주 많이) 높아진다면, 현재 제기되는 문제를 장기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 왜 장기적이냐면, 사람이 태어나서 생산적인 노동을 하기 위해서는 대략 30년이 걸리기 때문이다. 지금 당장 출산율이 높아져도 30년 후에나 문제해결이 시작(!)될 수 있다는 말이다. 게다가 저출산은 저임금, 장시간 노동, 사회적 차별 등 사회적 요인이 가장 크다. 하지만 지금으로서는 저출산보다 저임금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더 어려워 보인다. 또한 이주노동자의 유입도 노동력 투입이라는 측면에서는 고려할 수 있지만 생산성 향상이라는 측면에서는 전혀 답이 안 된다.

한편, 생산가능인구의 생산성은 현재 산업생산의 생산성과 동일하므로, 생산가능인구의 생산성 향상은 동어반복에 지나지 않는다. 게다가 저출산-고령화 대책으로서의 생산성 향상은 현재 생산가능인구가 줄어드는 만큼 노동생산성 향상이 수반돼야 하고, 늘어나는 노인부양인구 만큼의 생산성이 또 높아져야 한다. 즉, 저출산-고령화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묻고 더블로’ 생산성이 높아져야 한다. 현재의 생산성 하락을 멈출 수도 없는데, 노동력 공급이 줄어드는 만큼 최소 두 배의 생산성을 더 내야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그러므로 인구변화에 대한 대안으로는 생산가능인구의 고용률을 높이는 것, 특히 청년과 여성의 고용율을 확대하는 것과 노령 인구의 노동시장 재진입이 유일한 방안으로 고려되고 있다. 그것도 각각 개별적이 아니라 동시에 이루어져야 한다.

고령화로 인한 노동공급 감소를 만회하기 위해 생산가능인구 연령대의 경제활동참가율을 높이는 것, 특히 여성과 청년을 독려하는 정책은 전형적인 고령화 대응책이다. 그러나 고령화 속도가 빠르게 진행되기 때문에, 생산성의 획기적인 향상이 없는 한 대체노동력 공급을 증대시키는 방식으로는 부정적 영향을 상쇄하기에 충분치 않다. 한 연구에 따르면, 여성과 청년의 추가적인 경제활동참가에도 불구하고 고령층의 경제활동이 상승하지 않는 한 성장률(연평균)은 0.2~0.4%p 하락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래서 여기에 고령자의 은퇴를 늦추고 노동시장에 재진입시키는 방안이 함께 논의된다.

그런데, 왜 노인이 다시 노동을 해야 하는가? 노인들은 이미 노동자로서 자신의 노후생활을 위한 충분한 잉여(surplus)를 생산해 냈고, 다만 이를 모두 전유하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그 중 일부를 이연임금인 연금, 임금 축적자산인 주택과 저축으로 보유하고 있고, 수십 년 동안 임금의 일부를 건강보험료로 지불했다. 다시 말해 노인들은 (노후생활에 대한) 잉여를 생산했고 그 중 일부를 축적시켜 왔기 때문에 사회적 기여는 물론 현재의 소비도 충분히 정당하다.

노령인구를 다시 노동시장으로 떠밀기 위해 고안해 낸 것이 ‘노인부양비(old-age dependency ratios)’다. 노인부양비는 생산하기 보다는 소비하는 노인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생산가능인구 100명 당 몇 명의 노인을 책임지는 지를 보여준다. 고령화될수록 더 많은 노인을 책임져야 한다. 결국 생산가능인구, 즉 젊은 세대의노인부양비가 더 올라가게 돼 이들에게 더 많은 부담을 지운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노인부양비는 출산율에 따른 생산가능인구 100명
당 몇 명의 자녀양육을 책임지는지를 보여주는 것과 같다. 출산율이 올라갔으니 생산가능인구의 자녀양육 부담이 늘어 더 가난해졌다는 논리와 같다. 출산율의 문제를 개인에게 짊어지우는 것처럼, 노인부양비는 노령인구에 대한 문제를 세대 간의 문제로, 개인의 책임으로 떠넘긴다.

게다가 생산가능인구가 실제 노인을 부양하는 비율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2017년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노인실태조사를 통해 발표한 ‘노인의 가족지원 및 돌봄의 양상’ 보고서에 따르면, 부모가 생존해 있는 65세 이상 노인 중 69.7%는 부모에게 경제적 지원을 하고 있었다. 고민 상담과 같은 정서적 지원을 하는 비중도 40%가 넘는다. 즉, 노인을 부양하는 것은 노인이며, 고령화가 진행될수록 이런 ‘노노부양’은 더욱 확대될 전망이다.

따라서 노후를 책임지지 못해 노동시장에 재진입 하는 것은 국가와 사회와 자본의 책임이며, 이윤 축적 중심의 생산양식이 가지는 고유한 모순이라는 것을 지적해야 한다. 노인부양비 등을 말하며 은퇴 연령과 연금지급시기를 늦추고 다시 노동시장으로 불러들이는 것은 노인 부양의 책임을 세대, 개인의 문제로 돌리는 것일 뿐만 아니라, 생산성 저하를 상쇄시키기 위해 노인에 대한 착취를 더욱 강화하는 것이다. 이는 젊은이들의 부양비용이 걱정돼서가 아니라 고령화에 따른 생산성 하락을 막기 위한 조치이며 시도다.


이러한 시도가 성공할 수 있을까? 연금지급개시를 늦추고, 연금과 의료보험금 자체를 낮추는 것에 대한 저항은 별도로 하고, 여기서는 오직 경제만을 보기로 하자. 한국의 65세 이상 노령인구의 경제활동참가율은 이미 세계 최고수준이다. G7국가의 두 배가 넘는다. 노동시장에 생산가능인구의 고용율과 노인 고용율이 증가하고 있지만 대부분 불안정, 비정규직, 최저임금 수준의 일자리다. 일시적인 공공근로가 늘어나면서 생산성 증가는커녕 오히려 더 떨어뜨리고 있다. 그 결과가 세계 최고의 노인 고용율에도 불구하고 세계 최고의 노인 빈곤률이다. 한국의 노인들은 세계에서 가장 많이 일하면서도 가장 빈곤한 계층이며, 고령화의 확대 속에 이런 경향은 더 강화될 것이다.

한편, 자본의 생산성 향상을 위한 노령인구의 노동시장 회귀 문제는 늘어난 수명만큼 인생을 어떤 방식으로 살아가야 할 것인가의 문제로 귀결된다. 즉, 늘어난 노동시간에도 불구하고 비생산적인 노동으로 잉여가치생산에도 기여하지 못하고, 쥐꼬리만 한 노령연금과 노동소득으로, 길어진 유병기간에 적절한 치료조차 제대로 받지 못하고 살아가야 할지에 대한 문제다.

이는 복지와 같은 분배의 문제가 아니다. 자본의 수익률(이윤율)과 생산성이 높을 때는 복지로 고령화에 대한 여러 문제를 접근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자본의 생산성이 떨어지고 성장이 멈춰선 상태다. 이윤주도의 자본주의 생산양식에서 노인의 생산성은 결코 생산가능연령대의 생산성을 따라잡지 못하고, 잉여가치 생산으로 연결되는 생산적 일자리에 미치지 못한다. 생산적 노동과 생산적 일자리가 주어지지 않는데, 노인들이 생산적으로 변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시장교환이 이뤄지는 상품생산 이외에 노인의 일(work)이 (가사노동과 같이) 사회적인 사용가치 생산과 무관하게 존재하는 것도 아니다. 각종 사회적 유지 및 관리 활동, 자녀 및 손자녀의 돌봄, 정서적 유대와 같은 사회적 재생산 활동이 시장가치를 인정받지 못하고 (무급으로) 있다. 따라서 고령화에 따라 노인 노동이 불가피하다면, 노인의 노동이 사회적 가치 생산과 그 대가를 정당히 받을 수 있도록 생산관계를 변화시키는 것이 필수적이다. (이윤이 아닌) 사회적 사용가치 중심의 생산관계로 변화시켜 생산성의 재구조화는 물론 사회적 노동으로서 노인 노동의 평가도 이뤄져야 한다. 아니면, 인구의 절반에 달하게 될 노령 인구는 (연금지급도 계속 늦춰지고 연금액도 낮아지기 때문에) 지금보다도 더 장시간 노동과 세계 최고수준의 빈곤 상태에서 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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