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 앞둔 일본에서 벌어지는 노조파괴

[인터내셔널1] 공권력과 자본에 의한 간나마 노조파괴

노동조합을 향한 일본정부의 부당한 공격이 이어지고 있다. ‘전일본운수연대노동조합 간사이지구 레미콘지부(간나마)’의 사례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일어날 수 없는 노조탄압이 2018년부터 2년째 계속되고 있다.

  노조 파괴에 항의하는 일본 노동자들 [출처: 레이버넷 일본]

다케 겐이치 위원장이 이끄는 간나마는 큰 노조가 아니다. 그럼에도 최근 공격적인 활동을 펼치며 간사이 지역에서 큰 영향력을 갖게 됐다. 오키나와 기지 반대 투쟁이나 차별 철폐 운동, 국제연대 같은 사회운동에도 적극적으로 연대하며 지역에서 사회운동의 중심축을 형성하고 있다.

간나마는 이전부터 종종 지역 레미콘업체들과 갈등을 겪어 왔다. 레미콘업체들은 규모가 큰 시멘트 제조사 및 건설업체들과 거래를 맺는다. 시간이 지나면 품질이 떨어지는 레미콘의 특성상, 많은 지역에 비교적 규모가 작은 레미콘업체가 산재해 있다. 일감을 얻기 위해 서로 치열한 가격 경쟁을 벌이기도 한다. 이러한 가격 경쟁은 결국 레미콘업체의 이윤율 저하를 야기해, 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이나 임금을 하락시킨다. 뿐만 아니라 싸고 조악한 레미콘을 건설현장에 공급하며 안전을 위협하기도 한다.

이 때문에 간나마는 레미콘업체들의 협동조합과 협력해 레미콘업체에는 적정한 이윤을, 노동자에게는 적정한 보수를, 그리고 건물의 안전을 보장할 수 있도록 노력해 왔다. 그 결과, 간나마와 협력하는 레미콘업체들의 레미콘 가격이 상승하기도 했다. 이러한 간나마의 활동은 당연하고 정당한 노조의 권리이자 사회적 사명이기도 하다. 하지만 여전히 간나마의 활동을 거부하고, 싼 레미콘을 요구하거나 염가판매로 이득을 보려하는 건설업체와 레미콘업체도 적지 않다.

간나마는 노조 교섭에 응하지 않는 건설업체를 상대로 레미콘차를 동원해 건설 현장 입구를 막아서는 투쟁을 벌였다. 품질이 낮은 레미콘을 사용하는 업체를 감시했고, 안전한 레미콘을 공급하는 업체의 시멘트를 사용하도록 협약을 맺는 활동도 펼쳤다. 하지만 간나마를 부정하는 업체들은 이러한 활동이 ‘협박’, ‘강요’ 또는 ‘업무방해’에 해당한다며 간나마를 고소, 고발하곤 했다.

통상 경찰은 노조와 사용자 간에 문제가 발생해도, 그것이 심각한 시설 파괴나 신체적 폭력이 아닌 한 개입하지 않았다. 하지만 간나마의 경우는 달랐다. 업체들이 업무방해 등의 이유로 고소고발하면, 위원장과 조합원들은 물론 간나마에 협조했던 업체의 경영자가 구속되거나 유죄판결을 받았다. 간나마가 다른 노조보다 적극적으로 활동해 왔기 때문이었다.


탄압의 특징

하지만 최근 이어지고 있는 탄압은 이전과는 확연히 다른 수준이다. 사건의 발단은 레미콘업체의 협동조합인 오사카광역생콘크리트협동조합(광역협동조합)이 간나마와의 약속을 어기고 임금 인상 교섭에 응하지 않으며 시작됐다. 그러자 간다마는 2017년 말, 간사이 전역에서 대규모 운송 파업에 돌입했다. 손해를 입은 광역협동조합은 우익인사와 조직폭력단을 고용해 간다마를 조직적으로 공격했다. 이후 2018년 다케 겐이치 간나마 위원장은 해당 노조활동이 ‘공갈미수’에 해당한다는 혐의로 구속됐다. 그의 구속 이후, 경찰은 공갈·강요·업무방해 등 다양한 구실을 붙여 통상적인 노조활동을 수행한 간나마 조합원들을 연달아 구속했다. 2020년 1월 기준으로 구속자의 수는 모두 81명에 달한다.

최근의 탄압에서 특징적인 것은 광역협동조합이 유명 우익인사를 내세워 전면적인 흑색선전에 나서는 등 여론을 유도하고 있는 것이다. 세토 히로유키라는 이 우익인사는 공공연히 나치를 찬양하며 외국인 차별을 꺼리지 않는 인물이다. 이러한 인사를 노조파괴의 선두에 세운 것부터가 이상한 일이었다. 그들은 온갖 괴문서를 만들고 유튜브 등을 통해 간나마가 위법한 공갈, 협박을 하고 있다는 식의 악선전을 했다. 간나마에 관한 악평이 퍼지자 그 후에는 경찰이 등장해 ‘협박’, ‘강요’ 등의 혐의로 간나마 조합원들을 구속했다. 그러자 언론들은 “간나마 아무개 조합원이 협박 혐의로 구속됐다”는 식의 기사를 썼다. 그들은 다시 그 기사를 이용해 마타도어를 벌였고, 우파 네티즌들은 이에 가세해 ‘북한’, ‘빨갱이’라는 근거 없는 루머까지 붙여 간나마를 ‘공공의 적’으로 만들었다.

여론이 악화되자 간다마는 공권력의 만만한 표적이 됐다. 무리한 구속도, 통상적이지 않은 기소도 “그런 놈이라면 당연하다”라고 받아들이기 때문에 문제가 되지 않았다. 사실 경찰은 이전부터 간나마를 수사하려고 했지만, 간나마의 노조법 내 활동에는 손을 댈 수 없었다. 광역협동조합의 흑색선전에 춤춘 여론이 경찰의 무리한 수사를 가능하게 한 것이었다. 더불어 법원은 이 같은 검찰의 기소 내용을 인정하는 부당 판결을 내렸다.

이번 탄압의 또 다른 특징은 검찰이 1년 전의 사건까지 끌어와 마구잡이식으로 기소, 구속하고 있다는 점이다. 게다가 구속 이유로 제시된 ‘범죄 사실’은 통상적인 노조 활동으로 법에 보장된 것이었다. 아무런 문제도 없는 행위에 ‘공갈’이나 ‘강요’, ‘업무방해’ 등의 죄명을 붙였고, 동시에 16명을 구속하기도 했다. 구속 후에는 몇 개월 씩 조합원을 잡아두거나, 구속 기간이 끝나면 또 다른 혐의로 다시 잡아들였다.

구속 이후의 압수수색도 대규모로 벌어지고 있다. 실제로 수사당국은 모든 서류와 디지털 파일, 녹화, 녹음 기록 등을 압수해갔다. 압수수색은 몇 번이나 되풀이됐고 이미 구속된 조합원이 재판을 위해 준비했던 메모지까지 압수했다.

이번의 탄압에는 시가와 교토, 오사카 등 여러 현의 경찰이 합세하고 있다. 한 현의 경찰서가 조사를 마무리하고 사건을 재판부로 회부하면, 또 다른 현의 경찰서가 혐의를 약간 바꿔 다른 조합원을 구속해 조사한 적도 있다.

이 같은 무리한 수사가 가능한 이유는 법원이 구속영장, 수색영장을 남발하고 있기 때문이다. 법원은 비상식적인 영장청구에도 무조건적으로 영장을 남발하며 탄압에 가담하고 있다. 예를 들면, 간나마는 내부적으로 암호화된 메신저인 ‘시그널’과 역시 암호화된 ‘프로톤 메일’을 사용하고 있다. 사법부는 여기에 ‘증거은멸의 우려’가 있다며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노동조합에는 통신의 비밀마저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일까?

‘공모’에 의한 기소가 많은 것도 주목할 만한 대목이다. 앞서 아베 정부는 ‘테러 방지’, ‘조직 폭력 대응’을 명목으로 ‘공모죄’ 조항을 포함한 조직범죄처벌법안을 발의해 2017년 시행했다. 당시 일본 시민사회는 이 법안이 “노동조합의 정당한 활동도 범죄화한다”는 등의 이유로 강력하게 반대했었다. 특히 ‘공모죄’의 문제로 지적된 것은, 실제 행위가 실행되기 전 ‘공모’만으로도 실행범과 같이 입건할 수 있는 조항이 존재한다는 것이었다. 이번에는 행위 전의 공모는 문제 삼지 않았지만, 현장에 없던 사람까지도 공모의 직접적인 증거도 없이 사건 계획을 공모했다며 기소했다. 간나마를 변호하고 있는 변호사들은 이를 두고 “공모죄의 리허설”이라며 의심하고 있다. 물론 공모죄 이전에도 사전 공모가 인정돼 유죄가 선고된 사건도 있었다. 하지만 이번과 같이 대규모로 적용된 사례는 없었다.

원래 공모죄는 19세기 영국에서 노조 탄압을 위해 적용했던 악법이다. 노동조합을 ‘범죄 조직’으로 간주하고 파업이나 일상적인 연대 등에 공모죄를 적용하는 판례가 나온다면, 헌법이 보장하는 노동3권은 더 이상 실체가 없는 권리가 돼 버릴 것이다. 간나마에 대한 탄압이 큰 문제가 되고 있는 이유다.


노동운동의 쇠퇴, 일본 사회의 우경화

이렇게 간나마에 대한 무리한 수사와 기소는 전체적으로 일본사회의 우경화와 노동운동의 쇠퇴 속에서 벌어지고 있다.

최근 일본에서는 노조의 파업은 물론, 시위행진이나 대규모 집회도 찾아볼 수 없다. 대부분의 노조는 기업 안에 틀어박혀, 밀실에서 임금 교섭 정도만을 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간나마 사건을 전하는 기사 밑에는 “왜 노조가 회사 경영에 트집을 잡는 것인가”, “그 회사 사원도 아닌 주제에”, “유튜브에서 보았는데 진짜 조폭 같다”는 등 노조 활동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댓글들이 달린다. 노조가 사라지면서 노동조합의 활동 영역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우익의 흑색선전을 순순히 받아들이고 있다.

요즘 일본 사회는 아베 정권 이후 우경화가 심해지며 노동자의 권리보다 사회 치안을 우선하는 분위기다. 올해는 도쿄 올림픽을 앞두고 시민 감시도 늘고 있다. 대다수 시민은 자본이나 권력에 항의하고, 권리를 요구하는 간나마와 같은 활동 방식을 이질적으로 생각하며, 배제해야 할 대상이라고 느끼고 있는 것 같다.

역사상 최장기의 재임 일수를 기록한 아베 총리는 헌법 개정을 호소하며 임기 내 관철하려고 한다. 여당 자민당이 작성한 헌법초안에는 ‘천부인권(天賦人権)’의 개념이 없다. 간나마에 대한 탄압을 시작으로 노동3권을 유명무실화하며 현행 헌법의 정신을 짓밟으려는 것이다. 간나마 사건은 아베가 꿈꾸는 국가주의적 헌법의 길을 열기 위한 시범적 사례일지도 모른다.

간나마 지부 탄압은 그러한 사회 분위기 속에서 지속되고 있다. 그런 면에서 이 사건은 오로지 간사이 지역의 작은 노조가 안고 있는 문제는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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