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균과 녹색정치

[녹색 스트라이크]


24세 젊은 비정규노동자 김용균의 사망소식을 들었던 것은 미국에서였다. 또 한 명의 안타까운 이야기. 길게 한숨을 내쉬면서도 그 뿐, 이 이야기도 그저 숱한 헬조선 ‘사건사고’들 속에 묻혀 버렸던 것 같다.

그러다 작년 겨울 한국을 방문했을 때 세종문화회관에 붙은 “태안화력 24세 하청 노동자 고 김용균님의 명복을 빕니다”라고 쓰여진 거대한 배너를 보았고, 며칠 후 다시 광화문 앞을 지나다 청계천 입구에서 우연히 집회 하나를 마주쳤다. 김용균 사망사건 진상규명과 재발방지, 비정규직 철폐를 요구하는 집회였다. 그 자리에 서서 김용균의 동료와 그의 어머니의 발언을 들었다. 가까운 곳에서 보았던 어머니의 눈물은 지금도 잊지 못한다.

그날 숙소로 돌아와 기사를 찾아보기 시작했다. 많은 기사들 가운데 작업 현장과 사고 당시의 상황을 자세히 묘사한 <시사저널>의 기사에 오래 눈길이 머물렀다. 기사는 ‘시커먼 석탄가루가 눈발 날리 듯’ 날아드는 컴컴한 작업장에서 혼자 휴대폰 불빛에 의지해 쉬지 않고 기계들이 돌아가는 70미터 깊이의 작업장을 혼자 오르내렸을 김용균의 모습을 가감 없이 그려냈다. 10시가 다 된 늦은 밤에 사고가 났는데 저녁밥도 먹지 못 한 채 일하다 당한 봉변. “이동 동선과 시간대를 따져보면 그는 잠시도 쉬지 않고 일한 것으로 보인다”고 밝힌 경찰 발표 앞에서 말문이 막혔다.

한국 사회에서 일하다 죽는 노동자들의 이야기는 끊이지 않는다. 기계에 끼어, 건설 현장에서 추락해서, 지하철역 스크린 도어 정비를 하다가, 세계 유수의 반도체 회사에서 독성화학물질을 들이마셔서, 그리고 크레인이 무너져서…. 그렇게 사람들은 팔다리가 잘려 나가고 끊임없이 죽어간다. 이주노동자와 현장 실습 고등학생들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어디선가 마주쳤을지도 모를, 이 땅을 함께 살아가던 사람들의 죽음은 ‘산업재해’라는 통계상의 데이터로 전락해 버린다.

지난 초겨울 나는 20년 넘게 살았던 미국을 떠나 서울로 이사를 왔고 뉴스를 통해서만 접했던 한국의 지독한 미세먼지도 직접 경험하게 됐다. 우연찮게도 김용균의 1주기 추모식이 열렸던 12월 10일은 미세먼지까지 가세한 최악의 날씨였다. 시야를 막고 호흡을 곤란하게 만드는 미세먼지 속을 걸으며 나는 김용균이 들이마셨을 시커먼 석탄가루를 떠올리고 있었다.

시커먼 석탄가루에 대한 기억은 또 있다. 대학 시절 친구의 아버지. 그는 태백의 광산에서 오래 일하셨는데, 그 시커먼 석탄가루를 너무 들이마셔 진폐증으로 고통 받고 계셨다. 대학시절 내내 친구는 병원에 계신 아버지를 찾아가곤 했다. 사람이 쓰기 위한 에너지원을 채굴하는 과정에서 사람이 피폐화되는 역설이다.

‘안정적인 에너지공급’이라는 구호 아래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삶이 깨져버렸을까? 60년대 이래 ‘기적적인 경제발전’을 이뤄내고 경제선진국이 된 21세기 대한민국 국민들의 경제상황은 얼마나 선진적이 된 것일까.

성장 제일주의 깃발 아래 모든 것을 이윤창출의 도구로, 경제 성장의 수단으로만 삼아 왔던 이 자본주의 시스템으로 피해를 보는 것은 사람만이 아니었다. 여기저기 탄광을 뚫고 유전을 만들면서 자연은 파괴되고 비정상적 침식이 이뤄진다. 환경이 변화되면서 생태 다양성은 위협받고, 채굴과정에서 나오는 화학물질로 물과 토양은 오염된다. 김용균이 들이마셨던 그 시커먼 석탄가루는 아픈 지구가 내뱉는 밭은 기침이었던 것이다.

더 큰 문제는 그렇게 얻어진 화석연료를 태워 열을 내는 과정에서 배출되는 온실가스로 지구가 더없이 뜨거워졌다는 것이다. 지구온난화는 북극곰만 위협하지 않는다. 기후변화로 인한 농작물 피해는 곧바로 식량부족으로 이어지며 2011년부터 시작된 아랍지역의 난민사태를 촉발했다. 해수면 상승은 이미 많은 태평양 섬나라 주민들을 난민으로 내몰고 있다. 2년 전 제주도보다 다섯 배나 큰 섬 푸에르토리코를 초토화시켰던 초대형 태풍이나 몇 달에 걸쳐 한국 땅보다 더 넓은 면적을 불태웠던 호주의 산불도 온난화로 인한 이상기류 탓이었다. 2~30년 안에 핵전쟁에 버금가는 기후위기가 도래할 것이라 예고되는 가운데, 우리는 초대형 자연재앙이 점점 일상화되는 현실을 살고 있다.

그러나 기후변화로 인한 피해를 모두가 동등하게 나눠가질 것이라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다. 온난화로 여름 이상고온현상이 지속돼도 가진 자들은 에어컨으로 더위를 피하면 그만이다. 죽어나는 것은 환기도 안 되는 비좁은 방에서 여름 더위를 감내해야 하는 빈곤층, 야외 땡볕에서 일하며 그 더위를 몸으로 받아내야 하는 노동자들이다. 영화 기생충에서 묘사하듯, 엄청난 소나기가 퍼부어도 가진 자들은 여유롭게 그 비를 즐길 수 있다. 빗물이 가득 들어찬 반지하 집에서 쫓겨나와 난민 신세가 되는 것은 언제나 가난한 자들의 몫이다. 병든 지구가 내뱉는 기침에 가장 먼저 병들고 죽어가게 될 사람들은 결국 우리 사회의 김용균들인 것이다.


구의역 참사나 김용균의 죽음이 오로지 경제적 효율만을 위해 법에 명시된 안전 수칙조차 지키지 않는 ‘인권 무시’의 결과였던 것처럼, 오늘날 우리가 당면한 기후변화와 재앙들은 경제적 효율의 극대화를 위해 생명의 근원이 돼야 할 ‘환경 무시’의 결과다. 눈여겨봐야 할 것은 이 둘이 따로 가지 않는다는 점이다. 노동권과 인권이 잘 지켜지는 곳에서는 기후환경정책도 상대적으로 잘 수립돼 있다. 반면 노동 후진국 대한민국은 기후정책에서도 가장 후진적이다. 사람을, 생명을 중시하지 않는 사회가 기후와 환경을 제대로 챙길 리 만무하다.

2인1조 안전수칙을 준수했더라면 김용균 같은 사고는 막을 수 있었을 거라 모두가 입을 모은다. 그러나 우리가 답을 몰라 지금도 하루에 세 명씩 산업재해로 죽어나가는 것은 아니다. 마찬가지로 오늘날 온실가스 배출을 최소화하기 위해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몰라 지구의 기온이 점점 올라가는 것도 아니다.

이미 한국 수준의 경제력을 가진 대부분의 나라들은 안전수칙 준수를 의무화하고 위반 시 강력한 처벌을 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1월 말 현재 26개국의 1200여 개가 넘는 중앙-지자체 정부들은 기후비상사태를 선포하고 온실가스 감축을 제1의 목표로 삼는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은 어떨까? 숱한 산재사고에 대한 문제제기와 성찰에도 산재사고는 더 늘어만 가고 있다. ‘탈핵 탈석탄’을 선언했던 현 정부에서 석탄화력발전소 7기가 추가로 건설되고, 심지어 2020년 경제정책이랍시고 환경규제를 풀면서까지 울산과 여수에 대규모 석유화학공장을 짓겠다고 한다. 이것이 대한민국의 현재, ‘상생’, ‘포용’, ‘녹색’의 현실이다.

그러나 어찌 정부만 탓할 수 있을까. 안전한 노동을 보장하고 온실가스 감축대책을 마련한 다른 정부들도 결국은 그곳의 시민들이 만들어 낸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싸워야 한다. 더 갈 데도 없는 사회불평등과 기후위기라는 인류문명의 총체적 위기를 낳은 이 탐욕적 자본주의를 넘어서기 위해, 그리고 인간과 인간, 인간과 자연 간의 평등하고 정의로운 관계를 새롭게 정립하기 위해서 말이다. 김용균과 녹색정치는 둘이 아니다.
태그

로그인하시면 태그를 입력하실 수 있습니다.
김선철(독립연구자/에너지노동사회네트워크 정책위원)의 다른 기사
관련기사
  • 관련기사가 없습니다.
많이본기사

의견 쓰기

덧글 목록
  • 오늘도 등산

    온고지신이라는 말하고도 비슷하게 한국운동권은 노동당, 정의당, 민중당에서 마무리가 될 듯 합니다. 이 세 정당의 미흡한 부분을 보고 정당들이 마구 나타나나 옛 가치의 잠재력을 무시하면 안될 것입니다.
    녹색당도 당 전에는 의기투합을 했으나 국회를 보면서 맛이 갔지요. 그래서 저 세당들을 넘 볼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미 저 세당들은 더민주당과 겨뤄 볼 실력을 상당히 갖추었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입니다.

  • 등산아저씨

    더민주당의 영입인사에 대해
    이해찬 대표님은 이제 후배 정치인들에게 가치를 잇게 하면서 물러날 시점이다. 그런데 더민주당의 영입인사를 언뜻 보면 정통 정치인 출신(,운동권 출신)사업가출신, 변호사 출신들이 많은 것 같다. 나는 그들이 더민주당의 가치를 이을 능력이 부족할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이해찬 대표님도 이제 자신의 내일보다는 더민주당의 나중의 길을 더 걱정해야 할 때이다. 그렇다면 그 길은 더민주당의 가치를 이을 정치인들에게 서서히 물려주는 방향이 최선이라고 보인다. 단도직입적으로 추천해본다. 부산의 "백태웅" 이해찬 대표님, 내일을 향해서 자신의 영욕을 본다면(행여라도) 자신의 이력은 오욕으로 남을 것입니다. 자신의 명예를 간직하고자 할 때는 후배들 중에서 인물을 선택해야 합니다.

  • 등산아저씨

    윗글수정
    ----------"정통 정치인 출신(,운동권 출신)"보다는 "사업가 출신, 변호사 출신들"------

  • 등산아저씨

    더민주당에 대한 조언

    이낙연님은 종로에서 당선이 되어도, 결국 당내 경선에서 밀리지 않겠습니까.

  • 등산 다녀온 아저씨

    거기 일마들아ㅎㅎㅎ보수당은 끝났다니까. 왜 그렇게도 모르냐. 글로만 정치가 되는 줄 아냐. 정치는 얼굴까지 받쳐줘야 된다. 보수는 큰 인물이 없어서 끝났어. 문재인이 아무리 못해도 그것을 엎을 보수인물이 없단 말이다. "김문수"말처럼 중도로도 안된다니까.

  • 동네 아저씨

    노정협이 말하는 것은 정말 "개좆이론"이다. 인터내셔널이 언제부터 우경화가 되었는지도 모르고, 맑스의 프롤레타리아 독재론과 레닌의 사회주의론의 차이도 모른다. 노정협은 사상가들도 아닌 "개좆이론가들"만 모였다. 레닌이 당대회에서 혁명의 성공이라는 흥분 속에서 사회주의를 받아들임으로써 마르크스의 프롤레타리아 독재론이 반이상 무너졌다는 것은 모르나. 이것이라도 구분해봐라. 공장파업, 프롤레타리아 독재권력, 사회주의 권력, 사회주의 경제. 에이고 개좆이론가들. 시장이 조금이라도 형성되어 있으면 사회주의 경제가 아니라는 것도 모르나. 그래서 레닌이 사회주의 권력이라는 힘이 있으니까 노동자들을 중앙위원으로 올릴려고 하지 않았나. 그런데 스탈린이 민족주의로 거의 다 엎어버렸단 말이다. 맑스가 말했던 국유화하고 사회주의화의 차이도 모르는 개좆이론가들

  • 아저씨 말투

    노정협 또라이들아 그러면 주체사상이라도 잘 설명해봐라. 북한에서 마르크스주의가 지배적인 사상이나, 인민사상이었노 주제사상이 지배적인 사상이나 인민사상이었노. 주체사상이 더 이상 안먹히자 군대를 더 앞세웠노, 맑스-레닌주의를 더 앞세웠노. 사상가는 커녕 개좆또라이들아

  • 아저씨 말투

    노정협은 사회과학 서적을 띠엄띠엄 보니까 또라이들이 되었구만, 니들은 마르크스의 기초이론을 건너뛴 사람들이다. "적"을 알기 전에 니들부터나 알어라

  • 아저씨 투

    노정협 또라이들아 모르면 기본부터 알려고 해야 할 것 아니가. 고등수학도 제대로 모르면서 고등수학만 하려고 하냐. 그것도 기초도 없이. 니들처럼 사상을 하면 아무 집에라도 사회주의라고 써놓으면 사회주의의 집이 될 것 아니냐. 글 그만 쓰고 "좆" 잡고 반성하면서 맑스의 기초이론을 다시 시작하던가. "적"을 더 연구하던가 그래라.

  • ㅎㅎㅎㅎㅎㅎ

    노정협 또라이들아, 그럼 중국은 공산국가가 맞냐. 무계급사회의 공산국가 말이다.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 아저씨 투

    심재철이도 알아봤지. 뭐 이성상실? 광기의 시대의 시대로 살아남아야 하는 것이 정치인데, 심재철이가 아나 정치를 하것다. 4월 총선 끝나고 좌파광풍 불때는 심재철이도 세상 무서워서 땅에다 머리나 쳐박지 별 수 있나.

  • 아저씨 투

    문재인과 더민주당의 늙은이들.
    권력도 더 오래 누리고 싶고, 영욕도 더 누리고 싶고, 그래서 젊은 인재나 거물신인보다는 쉽게 부려먹을 물건들이나 영입을 한다. 또 쉽게 지배하려고 우파당들하고 고스톱 작당정치를 하다가 하루아침에 몰락? 와 늙탱이들아, 부산의 백씨를 출마시키지 않노, "조국역풍"이 그렇게도 두렵더나, 그 정도도 못이겨낼 것 같았으면 권력을 잡지 말고, 정치를 하지 말았어야지, 부산의 백태웅을 국회로 올려라, 그 양반이 나중에 더민주당의 대표감이다. 늙탱이 니들의 훗날을 책임져줄 사람이다. 이인영이니, 홍익표니, 우상호니 그런 것들은 절대 "당신들의" 훗날을 보장해주지 못한다. 늙탱이들아, 겁먹지 말고 부산의 "백태웅"을 국회로 끌어올려란 말이다. 안그럴 때는 늙탱이들 서울역, 부천역으로 가서나 길거리로 나앉아서 "노숙자" 신세로 전락할지도 모른다. 작금의 자리가 그렇게도 영광스러운가. 늙탱이들아 정신차려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