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태죄 헌법불합치 이후 1년… ‘답’ 없는 정당들

안전한 임신중지와 성·재생산권 보장 위한 정책 공개질의서에 정의당만 답변

지난해 4월 11일 헌법재판소의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에 따라 정부와 국회가 오는 12월 31일까지 대안적인 법안을 마련해야 하지만 관련 논의는 미진한 것으로 나타났다. 여성 및 보건의료 단체 등은 4월 총선 후보자 및 각 정당에 안전한 임신중지 및 성·재생산권 보장을 위한 공개 질의 서한을 발송했으나 정의당을 빼고 답변이 돌아오지 않았다. 총선 직전 밀려오는 정책 속에서도 주요 정당의 정책에선 여성의 성적 권리와 재생산 보장을 위한 정책들이 실종돼 비판을 받고 있다.


모두를위한낙태죄폐지공동행동(이하 모낙폐)은 10일 서울 영등포구 국회의사당 앞에서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 1년 맞이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와 국회에서 안전하고 합법적인 임신중지에 대한 고민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이들은 올해를 안전한 임신중지 권리보장의 첫번째 해로 만들 것을 선언하며 21대 국회와 정부는 낙태죄를 전면 비범죄화하는 법안 개정에 힘써야 한다고 촉구했다.

나영 모낙폐 공동집행위원장은 “‘낙태죄’ 헌법 불합치를 이끌어낸 1년 전의 감격이 생생한데 법과 정책, 보건의료를 둘러싼 사회 현실은 변화가 없다. 더불어민주당, 미래통합당, 민생당 등 주요 정당에 공개질의서를 보냈지만 정의당만 유일하게 답변을 보내왔다”라며 “여성을 처벌하던 조항을 바로 삭제하고 유산유도제를 승인 및 도입하고 안전한 임신중지를 위해 보건의료 서비스에 대한 접근성을 높이는 등의 노력을 해왔어야 했지만 정부와 국회 모두 손을 놓고 있었다”라고 비판했다.

이어 “그사이 많은 여성이 여전히 차별적이고 안전하지 않은 상황의 폭력을 감당해야 했고 블랙마켓을 이용해 임신중지 시도에 나섰다”라며 “우리 사회가 눈감은 폭력이 이번에 터진 텔레그램 n번방 사건에서도 그대로 드러났다”라고 지적했다.

특히 유산유도제는 이미 2005년 WHO에 의해 필수의약품으로 지정돼 세계 67개국에서 널리 이용되고 있으며, 수술보다 비용이 저렴하다는 점, 수술처럼 이른 주수에 시행될 경우 성공률이 높고 안전하다는 점을 들어 유산유도제가 하루빨리 도입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보라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공동대표는 모든 법적 제한이 여성의 의료 접근권을 제한하고, 건강권을 해치게 된다고도 했다. 이 공동대표는 “임신 중지 주수 제한은 필요 없다. 인공 유산은 기본적으로 의료 행위이고, 임신중지 당사자가 담당 의사와 합리적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라며 “매달 월경하고 가끔 임신하는 일, 임신을 중지해야 하는 일은 모든 가임기 여성에게 일어날 수 있는 일들로 국가는 여성의 성과 재생산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임신 중지 등을 공식적 의료 서비스 안에서 건강 보험을 적용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라고 요구했다.


“약자와 소수자의 욕망과 움직임이 새로운 세계로 이끌 것”

참가자들은 청소년, 장애인, 이주 여성 등의 열악한 성과 재생산 권리에 대한 현실을 토로하기도 했다.

양지혜 청소년 페미니스트 네트워크 위티 공동대표는 “청소년의 성은 책임감 부족과 문란한 일로 비난받아 청소년의 섹스는 은밀하고 위험해진다”라며 “제대로 된 성교육을 받을 권리, 재생산과 임신 중지에 대한 제대로 된 안내를 받을 권리, 몸에 대한 결정권 등이 주어져야 한다”라고 밝혔다.

이애란 한국이주민건강협회 희망의친구들 사무처장은 “이주 여성은 돈을 벌기 위해 한국으로 왔지만, 여러 환경적 위험때문에 자기를 보호하기 위해 남성과 결혼하거나 가정을 꾸린다. 하지만 피임과 임신 중지에 대한 정보가 전무하다 보니 원치 않는 임신을 하게 되고 임신을 하면 해고되는 악순환이 발생한다”라고 했다. 이 사무처장은 난민 여성 역시 비슷한 문제를 겪고 있는데 이들을 위해 의료 접근성을 높이고 건강보험 가입 보장도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진희 장애여성공감 공동대표는 시설에 갇힌 장애인들은 프라이버시와 성적 권리가 심각하게 침해받고 있는 상황을 증언했다. 이 공동대표는 “장애 여성은 허락된 장소에만 몸을 뉘고, 월경 중단 약물을 복용한다. 성교육은 장애 남성에게만 성적 행동을 금지하기 위해서 제공됐다. 장애 여성의 섹슈얼리티는 당연히 금기시됐다”라며 “성적 실천은 곧 문제 행위, 자위와 연애 금지는 당연한 일로 치부되는 이곳에서 장애 여성들은 동료들과 함께 욕망과 실천 속에서 성적 권리를 실현하고자 한다. 사회가 포착하지 못한 욕망과 움직임이 우리를 새로운 세계로 이끌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보건복지부, 여성가족부, 법무부, 문화체육관광부 등은 지난해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존중한다”라며 “관련부처가 협력해 헌법불합치 결정된 사항에 관한 후속조치를 차질없이 진행해 나갈 예정”이라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보건복지부 등 관계 부처는 우선 법이 만들어져야 제도를 구상할 수 있다는 입장만 밝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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