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 후보에 ‘투명가방끈’은 없나요?

[가방끈이 싫어서]2020 총선을 앞두고…투명가방끈이 말하는 정치


총선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국민의 뜻을 전하겠다는 국회의원 300명. 300명 안에 들겠다고 나선 사람들의 현수막과 포스터를 보니 슬로건과 학력만 보인다. 죄다 서울 명문대, 해외 유명대 출신이다. 그만큼 한국에선 학력이 신분이다. 한국의 대학진학률은 약 70%. 나머지 30%는 대학 진학을 포기했거나 거부한 사람들이다. 대학 이외의 삶도 존재한다, 라는 30%의 이야기를 전해줄 사람은 없는 걸까? 투명가방끈이 총선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진행. 공현
한때는 민주노동당 당원이었고 이후로는 당적을 가진 적이 없다. 총선을 앞둔 지금, 어떻게든 의석 늘리는 데만 관심 있는 정치권을 보면 절망감부터 든다. 지금만큼 정치가 실종된 시기는 없었던 것 같다.

패널. 윤서
이번이 첫 투표. 지난 대선 때는 선거권이 없었다. 투표가 무척이나 하고 싶어 모의투표도 해봤다. 이번 총선에서 대학을 거부한 사람이 나오면 좋을 것 같다.

패널. 쩡열
본디 총선은 정당들의 잔치. 총선으로 중요한 정치 변화가 만들어질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의회 정치에 뭔가를 기대하기보단 여기 내 자리에서 직접 세상을 바꾸는 일에 관심이 많다.

패널. 피아
그동안 청소년 참정권 확대를 위해 힘 써왔다. 선거권 연령이 18세로 낮아졌지만 남은 과제가 많다. 이번 총선에서는 18세의 첫 투표를 반기는 기자회견을 준비하느라 분주하다.


공현
20대 국회의원 구성을 보면 대학 혹은 대학원을 졸업한 사람의 비중이 98%입니다. 출신 대학 기준으로 보면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성균관대 4개 학교 출신이 50%가 넘어요. 이게 말이 되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정치인을 비롯해 정부 고위직 인사 대다수가 대졸자를 기본으로 하잖아요. 대학원 석사, 박사 학위를 따 놓은 사람도 상당수죠. 대학 거부자로서, 중졸 혹은 고졸자로서 정치와 선거에 대해 느낀 바를 먼저 이야기해보면 좋겠습니다.


윤서
사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나와 비슷한 사람이 국회의원이 된다는 것 자체를 상상해보지 않았어요. 그보다 능력이 좋은 사람들이 당연히 국회의원을 해야 한다고 생각해왔고요. 그런 생각이 어디서부터 왔는지 궁금하긴 해요.

피아
초등학교 시절 “공부를 왜 해야 하는 거냐”고 질문을 하면, “훌륭한 사람이 돼야 하니까”라고 답변하지 않나요? 공부를 열심히 하면 훌륭한 사람이 되고, 훌륭한 사람은 곧 정치하는 사람이라는 인식이 박힌 것 같아요. 그들과 내가 동등하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어요. 일상 곳곳에 이런 인식이 스며들었기 때문에, 정치는 훌륭한 사람이 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자꾸 하게 돼요.

쩡열
선거는 나의 이익을 대변하기 위해 투표하는 건데, 과연 투표로서 내 이익을 대변할 수 있는지 의문이 들어요. 우리는 예전부터 투명가방끈을 비롯한 여러 공간에서 정치적 목소리를 많이 냈어요. 정치라는 것은 우리가 청소년의 입장에서 원하는 바를 얻어내기 위해 이야기하고 활동하는 모든 것을 포괄하는 거예요. 그런데 현재의 제도 정치가 정치라는 영역을 전문화시켰죠, 다양한 사람들이 다양한 정치를 할 수 없게 만드는 것은 문제이지 않나요.

  공현

공현
능력 있는 국회의원과 정치인이 필요하다는 것은 부인하지 않아요. 하지만 그 ‘능력’이 어째서 ‘학력’이라는 극단적인 방식으로 나타나야 하는지. 현재 노동운동 출신 국회의원들이 자유한국당, 민주당 등 여러 정당에 포진돼 있어요. 놀랐던 것은, 그런데도 학력이 다양해지지 않았다는 거예요. 한 매체의 분석기사를 보면, 총선 공천 후보 중 서울대, 고려대, 연세대 출신이 30%가 넘어요. 그런데도 문제의식이 없죠. 민주당의 경우 몇 년 전에 ‘서울대 출신 국회의원이 얘기해주는 수능 꿀팁 홍보물’을 돌리기도 했으니 말이죠.


윤서
선거에서 똑똑한 사람, 그리고 나보다 더 나은 사람, 강한 사람에게 투표하게 되는 경향이 있어요. 거기서 학력은 일종의 방패가 되죠. 타인으로부터 그 사람을 지킬 수 있는 방패랄까. 아무리 자신을 잘 대변해줄 수 있는 사람이라도 국회에서 발언권이 없으면 소용없다는 생각. 좋은 학벌을 가진 사람이면 더 중요하고 강력한 발언권을 가지게 되지 않을까, 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쩡열
이 사회가 지속되는 한, 국회 안에 다양한 학력이 생길 것 같지 않아요. 국회에 들어가려면 대학을 당연히 가고, 전문성을 가진 사람만 정치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한 배제되는 사람들이 생길 수밖에 없어요. 만 18세 선거권 연령 하향은 정치적으로 중요한 발전이라고 생각하지만, 투표권만 더 많은 사람에게 돌아간다고 해서 정치가 확대될까요? 여전히 많은 사람은 일상적으로 자신의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자신이 속한 공간에서 어떤 선택도 하지 못하고 있어요.

피아
우리 부모님은 후보자의 학력을 보고 투표를 해요. 제도권 교육의 일반적인 루트를 벗어난 사람은 불안정하다고 생각하는 거죠. 고졸일 경우 미지의 영역이 많다는 것에 대한 불안감이 작동한다고 봐요. 저 역시 학교를 자퇴할 때 인생이 어떻게 될지 몰랐어요. 대학을 가지 않는 삶을 불안하고 가난할 것으로 생각하는 거죠. 그런 식으로 눈을 가린 채 대학을 가는 것이 당연하다는 생각을 주입해요. 대학이라는 학력은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모두 무난히 통과했겠구나, 라고 멋대로 유추할 수 있는 근거를 주는 거죠.

쩡열
학력이 높은 사람을 더 믿고 선호하는 것이 단지 국회의원만의 문제일까요. 한국 사회에서 학력은 다양한 의미로 해석돼요. 학벌이 좋다는 것은 경쟁에서 이겼다는 의미죠. 경쟁에서 노력한 사람이기 때문에 개인의 스펙으로 작용할 수 있었던 거예요. 학력은 개인이 얼마나 열심히 살았는지, 즉 노력의 증거로 읽히기 마련이죠. 왜 대학에 간 사람만이 제대로 된, 노력한 삶을 살았다고 생각할까요. 저는 19세부터 일을 했는데, 사회경험이 있는데도 인정되지 않았어요. 삶에 대한 제대로 된 가치평가를 받지 못하는 거죠.

공현
청년 담론을 이야기할 때도 청년은 당연히 4년제 대학생, 졸업생으로 대변돼요. 정당 등에서 청년 정치인으로 발탁되는 사람들 대부분이 대졸 출신이에요. 대학에 가지 않은, 가지 못한 30%는 청년 담론에서 배제되고요. 청년 취업 정책도 대졸 청년 중심으로 설계돼 있고, 고졸 취업 정책은 사회적 취약계층 정책에 속합니다. 과거에는 청년주거 정책에서 대학생 우대 조건이 있었어요. 이에 대한 반발이 있어 사회초년생으로 대상이 확대되고 바뀌어 온 것이죠.


  윤서

윤서
정치든 정책이든 다른 삶에 대한 이해가 중요한데, 정작 그 사람이 되어보지 않으면 그 삶을 이해하기 쉽지 않은 것 같아요. 지워지는 존재들이 있다는 것을 아는 것은 정말 신경을 많이 써야 하는 부분이에요. 하지만 기존 정치는 할 일이 많아서 그런 건지, 잘 까먹는 건지, 그런 부분에 노력을 기울이지 않아요. 그런 면에서 내 목소리를 잘 대변할 수 있는, 나와 비슷한 사람을 뽑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요.

피아
학교에서 제가 성적 상위권에 머물렀을 때, 다른 삶을 이해하지 않는 것 자체가 경쟁력이 됐어요. 타인의 삶과 얽히면 얽힐수록 내 일을 하지 못했으니 말이죠. 경쟁력이 있으려면 모든 것을 차단하는 것이 가장 중요했고요. 고등학교 시절 딱 한 명의 친구와 어울렸는데, 그 친구가 전교 1등이고 제가 2등이었어요. 다른 친구들과는 데면데면했어요. 학교에서는 수업 시간에 잠깐 딴짓을 해도 ‘저러니까 공부를 못하는 거야’라는 인식을 심어주잖아요. 그런 것들을 다 믿었어요. 타인과 공감하지 않으려는 것 자체가 자산이 되는 사회에서, 공감하기를 거부하는 자리에 있던 정치인들이 어떻게 타인의 삶을 이해할 수 있겠어요.

쩡열
조국 사태 때만 보더라도, 고위층에서 살아온 사람들은 타인의 삶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처럼 보였어요. 그들은 가난한 청소년이 소년원에 갔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학교만 열심히 다니고, 공부만 열심히 해서 자기 살 방법을 찾으면 되는데 그걸 하지 않고 왜 자기 삶을 파괴해?’라고 얘기할 거예요. 다른 삶에 대한 이해가 없는 거죠. 국회에는 같은 삶의 경험을 공유하고 있는 사람들만 살고 있는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어요.

공현
고졸 노동자가 일터와 사회에서 느끼는 차별의 문제도 커요. 투명가방끈에서 특성화고 취업자를 대상으로 연구 사업을 벌인 적이 있는데, 대기업은 아예 고졸과 대졸의 직렬이 다르다더라고요. 고졸은 일정 수준 이상의 승진을 막는 거죠. 고졸 취업자로서 차별을 겪는다는 얘기는 많이 나와요. 그래서 문재인 정부는 공공기관에 블라인드 채용을 확대하기도 했어요. 하지만 블라인드 채용은 학력을 가리되, 능력은 입증하라는 논리예요. 결과적으로 학력을 뛰어넘는 능력을 보이라는 것이 아닐까요?


  쩡열

쩡열
블라인드로 채용해 보니 높은 학력이 대다수였다는 얘기도 있죠. 블라인드 채용이 사실 별 의미가 없다는 거예요. 어떤 경제적 조건에서, 얼마나 많은 자원을 누리며 자랐는지에 따라 삶의 경험부터 어휘까지도 달라져요. 학교 이름만 지운다고 해서 능력의 차이가 지워지지 않아요. 솔직히 부잣집 아이들이 훨씬 똑똑하고 어려워 보이는 어휘를 사용하지 않나요? 과연 블라인드 채용이 격차와 차별을 해소할 수 있는 방법일까요.

윤서
최근 논란이 됐던 것이, 블라인드 채용으로 높은 점수를 받은 사람들을 뽑아놨더니 다 여성이었고 그래서 많이 잘렸다는 거였어요. 능력으로 한계를 넘었다 한들, 계속 부딪히는 차별이 존재할 수밖에 없는 거죠.

쩡열
최근에는 학력으로 인한 임금 격차를 어떻게 줄일 수 있는지가 고민이에요. 주변에 특성화고에 다니는 친구들이 많은데, 그중 한 명은 내신이고 뭐고 다 버리고 포트폴리오를 채우는 방식으로 3년 동안 취업 준비만 했대요. 그런데 갑자기 대학에 가고 싶다고 했어요. 왜 그런지 물었더니, 벌이가 달라진대요. 고졸과 전문대졸의 임금이 배로 차이가 난다면서요. 그런데 이제 와서 대입 준비를 하기는 어려운 일이죠. 특성화고 졸업생들이 일을 하면서 대학을 다닐 수 있도록 지원하는 정책이 있다고는 하더라고요. 선 취업, 후 진학 정책이라는. 문제는 후 진학 과목이 너무 한정적이라는 거예요. 그 친구는 디자인을 전공하는데, 디자인과는 없고 뜬금없는 회계과를 다녀야 할 처지에요. 과목도 적고, 정원도 적고, 학교도 적어요.

  피아

피아
중고등학교 시절 예체능을 전공하고 싶다고 하니, 부모님이 막아서며 “너는 지금 네가 누리고 있는 것이 얼마나 무거운지 모른다”고 하더라고요. 그런 것을 해서는 돈을 못 번다, 네가 누리고 있는 것을 가볍게 생각한다는 거였어요. 너무 기만적이었어요. 어렸을 때 꿈을 키워야 한다, 하고 싶은 것을 해야 한다며 적성검사도 실시하고 그러지 않았나요? 그럴 거면 그런 얘기를 왜 할까요. 어차피 못하게 할 것이고, 만약 한다고 해도 굶어 죽게 만들 거면서.

공현
투명가방끈이라고 하면 흔히 바로 취업을 하든가, 고시를 준비하든가 하는 굉장히 정형화된 몇 가지 루트가 있어요. 대학거부자들이 이 같은 루트가 아닌, 몇 년 정도는 다른 삶의 방향을 찾거나 대안 대학을 간다거나 여러 삶을 모색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그리고 다양한 삶의 방식을 가진 청년들을 어떻게 지원할 것인지도 중요해요. 유형으로 집계되지 않는 보편적 지원책 같은 것 말이죠.


윤서
재작년 대학 거부했을 당시에 어떤 사람이 대학에 왜 안 갔느냐고 물어왔어요. 구체적으로 답하기 조금 그래서 그냥 다른 활동을 하는 것이 재미있어서 대학을 안 갔다고 하니, 그래도 대학을 가는 것이 좋다고 하더라고요. 그 이유는 소수자성을 가진 사람, 즉 여성이나 소수자들이 대학에 많이 가서 그 수준이 높아지는 것이 좋지 않으냐는 것이었어요. 그 얘기가 계속 남더라고요.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아직도 모르겠어요. 하지만 대학이라는 공간이 가고 싶다고 늘 갈 수 있는 공간은 아니지 않나요? 어떤 면에서는 대학이 지식을 사유화하고 있어 대학 문이 더 열리지 않는 것 같아요. 제가 그곳에 가지 않더라도, 대학문이 더 열렸으면 좋겠어요.

쩡열
제도 정치 안에서, 그리고 중앙 정부의 통제 속에서 모든 정책이 만들어지는 것이 위험하다고 생각해요. 대학 거부자들은 단순히 취업을 위해 대학을 가지 않은 게 아니라, 대학 밖에서 배움의 가능성을 찾기 위해 대학을 거부한 것이라고 항상 얘기해요. 하지만 대학 밖에서의 배움의 가능성은 크지 않아요. 공부하고 싶은데 방법이 없는 거예요. 공부하려면 대학을 가거나, 아니면 비싼 돈을 내고 학원에 다니거나. 교육을 대학이 사유화하고 있으니 발생하는 일이에요. 읽고 싶은 책이 있어도 대학 도서관조차 들어갈 수 없어요. 대학이 아닌 공간에서 배움이 가능한 지점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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