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를 겪으며 야생동물을 생각하다

[유하네 농담(農談)]


고라니가 사는 밭

코로나19 때문에 봄도 느릿느릿 오는 것 같은 어느 날. 숨어 있는 밭을 모두 찾겠다는 결심으로 작은 언덕 위 밭을 오릅니다. 일 년만 돌아보지 않아도 밭에는 나무가 자랍니다. 다가오지 말라는 듯 뾰족뾰족 가시를 두른 아카시아 나무가 일 년 만에 유하 팔뚝만큼 자랐습니다. 유하 아빠는 잡목들을 낫으로 툭툭 잘라내다 “유하야 이리와 봐”라며 유하를 부릅니다. 탐험을 한다며 이리저리 끈을 묶고 나무를 오르락내리락 하던 유하는 “왜? 무슨 일이야?”하고 달려옵니다.

“여기 봐봐” 아빠의 낫 끝이 가리킨 곳에 동글동글 까만 콩 같은 것들이 깔려 있습니다. “이게 뭐야? 왜 콩이 여기 있어?” 유하가 갸우뚱 갸우뚱. “이게 고라니 똥이야.” 유하는 나무작대기를 들고 고라니 똥을 굴려봅니다. “여기까지 고라니가 온 거야?” 유하가 주변을 돌아보더니 “여기도 있다!” “여기에도 또 있어!”라며 고라니 똥 찾기가 놀이를 시작합니다. 고라니 똥을 찾던 유하가 “아빠! 여기가 고라니 길 인가봐”라며 어떤 곳을 가리킵니다.

정말 낙엽들 사이 누군가 계속 밟은 듯 작은 길이 있습니다. “고라니가 자주 다니나 보다. 유하야! 오솔길 알아? 옛날 숲속에는 오소리가 많이 살았는데 오소리가 다녀 생긴 길을 오솔길이라고 했대. 숲속에 작은 동물들이 다니는 길 말이야.” 아빠가 설명하자 “그럼 이 길은 고라니길? 고랄길? 이렇게 불러야 하나?” 유하가 웃으며 고라니의 발자국을 따라 걸어봅니다.

예쁜 말들이 오고 갔지만 농사를 지어야 할 유하 엄마와 아빠는 현실적인 고민에 빠집니다. “여기가 고라니 길이니 망을 쳐서 막아야 해.” 작년 봄, 정성껏 심어놓은 고추 모종을 고라니가 와서 모조리 뽑아 먹었던 기억이 납니다. “고라니가 마늘 순도 먹을까?” 새봄 땅을 뚫고 나온 마늘순은 요즘 유하 엄마의 최애(!) 작물입니다. 수심이 가득한 얼굴로 묻자 유하 아빠는 “마늘 순은 냄새가 나서 안 먹을 거야”라며 안심을 시킵니다. 고라니가 미워집니다. 언덕 위 해 잘 드는 곳에 심어 놓은 매실나무 가지까지 고라니가 다 먹어버렸거든요. 그러다가도 우리가 고라니의 영역에 들어와 고라니를 괴롭히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인간들이 고라니가 먹어야 할 열매며 나무를 다 없애서 고라니들이 농작물들을 먹는 건 아닐까 고민에 빠집니다.

누가 누구의 영역을 침범한 걸까

자연에 가까이 사는 유하네는 살면서 많은 야생동물들을 만납니다.

겨울 어느 날, 먹을 것을 찾아 내려온 멧돼지를 만나기도 했습니다. 덩치가 그리 크지 않은 멧돼지였는데 한쪽 발이 없었습니다. “엄마 멧돼지!” 유하의 목소리에 논 쪽으로 눈이 향합니다. 덫에 걸렸었나, 아니면 어떤 나무를 지나다 올무에 걸린 걸까, 돼지열병으로 멧돼지를 잡으면 포상금을 넉넉히 준다던데. 어린 멧돼지가 홀로 나락이라도 주워 먹으려는지 논바닥을 뒤집고 있었습니다. “불쌍해. 먹을 거라도 갖다 줄까?” 유하의 예쁜 마음에 엄마는 “안 돼! 위험해!”라고 외칩니다.

[출처: 이꽃맘]

박쥐도 만났습니다. 옛날에는 캄캄한 창고 한 귀퉁이나 처마 밑에 박쥐가 살았다고 하지요. 집박쥐는 모기며 파리며 각종 해충들을 잡아먹기에 쫓아내지 않고 함께 살았다고 합니다. 어스름한 저녁, 창문 방충망에 퍽하고 뭔가 붙었습니다. 깜짝 놀란 유하와 함께 “저게 뭐지?”라며 다가갑니다. “박쥐다!” 어릴 때 시골에서 산 유하아빠가 소리칩니다. “뭐라고? 박쥐?” “동물원에서 봤던 그 박쥐요?” 눈이 동글해진 엄마와 유하는 한참을 창가에 서서 박쥐를 바라봅니다. “귀엽네” 무섭지도 않은지 박쥐에게 손을 내미는 유하. 박쥐는 퍼드득 날아가 버립니다.

길에서는 더 많은 야생동물들을 만납니다. 유하가 유치원에 다닐 무렵. 자주 다니던 도로가 있었습니다. 그 도로에는 자주 동물들이 죽어있었습니다. 고라니, 너구리, 고양이, 강아지, 족제비까지, 그야말로 로드킬이었습니다. “엄마, 동물들이 사람들 다니는 길로 다녀서 죽는 거야? 아니면 사람들이 동물들 다니는 길을 차지한 거야?” 유하의 질문에 “차가 그리 많이 다니지도 않는데 그 많은 동물들이 죽어 있는 것을 보면 아마 원래 동물들의 길이었나 봐. 조심조심 다녀야겠다.”고 대답합니다. 초보운전 엄마에게 두려웠던 등하원길 이야기입니다.

자리를 빼앗긴 자연의 경고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텔레비전을 켜니 코로나19가 박쥐에서 천산갑으로 옮겨 사람에게 왔을 거라는 뉴스가 나옵니다. 사스도 박쥐에서 왔고, 메르스는 낙타에게서 왔다고 합니다. 최근 사람들을 위협하는 바이러스 대부분이 야생동물에게서 왔다며 시장 어디선가 조그만 철망 틀에 갇혀 있는 동물들을 보여줍니다.

영국의 한 교수는 “야생동물들로부터 전염병 사건이 증가하는 것은, 야생동물들을 탐지하는 인간의 능력이 향상되고, 서로 간의 접근성이 좋아지고, 야생 서식지를 인간이 더 많이 침해하기 때문”이라고 하더군요. 그는 “인간이 주변 경관을 바꾸고, 야생과의 거리를 좁히기 때문에 인류가 이전에 보지 못했던 새로운 바이러스와 접촉하는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왜 우리 밭에는 고라니랑 멧돼지가 많이 내려오는 거지?”라는 인간의 질문이 “왜 내가 사는 곳에 인간들이 자꾸 오지?”하는 고라니의 질문으로 바뀝니다.

유하가 방 한 구석에 작은 이불을 걸고 베개들을 두른 다음 “여기는 유하 집이니 들어오지 마세요”라고 합니다. 세하는 엄마가 널어놓은 빨래 밑으로 들어가 “여기는 세하 집이니 들어오지 마세요”라고 합니다. 허락 없이 발가락 하나라도 넣을라치면 “안 돼”하고 호통을 칩니다. 누구나, 동물이나 사람이나 다들 자신이 지키고 싶은 영역이 있나봅니다. 사람들을 서로 만날 수도, 이동할 수도 없게 만든 코로나 바이러스가 자신의 영역을 마음대로 침범하고 해치는 인간들을 향한 야생동물들의, 자연의 경고는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이탈리아 베네치아 운하에 물고기가 보인다고 합니다. 중국 베이징 하늘이 공해 없이 파랗다고 합니다. 유하네 머리 위 하늘도 파랗습니다. 지구가 잠시 쉬어가기 위해, 자연이 잠시 쉬어가기 위해, 인간들의 괴롭힘에서 잠시 벗어나기 위해 바이러스로 스스로의 쉼을 만든 것은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내 먹거리를 만든다고 우리 주변에 자연스럽게 살고 있던 동물들의 자리를 빼앗고 있는 건 아닐까 유하네는 고민에 빠집니다. 그렇다고 가뜩이나 부족한 밭을 고라니에게 넘겨줄 수도 없는 노릇입니다. 그래서 유하네는 고라니가 많이 다니는 길에는 망을 치는 대신 고라니가 잘 먹지 않는 식물을 심기로 했습니다. 들깨며 토마토는 냄새가 심해 고라니가 먹지 않습니다. 고라니 길도 열어주고 필요한 작물도 키우니 이를 감히 공생이라 불러도 될까요. 결론 같지 않은 결론입니다. 최대한 자연을 해치지 않고 자연스럽게 어울려 농사를 짓고 싶은 유하네의 작은 마음입니다. 자연과 공생하고픈 마음입니다.
태그

로그인하시면 태그를 입력하실 수 있습니다.
이꽃맘의 다른 기사
관련기사
  • 관련기사가 없습니다.
많이본기사

의견 쓰기

덧글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