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박한 정부의 탈탄소 에너지 전환 프로젝트

[녹색 스트라이크]‘정의’를 복원하는 싸움을 조직하자!

<장면 1>
얼마 전 몇몇 기후운동 단체로 환경부의 안내 공문 하나가 도착했다. 정부가 기후위기와 전환의 필요성, 에너지, 산업, 사회, 그리고 정부 혁신 등 다섯 영역에서 의제의 발굴과 정책 제안을 담당할 ‘탈탄소 전환위원회’를 구성할 계획인데, 여기에 참여해달라는 요청이었다. “2020년을 기후행동의 원년으로 선포”한 환경부는 “코로나19 위기 상황 속에서도 탈탄소 전환을 위한 논의를 더는 지연할 수 없다고 판단”하여 내린 결정이라며 탈탄소 사회로의 전환에 강한 의지를 보였다.

탈탄소 전환위원회에는 기후·환경 관련 교수 및 연구자, 청년과 시민사회 혹은 민관 협력단체 대표들이 위원으로 초대되었으나 탈탄소 사회로의 전환 과정에서 가장 큰 영향을 받게 될 노동자, 농민, 여성, 장애인 등 사회적 취약계층의 대표들은 제외됐다. 탄소배출 감축을 위한 구체적 계획을 마련해보고자 작성된 환경부의 “2050 저탄소 발전전략 수립을 위한 범정부 협의체 운영 계획”이라는 문서에서는 기재부, 산자부, 국토부, 외교부 등 “기후변화 대응과 연계된 13개 부처” 간의 공조를 통한 탄소 감축이 강조됐으나 고용노동부는 관련 부처에 포함되지 않았다.

<장면 2>
총선을 앞둔 3월 16일, 더불어민주당은 “지속가능한 저탄소경제”를 앞당기겠다며 그린뉴딜 공약을 발표했다. 한국 그린피스는 재빠르게 한국의 여당이 “동아시아 최초로” 그린뉴딜을 선언하고 2050년 ‘넷 제로’(탄소 배출을 줄이고 다양한 기술을 통해 탄소 배출을 흡수해 탄소배출 총량이 0이 된 상태) 목표를 제시했다는 영문 보도자료를 냈다. 이후 몇몇 해외 언론은 그린피스의 보도자료에 기반해 한국에서의 그린뉴딜을 보도했다. “동아시아 최초”라는 수식어는 빠지지 않았다.

총선 다음 날, 대부분의 해외언론은 코로나19 사태에도 불구하고 성공적으로 진행된 선거와 여당인 민주당의 대승에 초점을 맞췄다. 그러나 이 와중에도 몇몇 해외언론은 여당의 승리를 그린뉴딜과 연결 지어 보도했다. 예를 들어 경제지 포브스는 민주당의 승리가 코로나19 위기를 잘 관리한 정부 여당에 대한 한국인들의 지지 표현이었으며, 한국 정부의 다음 스텝은 선거 과정에서 약속했던 그린뉴딜을 제대로 추진하는 것이라 분석했다. 이 기사는 문재인 대통령이 ‘유럽 그린딜’을 모델 삼아 민주당의 그린뉴딜이 만들어졌다고 언급한 점을 들어 기후변화와 코로나19를 극복하기 위한 한국의 플랜은 “유럽 스타일의 그린뉴딜”이 될 것이라는 점을 제목을 통해 강조했다.


이 두 장면은 현재 정부의 기후위기 대응 방식과 이후의 경로를 예측하는데 중요한 몇 가지 단서들을 제공한다. 첫째, 지금껏 발을 질질 끌었던 정부도 이제 발등에 불이 떨어져 에너지 전환에 발 벗고 나설 채비를 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유엔기후변화협약(UNFCCC) 체결국인 한국은 26차 당사국 총회(COP 26)에 한국의 탄소 감축 목표와 경로를 담은 국가별 기여방안(NDC)과 장기 저탄소 발전전략(LEDS)을 제출해야 할 의무를 지닌다. 코로나19로 11월에 잡혔던 COP26은 연기됐지만, 탄소 감축을 위한 구체적 계획을 제출해야 한다는 사실은 피할 수 없다. 실제로 정부는 5월부터 탈탄소 전환과 관련된 의견수렴 및 사회적 공론화 작업을 시작할 채비를 하고 있다.

둘째, 우리는 정부의 전환 계획이 대외적인 이미지 메이킹에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는 점을 예측해 볼 수 있다. 정부로서는 코로나19 사태의 성공적 관리를 통해 세계적 위상이 높아진 여세를 몰아 국제사회에 퍼진 ‘기후 악당국’의 오명을 씻고자 하는 욕망이 있다. 그러기 위해 정부는 탈탄소 정책 수립과 이것의 대외적 홍보에 열을 올릴 것이고, 여기에는 그린피스와 같이 국제적 네트워크를 가진 단체들도 역할을 할 것으로 예상된다.

셋째, 문제는 정부의 탈탄소 전환이 노동자 민중의 목소리를 배제한 채 정부 관료, 전문가, 산업계, 상대적으로 친정부 성향을 보이는 시민단체 등을 축으로 진행될 것이라는 점이다. 민주당의 그린뉴딜안은 이러한 경향을 가장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탄소제로사회’ 실현, 그린뉴딜 기본법 제정, 기후위기 대응 투자 확대 등 야심찬 계획을 포함하고 있으나 민주당의 그린뉴딜은 기본적으로 “시장제도 활성화”를 통한 에너지 전환의 원칙을 명확히 하고 있다. 투자의 대상도 기업이며 이들에게 각종 지원과 세제감면 확대 등을 약속한다. 그러나 고용이나 노동과 관련해서는 “녹색일자리 전환을 위한 교육 지원”만이 유일한 대책으로 제시될 뿐이다.

지금껏 기후정의운동 진영은 정부가 기후위기의 시급성을 인정하고 대책 마련에 나설 것을 요구해왔다. 정부가 기후 문제에 우선순위를 두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정부는 관료와 기업, 재생에너지 사업자들이 주도하는 신자유주의적 전환이라는 정책 윤곽을 뚜렷이 하고 있다. 정부의 계획대로 에너지 전환이 추진되면 탄소 배출량은 조금 감축시킬 수 있을지 몰라도, 신자유주의 체제가 그대로 유지되는 가운데 그린뉴딜의 또 하나의 핵심 과제인 불평등 해소는 쓰레기통에 처박히게 될 것이다. 그러면서도 정부는 자신들이 파리기후협약을 준수하며 탈탄소 사회로 나아가고 있다고 선전할 것이다.

이런 흐름에 저항하고 방향을 바꿀 세력들의 힘은 미약해 보인다. 활발한 대중운동의 성과로 그린뉴딜이라는 ‘총체적 사회변혁 프로그램’을 만들어낸 미국이나 노동조합과 시민사회의 주체적 참여를 통해 그린딜을 합의해낸 유럽과 달리 오늘날 한국의 대중운동은 약하고 시민사회의 참여도 정부가 정하는 한에서만 가능하다. 오랜 노동배제의 전통 속에서 에너지 전환 과정에서 가장 크게 영향을 받을 노동자들의 목소리는 고려조차 되지 않는다. 게다가 목소리를 크게 내야 할 노동조합들에서조차 에너지 전환 문제 대응을 우선순위로 다루고 있지도 않다.

하지만 지금의 상황이 절대 불리한 상황만은 아니다. 민주당의 그린뉴딜이나 정부의 탈탄소 계획은 국제사회의 규범으로부터 한참 동떨어져 있는데, 이 국제사회의 규범은 기후정의운동과 노동자 민중의 든든한 우군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한국 정부가 준거로 삼는 파리기후협약은 단지 탄소 감축의 문제만을 다루고 있지 않다. 협약의 지위, 정신과 실행 원칙을 담은 파리기후협약 전문은 협약을 통해 추구하는 기후변화 대응이 보편적 인권과 ‘정의로운 전환’의 원칙을 따르고 있음을 뚜렷이 하고 있다. 그중 몇 가지만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기후변화와 관련된 행위, 대응, 영향과 지속가능한 발전 및 빈곤 퇴치에 대한 형평성 있는 접근은 떼려야 뗄 수 없는 본질을 이룬다는 점을 강조함.
-각국에서 규정한 발전의 우선순위와 조응하는 가운데 “각국에서 규정한 발전의 우선순위에 조응하는”이라는 수식어구는 파리기후협약이 각 당사국의 “구체적인 필요와 특별한 상황”에 맞는 대응을 인정하고 있음을 반영한다. 그러나 이는 저발전 국가나 기후변화로 인한 피해가 더 큰 나라를 염두에 둔 것이지 OECD 회원국인 한국에 적용될 성질의 것은 아니다.
노동자들의 정의로운 전환과 좋은 일자리 및 양질의 고용 창출이 절대적으로 중요하다는 점을 고려함.
-기후변화가 인류의 공통 관심사임을 인정하고 기후변화에 대응함에 있어 당사국은 인권, 보건의료 접근권, 원주민·지역공동체·이주민·아동·장애인·취약계층의 권리와 이들의 발전 뿐 아니라 성평등, 여성의 힘 강화(empowerment of women), 그리고 세대 간 형평성에 대한 의무를 존중, 강화, 고려해야 함을 인지함.
-이 협약에서 다루어지는 모든 문제와 관련된 교육, 훈련, 공중(public)의 인식, 공중의 참여, 공중의 정보 접근, 협력이 중요함을 확인함.
-기후변화 대응을 함에 있어 각 당사국의 법령에 맞게 다양한 수준의 정부조직과 다양한 행위자의 참여가 이루어지는 것이 중요함을 인지함.

위 내용은 현재 정부의 탈탄소 행보가 파리기후협약의 정신으로부터 얼마나 일탈하고 있는지, 협약 실행 원칙의 핵심인 인권과 정의의 문제가 얼마나 실종돼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정부의 계획과 파리기후협약 사이에 간극이 있다는 사실은 그 자체로 정부 계획에 영향을 주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경우에 따라 좋은 무기가 될 수는 있다. 얼마 전 한국의 그린뉴딜을 취재하는 미국의 한 언론사와 인터뷰할 기회가 있었는데, 기자는 여당의 그린뉴딜과 정부 계획에 대한 설명을 듣고는 “어떻게 ‘정의(justice)’가 없는 그린뉴딜이 가능하냐”고 되묻기도 했다. 국제사회가 코로나19 대응으로 위상이 드높아진, 선진국 한국의 이러한 일탈을 너그러이 봐주지는 않을 것이다. 대외적 이미지에 예민한 정부로서도 해외 언론의 논조나 국제사회의 시선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이 약점을 끈질기게 고발하고 정부가 협약의 원칙에 맞게 궤도를 수정하게끔 압력을 만들어내는 싸움이 필요한 이유다.

파리기후협약 전문의 효력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에너지 전환 앞에서 많은 노동자는 실제 실업의 두려움을 안고 살아간다. 위기에 빠진 두산중공업 노동조합이 중단된 신한울 3·4호기 원전을 재개하라 요구하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다. 미리 준비하지 못한 채 위기상황이 닥쳐서야 행동을 조직하게 될 경우 싸움은 수세적이고 방어적으로 될 수밖에 없고, 여론의 지지를 받기도 힘들어진다. 노동조합도 더 늦기 전에 탈탄소 전환 과정에 개입을 해야만 하는데, 이 과정에서도 기후위기 대응과 관련된 ‘국제사회의 규범’은 노동자의 편이 될 수 있다.

박스글에서도 볼 수 있듯, 파리기후협약 전문이 보여주는 정의로운 전환은 불평등 해소나 “좋을 일자리” 보장에 한정되지 않는다. 기후변화 대응이 다양한 행위자들의 참여를 통해 이루어져야 할 뿐 아니라 사회적 취약계층의 정치력과 발언권을 강화하는 방향을 통해 이루어져야 한다는 원칙도 포함한다. 이는 기후변화에 가장 큰 원인제공을 한 대기업이나 부유층이 더 많은 책임을 져야 하며, 기후변화에 적게 기여했으면서도 가장 큰 피해를 입게 될 저소득층이나 취약계층의 목소리가 기후위기 대응 과정에 적극 반영돼야 한다는 ‘기후정의’의 원칙을 반영한다. 이들이 전환과정에서 피해를 입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넘어 이들이 전환의 밑그림을 그리는 과정에 주체로 참여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어떻게?

<장면1>로 돌아가 보자. 환경부는 ‘탈탄소 전환위원회’를 제안하며 몇몇 에너지 관련 시민사회 단체들에 참여요청을 했다. 정부의 기후정책을 비판하고 민주당의 그린뉴딜에 대해서도 비판적인 논평을 냈던 ‘기후위기비상행동’도 초청장을 받았다.(그러나 참여는 하지 않기로 했다.) 에너지 전환을 한다며 이 문제를 다루는 연대체를 무시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기후위기나 에너지 전환과 관련된 문제를 다루는 노동자의, 농민의, 지역공동체의 단위가 있었다면, 정부도 이를 무시할 순 없었을 것이다. 위원회에 들어간다고 모든 것이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기후위기 대응에서 노사정위원회처럼 다 정해놓고 구색을 맞추기 위해 노동자 대표를 부르기는 어렵다. 설사 그런 의도가 있다 해도 강한 문제 제기가 있다면 밀어붙이기는 더 힘들다. 정부가 준거로 삼는 파리기후협약이 가진 구속력이 있고 전 세계가 지켜보고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의 기후위기 상황과 국제적 압력으로 한국에서도 탈탄소 에너지 전환은 피할 수 없는 현실이 돼버렸다. 그러나 어떤 경로를 통해 그 길을 갈 것인지, 이에 따른 탈탄소 사회의 모습은 어떤 것일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아니, 지금의 상태에서 정부와 여당의 계획대로 간다면 재생 에너지 분야에 자금이 몰리며 재벌과 신흥 자본가들의 배만 불리는 가운데 노동자와 민중의 삶은 더욱 궁핍해질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정부도 이제 출발선에 선 상태고 그 궤도를 바로잡기 위한 여지는 충분하다. 더 늦기 전에 한국의 에너지 전환 과정에 ‘정의’의 원칙을 불어넣기 위한 조직화와 전략 수립이 필요하다. 그 길에 기후변화 대응을 둘러싼 ‘국제사회의 규범’은 우리의 편이 돼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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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철(독립연구자, 에너지노동사회네트워크 정책위원)의 다른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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