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민 144만 빠진 정부 재난지원금…“정부가 차별 조장”

“재난지원금 차별ㆍ배제말고 이주민에게도 평등하게 지급해야”

방글라데시에서 온 이주노동자 라셰드는 2주 전 무급 휴가를 통보받고 눈앞이 막막해졌다. 그는 천안에서 버려진 옷을 수거하고 분류해 수출하는 공장에서 일하고 있다. 코로나 위기는 폐의류 수거 공장에도 닥쳤다. 사장은 기한 없는 무급 휴가를 통보하며 공장 사정이 어려워 이번달 월급조차 지급하기 어렵다는 식으로 이야기했다. 월급이 모자라면 공장 내 한국인부터 받게될 것이라고도 했다. 울컥했지만 이러한 차별이 처음도 아니었기에, 무슨 말을 해야할 지 몰라서 입을 다물었다. 그는 한 가족의 생계부양자다. 당장 매달 보내야 하는 생활비 걱정에 여러방면으로 일을 구해보지만 이주노동자의 일자리가 빠르게 없어지는 이 때 새로운 일을 구하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라셰드는 “일도 없고, 다른 지원도 없다. 나는 일을 해서 먹고 살아야 하는 노동자인데 나와 우리 가족은 어떻게 살아야 하나”라며 “우리 이주노동자들도 한국에 살면서 세금을 내고 있다. 그 지역에 살며 세금 내는 사람들에게 지원이 돌아간다면, 왜 이주민들은 재난 지원금에서 빠지는지 묻고 싶다”라고 말했다.

라셰드의 말처럼 이주민과 이주노동자 역시 지역 경제와 사회에 기여하는 구성원으로서, 코로나19로 인한 고통 분담과 사회적 노력을 함께 하고 있지만 국가는 이들을 보살피지 않고 있다. 지난 4월 16일 ‘재난지원금 범정부TF’의 지원대상자 선정 세부기준에 따르면 장기체류 이주민 약 173만 명(3월 말 기준) 가운데 약 144만 명이 대상에서 배제된다. 정부는 이주민 지원과 관련해 “재외국민, 외국인은 지원대상에서 제외되지만 결혼 이민자 등 내국인과 연관성이 높은 경우, 영주권자는 지원대상에 포함된다”고 밝혔다.

전국 이주인권단체들은 “한국사회와 연관성이 낮다는 것은 어떤 기준인지 모르겠다”라며 “세금을 내고 경제와 사회에 기여하는 것에 있어서도 이주민들이 차별과 배제를 당할 이유가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들 단체 공동은 “재난지원금은 차별과 배제없이 이주민에게도 평등하게 지급해야 한다”라며 “위기 상황에서 이주민을 거대하게 배제하는 위험한 선례를 만들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전국 이주인권단체 공동은 7일 오전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같은 요구를 밝혔다. 이들은 기자회견문을 통해 “국세청 통계에 따르면 이주민은 2018년에 근로소득세를 57만3,000명이 7,836억 원을 납부했고 종합소득세로 8만 명이 3,815억 원을 냈다. 이 두가지만 합해도 1조1,651억 원이다. 여기에 지방세, 주민세, 각종 간접세 등을 다 내고 있다. 이민정책연구원 보고서에 따르면 이주노동자의 경제기여 효과는 2016년 74.1조 원, 2018년 86.7조 원에 달한다”라고 설명했다.

전국 이주인권단체 공동은 이주노동자가 경제 기여 효과에서 차별받을 이유가 없을 뿐더러 “헌법과 국제법적으로도 이주민은 당연히 차별받지 않고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가 보장되고 평등권의 주체가 된다”고 강조했다. 이어 “인구의 재생산과 확충, 노동력 보완, 소비와 경제생활, 각종 세금과 사회보험 납부 등에 있어서는 이주민을 필요한 존재로 포함시키다가 재난 지원정책에선 마치 유령과 같이 보이지 않는 존재로 취급하는 것은 아무런 정당성도 없다”고 꼬집었다.

이주민센터 ‘친구’의 이제호 변호사는 “코로나19 성공적 방역의 원동력은 모두가 차별없이 방역에 동참했기 때문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재난지원금이 차별적으로 지급되는 건 우리 사회 방역 방식과 모순되는 것이라 놀랍다”라며 “제도적 차별은 사적인 영역의 차별을 공고히 한다. 정부가 나서 차별하는 것은 일반 시민들에게 차별하게 하는 효과를 불러일으킬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 기자회견엔 난민 당사자도 참가해 재난 지원금을 평등하게 지급하라고 호소했다. 2년 전 난민 자격을 인정 받은 샤녹난 루암삽은 “우리는 임대료를 낸다. 우리는 이곳에서 값싼 노동자로 산다. 우리는 먹는다. 우리는 소비한다. 우리는 직간접적으로 세금을 낸다. 바이러스가 이 나라를 강타할 때 한국인 뿐 아니라 우리에게도 타격을 준다. 우리도 일자리를 잃었다. 우리 아이들도 학교에 가지 못한다. 우리도 마스크가 필요하다. 우리도 가족을 먹여야 한다”라고 말했다.

샤녹난 루암삽은 “한국 정부가 우리가 이 사회에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행동하는 것을 멈춰주길 바란다”라며 “우리를 인간으로서 동등하게 대하고 모든 소수자에 대한 차별을 중단해 달라”라고 촉구했다.

한편, 국내에서는 부천시, 안산시 등에서 일부 이주민에게 지원금을 지급해 눈길을 끌고 있다. 부천시는 4인 가구 기준 100만 원을 긴급재난지원금으로 지급한다고 밝히며 한발 더 나아가 재난기본소득 지급 조례를 개정해 지원 대상을 모든 등록 이주민에까지 확대했다. 결혼이민자나 영주권자 등 시에 거주하는 등록된 이주민이 재난기본소득을 받을 수 있다. 부천의 등록 이주민은 4만 3천여 명으로 알려졌다. 안산시도 등록된 이주민에게 1인당 7만 원을 지급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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