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명가방끈, 불안정노동의 늪

[가방끈이 싫어서]

진행: 공현
패널: 윤서, 피아, 따이루
정리: 김한주 기자

아르바이트 일자리도 학력을 요구하는 사회. 노동을 하는데 학력은 필요할까? 의사나 변호사 같은 전문직을 원하는 것도 아닌데. 삶의 유지 또는 자기실현을 위해 노동을 하고 싶어도 ‘대졸 이상’, ‘휴학생 우대’란 학력 기준은 투명가방끈을 배제한다. 진입장벽을 넘는다 하더라도 학력이 낮다는 이유로 임금, 승진, 처우 모든 면에서 불이익당하기 일쑤다. 과연 투명가방끈의 노동은 어떤 모습일까?


공현: 학력 차별 문제에서 가장 중요한 노동 문제를 다뤄보고자 합니다. 노동은 먹고사는 문제라 가장 중요한데 학력, 학벌 차별이 나타나죠. 먼저 투명가방끈이 경험했던 노동을 이야기해볼까요?

따이루: 신림동 순대촌에서 일한 적이 있어요. 당시 최저임금이 시급 3천 원대였는데 그것도 받지 못했어요. 그래서 활동하는 친구들과 함께 가서 최저임금을 요구했어요. 그랬더니 사장이 “아들처럼 잘 대해줬는데 뒤통수를 치느냐”고 욕을 하더라고요. 2017년~2018년에는 편의점에서 일했어요. 편의점 사장한테 주휴수당을 달라고 했는데 뜬금없이 자기가 386세대다, 민주화 운동을 했었다고 얘기하더라고요. 주휴수당을 안 주겠다는 말을 돌려서 한 거죠. 마트에서도 일했어요. 마트에는 고등학교 졸업이라고 거짓말하고 들어갔어요. 마트의 학력 기준이 고졸이었는데, 저는 고등학교를 자퇴해서 중졸이었거든요. 그런데 마트 매니저들이 저를 옆에 두고선 ‘사람이 고졸 이상은 돼야 사회생활을 한다’며 중졸 욕을 하더라고요. 사실 학력과 상관없는 일인데. 습관적인 학력 차별이 고용 시장 안에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피아: 저는 중학교 2학년 때 전단 아르바이트로 처음 노동을 했어요. 최저시급, 주휴수당은 고사하고 근로계약서도 안 썼죠. 전단 아르바이트는 교복을 입고 일해야 했어요. 아파트에 몰래 들어가서 전단을 붙여야 하는데, 학생이면 별로 의심을 안 하니까요. 두 달 동안 책가방에 전단을 수백 장 넣어 다녔죠. 그 다음엔 잠깐 휴게소 아르바이트를 했어요. 여기선 ‘너를 배부르게 해 주겠다’, ‘임신했느냐’ 같은 성희롱이 심했고, 저희 집까지 찾아오는 일도 있었어요. 여기도 두 달 만에 일을 그만뒀어요. 약국에서도 일한 적이 있어요. 여기서 어떤 사람이 저한테는 ‘너는 아직 어리니까 대학 갈 수 있다’고 얘기하면서, 나이 있는 여성 동료한테는 ‘배운 것도 없는 여자가 저렇게 일하고 있다’고 험담하더라고요.

공현: 저는 지금 출판사에서 격월간지 편집을 담당하고 있어요. 정규직으로 4년째예요. 생각해보니 지금까지 했던 일 중에서 4대 보험에 가입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네요. 퇴직금을 받아본 적도 없고요. 이외에 연구프로젝트를 맡기도 해요. 연구프로젝트는 여러 역할을 주는데 저는 대졸이 아니라서 연구원 이상으로 이름을 넣지 못하더라고요. 그래서 늘 연구 보조원으로 이름이 올라갔어요. 공식적으로 연구보조원 임금이 훨씬 적었어요. 그래서 다시 내부에서 재분배하기도 했죠.

  공현 [출처: 김한주 기자]

윤서: 스무 살 때 떡볶이 프랜차이즈 가맹점에서 당일 해고를 당한 적이 있어요. 머리카락이 아주 짧다는 이유로요. 출근한 날 계약서를 쓰기로 했는데, 결국 못 썼죠. 하루 일당만 받고 잘렸어요. 머리카락이 자라고 나서는 한 달 반 정도 칼국수 집에서 서빙 일을 했어요. 여기서도 가게 재정 상황이 안 좋다고 금방 잘렸어요. 해고수당은 받지 못했네요.

공현: 대학 진학과 거부 사이에서 고민할 때 가장 불안해하는 문제가 취직이나 소득 문제예요. 투명가방끈에 찾아오는 사람도 이걸 가장 궁금해 하더라고요. 노동은 결국 생계 문제이니까요. 각자 대학 거부를 결정했던 과정은 어땠으며, 그 이후 일하는 과정에서 생계 문제는 어떻게 다가왔나요?

윤서: 청소년기에 대학 거부를 생각할 때 최소한의 기반을 유지할 수 있는 돈마저 벌지 못할 것 같다는 불안감이 컸어요. 돈을 구할 수 있는 루트가 아르바이트 구직 사이트나 취업 뿐이라고 생각했죠. 하지만 저는 그 둘 말고도 제가 할 수 있는 활동들을 하며 돈을 벌어왔고, 지금까지 잘 지내 왔어요. 한편으론 학위가 없기 때문에 취업에 불리하지 않을까 생각하지만, 지금은 학위 때문에 떨어질 곳은 가지 않겠다는 생각이에요. 그래서 지금은 불안이 조금 덜하고요.

공현: 저는 청년의 일자리 눈높이를 얘기하고 싶어요. 사실 저도 고등학교 때부터 돈은 먹고 살 만큼 벌면 된다고 생각했어요. 2012년부터 오래 일한 인권활동가들이 ‘150만 원만 벌면 되지 않나’라고 얘기하더라고요. 사실 150만 원 정도의 일자리는 많죠. ‘내가 눈이 굉장히 낮은 건가?’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저는 오히려 다들 노동 때문에 소모되지 않고, 노동시간이 길지 않으면서, 재미와 보람이 있는 일을 찾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피아: 저는 정반대였어요. 소득 문제로 엄청 불안했거든요. 제가 고등학교에 남아있던 이유 중 1순위가 소득이었어요. 흔히 대학에 가지 않는 삶을 달동네, 독거노인으로 그리잖아요. 아르바이트 노동만 하다가 정규직이 못되고, 나이가 들면 받아주는 데가 없어서 굶어 죽는다는 상상들. 대학에 가지 않는 것이 그런 삶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무서워서 공부에만 몰두했어요. 어쩌다 보니 학교와 집을 나오게 됐는데, 지금도 완전히 자유롭진 않아요. 투명가방끈 활동이 재미있고, 모자란 수익을 주 1~2회 아르바이트로 채울 수는 있긴 한데, 앞으로도 계속 그럴 수 있을지도 모르겠고요. 나중에 결혼도 하고 싶고, 집도 사고 싶은데 내가 누릴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있어요.

공현: 투명가방끈이 대학비진학자 관련 연구 사업을 다른 연구자들과 진행한 적이 있는데, 같은 기간에 대졸자는 취업 경험이 한 번인데, 고졸은 네 번이라는 통계가 나왔어요. 학력에 따라 불안정한 구조에 처한다는 뜻이죠. 어떻게 보면 돈의 액수보다 일자리의 불안정이 가장 큰 문제 아닐까요?

따이루: 실제로 제 주변에 대학을 가지 않은 비진학자 중에 한 직장에서 2년 이상 일하고 있는 사람이 딱 한 명밖에 없어요. 나머지는 자의든, 타의든 불안정한 파트타임으로 일하거나, 그보다는 조금 더 나은 노동환경을 원해서 이직을 반복하고 있죠. 비진학자는 노동의 영역에서 선택지가 많지 않아요. 당장 할 수 있는 일은 배달, 서비스 같은 문턱 낮은 일자리뿐이죠. 그래서 메뚜기처럼 이리저리 폴짝폴짝 뛰어다니며 불안정 노동만 한다고 느껴져요. 그렇게 뛰다가 떨어졌을 때도 실업급여를 받거나, 주변에서 도움을 주는 사람도 한정적이죠.

윤서: 한국에서도 초단기 아르바이트 노동으로만 삶을 유지하는 ‘프리터족’이 많지 않나요? 어딘가에 몰두하다 ‘번아웃’돼서 이젠 일회성 아르바이트 노동만 하고 살겠다는 사람들이요. 그런 걸 보면 한국 사회 자체가 노동으로 사람을 소모하게 만드는 것 같아요. 이를 모르는 학교 안 청소년의 입장에선 두려워하는 게 당연하고요. 대학도 못 가면, 취직도 못 하니 그렇게 되지 말라고 어른들이 늘 얘기하잖아요. 그래서 불안은 더 커지는 거죠.

  윤서 [출처: 김한주 기자]

공현: 대학거부자로서 느끼는 또 다른 장벽이 있어요. 고졸이어도 취업, 대졸이어도 취업이라는 정해진 코스가 있는데, 학교도 안 다니고 취직도 안 한 사람을 ‘하자가 있다’고 보는 시선이죠. 정해진 경로 이외의 공백의 기간, 쉼의 시간을 사회가 인정하지 않는 문제를 얘기해야 해요.

따이루: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취업한다는 ‘삶의 틀’이 있어요. 졸업 후 임금노동이 아닌 다른 일을 하면 정해진 삶의 틀에서 벗어난 것이기 때문에 나타나는 문제가 많죠. 그래서 대안적인 삶을 얘기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정해진 삶의 틀을 벗어나려는 사람은 늘어나는데, 이에 대한 사회적 대안은 부족한 상황이잖아요. 단순히 임금노동, 아니면 임금이 없는 일로 나뉘는 것도 안타깝고요.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도 먹고 살 수 있는 새로운 지원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피아: 5천만 한국인이 전부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졸업 후 취업이라는 정해진 코스를 따라간다는 게 조금 무섭게 느껴져요. 인생의 가지 수가 이렇게 좁았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학교에서도 짜인 시간표대로 움직이잖아요. 학교에 있을 땐 한 달 일정, 학기 일정, 1년 일정이 다 정해져 있다는 사실이 너무 따분했어요. 이런 구조를 보면 학교와 인생이 다를 바 없지 않나요?

윤서: 저는 투명가방끈에 주 3일 출근하고 있어요. 주 3일 노동이어도 제 삶의 중심점인 것은 맞아요. 사회적으로 투명가방끈을 경력으로 쓸 수 없어도 중심점이 있어서 좋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공백을 공백답게 즐기고 있고요. 다만 그 공백이 더 안정적이길 바라죠. 꼭 수입이 아니어도 안정을 뒷받침하는 지원이 있다면 좋을 것 같아요.

공현: 학력 문제를 떠나서 각자가 원했던 노동, 일자리가 있었을 것 같아요. 그 노동을 통해 꿈꿨던 삶도 있을 텐데 말이죠. 자기가 바랐던 노동과 삶, 꿈을 얘기해보면 좋겠습니다.

윤서: 요즘엔 사회복지에 관심이 많이 생겼어요. 그런데 사회복지도 관련 학위나 사회복지와 관련된 곳에서 2년 이상 일한 경험이 있어야 하더라고요. 저는 대학도 가지 않았는데 그런 근무 경험은 어디서 쌓을 수 있는 거죠? 이런 조건이라면 지금 청소년 인권 단체에 있는 저로서는 나중에 노인 복지, 여성 등 다른 분야로 가기도 힘들 것 같아요.

따이루: 하고 싶은 일이 있는데 학력 문제로 막히는 일이 많아요. 주변 투명가방끈 중에 상담사가 되려는데 상담교육 과정을 이수하지 못해서 포기한 경우가 있어요. 그래서 대학에 진학한 사례도 있었고요. 또 사회복지기관 보육원에서 지내는 청소년 중에서도 사회복지사가 되려는 사람이 있어요. 그런데 많은 사회복지기관은 학력을 따져요. 제가 활동하는 엑시트(움직이는청소년센터 EXIT)만 해도 사회복지기관이다보니, 여기서 비진학자는 저밖에 없어요. 이런 상황 때문에 희망하는 일 자체를 바꿔버리기도 하죠.

피아: 저는 원래 예체능을 하고 싶었어요. 그런데 예체능은 학연으로 이뤄진 인맥이 중요하더라고요. 저는 뮤지컬을 하고 싶었는데, 뮤지컬이든 성악이든 예술계는 대학이라는 네트워크에서 주로 움직인다고 들었어요. 그런 견고한 네트워크 안에서 제가 파고들 틈이 있을까 생각하면 자신이 없어지더라고요.

  피아 [출처: 김한주 기자]

따이루: 시민사회계도 마찬가지예요. 시민사회단체 상근활동가를 뽑을 때 자연스럽게 그 학교 후배들이 채워지는 구조를 자주 봐요. 학연에 들어가 있지 못한 사람은 당연히 배제되는 상황인 거죠. 또 반대로 지금 사회에서 이런 구조가 없다고 하면 대체할 시스템이 없어요. 선배가 후배를 챙기는 것 말고는, 개인이 자유롭게 다양한 일을 경험하고, 경력과 실력을 만들 수 있는 시스템이 없다는 뜻이에요. 이런 사회적 시스템이 없으니 대부분 자기가 아는 인맥과 학연으로 사람을 채우는 문화가 생기는 거죠.

공현: 그렇다면 투명가방끈들이 바라는 노동을 하기 위해서 어떤 사회적 기반이 있어야 할까요? 저는 일단 무상의료, 공공주거, 기초연금 등 기존의 복지제도도 중요하지만, 기업들과 고용주에게 학력과 상관없이 고용을 책임지고, 비정규직으로 사용하지 말라는 등의 요구를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러면 반대로 ‘대단한 일자리도 아니지 않느냐’는 말이 돌아오곤 하죠. 이는 고용시장에서 시험, 자격증, 스펙이 그 자체로 상징성을 가지는 능력주의의 문제라고 생각해요. 정규직 되려면 시험 치고 들어오라는 요구가 점점 더 강해지고, 명확해졌어요. 그래서 능력주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봅니다.

윤서: 많은 사람이 공무원 시험에 몰리는 것은 그만큼 안정을 바라고, 저녁 있는 삶을 기대하기 때문이 아닌가요? 안정과 여가 등의 요소를 채울 수 있는 사회적 지원을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이 요소에 집중한다면 ‘나인 투 식스’, ‘주 5일’, ‘한 직장’이라는 틀에 박힌 사회 구조도 바뀔 거라고 생각해요. 또 최근엔 코로나19로 예술가들이 힘들다는 얘기가 많아요. 안정적이지 못한 삶에 대응할 수 있는 지원이 따라야 한다고 봐요. 직장을 잃어도, 수입이 끊겨도 나를 받쳐줄 쿠션이 있어야 하고, 이는 사회가 보장해야죠.

따이루: 저는 불안정성이 핵심 키워드라고 생각해요. 노동 형태도 불안정하고 그 기간도 불안정해요. 플랫폼 노동만 하더라도 불안정 노동 그 자체예요. 불안정에 대한 사회적 대책이 전무한 상황이고요. 앞으로 정규직 일자리가 많아지지 않을 것 같아요. 앞서 말했듯 ‘메뚜기 노동’이 많아지겠죠. 이 현실에서 어떤 안정적인 일자리를 만들 것이냐를 정책으로 설계하는 건 불가능하다고 봐요. 그래서 기업이 보장하는 안정적 일자리보다는 사회적 안전망을 더 생각하게 돼요. 기본소득이 그 대안이 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실업급여는 대안이라고 생각해요. 특정 일자리, 특정 산업을 넘어서는 실업급여는 사회적 안전망으로써 불안감을 해소할 수 있지 않을까요?

  따이루 [출처: 김한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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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저씨

    노동도 오랫동안 해보지 않고 언론하고 인터뷰를 하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을 것인지 모르겠네요. 어린 사람들이 엉뚱한 의식에 휩싸이는 것은 아닌지, 겉멋이라는 말 있잖어요. 글을 보니 겉멋이 든 것 같기도

  • 아저씨

    공장 가서 1~2년 일하면 학교에서 본 공부는 탈탈 털리기 시작합니다. 오랫동안 일하면 학교에서 본 책 내용은 거의 잊혀지고 필요도 없게 됩니다. 솔직히 노동해서 임금 받고, 차 사고, 집 사고, 가정 꾸려서 애들을 키우면 되는데 학교에서 보는 책 내용이 어떤 필요가 있겠습니까, 요즘 말대로 정규직만 하면 생산직에서는 최고인데 말입니다. 인터뷰를 한 사람들은 사회에 대한 문제의식은 있지만 자본의 냉정함과 엄청난 힘을 재대로 알거나 노동을 제대로 알기 어려운 상태 같습니다. 20대 초반은 다른 생각을 할 수도 잇지만 내가 보기에는 그다지 좋은 모습은 아니네요

  • 개저씨

    투명가방끈 분들과 인터뷰한 다른 기사에도 이 따위 댓글을 달더니, 여기에서도 다네, 이보세요, 당신 기사 제대로 읽고 이 따위 댓글을 싸질르는 겁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