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용역 수백 명을 대동한 ‘노조파괴 사건’

[이슈] 만도, 콘티넨탈, 보쉬전장까지, 금속노조의 ‘허리’를 끊었다

2012년 7월 26일 저녁. 경비 용역 수백 명이 수도권에 집결하고 있다는 소문이 돌았다. 금속노조 사무처는 지역지부와 각 사업장에 이 소식을 전했다. 파업과 농성을 벌이던 지역 사업장에 용역 투입과 직장폐쇄가 이뤄질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직장폐쇄가 예상되는 몇몇 사업장의 이름이 오르내렸다.

이튿날인 7월 27일 오후 3시경. 자동차부품업체 (주)만도의 문막, 평택, 익산 공장에 대규모 용역이 투입됐다. 한 시간 뒤인 오후 4시에는 경기도에 위치한 자동차부품업체 (주)SJM에 수백 명의 용역이 들이닥쳤다. 그리고 두 사업장에 직장폐쇄가 단행됐다. SJM에서는 유혈사태가 벌어져 서른세 명의 노동자가 부상을 당했다. 2012년, 노조파괴 광풍의 시작이었다.


이명박이 직접 ‘여론전’ 나선 만도

“만도기계라는 회사는 연봉이 9500만 원이라는데 직장폐쇄를 한다고 한다. 경제가 어려운 상황에서 귀족노조가 파업을 하는 나라는 없다. 참 안타까운 일이다.”

만도가 직장폐쇄를 단행한 직후인 오후 5시 30분경. 당시 이명박 대통령은 청와대 주요현안 점검회의에서 이같이 말했다. 그동안 사측의 교섭해태에 맞서 44일째 잔업·특근 거부 투쟁과 27일째 부분파업을 벌이던 금속노조 만도지부를 공식적으로 비난하는 발언이었다. 대통령이 직접 사측의 직장폐쇄를 옹호하고, 노동자들에게 ‘귀족노조’라는 프레임을 씌운 셈이었다. 대통령의 발언에 노동계는 아연실색했지만, 그렇다고 이례적인 일도 아니었다. 지난해인 2011년에도 유성기업에 직장폐쇄가 단행된 후, 대통령은 라디오 연설에서 비슷한 발언을 했었다.

[출처: 참세상 자료사진]

노동계는 그날의 용역투입과 직장폐쇄가 정부와 자본의 전략적 ‘노조파괴 시나리오’라고 결론지었다. 오래전부터 치밀하게 설계된 정부와 자본의 ‘총공세’였다. 실제로 만도에 용역이 투입된 날은 조합원들이 여름휴가를 떠나는 날이었다. 조합원들이 모두 밖으로 빠져나간 날에 맞춰, 회사는 발 빠르게 작전을 수행했다. 문을 걸어 잠근 공장 안에서는 제2노조 설립 준비가 한창이었다. 만도지부 산하 문막지회, 평택지회, 익산지회의 지회장들이 모두 제2노조로 옮겨갔다. 개별 조합원들을 상대로도 제2노조 가입 종용이 이뤄졌다. 금속노조 만도지부 조합원 A씨는 “기존 노조 임원들을 상대로 사전 작업이 있었을 것”이라며 “이후 조합원을 A, B, C등급으로 나눠 개별 포섭에 들어갔다. 노조가 이미 깨졌다는 소문이 났으니, 불안한 조합원들이 대거 제2노조로 가입했다”고 설명했다.

직장폐쇄 3일째인 7월 30일, 만도에 복수노조가 설립됐다. 설립 일주일 만에 금속노조 만도지부 조합원 2264명 중 1936명이 제2노조로 이탈했다. 제2노조 가입률이 85%를 넘긴 8월 14일, 회사는 직장폐쇄를 철회했다. 이미 제2노조가 현장을 완전히 장악한 뒤였다. 회사는 금속노조 만도지부와의 단협을 해지하고, 제2노조와 개별교섭을 하겠다고 밝혔다. 노조법상 교섭대표노조는 만도지부였지만 회사는 개의치 않았다. 현장에서는 만도지부에 남은 사람들이 성과급 등에서 손해를 보게 될 것이란 소문이 돌았다. 실제로 제2노조는 설립 두 달 만에 회사와 임금 및 단체협약을 체결했다. 고작 두 차례의 교섭이 이뤄진 후였다. 이를 통해 회사는 제2노조 조합원들에게만 750만 원의 특별 격려금을 지급했다.

파업을 유도해 용역을 투입하고, 직장폐쇄를 한 뒤, 복수노조를 설립해 노조를 파괴하는 일련의 과정은 노조파괴 노무법인인 ‘창조컨설팅’의 전략과 유사했다. 실제로 당시 만도와 제2노조 임단협 합의안의 최초작성자가 ‘창조컨설팅’으로 드러나 논란이 일기도 했다. 창조컨설팅은 청와대와 국정원, 노동부 등과 긴밀한 공조 관계를 맺고, 노조파괴를 실행에 옮겼던 악명 높은 노무법인이었다. 직장폐쇄가 발생하자마자, 대통령이 직접 여론전에 뛰어든 것도 심상치 않았다. 노조는 노동부와 경찰, 회사로 이어지는 노조파괴 커넥션의 정점에 청와대가 있을 것이라고 봤다.

금속노조 만도지부는 그해 12월, 이명박 대통령을 상대로 2천 30만 원의 위자료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대통령이 사기업의 직장폐쇄를 옹호하는 발언을 하면서 노조의 단결권이 침해됐다는 취지였다. 그리고 이듬해 9월 회사와 만도지부의 임금 교섭에서, 회사는 이명박 전 대통령을 상대로 한 손해배상 청구소송 취하를 요구했다. 임금 협상과 상관이 없는 소 취하 요구였다. 그리고 며칠 뒤, 서울중앙지방법원은 노조가 이명박 전 대통령을 상대로 낸 위자료 청구소송에서 기각 판결을 내렸다. “원고들에 대한 사회적 평가가 저하되고 명예가 훼손됐다고 봄이 상당”하지만 “피고(이명박)의 발언은 그 목적이 공익을 도모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는 이유였다.

그리고 노조파괴 사건 8년이 지난 현재. 금속노조 만도지부는 여전히 소수노조로 머물러 있다. 창조컨설팅의 개입과 여러 부당노동행위, 정부 주도의 노조파괴 행위가 벌어졌음에도 누구도 처벌받지 않았고, 어떤 원상회복도 이뤄지지 않았다. 최근에는 구조조정 바람이 몰아치며 현장은 고용불안에 내몰렸다. 지난 3월, 회사는 2천여 명의 생산직 노동자를 상대로 희망퇴직을 받았다. 주물공장과 관련 사업 등은 매각 절차를 밟고 있다. A씨는 “노조파괴 사건 이후 처벌받은 사람이 하나도 없다. 심지어 노조파괴를 주도했던 인물이 사장으로 승진했다”며 “현장은 개별화 돼 버렸다. 노동자들은 더 이상 노동조합이 노동자의 고용안정을 보장하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희망퇴직과 공장 외주화가 진행되며 고용 불안정이 확산되고 있다”고 밝혔다.

콘티넨탈부터 보쉬전장까지, 금속노조의 ‘허리’를 끊어 놓은 노조파괴 사건

만도와 SJM에 용역이 투입되던 날. 충청북도 청원군에 위치한 또 다른 자동차부품업체 콘티넨탈에도 복수노조가 들어섰다. 당시 지역에서는 수도권에 집결한 경비 용역들이 콘티넨탈에 투입될 것이라는 소식이 전해지기도 했다. 실제로 용역투입이나 직장폐쇄는 이뤄지지 않았지만, 같은 날 복수노조가 설립되면서 본격적으로 노조파괴가 이뤄졌다. 과거 금속노조 콘티넨탈지회에서 갖가지 문제로 제명된 인물들을 중심으로 제2노조가 만들어졌고, 이들 역시 휴가기간을 틈타 조합원 포섭 작전을 펼쳤다.

  2013년 8월 9일 금속노조 콘티넨탈지회의 집회 현장 [출처: 금속노조 경주지부]

회사는 금속노조 콘티넨탈지회 간부들을 해고하며 현장 분위기를 장악했다. 복수노조가 존재하지 않는 상황이었는데도 교섭창구 단일화를 거치지 않았다는 이유로, 그리고 불법파업을 했다는 이유로 지회장과 부지회장을 해고했다. 사무장은 정직 3개월 처분을 받았다. 이후 회사가 금속노조와 제2노조를 차별하며, 제2노조의 현장 장악에 힘을 실은 과정은 앞선 ‘노조파괴’ 수법과 동일했다. 제2노조 조합원 규모가 금속노조보다 적을 때는 개별교섭을 하고, 조합원 수가 역전하면 교섭창구 단일화 절차를 통해 제2노조와만 교섭을 했다. 조남덕 금속노조 콘티넨탈지회 지회장은 “회사는 조합원들에게 ‘금속노조에 가입하면 손해 본다’는 분위기를 조성했다”며 “현장 조합원들은 금속노조 가입을 주저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콘티넨탈의 노조파괴 역시 ‘창조컨설팅’의 작품이었다. 검찰 수사에 따르면, 콘티넨탈은 창조컨설팅에 약 3억 원의 돈을 송금했다. 하지만 이와 관련해 회사는 어떠한 처벌도 받지 않았다. 복수노조를 활용한 회사의 노조파괴 시도가 유죄 판결을 받고, 해고된 노조간부도 부당해고 판결을 받았지만 유독 창조컨설팅을 중심으로 한 노조파괴 공작에 대해서는 어떠한 조치도 이뤄지지 않았다. 조남덕 지회장은 “조합원들이 대거 탈퇴한 날 회사는 창조컨설팅에 목돈을 지급했다”며 “노조파괴 사업장들이 노동부에 적극적인 지도를 요구하며 천막농성을 했는데, 노동부는 ‘창조컨설팅의 개입이 명확하지 않다’고 했다. 노동부와 경찰, 검찰이 이 사건을 방조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콘티넨탈과 인접한 지역에 위치한 또 다른 자동차부품업체 ‘보쉬전장’도 같은 해 노조파괴가 진행됐다. 2012년 2월 초, 회사는 금속노조 보쉬전장지회 지회장을 징계해고했다. 회사가 교섭을 일방적으로 중단한 것에 항의하며 농성을 벌이고 조합원들을 조직했다는 이유였다. 곧바로 몇 주 뒤, 회사에 복수노조가 들어섰다. 지회장에 대한 해고는 노조를 흔들기 위한 좋은 본보기였다. 가장 먼저 중간관리자들이 제2노조로 이탈했다. 뒤를 이어 현장에 직장폐쇄가 단행될 것이라는 소문이 돌았다. 이화운 금속노조 보쉬전장지회 지회장은 “회사가 갑자기 정문에 철조망을 설치하고, 공장 뒤편에는 바리케이드를 설치했다. CCTV도 추가했다”며 “구조조정에 대한 소문도 이어지며 조합원들의 이탈이 이어졌다”고 설명했다.

[출처: 참세상 자료사진]

이후 진행된 과정 역시 ‘노조파괴 시나리오’의 수순을 그대로 밟았다. 회사는 제2노조와 보상금과 격려금 등을 포함한 임금협상을 발 빠르게 맺었고, 금속노조와의 교섭은 해태했다. 금속노조 간부에 대한 징계 조치도 이어졌다. 이 또한 노조파괴 노무법인인 ‘창조컨설팅’의 작품이었다. 보쉬전장은 회사 소식지까지 창조컨설팅의 자문을 받았다. 보쉬전장이 창조컨설팅에 건넨 돈만 8억 4380만 원에 달했다. 보쉬전장 역시 부당해고와 부당노동행위가 법원에서 인정됐다. 하지만 창조컨설팅 관련 노조파괴 사건만 유독 기소조차 이뤄지지 않았다. 이화운 지회장은 “검찰이 조사단계에서부터 창조컨설팅과 관련된 모든 사건을 제외시켰다”고 설명했다. 부당노동행위 처벌 역시 벌금 300~500만 원으로 정리됐다.

그해 노조파괴가 이뤄진 만도와 SJM, 콘티넨탈, 보쉬전장 등은 모두 현대차의 부품업체들이었다. 부품업체의 직장폐쇄는 물량수급 문제와 직결되기 때문에, 완성차의 동의 없이 직장폐쇄가 이뤄지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했다. 이화운 지회장은 “2011년 말에 현대차가 부품사를 모은 적이 있었다. 당시 발견된 문건에는 ‘강성노조’라는 표현이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그해 12월 현대차 부품사 경영진 간담회 자료에는 “내년에는 강경파의 지부장·지회장 당선, 총선과 대선, 노동정책의 변화 등 영향으로 노사관계가 불안해질 것으로 예상되고 있어서 대책을 수립하고자 오늘 이 자리를 마련했다”는 내용이 나와 있다. 해당 문건 역시 창조컨설팅이 작성한 것이었다.

청와대와 자본, 검경, 노동부, 그리고 창조컨설팅이 개입한 노조파괴 사건은 금속노조 소속 주요 사업장을 소수노조로 전락시켰다. 그들이 노린 것은 금속노조의 ‘허리’를 끊어 놓는 것이었다. 조남덕 지회장은 “당시 노조파괴 사업장들은 각 지역에서 금속노조의 핵심 주력들이었다. 금속노조의 핵심 골간인 지역지부와, 그중에서도 핵심 사업장을 파괴하는 방식으로 금속노조 죽이기가 이뤄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화운 지회장 역시 “금속노조의 허리를 끊어내는 방식이었다”며 “불법적인 행위가 차고 넘쳤는데도, 검찰은 불기소처분하거나 증거 채택을 하지 않으며 사건을 은폐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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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저씨

    현중 인사저널은 중학교 수준에 대중 맞춘 거여. 잘 생각해봐. 그게 중고등학교 인문수준이냐. 그래서 인사저널을 누가 안봐. 냅둬라. "개무시"하다가 하청사장부터 이사, 사장, 회장급까지 한방에 다 날아가버리라고.

  • 아저씨

    그러니까 노조가 더 쎄게 대응을 해야지. 사측은 명문대 출신, 장교 출신들이 쌨잖어. 그럼 냉정하게 볼 때 무시할만도 하지. 근디 평사원도 아니고 노조간부들이 "개좆깟다고" 무시당하냐. 맞대응은 못해도 할 말은 다 하면서 기죽지 않고 살아야지. 아니면 노조 간부를 하지 말던가. 하청지회에 너무 기대지 말고 정규직 노조가 "모범적"으로 투쟁해야 할 것. 그래서 따라오게 만들어야 할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