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 공무원노조 해고에도 관여했다

[이슈] ‘국가폭력’ 이후, 17년 동안 복직되지 못한 해직 공무원들

20대 국회 임기가 한 달이 채 남지 않은 지난 9일. 공무원노조 해고자들이 ‘임기 내 복직법 제정’을 요구하며 단식에 돌입했다. 라일하 공무원노조 희생자원상회복투쟁위원회 위원장을 비롯해 2명의 해고자는 단식 농성을 시작하며 “136 명의 분노와 절망을 받아 안고, 홍익표 국회의원 지역구사무실에서 사생결단의 각오로 단식농성에 돌입한다”고 밝혔다.

공무원노조는 어느 정권에서나 탄압의 대상이었다. 17년 전인 2004년 11월. 노동기본권을 요구하며 총파업을 했다는 이유로 공무원 444명이 배재징계를 당했다. 그리고 136명의 해직 공무원들은 현장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그리고 현재, 정년이 지나거나 사망한 조합원을 제외하면 98명이 남았다. 17년 동안 국가폭력 피해자였던 조합원들의 나이는 평균 59세로 정년이 코앞이다. 내년이면 10명이 추가로 정년을 넘기게 된다.

이명박 정부 시절에 해고된 라일하 위원장은 최근 해고 당시 국정원 문건에 자신의 실명이 거론됐다는 사실을 알았다. 해당 문건에는 국정원이 자신의 해고에 관여했다는 정황이 담겨 있었다. 해고된 지 10년이 넘어서야 자신이 지나치게 높은 징계를 받은 이유를 알게 된 셈이었다.

[출처: 김한주 기자]

라일하 씨 해임에 상급 기관 압박이 있었다

“국정원이 해임에 개입했다는 사실을 단식 농성 중에 알게 됐어요. 국정원 문건을 보니 해고 과정이 이해되더라고요.” 라일하 씨는 18년 동안 안양시 구청에서 공무원으로 일했다. 그러다 2009년 말, 통합공무원노조가 출범해 민주노총으로 가입하면서 그는 해고자가 됐다. 노조 사무처장으로 임기를 시작한 지 4개월여 만이었다.

앞서 2009년 9월, 공무원노조는 두 가지 안건에 대한 총투표를 했다. 첫째는 전국공무원노조·민주공무원노조·법원공무원노조의 통합, 둘째는 민주노총 가입이었다. 이명박 정부는 민주노총 가입 조합원 투표가 부결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당시만 해도 조합원들이 민주노총에 우호적이지 않았고, 투표 전 조사에서도 조합원 20%만이 민주노총 가입을 찬성했기 때문이었다. 공무원노조 간부들은 전국 순회를 돌며 한 달 가까이 조합원들을 설득했다

그 결과 3분의 2 이상의 찬성으로 민주노총 가입이 결정됐다. 그리고 그때부터 이명박 정부 및 국정원의 공무원노조 탄압이 본격화됐다. 그해 11월 말 진행된 노조 1기 선거에 양성윤, 라일하 후보조가 각각 위원장과 사무처장으로 당선됐다. 하지만 임기가 시작되고 열흘도 지나지 않아 공무원노조 사무실과 서울본부 사무실에 압수수색이 들어왔다. ‘정권이 아닌 국민의 공무원이 되고 싶습니다’라고 적힌 선전물과, 전국노동자대회 참가 등과 관련한 수색영장이 발부된 것이다. 이미 수차례 대외적으로 공개된 내용이라 굳이 압수수색이라는 강압적 수사방식을 동원하지 않아도 될 사안이었다.

이명박 정부는 공무원노조를 인정하지 않았다. 2009년 10월 노동부는 4명의 해고자가 노조 간부 활동을 한다는 이유로 공무원노조에 ‘노조 아님’ 통보를 했다. 라일하 위원장의 해임 역시 정부의 노조파괴 과정 중 하나였다. 그는 당시 노조 사무처장과 안양시지부 전임자로 일하고 있었다. 안양시 행정 공무원들이 몇 번이나 그를 찾아와, 노조 일을 하려면 ‘휴직’ 신청을 하라고 종용했다. 이를 거부하자 복귀 명령이 떨어졌다. 민주노총 가입 전만 해도 공무원노조 설립신고가 받아들여져 노조 전임을 하는 데 문제가 없었다. 결국 민주노총 가입을 계기로 정부 차원의 노조파괴가 시작된 것이었다. 결국 그는 무단결근을 이유로 징계위원회에 회부돼 3개월의 정직 처분을 받았다. 하지만 행안부는 안양시에 재심을 요구했고, 경기도는 그에 대한 해임을 의결했다.

검찰 수사자료에 따르면 안양시에서 3개월 정직을 결정하고 6일 뒤, 행안부는 징계 수위가 너무 낮다는 이유로 경기도에 재심을 요청했다. 그날은 국정원이 행안부에 징계 재심을 독려한 날이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해당 자료에는 국정원이 경기도에도 중징계를 독려했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행안부, 경찰, 검찰이 하루에 몇 번씩 안양시에 저의 복귀 여부를 체크했다고 들었어요. 구청은 안양시와 행안부, 경찰, 검찰에 압박을 받았고요.” 당시 라일하 씨의 해임에 관여한 기관 공무원들은 해임 과정에서 상급 기관의 압박이 있었다고 말했다. 경기도 소청심사위원회는 라일하 씨에 대한 해임 결정을 안타까워하기도 했다. 양성윤 전 위원장의 해임의 경우, 당시에도 국정원 개입 의혹이 있었다. 당시 언론 보도에 따르면 양천구청 담당 부서는 중징계 결정에 대해 ‘국정원 등 각종 기관에서 압력이 들어와 버틸 수 없었다’고 밝히기도 했다.

그렇다면 어째서 공무원노조가 민주노총에 가입한 직후부터 정부의 탄압이 거세진 것일까. 최근 공개된 국정원 문건을 보면 이명박 정부와 당시 국정원은 공무원노조의 민주노총 가입을 반대했었다. 원세훈 전 국정원장은 2009년 8월 4일 ‘공무원노조 통합 및 민노총 가입 저지 대책 회의’에서 “공무원이 민노총에 가입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며, 이를 막지 못하면 원 국내 정보 능력은 없는 것으로 평가하겠다”고 말했다. 심지어 그는 내부 회의에서 “국가 정체성을 훼손하는 3대 핵심세력인 전교조와 민주노총, 전공노 와해에 총력”을 기울이겠다는 방침을 여러 번 강조했다. 사실상 ‘노조혐오’에 따른 전략적 노조파괴 행위였다.

“노조설립 신고만 되면 금방 복직될 거다”

공무원노조 해직자 136명 중 90%는 노무현 정권 때 해직됐다. 기존 공무원직장협의회법으로는 노조 활동을 보장받지 못했기에, 노무현 정부 때 공무원노조특별법이 추진됐다. 하지만 노조의 의견과 요구가 배제된 채 진행된 특별법은 한계가 명확했다. 특별법은 공무원의 행동권을 보장하지 않았고 교섭권에는 제한을 뒀으며, 단결권은 6급 이하로 한정했다. 사실상 노동3권이 보장되지 않은 법이었다. 교섭을 진행했지만 관철되지 않았고 결국 공무원노조는 ‘특별법 반대 총파업’에 돌입했다. 이 총파업으로 전국 공무원 444명의 대량 해고 사태가 발생했다.

총파업 전만 해도 조합원들은 설립 신고만 되면 복직이 이뤄질 줄 알았다. 해직이 되더라도 기간은 길지 않으리라 예상했다. 하지만 정부는 10년 가까이 공무원노조를 인정하지 않았다. 2016년까지 다섯 차례 설립신고가 반려됐다. 복직이 이뤄지지 않은 채 시간이 흘러갔다. 15년이 지난 뒤에야 노조 설립 신고증이 교부됐지만, 해직자들은 여전히 복직하지 못했다.

지난 17년간, 해직 공무원들은 사회적 고립을 겪어왔다. 라일하 위원장은 “(공무원들은) 사적인 관계망이 좁아, 공무원 내의 사회적 관계가 중요하다”며 “공무원에 대한 해고는 그동안 삶을 유지했던 사회적 관계망을 깨 버리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해직된 공무원들은 주변 사람들의 수군거림을 감당해야 했고, 조직의 누가 될까봐 걱정해야 했다. 때문에 해직 공무원의 스트레스와 정신적 고통은 날로 심해졌다. 공무원노조 해직자 정신감정 결과 70~80%는 공황장애 또는 우울증 등을 겪고 있었다. 현재 중증질환을 앓고 있는 해고자는 18명 정도다. 얼마 전인 5월 31일에는 임복균 전 공무원노조 정책실장이 암으로 사망했다. 뇌경색으로 쓰러진 해고자도 있으며 지난해 11월에는 스스로 목숨을 끊은 해고자도 있다.

공무원노조 해직자의 대부분은 문재인 대통령이 민정수석이던 시절 해직을 당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후보시절, 여러 차례 공무원노조 해직자의 복직을 약속했다. 하지만 문재인 정권 3년이 지난 지금, 해직자에 대한 복직은커녕 사과조차 없다.

심지어 최근 라일하 위원장은 국회 앞에서 20대 국회 내 복직법 제정을 촉구하는 기자회견과 연좌 등을 했다는 이유로 심재철 미래통합당 국회의원과 영등포 경찰서로부터 고발을 당하기도 했다. 라 위원장은 “21대 국회에서는 적어도 공무원노조에 대한 해고조치가 국가폭력에 의한 불법적 해고이며 부당한 징계라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며 “17년 동안 이어진 공무원노조에 대한 탄압이 국가폭력에 의한 것임을 알려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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