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벌받지 않은 ‘국가 노조파괴’ 범죄자들

[이슈] 노조파괴 지시자와 실행자, 가담자

2020년 2월 7일 서울중앙지방법원의 국정원 노조파괴 재판에서 처벌받은 사람들은 누구일까.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 징역 7년 ▲민병환 국정원 전 국익정보국장 징역 3년 ▲박원동 전 국익정보국장 징역 1년 6월 ▲이채필 전 고용노동부 차관 징역 1년 2월 ▲이동걸 전 고용노동부 장관 정책보좌관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

그렇다면 국정원 등 국가기구의 노조파괴로 피해를 본 노동자들은 누구일까. 공무원노조 해고자 136명, 전교조 조합원 5만 명, KT, 서울지하철, 유성기업, KEC, 발레오전장시스템스코리아, 상신브레이크 등 24개 단위사업장 노동자 수만 명. 이 중엔 유성기업 한광호 열사 등 노조파괴로 목숨을 잃은 피해자도 있다. 10년간 이어진 노조파괴에 반해 법원의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이었다.

그뿐일까. 처벌받지 않은 가해자도 수두룩하다. 지난 2월 유죄 선고를 받은 자는 모두 국정원과 고용노동부 소속이다. 국정원과 고용노동부가 노조파괴를 기획한 것은 맞다. 하지만 청와대라는 노조파괴 지시자와 재벌이라는 가담자가 존재한다. 이들은 어떤 범죄를 저질렀을까. 과연 ‘숨겨진 가해자’들에 대한 처벌은 이뤄질 수 있을까.


‘노조파괴 자금’ 수억 대고도 무죄 받은 재벌 대기업

“이 사건 공소사실 중 기업집단 지에스, 두산, 롯데, 포스코, 한화, 에스티엑스, 대한항공, 현대자동차, 에스케이, 엘지, 삼성, 전국경제인연합회 임직원들에 대한 직권남용으로 인한 각 국가정보원법 위반의 점은 무죄”
- 2018고합375, 피고인 민병환(전 국가정보원 2차장), 차문희(전 국가정보원 2차장)에 대한 법원의 주문 중

법원은 노조파괴 재판에서 국정원 직원이 재벌을 만나 보수단체 후원을 논의한 것을 무죄라고 봤다. 재벌 집단은 국가기구 노조파괴에 천문학적인 금액을 지원한 가담자다. 국정원이 2011년 12월 13일 작성한 ‘보수단체·기업체 추가 매칭 추진 결과’에 따르면 삼성, 현대차, 롯데, 전경련 등은 7개 인터넷 매체와 36개 보수단체에 총 36억 6000만 원을 건넸다. 삼성은 14개 보수단체에 8억 8600만 원을 썼고, 현대차는 3억 6천만 원을 5개 보수단체에 지원했다. 2010년에도 재벌은 보수단체에 총 32억 3500만 원을 지급했다. 재벌 집단으로부터 돈을 받은 단체들은 2009년부터 ‘종북 좌파 척결’ 활동을 전개했다. 국정원의 기획이었다.

검찰 수사자료에 따르면, 국정원과 재벌의 ‘노조파괴 협력’ 아이디어는 SK 고문 출신의 국정원 차장에게서 나왔다. 국정원 국익전략실 직원 김 모 씨는 2018년 4월 검찰 조사에서 “SK에서 고문으로 일하다가 저희(국정원) 차장으로 온 분이 ‘보수단체가 기본적으로 자생력이 없다. 활동 자금도 없다. 그렇다고 국가 예산을 줄 수는 없으니 기업체의 사회공헌 기금을 이용해서 보수단체가 활동력도 키울 수 있도록 지원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런 취지에서 (보수단체 매칭 사업이) 시작된 거로 알고 있다”고 진술했다.

국정원은 각 재벌 집단에 담당 I/O(Intelligence Officer)를 배치했다. 검찰 수사에 따르면 삼성 담당 I/O 손 모 씨는 당시 삼성 육현표 부사장을 만나 보수단체 매칭을 요청했다. 이 자리에서 육현표 부사장은 “삼성에서는 이미 자유총연맹, 국민행동본부 등 대표들을 직접 만나봤고, 전경련을 통해 자금을 지원하고 있으니까 걱정하지 말라”고 말했다. 국정원 요청 전에도 삼성이 보수단체를 지원했다는 얘기다. 육현표 부사장은 현재 삼성경제연구소 사장을 맡고 있다.

공기업도 노조파괴에 가담했다. ‘보수단체 매칭사업’에는 한국전력공사, 한국가스공사, 한국산업은행, 한국토지주택공사 등 22개 공기업이 포함돼 있다. 보수단체 지원을 ‘공익사업’으로 포장하기 위한 국정원의 공작이었다.

청와대 민정수석실, ‘노조파괴 문건’ 만들었으나 죄는 없다?

정부가 주도한 노조파괴 사건이었지만, 청와대는 처벌을 피해갔다. 국정원이 2011년 2월 작성한 자료에 따르면, 이명박 전 대통령은 임태희 당시 대통령실장과 박재완 당시 고용노동부 장관에게 ‘민노총을 뛰어넘는 제3노총 출범을 지원하라’고 지시했다. 국정원이 같은 해 3월 19일 작성한 자료를 보면, 대통령 지시에 따라 임태희 실장은 국정원에 제3노총 출범 예산 일부인 3억 원을 지원해달라고 요청했다. 그런데도 임태희 실장은 노조파괴 사건 피의자 명단에서 빠졌다.

또 청와대 민정수석실은 2010년 3월 18일 ‘새희망노동연대(국민노총 전신)’을 활용해 민주노총을 견제한다는 내용의 ‘현안자료’를 작성했다. 민정수석실은 문건에 “노동부는 경총 등을 매개로 방향성을 조율·애로사항 해소 등 (새희망노동연대) 측면지원을 펼쳐 나가되 잡음 소지 차단 차원에서 직접적 지원활동은 자제”한다고도 썼다. 2011년 11월 30일에도 ‘민노총 재가입 차단 방안’ 등 서울지하철노조에 대한 현안자료 문건을 작성했다. 이처럼 청와대 민정수석실은 노총, 단위사업장 노조 활동까지 개입했지만, 이들에 대한 처벌은 없었다. 당시 청와대 민정수석은 권재진(2009년 9월~2011년 8월), 정진영(2011년 8월~2013년 2월)이다. 김앤장 출신 정진영은 2015년부터 현재까지 신세계인터내셔날 사외이사를 맡고 있다. 지난 5월 사망한 권재진은 2011년 8월부터 2013년 3월까지 법무부 장관을 지냈다.

정부 주도의 노조파괴는 이명박 정부에서 끝난 것이 아니다. 당시 정부와 국정원이 기획한 노조파괴가 지금까지 이어진 경우도 있고, 이후 새롭게 발생한 사건도 있다. 2015년 유혈사태까지 벌어졌던 갑을오토텍 노조파괴 사건이 대표적인 예다. 갑을오토텍 노조파괴 사건 범죄 연루자는 문재인 정부에도 있었다. 바로 문 대통령이 취임 직후 기용한 박형철 청와대 반부패비서관(2019년 12월 자진 사퇴)과 신현수 국정원 기조실장(2018년 8월 자진 사퇴)이다.

박형철과 신현수는 갑을오토텍(현 KB오토텍) 노조파괴 당시 사측의 법률 대리와 자문을 맡았다. 갑을오토텍도 노조파괴 시나리오(일명 ‘Q-P 시나리오’)에 따라 ‘제2노조 설립→금속노조 반발 유도→용역 투입→ 금속노조 무력화’의 전철을 밟았다. MB 국정원의 노조파괴 과정과 비슷한 양상이다. 이때 고용노동부는 휴대폰 분석기록의 약 83%를 수사보고서에 첨부하지 않아 ‘국가기관이 노조파괴를 비호한다’는 비판을 받았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설치된 고용노동행정개혁위원회는 2018년 활동결과 보고서를 통해 “(갑을오토텍) 부당노동행위의 조기 구제를 위한 (고용노동부의) 대응조치가 미온적”이었다고 밝혔다. 박형철은 2017년 5월 갑을오토텍 사측 대리 논란을 두고 “심려 끼쳐 송구하다”고만 말했다. 신현수는 지난 2월 김앤장으로 복귀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정원 돈 받은 어느 노동조합 간부

과거 노동운동가들도 MB 노조파괴 공작의 ‘행동대장’으로 활약했다. 하지만 이들 역시 처벌 대상에서 제외됐다.

먼저 국민노총 초대 위원장에 올랐던 정연수는 국정원으로부터 돈을 받았다. 국민노총은 청와대와 국정원이 민주노총 와해를 위해 설립한 조직이다. 검찰은 수사를 통해 국정원이 정연수에게 2천만 원을 지급한 사실을 확인했다. 정연수는 이 사실을 부인하다 2018년 7월 검찰 조사에서 “손○○, 김○○(국정원 I/O)을 만난 자리에서 내게 격려금조로 2~3백만 원을 봉투에 담아줬다”고 시인했다. 또 국정원 직원을 1년에 3~4차례 만났다고도 털어놨다. 서울지하철노조 위원장을 지내기도 했던 정연수는 현재 도시철도협동조합 대표를 맡고 있다.

황철우 서울교통공사노조 사무처장은 ≪워커스≫와의 통화에서 “검찰은 정연수의 범죄 금액이 적다는 이유로 기소하지 않았다”며 “내부자가 민주노조(서울지하철노조)의 분열을 초래한 점은 분명히 확인됐다. 국가의 노조파괴에 맞서 노동자들이 많은 희생을 치렀다. 노조는 민주노총 법률원과 논의 후 정연수 관련 대응을 마련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명박 정부 당시 이동걸 고용노동부 장관 정책보좌관은 국정원으로부터 1억 5700만 원을 받아 노조 관계자들을 만나는 데 썼다고 밝혔다. 이 전 보좌관은 2000~2002년 KT노조 7대 위원장을 역임한 인물이다. 1998~2002년에는 민주노총 중앙위원을 역임하기도 했다. 그러다 2007년 이명박 당시 대선 후보 선거대책본부에 참여한 것을 계기로, 이듬해 고용노동부 장관실 정책보좌관에 올랐다. 그는 국정원으로부터 자금을 지원받으며 KT노조와 서울지하철노조의 민주노총 탈퇴와 국민노총 설립 등 노조파괴 범죄를 실행에 옮겼다. 실제로 2009년에는 KT노조가, 2011년에는 서울지하철노조가 민주노총을 탈퇴했다.

“국가의 사과, 피해자 명예회복 필요하다”

청와대, 국정원, 재벌이 기획한 노조파괴에 피해자들은 오랜 고통을 받았다. 수년간 손해배상과 가압류를 떠안았고, 노조를 잃었으며, 해고자 신세가 됐다. 국가기구의 노조파괴 정황이 검찰 수사를 통해 밝혀졌지만, 피해자들의 원상회복을 바라는 목소리는 번번이 묻힌다.

전교조 해고자 이민숙 씨는 “노조를 파괴하기 위해 국정원이 치밀하게 기획하고, 청와대가 집요하게 이를 관철시켰다. 사상 초유의 사법 농단까지 벌이면서 말이다”라며 “2016년 당시 노조파괴에 맞서 전임자 34명은 해고를 감수했다. 노조 활동을 이유로 해고된 우리는 명백한 노조파괴, 국가폭력 희생자다. 문제는 문재인 정부도 법외노조 탄압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 10년 동안 자행된 국가폭력에 대해 문재인 정부는 사과하고 남은 관련자를 처벌해야 한다”고 말했다.

‘국정원 노조파괴 관여 사업장’ 리스트에 올랐던 상신브레이크의 조정훈 씨도 “국정원 노조파괴의 구체적 증거들이 나왔다. 국가가 헌법에 명시한 노동3권을 전면으로 위배한 행위다. 노조파괴 진실을 정확히 규명해야 하고, 피해자에 대한 명예회복이 필요하다. 아직 처벌받지 않은 책임자도 정부가 나서 문책해야 한다”고 전했다.

신인수 민주노총 법률원장은 “진상조사와 국가의 공식적 사과가 우선이다. 국정원(국정원 개혁발전위원회 적폐청산 TF)이 자체 감사를 했지만, 그 내용을 공개하지 않았다. 진상조사를 토대로 피해자들에 대한 명예회복과 손해배상이 있어야 한다”며 “책임자 처벌도 필요하다. 형사사건 공소시효가 문제 된다면 특별법 제정까지 열어놓고 고민하고, 국가배상 시 구상권까지 행사해서 다시는 이와 같은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기준을 세울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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