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있는 한 해결될 때까지 투쟁할겁니다”

[르포] 내부고발 해고, 8년째 투쟁중인 기아차 판매노동자 박미희 씨

  양재동 현대기아차 본사 앞에서 8년째 투쟁하고 있는 박미희 씨 [출처: 연정]

일주일만 일인시위 하고 오겠다고 했어요

5월 14일 오전 8시, 서울 서초구 양재동 현대기아차그룹 본사 앞에 장송곡이 울려 퍼진다. 그곳에는 ‘내부 고발자 문제 해결하라’는 대형 현수막이 걸린 천막농성장이 설치돼 있다. 한 여성노동자가 매일 현대기아차 임원들이 출근하는 새벽 5시 40분에 이곳에서 장송곡을 틀고 집회를 한다. 부산 기아자동차 대리점에서 11년 동안 마스터(자동차 판매노동자)로 일하다 대리점들의 부당판매 내부고발을 했다는 이유로 해고돼 8년째 투쟁하고 있는 박미희 씨다.

“장송곡은 작년 3월부터 했어요. 투쟁가도 틀고, 민요도 틀어보고 했었는데...점점 세질 수밖에 없어요. 부산 집에서 처음 나올 때는 일주일만 일인시위 하고 오겠다고 했어요. 일주일만 일인시위 하면 분명히 해결될 거다, 하고 왔죠.”

2013년 10월, 일인시위 방법을 몰라 친구들과 상의해 피켓을 만들어 상경한 지 벌써 7년. 현대기아차 용역과 경찰의 방해로 일인시위도 집회도 어느 하나 쉬운 것이 없었다. 현수막이나 물품이 없어지는 일도 다반사였다.

미희 씨가 집회를 시작하자 현대기아차는 집회금지가처분 신청을 비롯해, 명예훼손·업무방해 고소와 3천만 원의 손해배상 청구를 했다. 지난해 말에는 현대차와 기아차가 각각 1억 원 씩 손해배상 청구를 했다. 한편에선 서초구청이 미희 씨의 집회 차량에 5백 건의 과태료를 부과했다. 오롯이 혼자 기업을 상대로 투쟁하다 보니 힘든 게 한둘이 아니다. 서울에 올라와서 대한민국에 안 가본 방송국이 없을 정도로 언론사 취재 요청도 많이 했지만, 현대기아차의 영향력 때문에 제대로 다루어주는 곳이 없었다. 투쟁하면서 허리와 어깨 등 수술만 4번을 했고, 생계 문제는 형제들 도움으로 간신히 버티고 있다. 본사 투쟁을 시작한 지 넉 달 후에 부산에 계신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장례를 치르고 큰 슬픔을 가눌 길 없었지만, 미희 씨는 바로 올라와 투쟁했다.

영업, 월급 갖다 주는 사람이 있었으면 못 했을 일

“살다 보면 인생이 뜻하지 않게 다른 길로 가게 되더라고요. 나는 평생 그림을 그릴 줄 알았는데, 완전히 다른 길로 왔지요.”

미희 씨는 20대 시절 미술을 전공한 미술학도였다. 그림을 그리며 미술학원에서 수강생 지도도 했었다. 친구들도 “미희는 평생 그림만 그리고 살 것 같다”고 했는데, 지금은 전혀 상상하지 못했던 삶을 살고 있다. 미희 씨는 2002년에 부산 기아자동차 대리점 영업사원으로 입사했다. IMF 금융위기로 하던 일이 어려워지면서 우연히 기아자동차 영업사원 모집 신문광고를 보게 됐다. 사실 장사나 영업은 상상도 못 해본 일이었다.

“돈 없는 사람이 할 수 있는 게 영업뿐이잖아요. 그럼 어떤 영업을 하지? 차 정도는 팔아야지. 이렇게 생각을 한 거죠.”

운전 면허증이 나오기도 전에 차를 사서 집 앞에 세워놓을 만큼 운전을 좋아했기 때문에 선택한 일이기도 했다. 당시만 해도 소형차부터 트럭까지 다양한 차종을 판매하는 현대기아차 영업사원 중에 여성은 거의 없었다. 처음 입사 했을 때는 자동차 기계 구조와 기술을 파악하는 것이 너무 힘들었다. 본사 교육도 많이 다녀봤지만, 실질적인 교육은 일부에 지나지 않았다.

“처음에 들어와서 누가 가르쳐 주지도 않으니까. 괜히 물어봤다가 자존심도 상하고. 그런 과정들이 정말 힘들었어요. 영업이라는 게 그래요. 내가 얼마만큼 파느냐가 곧 내 힘이에요. 못 팔면 진짜... 내가 애들 키우고 해야 하는 상황이라서 무조건 버티고 이겨내야 한다는 생각을 많이 했죠. 나중에 그런 얘기를 했어요. 나 정말 월급 갖다주는 남편이 있었으면 이거 못 했을 거라고. 너무 힘들어서.”

차 한 대 팔려면 고객하고 최소한 50번 통화해요

1년 정도 헤매자 그 속에서 터득한 지식과 노하우가 점점 미희 씨의 자산이 됐다. 어느 순간 미희 씨는 자신이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영업 일을 잘하고 있었다. 주변에서도 잘한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모닝·K7·오피러스, 미희 씨가 많이 팔았던 차들이다. 근무기간 내내 미희 씨의 실적은 거의 상위권이었다. 많이 팔 때는 한 달에 15대도 팔았고, 1등도 많이 했다. 기아자동차 본사에서 차장 임명장도 수여했다.

  양재동 현대기아차 본사 사옥 [출처: 연정]

“영업사원들 차 한 대 파는 게 쉬워 보일 수 있겠지만, 절대 쉬운 일이 아니에요. 고객을 정말 왕처럼 모셔야 되거든요. 차 한 대를 팔려면 고객하고 최소한 50번은 통화해야 해요. 한 고객과 100번씩 통화한 사람도 있어요. 그러다 보니 남자 고객들 중에는 계약을 해놓고 저녁때 술 한잔하자고 전화하는 사람이 있어요. 거절하면 다음날 또 전화가 와요. 또 거절하면 계약을 해지하겠다는 사람도 있어요. 그럼 ‘어쩔 수 없네요’라고 얘기해요. 기분이 안 좋죠.”

업무가 익숙해질 때쯤, 판매노동자들이 정당하게 수당을 받지 못하는 부당판매 구조가 보이기 시작했다.

부당판매로 깎아준 돈은 영업사원들 수당이에요

“그달에 첫 출근하는 날 사인을 하라고 그래요. 부당판매를 하다가 발각이 되면 회사의 어떤 징계라도 감당하겠다는. 다달이 사인을 다 했었어요.”

당시 기아자동차는 정도판매를 표방하고 있었다. 매월판매노동자들에게 ‘고객에게 10만 원 이상의 할인이나 용품을 제공하는’ 부당판매를 하지 않겠다는 서약서에 사인을 하게 했다. IMF 당시, 기아자동차는 정규직 판매노동자들을 해고하고 대리점을 만들어 근무를 시켰다. 이들은 퇴직금이나 4대보험 적용을 받지 못하는 특수고용 비정규직 노동자가 됐다. 하지만 기아자동차는 대리점 판매노동자들에게도 지점 정규직 노동자와 동일하게 모든 업무 지침과 지시를 내렸다.

“기아차는 회사에서 부여한 영업코드를 갖고 있는 카 마스터만 차를 팔 수 있도록 했어요. 손님에게 10만 원 이상의 할인을 해주거나 용품을 제공하면 부당 판매로 인정하고요. 그런데 소장들이 영업 코드도 없고 회사 교육도 안 받은 외부 사람들한테 차를 과다 할인해주며 팔도록 했어요. 그리고 우리 영업사원과 수당을 똑같이 줬죠. 심지어 어떤 사람은 사무실을 따로 차려놓고 영업을 했어요.”

많은 대리점 소장들은 부당판매 한 실적을 본인 앞으로 옮기거나, 세금을 피하기 위해 다른 영업사원에게 돌리기도 했다.

“돈을 팍팍 깎아 주니까 고객들이 영업사원이 아닌 걸 알면서도 차를 사는 거예요. 그 할인된 돈은 영업사원들의 수당이에요. 대수를 못 채우면 대리점에서 눈치가 보이니, 다들 울며 겨자 먹기로 과다할인을 하는 거죠. 팔아도 돈이 남지 않았어요. 다들 너무 힘들어했죠. 고객들은 자신이 몇 천만 원짜리 차를 가져가면 영업사원한테 몇 백만 원 남는 걸로 아는데, 그렇지가 않아요.”

2천 5백만 원짜리 스포티지 한 대를 판매할 경우, 통상 80~90만 원이었던 판매노동자들의 수당이 20~30만 원 정도로 삭감됐다. 반면에 기아자동차는 천만 원의 순이익을 가져갔고, 부당판매의 주범인 소장들은 인센티브와 승진 혜택을 누렸다. 소장들이 한 달에 몇 천만 원 수익을 누릴 때, 판매노동자들은 생계에 허덕이고 있었다.

믿고 이름 알려주며 내부고발 했더니 돌아온 것은 해고

미희 씨는 회사에서 강력하게 대처하면 충분히 고칠 수 있는 문제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대리점 직원 상조회에서 “우리가 왜 이런 시장에서 아무 저항도 못 하고 아무 말도 못 하고 있어야 되느냐? 이걸 알리자”고 이야기했다. 판매노동자들도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있었지만, 생계 문제 때문에 선뜻 나설 용기를 내지 못했다.

“본사에 알려서 시정해야겠다고 생각했고, 세 사람이 마음을 모았죠. 그런데 전화번호를 알아내는 것이 쉽지가 않았어요. 인터넷으로 제보를 하라고 하는데, 우리 사번을 치고 들어가면 누군지 다 나오거든요. 그래서 몇 군데를 거치고 거쳐서 대리점 지원시스템이라는 곳의 전화번호를 알아냈습니다.”

당시 기아자동차 본사는 부당판매 근절과 정도판매에 대해 많은 교육을 했고, 부당판매 신고 절차도 공지했었다. 미희 씨가 알아낸 전화번호는 바로 그 절차를 담당하는 부서였다. 막상 내부고발을 하려고 하자 함께 하기로 했던 두 사람이 못 하겠다며 빠졌다. 결국 2013년 4월 말, 미희 씨 혼자 전국 대리점 지원 업무를 하고 있는 본사 대리점 지원시스템 이사와 통화를 했다. 모두가 함께 살기 위한 선택이자 용기였다.

“25분 정도 통화했어요. 호소를 했죠. 시장이 너무 망가지다 보니까 영업사원들이 너무 힘들다. 다 가장들인데 돈 만 원씩도 주머니에 못 들고 다니는 사람들도 있고 점심시간이 되면 (점심값이 없어) 직원 눈치를 본다. 꼭 좀 해결해 달라고 하소연을 했어요. 그러니 어느 대리점의 누구냐고 묻더라고요. 나는 그냥 익명으로 제보했으면 좋겠다고 했죠. 그랬더니 자기가 더 잘 처리해야 되니까 가르쳐 달래요. 그래서 제가 믿고 대리점과 이름을 알려줬죠. 그랬더니 ‘○○○’라고 소장 이름을 얘기하는 거예요”

두 사람이 아는 사이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미희 씨는 제보를 받은 이사가 혼자만 알고 있겠다고 한 말을 믿었다. 하지만 한 달 후, 대리점 지원시스템 이사는 미희 씨가 내부고발 했던 대리점 소장에게 전화를 걸어 미희 씨의 내부고발 사실을 전했다. 그리고 다음 날 미희 씨는 해고 통보를 받았다. 제보와 관련해서는 어떤 처리 결과도 회신 받지 못했고, 해결된 것도 없었다. 해고 역시 마찬가지였다. 문서 한 장, 심지어 문자 한 통도 받지 못했다.

“다음날 출근을 하니 소장이 저보고 이야기 좀 하자 그래요. 그러더니 ‘같이 근무를 못 하겠네요. 그만두세요. 월요일부터 나오지 마세요’라고 통보했어요. 회사에서 아무 제재가 내려온 게 없었는데 도요.”

소장은 해고와 동시에 대리점 소장들이 소통하는 공간에 미희 씨 이야기를 공유했다. 다른 대리점에도 갈 수 없도록, 이른바 ‘블랙리스트’ 명단에 미희 씨를 올린 것이었다.

“내부고발을 했다는 이유로 일을 못 하게 한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어요. 용납할 수 없었죠. 나는 잘못한 게 하나도 없다. 너희가 다 잘못했다. 지금까지 너희의 잘못된 행태 때문에 얼마나 많은 영업사원이 힘들었나.”

3개월 동안 아침마다 출근하는 척 나갔어요

“집에는 해고 사실을 이야기할 수 없었어요. 제가 가장이거든요. 3개월 동안 아침마다 출근하는 척 나갔어요. 아는 사람을 만나거나 차를 대놓고 그냥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보냈죠. 그런데 수입이 없으니 저도 버틸 수 없는 거죠.”

  박미희 씨가 8년째 투쟁하고 있는 양재동 현대기아차 앞 농성장 [출처: 연정]

석 달 만에 집에 해고 사실을 털어놓고서야 ‘가짜 출근’을 멈출 수 있었다. 5월 말에 해고된 그는 기아자동차 국내영업본부에 부당판매 내부 고발자 해고에 항의하고 문제 해결을 요구했다. 당시 국내영업본부 부장은 내부고발에 대한 보복성 해고를 인정하며 “9월 중순까지만 기다려 달라. 책임지고 해결하겠다”고 했다. 그 말을 믿고 석 달을 기다렸지만, 기아자동차는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해고된 지 6개월이 지난 뒤, 본사에서 압력이 들어오자 부산본부장과 대리점 소장 등이 찾아와 미희 씨에게 내려가자고 설득했다. 미희 씨는 원직복직과 해고기간의 임금지급을 요구했지만, 본부장과 소장은 이를 무시하며 그냥 출근하라는 말만 했다.

“그 말 믿고 내려가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제가 내려갔다면 얼마 지나지 않아 괘씸죄로 잘랐을 거예요. 그래서 얘기했어요. ‘내 그냥 내려가면 앞으로 대리점 영업사원들 입 딱 막고 살라는 거밖에 더 됩니까? 박미희 내부고발 했다가 하나도 해결된 것도 없고 고생만 하고 왔다. 나 그럴 수 없습니다. 해결하십시오’ 라고요.”

기아자동차는 11년 동안 기아차의 업무지시에 따라 일을 해 온 미희 씨가 자신들의 직원이 아니라며 문제해결을 하지 않았다. 오히려 형사 고소와 손해배상 청구만 반복했다. 해고 7년째. 미희 씨는 현재까지도 해고기간 임금 지급 등을 포함한 정당한 피해보상을 요구하며 투쟁하고 있다.

“저는 해결될 때까지 투쟁할 겁니다. 진실이 이긴다는 확신이 있어요. 회사가 아무리 벌금으로 압박해도 저를 무너뜨릴 수는 없어요. 나도 평범하게 못살지만, 가족들도 평범한 삶을 못 살고 있는 게 항상 미안하죠. 빨리 해결하고 가족들한테 돌아가고 싶어요. 이제 날이 오래 남지 않은 엄마 곁에 같이 있고 싶어요.”
태그

로그인하시면 태그를 입력하실 수 있습니다.
연정(르포작가)의 다른 기사
관련기사
  • 관련기사가 없습니다.
많이본기사

의견 쓰기

덧글 목록
  • 정점

    8년이면 긴 시간입니다. 요즘에는 이행기라고 부분이 더 다양해졌습니다. 책도 꾸준하게 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