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천 참사’ 44일…“발주자 책임 특별법 제정해야”

민주당 을지로위원회, 건설사고 재발 방지 토론회 열어

노동자 38명의 목숨을 앗아간 이천 물류창고 화재 참사가 발생한 지 44일째. 반복되는 건설산업 재해에 재발 방지 대책과 제도 개선의 요구가 높아지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을지로위원회가 12일 국회에서 주최한 토론회에서는 이번 참사를 계기로 공사 발주자의 책임을 높이는 ‘건설안전특별법’을 제정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그간 민주노총 건설노조는 산재 발생의 근본 원인은 하도급 구조에 있다며 ‘불법 하도급 근절’을 요구해 왔다.

[출처: 건설노조]

“발주에서 모든 공사 계획 설정…
현행법상 발주 단계서 ‘안전 의무’ 미약”


안홍섭 군산대학교 교수(한국건설안전학회 회장)는 이날 발제를 통해 “건설공사의 안전 확보에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하는 발주에 대한 의무가 미약하고, 건설공사의 안전확보를 위한 핵심의무인 적정한 공기 설정, 충분한 안전 비용 반영, 안전한 시공을 위한 설계와 공법 선정 등 내용이 부족하다. 또 국가와 지자체도 안전 확보의 중요한 주체인데도 현행법에는 국가의 책무를 따지는 조항이 사실상 규정돼 있지 않다”고 지적했다.

실제 현행법인 건설산업기본법에서 안전관리에 대한 발주자, 정부의 책무는 ‘선언’에 그칠 뿐이다. 건설산업기본법 제7조는 2항은 “건설공사 발주자는 시설물이 공공의 안전과 복리에 적합하게 건설되도록 공정한 기준과 절차에 따라 능력 있는 건설사업자를 선정해야 하고, 건설공사가 적정하게 시공되도록 노력해야 한다”고만 규정한다. 또 현행 건설기술진흥법은 공공 공사와 소수 위험 공종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안전에 취약한 민간과 중소규모 공사는 법을 적용받지 못한다. 아울러 해당법은 ‘생산 촉진’과 ‘안전 관리’ 기능이 혼재하는 까닭에 안전 관리 활동과 제3자 감시 기능에 무리가 따른다.

이런 현행법의 한계를 지적하며 안 교수는 “건설 공사의 안전 확보를 주된 목적으로 하면서 건설공사의 참여자와 단계를 포괄해 규율하는 ‘단일법’ 제정이 필요하다”며 “건설안전특별법 제정을 통해 ‘결과 중심 증상대응형 접근’에서 ‘발주자의 공사 조건 결정 단계 중심의 근본 원인 대응형’으로 중심을 이동해야 한다. 모든 건설 사업의 생애주기에 걸친 참여자 안전책무의 분담으로 사각지대를 해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다른 발제자인 정재욱 서울과학기술대학교 교수도 “이천 사고 현장에서 ‘샌드위치 패널’을 쓰지 않고 단열재를 썼다면, 현장에서 일일이 용접하지 않고 외부에서 제작해 내부에서 조립했다면, 아예 용접이 필요하지 않은 설계 방법을 썼다면, 이렇게 위험요소를 제거한 뒤 작업을 했다면 사고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이런 근본적인 위험 요소를 제거할 수 있는 최고 의사 결정은 발주자가 가진다. 시공자는 공사비와 설계가 확정된 상태에서 방식을 바꿀 수 없다”고 말했다. 공사 자재, 공법 등 비용은 결국 안전과 직결되는데, 안전 비용을 확정하는 발주자가 사고에서 더 큰 책임을 져야 한다는 주장이다. 정 교수는 중대재해 발생 시 참여 주체별로 나눠 발주자 과징금을 확대 부여하는 방안을 제시하기도 했다.

[출처: 건설노조]

‘다단계 외주화’ 근절 대책은 언급 없어…
“‘김용균 없는 김용균법’ 반복 말아야”


건설 현장에서 만연한 다단계 하도급, ‘위험의 외주화’는 산재 사망의 근본 원인이기도 하다. 공사가 하청으로 내려갈수록 자본의 비용 절감이 발생하고, 노동자 안전 비용도 그만큼 줄어들기 때문이다. 이번 이천 화재 참사도 발주사 한익스프레스, 시공사 건우 아래 9개의 하청이 있었다.

참사 직후인 4월 30일 ‘산재피해가족네트워크 다시는’ 등 사회단체는 “9개 하청업체에서 얼마나 많은 일용직 노동자가 오갔는지 확인하기 어려운 전형적인 다단계 구조”라며 “이런 참사가 발생할 때마다 발주처와 시공사는 책임에서 빠져나가고 하청업체 말단 관리자만 책임지는 일이 많았다. 위험물질을 쌓아두고도 안전관리를 제대로 하지 않는 현장, 위험한 상황에서 강요되는 무리한 공사, 책임을 분산시키고 위험을 아래로 전가하는 다단계 하도급 구조 등 이런 참사가 반복적으로 일어나는 구조적인 원인을 파악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하지만 이날 토론회에서는 건설 현장의 ‘다단계 하도급’ 대책이 나오진 않았다. 발제자들은 발주자를 포함한 ‘건설 참여 주체’들의 책임 분담을 정확히 하자는 수준에 그쳤다. 지금껏 다단계 구조상 발주자, 원청의 책임이 크지 않았으니 이를 특별법 제정으로서 책임을 나누자는 제언이다.

사회적 참사가 발생할 때마다 법률 제·개정 논의는 여러 차례 있었다. 태안화력발전소 산재 사망 때도 원청 책임을 강화한 ‘김용균법’이 지난해 1월 공포됐지만, 원하청 관계는 개선되지 않았고, 산재 사고도 끊이질 않고 있다. 이천 참사도 마찬가지 구조였고, 어제(11일)만 해도 현대자동차 울산공장의 사내하청 노동자가 금형에 끼여 사망했다. 민주노총을 비롯한 노동운동진영이 원청 책임 강화와 동시에 ‘위험의 외주화 폐지’를 주장하는 이유다. 건설노조도 수년 간 ‘불법 하도급 근절’을 주요 구호로 삼아 왔다.

건설노조 강한수 노동안전보건위원장은 이날 토론회에서 “산재 책임에서 감리, 설계, 발주자까지 얘기되는 건 고무적이라고 생각한다”면서도 “지금은 (다단계 하청) 구조를 바꾸는 내용이 필요하다. 더는 노동자에게 안전의 책임을 떠넘겨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한국노총 육길수 사무처장도 “지금 산안법은 무용지물이다. 용균이 없는 용균이법 같은 과정을 반복해선 안 된다”며 “기업은 결코 돈보다 사람을 중요하게 보지 않는다. 사람을 돈보다 값비싸게 만들어야 한다. 산재에 있어서 기업에 경제적 규제를 더 부과해야 한다. 정부, 여당은 건설안전법, 중대재해기업처벌법 통과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했다.

한편, 중대재해기업처벌법도 지난 11일 발의된 가운데 21대 국회가 산재, 재난 사고 관련 법률을 어떻게 처리할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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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점

    노정협이 노선투쟁의 속류화에 빠졌다. 그런 논쟁은 노정협을 운동의 주변부로 밀려나게 할 것이다. 또한 미국을 선험적으로 재단해서는 안된다. 내 판단은 중국 등이 미국을 오판하여 섣불리 건드렸다가 그대로 먹힐 가능성이 상존한다. 현 미국의 "위기"는 시애틀의 흐름을 보건데 자유민주주의의 역량, 폭에 들어가 있다. 미국이 각국에 주둔하고 있는 군대에 대해서도 더 면밀하게 판단해야 한다. 미군의 축소와 철수는 군사작전상의 전쟁유발과 뗄 수 없다.

    을지로위원회는 더민주당에서 가장 "진보적"

  • 정점

    미국은 인종이나 민족성의 뿌리가 없는 아메리카 지역에 세워진 국가이다. 이것이 오늘날까지 합법이다. 그렇다면 때에 따라서는 미국이 오늘날의 동맹국을 "먹는 것"도 미국인의 정신에서는 상식이고 합법이다. 미국을 섣부르게 판단하지 말아야 한다. 미국을 절대 오판해서도 안된다. "민중주의"의 최선은 더 많은 연구와 함께 투쟁역량을 올리는 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