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 오전 국회의원회관 제6간담회실에서 열린 ‘쿠팡발 코로나19 피해자 증언대회’엔 쿠팡맨(배송노동자), 쿠리어(배달노동자), 물류센터 노동자 등 여러 직종의 노동자들이 모여 쿠팡을 ‘블랙기업’이라고 비판했다. 이들은 “안전하게 일할 수 있는 권리를 찾고 싶다”며 “쿠팡이 코로나 피해에 대해 확실하게 사과하고 보상 및 재발방지 대책을 내놔야 한다”라고 요구했다.
이 자리엔 부천 쿠팡 물류센터에서 일하다 코로나에 감염된 노동자들이 다수 나와 당시 노동 환경과 방역 관리의 허술함을 증언했다.
한 달도 채 되지 않은 기간을 부천 쿠팡 물류센터(이하 부천센터)에서 일하면서 본인과 남편, 딸까지 전염된 노동자 A씨는 “가정이 공중 분해됐다”고 울먹였다. 위독한 상태였던 A씨의 남편은 9일 요양원으로 옮겨질 예정이다. 의료진이 ‘병원에서 할 수 있는 의학적 조치는 다 했다’라며 요양원으로 전원을 가야 한다고 통보했기 때문이다.
A씨는 “쿠팡에 최저시급의 노동력을 제공했을 뿐, 저와 제 가족의 목숨을 앗아갈 권리를 준 것은 아니다. 쿠팡은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저와 제 가족에게 사과하고 보상을 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A씨는 “수백 명이 사용하는 작업대가 있는데 소독 티슈나 소독젤 하나 갖다 두지 않았다. 환기시설이 전혀 없는데 물량이 많아지면 좁은 작업대에서 2인이 함께 작업해야 했다”라며 “처음 확진자가 나왔을 때 정확한 동선과 근무 시간을 알려달라고 했는데 관리자는 본인도 그저 전달할 뿐이라며 안다고 해도 알려드릴 수 없다는 말을 들었다”라고 밝혔다.
부천센터에서 9일을 일하고 코로나에 걸렸다는 B씨도 개인 방역을 철저히 했음에도 양성 판정에 걸린 것은 비위생적인 노동환경 때문이었을 것으로 추측했다. B씨는 땀에 젖어도 마스크에 필터 두 겹을 넣어 다니고, 거리두기가 불가능한 식당이 아닌 다른 곳에서 식사하는 등 개인 방역을 철저히 했다고 말했다. B씨는 “타인의 땀에 전 안전화와 심한 악취를 풍기는 작업복을 입고 일해야 했는데 그게 싫어서 개인 물건을 가지고 와서 신고 일하기도 했다”고 밝혔다.
B씨는 “역학조사관으로부터 부천센터 환기구에서도 코로나 바이러스가 많이 검출됐다고 들었다. 눈을 통한 감염 경우도 있어 아무리 마스크 착용을 했어도 불가항력이었을 것이라는 이야기를 듣는데 너무 억울했다”라며 “체온 재는 것과 소독제 한번 뿌려주는 것 가지고 방역수칙을 철저히 지켰다고 하는 것인지 쿠팡은 방역관리 내역을 공개하라”고 말했다.
쿠팡 코로나19 피해노동자 지원대책위원회는 A씨의 산재 신청을 시작으로 다른 코로나 감염 노동자의 산재 역시 신청할 예정이다. 또 가족 감염으로 발생한 피해의 경우 쿠팡에 민사 손해배상을 제기할 것이라고 밝혔다.
반면 쿠팡은 “누적 확진자 152명이 발생한 부천물류센터와 1명에 그친 덕평물류센터의 차이가 방역지침 준수 여부”라는 보건당국 발표에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다. 쿠팡은 지난 7일 쿠팡 뉴스룸을 통해 부천센터의 집단감염 원인을 ‘이태원 강사의 거짓말로 인한 늦어진 초기 대응’ 때문이라 밝혔다. 쿠팡은 “코로나19 감염 발생 이전부터 코로나 19 관련 정부의 각종 지침을 모두 충실히 이행했고, 그 이상의 합리적인 조치를 다했다”라고 주장했다.
코로나 이전부터 열악한 노동환경에서 각종 질환 걸려
한편 이날 부천센터에서 감염됐다고 밝힌 노동자들은 쿠팡으로부터 어떤 사과도 들은 적 없고, 쿠팡과 감염에 따른 대책을 함께 논의한 적도 없다고 했다. 이들은 코로나19 확산 전에도 열악한 노동조건으로 고통받았다고 증언했다. 강도 높은 노동, 이로 인한 각종 산재와 질환, 상시적 통제 체제 등이 공통적으로 지적됐다.
부천센터의 또 다른 감염자 C씨는 “첫 출근 후 일주일 내내 손에 멍이 들어도 나이 많은 사람도 받아주는 쿠팡이 고마워서 정말 열심히 일했다. 한 달 정도 근무하니 손이 너무 저렸는데, 알고 보니 목디스크 때문이었다”라며 “쿠팡에서 경력이 있는 분들을 보면 손목터널증후군, 디스크, 팔꿈치 통증은 흔하다”라고 말했다.
장귀연 노동권연구소 소장은 “물류센터의 경우 개인별 UPH(Unit Per Hour, 시간당 생산량)가 실시간으로 관리자에게 감시당하고 10여 분만 UPH가 멈춰있어도 지적을 당하기 때문에 화장실도 쉽게 가지 못한다. 실제로 체력이 약한 사람은 주 5일 일하기가 어렵다고 느끼기 때문에 계약직보다 일용직을 선호하기도 한다”라며 “더군다나 기준 UPH가 몇 년 전보다 올라갔다는 증언이 있는데, 실제로 점점 노동강도가 강화되는 경향을 띠고 있다”고 설명했다.
장 소장은 “열악한 작업 환경도 높은 노동강도와 더불어 노동자들의 건강을 위협하는 요소”라며 “냉난방이 되지 않기 때문에 혹서와 혹한에 그대로 노출돼 있다”라고 덧붙였다.
또 다른 문제는 ‘관리자에 의한 인격 모독적 괴롭힘’이 지적됐다. 장 소장은 “욕설과 반말은 금지돼 있으나, 작업속도가 안 나오면 공개적으로 부르거나 방송으로 지적해 개인적 망신을 주는 일이 잦았다. 화장실에 가는 것도 보고해야 해서 여성들은 상당한 수치심을 느끼게 되기도 했다”라고 말했다.
A씨 역시 “‘놀러 오셨어요?’ ‘장난하세요?’ ‘똑바로 하세요’ 등의 말을 관리자는 흔하게 한다. 관리자에게 말대꾸하면 중앙으로 나와서 불편함을 이야기하라고 하는데 회사를 그만둘 각오를 해야 할 정도로 강압적이었다”라고 말했다.
더불어 이날 증언대회에서 쿠팡맨, 쿠리어들 역시 노동강도가 심화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정진영 공공운수노조 공항항만운송본부 쿠팡지부장은 “지난 몇 년간 1인당 배송해야 할 물량이 상승세에 있었는데 코로나19 기점으로 물량이 더 많아졌다. 약 1.5배 정도 증가했다고 파악하고 있다”라며 “휴게시간이 있음에도 지난 1~2년간은 30분 이상 쉬어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을 정도”라고 밝혔다.
쿠리어로 일하고 있는 라이더유니온 조합원 김영빈 씨는 “쿠팡이츠가 평점제도를 이용해 사고를 유발할 정도의 배달시간을 제한하고 있어 이에 고용노동부에 진정을 넣었지만 교통사고를 유발할 정도로 시간을 적게 배정한 것인지에 대한 기준이 없어 처분할 수 없다는 답변을 받았다. 굉장히 실망스러웠다”라며 “산재사고가 나면 온전히 개인이 책임져야 하는 라이더들을 위한 대책이 국회에서 논의되길 바란다”라고 밝혔다.
이날 증언대회는 정의당 류호정, 강은미 의원, 정의당 노동본부, 쿠팡 코로나19 피해노동자 지원대책위원회가 주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