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각공사부 선대조립과 용접 1직 사번 23733 김진숙입니다”

[기고①] 길을 만들었던 김진숙, 이제 우리가 먼저 길에 나서자

74m 병원 고공농성 176일째, 김진숙은 털모자를 쓰고 ‘박문진 힘내라’고 적힌 촌스러운 흰 부채를 든 사진을 보내왔다.

산책하면서 저러고 다닐 것인가 픽 웃음이 나왔고, 보통 저녁 무렵에 고양이 밥 주러 가면서 걷는데 오늘은 일찍 나왔네,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인권단체에서 영대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다가 통화를 했다.

그는 항암치료 후유증, 우울증, 대인기피증, 심한 관절염. 불면증, 간경화증 등 증이란 증은 다 겪으며 수술 후 2년 동안 집 밖을 나오지 못 할 정도로 아픈 환자다. 그런 그가 ‘앓고 있는 것이 사치’라 생각한다며 부산 호포에서 대구 영대병원까지 걷는다는 것이다.

민주노총 부산, 대구가 발칵 뒤집혔고 ‘내가 내려 갈 테니 오지 말라고’ 말렸다. 대구본부 이길우 본부장과 영대 김진경 지부장이 그를 찾아 고속도로를 오르락내리락 했지만 GPS가 되지 않는 오래된 휴대폰은 위치 감지가 안됐고, 그래서 본인도 어디를 걷고 있는지를 모르고 있었다. 주우욱 가면 대구가 나올 거라고 생각했단다.

[출처: 뉴스민]

세상이 크리스마스 분위기로 들떠 있을 때, 달랑 부채 하나 들고 혼자 나섰던 2백 5십리의 춥고 거친 길은 하루하루가 대서사시였다. 지쳐가던 나에게도 벅찬 감동이고 큰 용기와 희망을 주는 계기가 됐다. 그가 걸은 6일은 소통과 연대의 길이었고, 축제와 치유의 길이었으며, 노동자 승리의 길이었다.

고공에서 오랜만에 만난 그의 야윈 어깨와 황달기 있는 얼굴을 보니, 그동안의 외로운 투병 생활이 한꺼번에 느껴져 통한의 눈물이 쏟아졌다. 그렇게 서로를 부둥켜안고 한참을 울었다.

길 없는 길

외제음식이라며 콜라, 커피, 햄버거, 돈까스 등을 먹지 않았다. 여행 가서 TV에 나오는 모 재벌을 보고 내가 잘생겼다고 하니, 노동자 계급성이 없다니 하면서 싸워 주문한 밥도 안 먹고 각자 숙소로 돌아온 적도 있었다. 그만큼 그는 매사에 고약할 정도로 철두철미했다.

그러나 교육과 연설, 연대투쟁에서 느껴지듯 그는 사람에 대한 애정과 정성이 대단한 사람이었다. 그리고 심미안적인 감수성과 따뜻한 섬세함. 재치와 해학은 그가 그 모진 세월을 견뎌낸 힘이었다.

그는 이름 없이, 소리 없이 주변에서 들꽃이 되어 징검다리 역할을 했다. 부산에서 영대까지 걸을 때도 어떤 계산도 없이, 그 흔한 기자회견도 없이 걸었던 것처럼 그는 흔적 없이 투쟁하지만 늘 중심이 되고, 시대의 창이 되고, 깃발이 되어 길을 질문하고 길을 만들어 냈다.

이제 우리가 길을 낼 때

살벌했던 1986년, 그는 노조 대의원에 당선돼 인간 이하의 취급을 당하는 현장을 이야기하고, 유인물을 쓰고 배포하다 대공분실에 끌려갔다. 심한 고문과 해고를 당한지 35년. 그는 올해로 정년을 맞는다.

1987년 민주노조 깃발이 조합원들의 우렁찬 함성과 함께 영도다리를 건넜을 때, 노동자 세상이 왔구나 이제 복직도 되고 세상 걱정 없이 살겠다고 환희에 찬 팔뚝질을 했지만 그의 팔뚝질은 아직 허공에 있다. 민주노조 활동을 하다 박창수 동지를, 김주익 동지를, 곽재규 동지를, 최강서 동지를 가슴에 묻어야 했던 처절한 슬픔과 고통은 깊숙이 그의 뼈 마디마디에 새겨져 있다. 그리고 2011년, 그는 정리해고 반대 투쟁을 위해 김주익이 살아 돌아오지 못했던 크레인으로 올랐다.


동지들을 보내고 분노와 죄책감, 미안함, 치욕감, 무기력은 그의 몸을 암으로 쓰려지게 했다. 그는 35년 동안 사는 게 사는 것이 아니었다.

어둠으로 가득 찬 가시밭의 길 없는 길을 그 몸으로 늘 앞장섰고, 뒤돌아보지 않았다. 그의 전공인 묵묵함과 배짱으로 동지들의 길을, 민주노조의 길을 냈다. 이제 그가 한진 조합원들이 있는 현장으로 오롯이 자신의 복직을 위해 투쟁을 시작했다.

거꾸로 강을 거슬러 오르는 저 힘찬 연어들처럼 해고자들은 모든 것을 걸고서라도 나의 고향, 나의 집, 나의 전부였던 조합원들이 있는 현장으로 돌아가고픈 간절함이 있다. 가운을 입어보고 싶은 꿈, 그 가운을 입고 함께 웃고 마주 앉아 밥 먹고 손뼉 치며 상급자들 뒷담화에 더 열 올리며 이야기 하고픈 자잘한 소망.

해고자들의 복직은 나의 존귀함이고 명예고 노동조합의 자존심인 것이다. 더욱이 김진숙의 복직은 박창수, 김주익, 곽재규, 최강서를 위한 진혼곡이고 씻김굿이다.

[출처: 노동과 세계]

이제 우리가 부채를 들든 횃불을 들든 김진숙의 복직 투쟁에 함께 길을 내어야 할 차례다. 대공분실에 끌려간 그는 사람을 잘못 불렸다고 생각하고 ‘저는 선각공사부 선대조립과 용접 1직 사번 23733번 김진숙’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한진중공업 사번 23733번의 이름표가 그의 목에서 빛나도록. 그가 땅을 제대로 걸을 수 있고 깊은 호흡을 쉬며 마디마디에 박힌 평생의 한을 풀 수 있도록, 웃으며 허공에 떠 있는 팔뚝질을 내릴 수 있도록, 암세포가 더 이상 그를 괴롭히지 않고 먼저 간 동지들을 먼 훗날 환하게 만날 수 있도록, 그가 그랬던 것처럼 우리가 먼저 길을 나서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