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진중공업 마지막 복직노동자 김진숙

[기고③] 그가 성소수자를 호명한 것처럼, ‘복직노동자 김진숙’을 호명하자

한진중공업 마지막 해고자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이하 ‘김 지도’)이 복직투쟁을 시작했다. 지난 6월 23일 전국금속노동조합 부산양산지부와 한진중공업지회가 영도 조선소 정문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김 지도위원의 복직을 촉구했다. 35년 전 징계해고 당한 김 지도가 복직투쟁을 시작했다는 것이었다.

“가슴 저리게 담아두었을 ‘원직복직’ 네 글자를 김진숙 선배에게 진작 내놓지 못한 우리도 반성해야 한다.”, “반드시 웃으며 투쟁해 복직할 수 있게 하겠다”, “회사는 35년간의 잘못을 인정하고 원직복직 시켜라”,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해 김진숙 조합원이 정문으로 당당하게 드나들 수 있도록 하겠다” 이날 기자회견장에서 나온 발언들은, 김 지도의 복직을 위해 함께 투쟁하겠다는 동지들의 마음들이었다.


기자회견을 한지 어느 덧 한 달 째다. 김 지도가 복직투쟁을 한다는 사실을 활동가의 SNS를 통해 뒤늦게 알았다. 더 정확하게 이야기하면 김 지도위원이 해고자 신분이란 것을 잊고 있었고, 복직에 대한 목표가 있다는 것을 상상조차 안했다. 35년 전 노조 대의원대회를 다녀온 후 대의원으로서 소회를 담은 유인물 150여장을 배포했다가 대공분실에 연행돼 조사를 받고 징계해고 당했다는 사실, 그리고 현재 남은 마지막 해고자라는 것을 기사나 한진중공업 노동자들의 투쟁과 삶을 다룬 다큐 ‘그림자들의 섬’을 보고 알고 있었음에도 김 지도가 해고자 신분이라는 것은 그냥 잊고 있었던 것이다.

핑계를 말하자면 이렇다. 김 지도는 사실 나에게는 뭔가 아이돌과 같은 사람이다. 2011년 한진중공업 정리해고 철회 투쟁을 위해 85호 크레인 높은 곳에서 158일 동안 고공농성을 마친 사람이다. 2차 희망버스 당시 정리해고 철회 농성을 하는 김진숙을 만나기 위해, 그리고 퀴어들이 연대를 위해 함께 운동의 현장에 모였던 날, 전국에서 온 사람들이 서로를 응원하고 밤을 지새우며 희망을 놓치지 않으려 했던 순간을 나는 잊을 수 없다. 그리고 다음 날 차벽에 길이 가로막혀 크레인 앞으로 가지는 못했을 때, 김 지도의 전화 통화에서 ‘성소수자’라는 단어가 호명되는 순간 그는 내게 그 어떤 정치인나 권력자 보다 위대한 사람이었다.

그것은 김 지도가 특별한 사람이라서가 아니었다. 홀로 높은 크레인에서 정리해고 철회를 요구하며 힘없는 노동자들과 함께 투쟁하는 속에서도 ‘성소수자’를 함께 연대하는 사람으로 부르던 그 순간이 그 어떤 권력자들의 정치행위 보다 나에게 울림을 주었기 때문이다. 그러한 모습만을 기억하다 보니 김 지도가 노동자로서 바라는 희망, 목표, 꿈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나는 솔직히 잘 몰랐던 것이다.


기자회견 당시 김 지도의 발언문을 봤다. 김 지도는 해고 이후 35년 동안 복직이란 꿈을 포기한 적이 없다고 했다. 인간답게 살자고 외쳤다는 것을 죄를 삼아 35년 동안 유배 생활을 했다면 그 유배의 마침표를 본인이 찍겠다고 했다. 목표는 정년이 아니라 복직이라고 외쳤다. 그리고 다음과 같이 발언을 마친다.

“가장 비인간적인 삶을 살면서도 인간답게 살고 싶었던 꿈이 있는 곳, 박창수 위원장이, 김주익 지회장이, 재규 형님이, 강서가 그렇게 지키고 싶었던 우리 조합원이 있는 곳, 그곳으로 이제 그만 돌아가고 싶다.”

김 지도가 말하는 그 곳은 어디인가? 왜 그는 복직을 희망하는가?

나는 이 질문을 나에게도 그리고 그 동안 김 지도와 함께 희망을 품었던 사람들, 용기를 내어 연대의 현장에 함께 섰던 사람들과 나누고 싶다. 김 지도가 가고자 하는 그 곳은 어떤 곳인지, 그가 이제 그만 돌아가고 싶다는 그 곳에 왜 그가 가야만 하는지 우리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질문은 일의 현장에서 노동자가 인간답게 존중 받으며 일하고, 책임을 다해 일을 마치고자 하는 노동자로서의 자신의 긍지와 원칙을 확인하는 과정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김 지도가 말하는 복직 투쟁은 곧 일하는 사람으로서의 존엄과 모든 일이 존엄하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김 지도는 올해 정년퇴직한 어떤 조합원의 이야기를 소개했다.

“38년을 다니면서 노조 위원장의 장례를 두 번이나 치르고 선배와 후배를 땅에 묻고, 정리해고 됐다 복직한 파란만장의 세월을 보내고 정년을 맞으며 후배들에게 닥칠 앞날을 걱정해야 하는게 한진중공업입니다.”

올해가 김 지도의 정년이다. 김 지도는 회사 경영진의 경영 실패, 구조조정 속에서도 노동자가 가장 먼저 책임져야 하는 비인간적인 현실에 대해 맞서기 위해 마지막 해고자로서 회사에 복직을 요구했다. 김 지도가 다시 우리에게 연대하자고 손을 내민 것이다. 이제 우리가 김 지도의 복직을 위해서, 35년간 한 노동자의 존엄을 빼앗은 한진중공업이 잘못을 인정할 수 있도록, 김 지도가 성소수자를 호명한 그 순간을 기억하듯이, 우리는 한진 노동자 김진숙, 복직 노동자 김진숙을 부르기 위해 힘을 모아야한다. 김 지도가 그토록 꿈꿨던 노동자로서의 존엄을 지킬 수 있도록 이제는 노동자 김진숙의 꿈을 우리가 함께 응원하고 지지하며 연대해야 한다. 복직 노동자 김진숙을 보는 것이 이제 우리의 목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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