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숙의 “웃으면서 끝까지 함께 투쟁!”

[기고④] 김진숙의 복직을 바라며

“웃으면서 끝까지 함께 투쟁!”을 외쳤던 2011년 부산 영도 조선소. 그날 이후, 투쟁은 신나고 즐겁게 만들어 가는 것이라 생각하고 현장 투쟁 기획을 할 때마다 이를 놓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투쟁하는 모두가 지치지 않고 끝까지 가려면 버틸 힘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버티기 위한 가장 좋은 약은 ‘힘들어도 즐겁게’라는 희망 버스의 정신이다. 적어도 내가 생각하는 희망 버스의 정신은 저 높은 크레인 위에서 외쳤던 김진숙의 “웃으면서 끝까지 함께 투쟁!”이기 때문이다.

‘웃으면서 투쟁’ 속에는 눈물도 있고, 하소연도 있고, 서글픔도 있다. 우리의 웃음은 바로 이런 웃음이다. 오늘 김진숙의 복직을 응원하는 기자회견을 했다. 부산으로 달려갔던 그날이 겹쳐 보였다. 비 내리는 영도다리 위로 커다란 현수막을 펼쳐 들고 달려가던 생각, 영도 산복도로 곳곳을 뛰어다니던 생각, 35미터 크레인 아래에서 춤추며 밤을 보내던 생각, 폭탄 맞은 것 같은 몸뚱어리를 뜨거운 태양 아래 고스란히 드러내며 허탈함에 막막했던 바로 그날들이 오늘로 이어져 고스란히 각인되는 시간이었다.

[출처: 신유아]

머리카락은 더 하얗게 새버렸고, 살점 하나 없는 김진숙은 그날 크레인 위의 김진숙이 아니었다. 2011년보다 더 더 오래전 1986년의 젊은 김진숙은 까만 단발머리에 통통한 볼을 가진 조선소 용접공이었다. 가슴에 안고 온 35년 전 김진숙의 사진에서 시작한 이야기는 서글펐다.

“화장실이 없어 어두운 구석을 찾아 현장을 뱅뱅 돌고 식당이 없어 쥐똥이 섞인 도시락을 먹으며 떨어져죽고 깔려 죽고 끼어 죽고 타죽는 동료들의 시신을 보며 그 사고보고서에 ‘본인 부주의’라고 지장을 찍어주고 내가 철판에 깔려 두 다리가 다 부러졌을 때도 ‘본인 부주의’에 누군가 또 지장을 찍어주며 산재처리를 피하던 현장.

일이 너무 힘들고, 스물다섯 살짜리가 사는 게 아무 희망이 없어 죽으려고 올라갔던 지리산. 천왕봉에서 본 일출이 너무 아름다워 1년간 더 살아보자고 내려와 노동조합을 알게 됐고, 화장실이 없고 식당이 없으면 요구하고 싸워야 한다는 걸 알았습니다. 유인물 몇 장에 불순분자 빨갱이가 되어 해고된 세월이 35년.”


김진숙은 아래 사진에 있는 유인물을 뿌렸다는 이유로 해고됐다고 한다.



눈물이 났다. 기본적인 인간다움을 외쳤던 1986년, 기본적인 인간다움 마저 포기한 투쟁의 크레인 35호, 기본적인 인간다움을 찾아보기 위해 암 투병 끝에 새롭게 결심한 2020년. 김진숙의 과거와 현재가 어찌 이리도 서글픈지 눈물이 났다. 지금의 눈물은 김진숙의 미래가 결코 눈물이 아니길 바라는 눈물이었다.

거리에서 투쟁 중인 아시아나 케이오 노동조합 부지부장 김계월의 발언에서 또 눈물이 흘렀다. “나에겐 정말 아픔이었던 한겨레신문에 실린 김진숙 동지의 글 대목이 떠오른다. 크레인에서 내려와 겨울을 보내는 김진숙 동지는 크레인에서 내려오지 못한 동지들을 생각해서 한겨울에도 보일러를 틀지 않고 잠을 잔다는 글을 보고 그땐 정말 뭐라 말할 수 없이 가슴이 메었다. 오늘 동지를 만나면 뜨겁게 안아주고 싶다”는 이야기를 하며 목멘 그는 아시아나 케이오 투쟁의 서글픔을 눈물로 대신했다. 함께 눈물이 흘러내렸다. 35년 전이나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현실의 투쟁은 우리 누구도 알 수 없는 깊은 상처로 당사자들의 가슴을 멍들게 한다. “웃으면서 끝까지 함께 투쟁!” 함께 말이다.

“강정아 너는 이 땅에서 아주 작은 고을이지만~~~” 하얀 머리, 흰 수염의 할아버지 한 분이 구슬프게 노래를 부른다. 노랫가락이 어찌나 애절한지 바라보는 내내 하염없이 눈물이 흘렀다. 가끔 픽픽 쓰러지셨다는 소식을 접할 때마다 가슴 철렁했는데 지팡이를 짚고 김진숙을 응원해야 한다며 한걸음에 달려와 준 거리의 신부 문정현. 영도 조선소 담벼락을 넘어 긴 밤을 함께 울고 웃고 신나게 투쟁하던 신부님의 수염은 더 하얗고 더 길어진 것 같았다. 희망 버스가 왜 죄냐며 벌금은 못 내겠다며 노역을 살았다는 이야기에 지금은 웃지만, 그때를 생각하면 또 한 번 가슴이 먹먹해진다.

2011년 어느 날 35호 크레인 아래에서 신나게 투쟁하며 놀았던 그 날을 재연해 보고 싶었다. 그때는 하늘 위쪽에서 바라만 보았던 김진숙의 몸짓이 오늘은 여기 땅 위에서 함께했다. 이 신나는 투쟁이 올해가 가기 전에, 정년이 지나기 전에 복직이라는 희망 버스에 올라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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