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위기, 1040억 흑자에도 일방적 폐업한 투기자본

[르포] 집단해고 위기 처한 한국게이츠 노동자들 이야기

  6월 26일 폐업통보 이후 멈추어버린 대구 한국게이츠 공장 [출처: 연정]

지난 6월 26일, 20년간 순이익 1041억 원(연 평균 52억 원)을 기록한 대구 우량기업 한국게이츠가 일방적으로 폐업 공고를 냈다. 한국게이츠는 지난해에도 45억 원의 순이익을 냈고, 코로나19에도 휴업이나 정부 지원금 없이 운영되던 회사다.

한국게이츠는 전 세계 30여 개국 120개 공장에서 1만5000명 이상의 노동자를 고용하고 있는 글로벌 게이츠 기업의 한국 사업장으로, 자동차와 산업용 동력전달 벨트류를 생산해 왔다. 한·미·일 법인이 합작 투자해 1989년 설립된 한국게이츠는 현재 미국법인이 51% 일본법인이 49%의 지분을 소유하고 있다. 2013년에는 사모펀드인 블랙스톤이 게이츠를 인수했다.

한국게이츠는 대구 달성산업단지에 입주하면서 고용 창출·유지의 대가로 취득세와 재산세 면제 등 각종 세제 혜택을 받았다. 또, 국내 완성차 회사에 부품을 납품하면서 많은 이윤을 냈고, 순이익의 97%에 해당하는 1008억 원을 주주배당금으로 챙겨갔다. 31년간 투자 대비 30~40배가 넘는 수익을 회수해갔음에도 한국게이츠는 사업구조조정과 코로나19 등을 핑계로 대구공장 147명의 노동자들에게 집단해고를 통보했다. 그 피해는 51개 협력업체의 6천 명의 노동자에게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게이츠는 국내 생산시설은 폐쇄하면서 판매법인 GUKC(게이츠유니타코리아)는 국내에 남겨두고, 중국 생산제품을 현대·기아·GM자동차 등에 공급하겠다고 밝혀 공분을 사고 있다.

한국게이츠의 어이없는 행태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한국게이츠는 폐업 공고 열흘 뒤인 7월 6일 희망퇴직제도(ERP)를 실시하겠다는 공고를 냈다. 7월 20일까지 자발적으로 사직하는 직원들에게 근속연수 1년 당 1개월분의 기본급과 통상수당에 해당하는 위로금을 주겠다는 내용이다.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게 고용보험 상실신고서에는 ‘경영상 필요 및 회사불황으로 인원감축에 의한 퇴사’로 기재하지만, 경력증명서 등 공식 서류에는 자발적 퇴직인 ‘의원면직’으로 기록하겠다는 것이다. 희망퇴직 프로그램은 향후 폐업과 관련한 손해배상 청구 등 법적 공방 소지를 사전에 제거하고, 노동자를 분열해 공장 재가동 투쟁 동력을 떨어뜨리기 위한 것이었다.

회사의 일방 폐업 공고로 집단해고 위기에 처한 한국게이츠 노동자들의 심정과 고민, 이에 맞서 공장 재가동을 요구하며 투쟁하고 있는 이들의 이야기를 독자들과 나누고자 한다.
– 필자 주


아무리 악질적인 기업도 90일 전에는 통보해

7월 9일 오후 대구 동구 신천동 더불어민주당 대구시당 앞. 한국게이츠의 일방적인 공장 폐업 반대와 노동자 생존권 사수를 결의하는 전국금속노조 대구지부 집회가 열리고 있다. 30도를 웃도는 땡볕 아래에서 한국게이츠지회 채붕석 지회장(전국금속노조 대구지부)과 윤종화 지부장(전국금속노조 대구지부)이 결의를 다지는 삭발식을 한다.


  7월 9일 더불어민주당 대구시당 앞에서 삭박식을 하고 있는 한국게이츠지회 채붕석 지회장(오른쪽)과 금속노조 대구지부 윤종화 지부장 [출처: 연정]

“우리 조합원들은 20년 동안, 많게는 30년까지 밤낮을 구분하지 않고 힘들게 직장을 만들어 왔습니다. 회사는 31년 동안 천억이 넘는 흑자를 내고 주주배당금으로 다 빼갔습니다. 저희들은 자동차 산업이 죽어가기 때문에 대체 산업이 필요하니 투자해달라고 3~4년 넘게 요구했지만, 단 하나의 투자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자동차 산업과 코로나19를 핑계로 폐업을 선언했습니다. 아무리 악질적이고 부도덕한 기업이라도 90일 전에는 통보를 합니다. 그런데 저들은 6월 26일 날(한 달 전)폐업을 통보했습니다.” (채붕석 지회장)

집회를 마친 채붕석 지회장 등 한국게이츠 노동자들이 더불어민주당 대구시당 사무실로 올라간다.

“우리가 요청할 곳이 별로 없습니다. 외국 자본의 일방적인 행태에 민주당이 할 수 있는 것이 있는지 요청하러 왔어요. 당장 7월 31일이 되면 우리는 다 거리로 나가야 합니다. 때문에 이 사태가 해결될 때까지 여기서 먹고 자면서 당에 부탁을 하겠다는 마음으로 올라온 겁니다."

“그렇게는 못합니다. 이 일로 처음 와서 해결할지 안 할지도 들어보지도 않으시고 여기서 먹고 자고 하겠다는 게 말이 됩니까.”


그렇다. 말이 안 되는 일이다. 다음날 공장에 가서 상황 파악을 하고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보겠다고 하는데, 시당 위원장과 면담도 진행하겠다고 하는데, 처음 방문한 날 다짜고짜 먹고 자겠다니 말이다. 그런데 정말 말이 안 되는 건 공장 폐업을 20일 남겨두고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이곳을 찾아온 한국게이츠 노동자들의 절박한 상황이다. 한 달만 시간이 있었어도, 아니 보름만 시간이 있었어도 이런 선택을 하지는 않았을 거다. 정당, 청와대. 국회, 고용노동부, 시청, 군청, 의회… 어디든 가야 했고, 뭐든 해야만 했다. 한 시간 가량의 공방 끝에 한국게이츠 노동자들이 사무실 문 앞에서 농성을 시작한다.

  7월 9일 더불어민주당 대구시당에서 농성 중인 한국게이츠 노동자들 [출처: 연정]

그냥 멍 때리고 가만히 있었어요

“6월 26일 아침 8시에 출근해서 일하고 있는데, 9시에 회사가 노조 임원 면담을 하자고 해서 면담을 진행했어요. 10시에 직원 전체 다 모아놓고 7월 31일 폐업을 한 대요. 아시아 사장부터 해가지고 김앤장 법률팀하고 통역사 다 와가지고.”

“그때 어떠셨어요?”

“멍… (어이없는 웃음) 너무 갑작스럽게 닥치니까 그냥 멍 때리고 가만히 있었죠. 2주 지났는데, 아직까지도 실감이 안나요. 앞으로 쓰나미처럼 밀려오겠죠. 밤에 자면 그 전에는 안 꾸던 꿈까지 꿔요. 쉬어도 쉬는 것 같지 않고, 자도 잔 것 같지 않고, 이 싸움이 언제 끝날지도 모르고. 다시 공장에 가서 우리 동료들과 같이 일마치고 술도 한 잔씩 할 수 있는 그런 일상이 다시 왔으면 좋겠어요. 그거밖에 없어요.”

더불어민주당 대구시당 농성장에서 만난 조성우 씨(가명)는 여전히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이었다. 성우 씨는 한국게이츠에서 20년 동안 자동차에 들어가는 벨트 생산 업무를 해왔다. 농담인지 진담인지 알 수 없는 폐업 공고를 들으며 노동자들은 항의조차 못 했다. 그 시간 이후로 공장 기계는 더 이상 돌아가지않았다.

한국게이츠는 ‘제조 시설 폐쇄에 대한 한국게이츠의 입장공고’에서 자동차 시장 내 사업 효율성 개선과 코로나19로 인해 본사의 사업 구조조정 일정이 앞당겨졌다고 밝혔다. 이번 결정까지 수많은 선택지와 대안을 신중하게 검토했다고도 말했다. 그러면서 정작 노동자들에게는 폐업 한 달 전에 이 사실을 알렸다. 엄연히 노동조합이 있음에도 노조와 단 한 번의 협의조차 하지 않았다. 사무실에 근무하는 임원들도 아는 이가 거의 없을 정도였다.

“적자가 해마다 가중돼 경영자가 도저히 어떻게 안 될 때 어쩔 수 없이 눈물을 흘리면서 폐업하는 건 봤어도 50억 씩 흑자 나는 기업에서 이러는 건 진짜 누가 봐도 웃기잖아요. 우리 상식으론 도저히 이해가 안 가는데, 외자 기업은 그게 너무나도 당연한 거고.”

초시계로 재면서 물량을 산정해 생산성 향상을 요구하고, 잔업 물량을 8시간 안에 끝내라고 독촉하면서 이윤을 취해간 회사였다.

폐업 공고하고 희망퇴직을 신청하라니

7월 16일, 기계가 멈춘 한국게이츠 공장은 적막했다. 일부 노동자들은 서울 청와대 앞에서 열리는 기자회견 참석차 자리를 비웠고, 남은 노동자들은 사측의 장비·부품 반출에 대비해 각자의 공정을 사수하고 있었다. 멀리서 들려오는 노동가요와 이따금씩 들려오는 두런두런 이야기 나누는 소리. 그저 평범한 어느 날의 공장 휴식시간 같았다. 점심시간, 휴식시간… 기계가 멈춘 공장에서도 작업 벨은 계속 울렸다.

“솔직히 양치기소년 이야기처럼 믿지 않았는데, 아시아 사장이 와서 폐업한다고 얘길 하니까 이거는 봉변인 거지. 정부에선 일자리 늘린다고 하는데, 있는 일자리도 없어지고 있잖아요. 다른 회사 힘들 때도 우리 회사는 괜찮다고 했는데, 우리가 이리 될 줄 몰랐지. 경기가 이러니 직장 구하기도 힘들고. 나이도 많고… 잠을 못 자요. 웃고 있어도 웃는 게 아니죠.”

이곳에서 20년간 일해 온 송윤주(가명) 씨는 그동안 전혀 조짐이 없었던 건 아니라고 했다. 회사는 흑자가 나는데도 20년 전부터 매년 ‘문 닫는다’는 말을 해왔다. 노사 교섭이 있을 때면 매뉴얼처럼 그 말을 하며 노조를 압박했다.

희망퇴직 신청 마감 나흘 전, 노동자들의 마음은 더욱 심란해진다. 회사는 업계 모범 사례에 부합하는 것이라며 희망퇴직 신청 공고를 냈다. 노동자들은 사측의 속셈을 모르지 않았다. 하지만 당장의 생계 문제 또한 외면할 수 없는 일이었다. 윤주 씨는 이날 생산직에서도 적지 않은 인원이 희망퇴직 신청서를 작성한 것 같다고 했다.

“간다고 욕할 수도 없고 남은 사람 욕할 수도 없고 이런 거지. 그렇다고 무작정 전부다 파이팅하면서 있을 수도 없고. 회사에서 7월 20일 이후에는 희망퇴직 위로금이 없다며 딱 잘라 얘기하기 때문에 전부다 은근히 걱정 하고 있거든. 결정은 해야 되는데, 촉박하고 며칠 안 남았고.”

윤주 씨는 하루에도 몇 번 씩 ‘이래야 되나. 저래야 되나’ 마음이 왔다 갔다 한다. 공장이 재가동만 된다면야 남아서 싸우겠지만, 그럴 수 있는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노동자들은 현대자동차가 작년과 올해 중국 게이츠에서 생산한 타이밍벨트와 오토텐션 납품을 허용한 게 이번 폐업 공고의 빌미가 됐다고 했다. 지금이라도 현대자동차가 중국 제품을 쓰지 않겠다고 하면 공장 재가동이 가능할 것이라 이야기 하면서도, 현대차가 자신의 이윤을 위한 결정을 쉽게 철회하겠냐고도 했다.

윤주 씨처럼 희망퇴직 신청을 두고 고민하는 노동자가 있는가 하면, 이미 희망퇴직을 결정한 노동자도 있었다. 또, 투기자본의 일방적 폐업에 맞서 공장 재가동을 요구하며 끝까지 싸우겠다는 노동자도 있다.

  대구 달성공단에 위치한 한국게이츠 공장 [출처: 연정]

잠시 쉬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어요

19년 째 오토텐셔너 부서에서 자동차 엔진 벨트 장력을 조절하는 부품 조립 업무를 해온 김태현 씨는 6월 26일 이후 자신이 일했던 공정을 지키고 있다.

“멘붕이라는 말이 이때 쓰는 거구나. 하루 이틀 지나니까 멘탈이 싹 나가기 시작하는데, 좀 이상하더라고요. 머리로는 뭔가 빠르게 돌아가는데, 가슴이 정리가 안 되는 거예요. 그래서 의자를 깔고 여기 앉아있는 건데요. 편하게 탈의실도 못 내려가겠고, 편한 의자에 앉아있지도 못하겠고. 다들 저하고 같은 마음이겠죠.”

아내에게는 폐업 공고 소식을 어렵지 않게 알릴 수 있었는데, 아직 초등학생과 중학생인 아이들에게 알리는 일은 쉽지 않았다.

“집에서 애들 세 명을 앉혀놓고 얘기를 했어요. ‘아빠 회사가 다음 달부터 문을 닫기 때문에 아빠가 일자리를 잃었고 돈을 못 벌어.’ 그랬더니 '이제 어떻게 하실 건데요?'라고 물어보더라고요. ‘계획이 없어’라는 말만….”

태현 씨는 희망퇴직이라는 건 회사의 존립을 전제로 회사가 어려우니 퇴직을 해달라는 건데, 폐업을 선언해놓고 원하면 나가라는 건 협박과 다름없는 거라고 했다. 노동조합이 있는 데도 협의 없이 일방적으로 통보한 것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다고 했다.

“진짜 당신들이 나를 걸레 취급 하듯이 쓰고 버릴 거 같으면 내 몇 년을 바치든지 당신들하고 싸우겠다. 들어올 때는 고용창출 하겠다며 화려한 내용으로 여러 혜택을 달라고 하고 순이익 다 빼가고. 흑자가 나는 상황에서도 더 나은 조건을 찾아 교묘하게 법망 피해가면서 폐업 통보를 날리니까 진짜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느낌이 들어요. 한국게이츠 폐업이 성공하면 전국의 많은 노동자들이 투기자본이나 먹튀 자본한테 피해를 보게 될 것 같아요. 우리가 공장 재가동 투쟁 승리를 해야죠. 이 회사를 나간다는 게 잘 실감이 안나요. 여길 떠나서 다른 일 하겠다는 마음도 전혀 들지 않고. 잠시 쉬고 있는 듯한 느낌 밖에 안 들어요. 회사가 마음 바꾸고 물량 확보해서 공장 재가동 해달라는 거죠. 지금이라도 전기 코드만 꼽으면 제품을 생산할 수 있으니까요.”

쉽게 떨어지지 않는 걸음을 옮겨 한국게이츠 공장을 나왔다. 공장 입구에는 ‘당신이 지킨 것은 가족입니다’ ‘2020 내 인생 최고의 게이츠’ 라는 문구가 붙어 있다. 게이츠에 묻고 싶었다. 당신들은 무엇을 지키기 위해 무엇을 버리고, 누구의 인생을 사지로 내몰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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