숱한 역경을 딛고 일어선 노동자들의 분투기

[서평] <우리가 옳다!>-세상을 뒤흔든 톨게이트 노동자들의 7개월

적어도 공공기관은 다를 줄 알았다. 이윤 창출보다는 공익을 최우선 목표로 운영되는 정부 산하 기관이므로. 그런데 우리는 지난 일 이년 사이, 이 같은 기대를 여지없이 무너뜨린 공공기관들을 수도 없이 목격해왔다. 농림축산식품부 산하 한국마사회, 국토교통부 산하 한국도로공사, 고용노동부 산하 한국잡월드 같은 곳이 대표적이다. 이곳에서 일하는 노동자들도 여느 민간 기업들과 다를 바 없이 ‘비용 절감’과 ‘경쟁력 강화’라는 지상목표 아래 온갖 차별과 고통을 감내해야만 했다.

그 중에서도 한국도로공사는 여러 모로 최악의 공공기관이었다. “요금수납업무는 불법파견”이라는 법원 판결을 철저히 배격한 것은 물론이거니와, ‘무늬만 정규직’에 불과한 자회사 설립을 강행해 이에 반발하는 노동자 1,500명을 집단해고하기까지 했으니 말이다. ‘폭거’라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야만적이고도 비열한 도로공사와 정부에 맞서 톨게이트 노동자들은 무려 7개월 동안 혼신의 힘을 다해 싸웠다.

치열한 토론 속에서 피어난 단결의 저력

<우리가 옳다!>는 톨게이트 노동자들의 7개월여에 걸친 투쟁을 ‘관찰자’가 아닌 ‘연대자’의 시선으로 기록한 책이다. 먼발치에서 관조하는 사람의 기록이었다면 수이 놓칠 법한 이야기들을 때로는 날 것 그대로, 때로는 날카로운 비평을 보태어 돋을새김 했다. 예컨대 투쟁이 장기화할수록, 물불을 가리지 않고 싸움에 나섰던 조합원과 피치 못할 사정으로 그렇지 못했던 조합원, 그리고 김천 본사 점거농성 대오와 상경 투쟁 대오 사이에서 나타난 반목과 대립에 대해서도 책에서는 별다른 여과 장치 없이 내보냈다.

  <우리가 옳다>, 이용덕, 숨쉬는 책공장

만약 저자(이용덕, 노동해방투쟁연대 준비모임/톨게이트 직접고용 시민사회대책위 활동가)가 이러한 내부 갈등의 이면에 어떤 문제들이 도사리고 있었는지 간과했더라면, 지면 곳곳에서 새어나온 파열음들은 독자들에게 그저 기분 나쁜 소음에 불과했을 것이다. 한데 톨게이트 투쟁은 시작부터 평탄대로가 아니었다. ‘1,500명 전원 직접고용’이라는 정당한 요구를 한사코 반대한 도로공사 이강래 (전) 사장뿐만 아니라, 청와대와 민주당까지 합심해 톨게이트 투쟁을 교란하고 탄압했기 때문이다. 특히 한국노총과 민주노총 소속 톨게이트 노동자들의 공동투쟁이 지속되던 시기 ‘중재’라는 가면을 쓰고 등장한 민주당 을지로위원회의 문제는 시종일관 노동자들 사이에서 분열과 혼선을 일으키기도 했다.

이 외에도 톨게이트 노동자들은 숱한 고난을 맞닥뜨려야 했지만, 내부의 치열한 논쟁을 결코 회피하는 법이 없었다. 때로는 투쟁을 이끌어가고 있는 지도부에 대한 비판도 서슴지 않았다. 바로 그런 직설 화법이 행간마다 고스란히 담겨 있다. 정부와 도로공사의 갈라치기에 흔들림 없이 전진하기 위해, 톨게이트 노동자들은 서로의 이견을 좁히고 관점과 투쟁 방향을 통일하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더디 가더라도 그것이 단 한 명의 예외 없는 직접고용 쟁취의 길임을 의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누구를 위한, 누구에 의한 공정성 논리인가

이 책의 또 다른 미덕은 톨게이트 투쟁이 전체 노동자들의 문제와도 연결돼 있음을 여러 사례를 들어 제시하고 있다는 점이다. 도로공사 정규직노조가 김천 본사 농성 중인 톨게이트 노동자들을 고립시키기 위해 ‘맞불 집회’를 열었던 게 가장 상징적인 장면일 테다.

소위 ‘인국공’ 사태를 계기로 문재인 정부의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정책(이마저도 생색내기에 그치고 있지만)에 대해 ‘불공정’하고 ‘역차별’이라며 성토하는 여론이 근래 들어 사납게 일고 있다. 톨게이트 투쟁이 한창이던 때도 인터넷 댓글창에는 이와 비슷한 내용의 악플이 주렁주렁 달렸다. ‘시험 치고 들어오라’는 얘기는 그나마 점잖은 축에 속했다. 정규직이 되기 위해 ‘생떼를 부린다’거나 ‘날로 먹는다’는 비난이 쇄도했다.

이 문제에 대해 저자는 다음과 같이 질문을 던진다.

“시험에 합격해야만 정규직이 될 수 있다는 논리는 능력과 노력에 따라 대우를 달리 해야 한다는 논리와 맞닿아 있다. 시험에 합격해야만 능력이 있는 거고, 노력한 거다. 그런데 그런 능력과 노력의 기준은 과연 공정한가?”

십수 년을 요금수납원으로 일했던 노동자에게 시험 쳐서 정규직이 되라는 말은 무슨 의미일까. 정규직 일자리는 누군가 정해놓은 기준(시험)에 따라 치열한 경쟁을 뚫고서야 누릴 수 있는 일부의 ‘특권’이라는 전제가 여기에 숨어있다. 더구나 이 같은 논리는 지난 20년간 민영화․외주화를 통해 공공부문에서 비정규직 일자리를 양산했던 정부 책임을 은폐하는 효과로도 이어진다.

<우리가 옳다!>는 양질의 좋은 일자리는 갈수록 귀해지는 반면, 저임금의 불안정한 일자리가 자꾸만 늘어나는 이 사회가 과연 공정한지 근본적인 성찰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나아가 ‘톨게이트 투쟁이라는 소중한 창(窓)’을 통해 평등과 연대의 감각을 키울 수 있기를 바랐다.

‘우리가 옳다!’는 굳건한 믿음

톨게이트 노동자들은 서울영업소 캐노피 위, 청와대 앞에서 유난히 뜨거웠던 작년 여름을 났고, 김천 본사 로비 안에서 추석과 설 명절까지 보냈다. 해가 바뀌어서도 김천 본사 농성은 계속됐고, 민주당 국희의원 사무실 농성과 청와대 오체투지 행진 등 마지막 순간까지 투쟁의 불씨를 지폈다. 이토록 집요하고 강인하게 싸움이 지속될 것이라고는 처음엔 누구도 감히 예상치 못했었다. 그것도 이강래를 낙하산 사장으로 내리꽂아 자회사를 밀어붙인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 법원 판결 시점마다 직접고용 대상을 저울질하며 투쟁 포기를 종용했던 도로공사까지, 거대 권력을 상대로 한 싸움이었으니 말이다.

[출처: 참세상 자료사진]

아마도 법원 판결에만 기댔다면 이렇게 장기간 투쟁을 지속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우리가 옳다!’는 확신은 노동자들에게 투쟁기간 내내 긍지와 투혼을 심어주었다.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기 위해서는 민주노총과 시민사회의 힘이 절대적으로 필요했다. 톨게이트 노동자들이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시대를 표방한 정부 정책의 허상을 폭로하며 처절하게 싸우고 있을 때, 노동자운동은 과연 무엇을 고민하며 실천했는지 뼈아프게 되돌아봐야 한다는 점 또한 이 책은 잊지 않고 짚는다.

수많은 난관을 뚫고 헤쳐 나갔던 노동자들은 ‘모든 아픔, 상처 그리고 투쟁에서 나타난 한계’만을 가슴 속에 간직하고 있지 않았다. 후회 없이 최선을 다해 싸운 만큼 더 나은 미래를 향한 희망도 이미 가슴 한편에서 자라나고 있었다.

“비정규직 노동자로서 자본의 세상을 넘어 노동의 소중함과 가치를 지킬 수 있는 세상을 위해 단결하고 연대할 것을 다짐하고 있습니다. 이제 해고 노동자로 6개월을 싸웠으니 내 노동이 세상을 만든다는 자부심까지는 아니어도, 적어도 우리가 누구냐는 질문에는 답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나는 투쟁하는 노동자라고.”

- 책 158쪽, <비정규직 이제그만 소식지> 3호, 이정미 조합원의 글 中에서


톨게이트 노동자들은 “수납업무를 하려거든 자회사로 가라”던 이강래 도로공사 사장의 협박에도, “곧 없어질 직업”이라는 이호승 청와대 경제수석의 망발에도, 주눅 들지 않았다. 그럴수록 더 절실한 마음으로 담대하게 나섰다.

<우리가 옳다!>는 지금 노동자운동이 이들의 분투로부터 어떤 자극과 영감을 얻을 것인지 생생한 증언과 현장 스케치를 통해 말해준다. ‘톨게이트 노동자들처럼’ 싸워야 한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