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렴도 꼴찌 울릉도의 ‘공무직’ 노동자들, 새바람 일으킬까

[르포] “투쟁 승리해 ‘울릉군 공무직’이라고 자신 있게 말하고 싶어요”

  울릉군 공무직분회 조합원들 [출처: 공공운수노조 울릉군분회]

섬 속의 섬 울릉군 공무직분회 천막농성장

포항에서 217km. 3시간 30분 동안 배를 타야 화산암으로 이뤄진 오각형 모양 신비의 섬 울릉도에 닿는다. 전체 인구는 약 1만 명. 중학교도, 고등학교도, 병원도 오로지 한 곳뿐이다. 3無(도둑, 공해, 뱀) 5多(물, 미인, 돌, 바람, 향나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살기 좋고 아름답다는 울릉도. 사람 사는 곳 어디나 그렇듯, 이곳에도 크고 작은 사건이 일어난다. 생존권과 노조할 권리를 요구하는 공무직 노동자(공공기관에서 무기계약직으로 일하는 노동자)들의 투쟁도 그중 하나다. 이들은 8월 30일 기준, 84일간의 투쟁과 67일간의 천막농성을 이어가고 있다.

울릉군에는 공공기관 소속으로 근무하는 150명의 공무직 노동자가 있다. 울릉도 여행 중 관광지나 거리에서 ‘공무원이겠거니’ 하고 만난 이들 중 다수가 사실은 공무직 노동자다. 여객선터널, 관광안내소, 독도박물관, 독도전망대 케이블카, 봉래 폭포 등에서 안내·보수·시설관리· 운전 등의 업무를 하며 관광객을 가장 최일선에서 맞이하는 노동자들이다. 군청과 의회, 읍사무소, 울릉군 의료원 등에도 많은 공무직 노동자가 일하고 있다. 무기계약직인 이들은 공무원과 동일한 업무를 하거나, 공무원이 꺼리는 업무를 맡기도 한다. 울릉군 보건의료원 입구에서 코로나19 선별진료 안내를 하는 이들도 공무직 노동자들이다. 이들은 마스크와 방역복도 지급받지 못한 채 선별 업무를 하고 있다.

8월 13일 오후. 경상북도 울릉군 울릉읍 울릉군청(군수 김병수) 앞 작은 천막을 찾았다. ‘체불임금 해결 임금교섭 체결’, ‘민주노조 사수를 위한 울릉군 공무직 천막농성’ 등 익숙한 내용의 현수막이건만 왠지 낯설다. 쉽게 찾아오기 힘든 이 농성장은 섬 속의 또 다른 섬 같기도 하다. 30도를 웃도는 날씨에 천막 안 온도가 40도 가까이 올라, 선뜻 들어갈 엄두가 나지 않는다.

암 치료를 하며 투쟁하고 있는 울릉군 공무직분회(전국공공운수노조 대구경북본부 경북지역지부 소속) 김나영 분회장은 2007년 울릉군 보건의료원에 일용직 간호조무사로 입사했다. 그리고 2년 뒤, ‘기간제 및 단시간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에 따라 무기계약직으로 전환돼 14년째 근무하고 있다. 매년 공중보건의가 바뀌고, 주기적으로 공무원들이 전출을 나가는 시스템 속에서 병원 업무와 환자들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은 공무직 노동자들이었다. 나영 씨 역시 의사와 환자들 간의 민원해결사 역할을 했다. 지역 주민인 환자들에게 힘이 되고, 이들이 건강을 회복하는 것이 무엇보다 큰 보람이었다.

  경북 울릉군 울릉읍 울릉군청 [출처: 연정]

기분 좋으면 너희도 공무원, 기분 나쁘면 너희는 공무직

무기계약직 전환 후 형식적인 면에서는 고용보장이 됐지만, 나영 씨의 삶은 별반 나아지지 않았다. ‘울릉군 무기계약 및 기간제 근로자 등 운영규정’ 제26조 제1항에 따르면 군 소속 무기계약직 노동자 급여는 호봉에 의한 연봉급을 매월 나눠서 지급해야 한다. 하지만 울릉군은 공무직들에게 호봉 없는 일당제로 급여를 지급했다. 식비를 포함한 일체의 수당은 없었고, 연차수당은 10일 치만 보장받았다. 호봉이 없는 데다 합리적인 임금체계가 마련되어 있지 않아, 갓 입사한 노동자가 10년 이상 근무한 노동자보다 급여를 더 많이 받는 경우도 있었다. 집값도 물가도 비싼 울릉도에서 식대 한 푼 없이 살아가기란 녹록지 않았다. 열악한 노동조건 못지않게 일터 안의 차별과 공무원들의 갑질 또한 힘들었다.

“진료 보조나 약국 조제 보조 업무들을 주로 해요. 공무원들하고 똑같은 일을 하는데도 공무직을 배제하는 경우가 많아요. 자기들 기분 좋으면 ‘너희도 정규직 공무원 아이가’ 자기들 기분 나쁘면 ‘너희는 공무직이잖아’ 그런 것들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요. 저는 공무원이 아니라는 이유로 담당 공무원이 해야 할 일을 많이 했거든요. 민원이 터지면 공무직들도 똑같이 책임을 지고 수습을 해야 돼요. 신규 공무원들은 업무를 잘 모르고, 공무직들이 전반적인 환경을 제일 잘 알다 보니 설명을 해주게 돼요. 그러면 공무원들이 ‘공무직들 때문에 불편하다. 공무직 묵은지들이 많아 부려먹지도 못하고 마음대로 못 하겠다’고 해요.” (김나영 분회장)

그리고 지난해 1월 14일, 울릉군에 공무직 노동조합이 결성됐다. 바른말 하는 20여 명의 공무직을 중심으로 순환전보가 단행되고, 최저임금 인상으로 상여금 180%가 삭감된 것이 계기가 됐다. 노동조합은 울릉군으로부터 삭감된 상여금 원상회복과, 이후에는 노동조합과 협의를 통해 정당한 순환전보를 하겠다는 약속을 받아냈다. 지난해 9월, 16번의 교섭 끝에 울릉군과 공무직 노동자 권리 보장을 위한 단체협약도 체결했다. 하지만 2019년 임금협약 체결을 위해 1년 동안 끌어온 임금교섭은 지난 5월 끝내 결렬됐다. 노동조합은 6월 18일부터 체불임금 해결과 식대·교통비 등 고정수당 12만5000원 신설을 요구하며 부분·전면·순환 파업과 함께 천막농성을 이어가고 있다.

청년들이 안착해서 살 수 있는 일자리가 없어요

울릉군에서 19년째 상수도 관리 업무를 하고 있는 장정운 씨는 2002년 일용직으로 입사해 2007년 무기계약직으로 전환됐다. 울릉군에서 태어나고 자란 정운 씨에게 사실상 첫 직장이었다. 제조업 등 산업 시설이 거의 없는 울릉군에서 스무 살 정운 씨가 선택할 수 있는 직장의 폭은 넓지 않았다. 많은 친구들이 일자리 때문에 고향을 떠났다.

“여기는 청년들이 안착해서 살 수 있는 일자리가 없어요. 장사를 하려고 해도 이미 다 하고 계시니까 보통 강심장으론 끼어들기가 힘들죠. 자본도 없고. 농사는 땅이 있어야 하는 건데, 그런 것도 아니고.”

정운 씨의 주요 업무 중 하나는 물이 안 나오거나 상하수도가 막혔을 때 현장을 방문해 원인을 파악하고 조치를 취하는 일이다. 처음 일을 시작할 당시 공무원들의 반말은 예사였고, 나이 많은 공무원에게 뒤통수를 맞기도 했다. 업무 인수인계도 제대로 못 받고 몸으로 부딪치며 일을 배운 덕에 지금은 상하수도 문제만큼은 ‘척 하면 아는’ 경지에 이르게 됐다.

19년간 근무를 했지만 정운 씨의 임금은 최저임금 수준이다. 갓 입사한 신입 직원과 별반 차이가 없다. 정운 씨는 무기계약직이 되면서 오히려 처우가 나빠졌다고 이야기했다. 기간제로 일할 때는 일당제여도 365일 계약을 했는데, 이제는 270일 계약으로 바뀌었다. 야간, 새벽, 주말에도 민원이 터지면 달려가야 하지만, 일한 만큼 수당도 받지 못했다.

[출처: 공공운수노조 울릉군분회]

  체불임금 문제 해결과 고정수당 12만 5천원 지급을 요구하며 투쟁하고 있는 울릉군 공무직분회 조합원들 [출처: 공공운수노조 울릉군분회]

무슨 일만 터지면 우리가 불려나가는 거예요

공무직 도로수로원 노동자 오승훈 씨는 16년째 일주도로 낙하물 제거와 보수관리, 겨울철 제설작업 등을 해오고 있다.

“읍에 있는 잡다한 일은 저희가 다 한다고 보면 됩니다. 우리 업무가 아닌데도 다른 데서 나무가 쓰러지면 그런 거 다 정리하고. 일반 도로는 저희가 관리하는 게 아닌데 일반 도로 배수구가 막히거나 악취가 올라오면 저희가 나가서 욕까지 먹어요. 녹을 먹고 사니까 울릉도 주민을 위한다는 생각으로 일했는데, 도가 지나쳤어요. 새벽이고 밤이고 무슨 일만 터지면 우리가 불려나가는 거예요. 재작년에는 눈이 많이 왔는데, 밖에서 거의 살았죠.”

승훈 씨 역시 일한 만큼 수당을 제대로 받지 못했다. 울릉군은 실제 근무시간과 무관하게 부서마다 임의대로 연장·휴일수당을 책정해 급여를 지급했다.

“노조 시작하고 조합원들이 모여서 머리를 맞대고 계산을 했어요. 야간근무를 몇 시부터 몇 시까지 하는데 이상하게 돈이 안 맞는다고. 계산해보니 야간수당을 근로기준법대로 1.5배 지급을 하지 않아서 체불임금이 발생했다는 걸 알게 된 거예요.” (김나영 분회장)

노동조합에서 문제 해결을 요구하자 울릉군은 체불임금이 없다고 주장했다. 있어도 벌금을 내면 그만이라는 식이었다. 뿐만 아니라 기간제를 고용해 기존에 공무직이 하던 주말, 휴일 업무를 대체했다. 공무직노조가 만들어진 후에는 기간제를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하지 않았고, 공무직이 퇴사한 자리에 기간제를 채워 넣었다.

사실 무기계약 전환이 이루어지던 당시, 울릉군의 모든 기간제 노동자들이 그 행운을 누린 것은 아니었다. 사회복지사 자격증 소지자인 김규수 씨는 2012년 울릉군청 자원봉사센터에 기간제로 입사해 자원봉사 프로그램 기획과 운전 봉사활동 등의 업무를 해왔다. 규수 씨는 일을 시작하고 5년 뒤에야 무기계약직으로 전환됐다. 울릉군에서는 법도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고리’였다.

“군내에서 계약직 2년 후 바로 무기계약직으로 가는 경우는 거의 없어요, 적어도 4~5년씩 걸리는 걸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었어요.”

5년 동안 무기계약 전환이 한 명도 없었던 건 아니다. 어느 날 갑자기 군수나 공무원, 의원의 가족 또는 지인이 입사해 무기계약직이 됐다. 정작 2년 이상 성실하게 근무해온 기간제 노동자들은 4년, 5년 계속 밀렸다. 지역 특성상 노동력, 특히 청년 인력이 귀한 곳이다 보니 1년마다 계약 갱신이 가능했던 게 그나마 다행이었다.

“오래 근무한 사람은 경력과 노하우에서 차별성이 있어야 하는데, 한 직종에서 7~8년을 일해도 그게 없더라고요. 물가는 계속 오르는데 임금은 올라봐야 몇만 원 수준이니 한 달 벌어 한 달 사는 사람들이 많아요. 저도 한 달에 200만 원도 안 되는 돈으로 가정을 꾸리고 살기가 힘들었어요. 몇 년 전부터 호봉제를 해준다고 얘기를 했는데, 계속 안 해줬습니다. 공무직들이 결단을 해야 군에서 움직이겠구나, 하는 생각으로 노동조합에 가입하게 된 거죠. 작년까지는 본봉이 최저임금이 안 되다가, 올해 딱 최저임금이 됐어요. 주변 사람들 보면 무기계약직이라는 말은 못 하고 ‘군청에서 일을 한다’는 식으로 말하는 것 같아요. 투쟁 승리하면 세 살인 애기가 커서 ‘아빠는 무슨 일 해?’라고 물을 때, 울릉군청의 공무직이라고 자신 있게 말해줄 수 있겠죠.”

내부청렴도 꼴찌, 울릉군의 새바람 공무직분회

규수 씨와 비슷한 이유로 150명의 공무직 중 60여 명이 노동조합에 가입했다. 노조가 즉각적인 호봉제 실시를 요구하자 울릉군은 완강하게 거부했고, 결국 노조의 양보로 2021년에 호봉제를 도입하기로 했다. 또한 노조는 급식비와 교통비 등 고정수당 12만5000원 신설을 요구했다. 공무원들이 받고 있는 정액급식비 14만 원에도 못 미치는 금액이었지만, 울릉군은 예산이 없다는 이유로 1년 이상 교섭을 해태하며 시간을 끌었다. 체불임금 문제도 마찬가지였다. 현재 김나영 분회장은 무노동 무임금 전면 파업을 진행 중이고, 노조 간부와 조합원들은 순환 파업을 이어가고 있다. 가족 중에 고위 공무원이나 개인사업자가 있는 조합원들은 울릉군의 압박과 회유로 노조를 탈퇴하기도 했다.

울릉도는 연대투쟁조차 쉽지 않은 외로운 섬이다. 이곳의 공무직분회 조합원들은 이 투쟁이 자신의 생존권 문제를 넘어, 이 사회 전체를 바꾸는 과정이라는 것을 깨달아 가고 있다. 이 투쟁이 잘 마무리되고 나면, 100명 가까이 되는 기간제 노동자 문제에도 함께 할 계획이다. 공무직분회는 현재 울릉군 현안 중 하나인 대형 정기여객선 썬플라워호 운항 연장을 요구하는 투쟁에도 울릉군 주민으로서 함께 하고 있다.

지난해 국민권익위원회가 발표한 공공기관 청렴도 측정 결과에 따르면, 울릉군의 내부 청렴도는 가장 낮은 5등급, 종합 청렴도는 4등급이다. 울릉군 행정을 감시·견제해야 할 울릉군의회는 올해 조례 제·개정 의원 발의가 한 건도 없을 정도로 하는 일이 없다.(1) 유류 해상운송비 100% 지원에도 불구하고, 김병수 울릉군수가 운영하는 주유소 등에서는 1리터당 주유비를 육지보다 2~3백 원 이상 더 받고 있다.

“월급을 인상시키는 것도 하나의 목적이 될 수 있겠지만, 울릉군의 잘못된 행태를 바꾸고 싶어요. 우리 후배들이 지금보다 더 업그레이드된 삶을 살았으면 합니다.” (오승훈)


울릉도 주민 소식통에 따르면 공무직 노조가 생긴 후, 울릉군 공무원들이 ‘가짜 영수증’을 만들어 법인 카드로 식사비를 계산하던 관행이 줄었다고 한다. 매상이 줄어든 식당 주인들이 민원을 넣을 정도다. 울릉군의 새바람을 일으키고 있는 울릉군 공무직분회 투쟁을 응원하며 이들의 이후 활약을 기대해본다.

[각주] (1) 〈경북매일〉, 2019.12.16.일자, 2020.5.12.일자 기사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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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경락

    월급을 인상시키는 것도 하나의 목적이 될 수 있겠지만, 울릉군의 잘못된 행태를 바꾸고 싶어요. 우리 후배들이 지금보다 더 업그레이드된 삶을 살았으면 합니다.” (오승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