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9 공동선언 2주년, 숙제 안하고 헛다리만 짚는 정부

[한반도 줄넘기] 8천만 겨레와 전 세계에 천명한 약속은 어디 갔는가?

“동포 여러분, 김정은 위원장과 나는 지난 4월 27일 판문점에서 만나 뜨겁게 포옹했습니다. 우리 두 정상은 한반도에서 더 이상 전쟁은 없을 것이며 새로운 평화의 시대가 열렸음을 8,000만 우리 겨레와 전 세계에 엄숙히 천명했습니다. (...) 오늘 김정은 위원장과 나는 한반도에서 전쟁의 공포와 무력충돌의 위험을 완전히 제거하기 위한 조치들을 구체적으로 합의했습니다.”(9월 19일, 문재인 대통령 평양 연설 중)

2년 전 오늘인 9월 19일, 문재인 대통령은 4.27 판문점선언의 약속대로 평양을 방문해, 9.19 평양선언에 합의하는 한편, 남한 대통령으로서는 처음으로 평양 능라도 5.1경기장에서 평양시민을 대상으로 연설했다. ‘한반도에는 새로운 평화의 시대가 열렸고, 전쟁의 공포를 제거하기 위한 조치들을 구체적으로 합의했다’며, ‘한반도 평화의 도래’를 약속했다.

[출처: http://www.korea.kr/]

그러나 2년이 지나간 현재, 이 약속은 공문구가 되어 버렸다. ‘4.27 판문점 선언(1차 남북정상회담) → 6.12 싱가포르 공동성명(1차 북미정상회담) → 9.19 평양선언(2차 남북정상회담)’으로 선순환구조를 그리던 남북 및 북미관계 개선 흐름이 2019년 2월 하노이 노딜(2차 북미정상회담) 이후 반전됐기 때문이다. 올 6월 북한의 개성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폭파 조치가 상징하듯이, 남북관계는 완전 경색됐다.

그런데 한반도 평화의 도래가 ‘공문구’가 되어 버린 것은 하노이 노딜, 즉 북미관계 개선의 교착 때문만이 아니다. 한반도의 ‘전쟁이냐-평화냐’를 가름하는 축은 북미관계라는 단일축만이 아니라, 미중 관계, 남북관계, 한미관계, 북중관계, 나아가 러시아와 일본의 대한반도 정책 등 여러 축에 의해 규정받고 있으며, 이 축들은 서로 맞물리면서도 독자적인 축을 형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가령 북미관계 교착은 북미관계에만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라, 남북관계에도 영향을 미친다. 대표적으로 2018년 이후에도 북미협상이 진전되지 않자, 미국은 촘촘한 대북 제재로 남북교류와 협력을 건건이 가로막아 남북관계 진전을 방해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 현 남북관계 경색을 모두 설명할 순 없다. 남북철도 연결 등의 남북교류는 미국의 방해로 추진하기가 만만치 않았지만, ‘군사 분야’는 한국 정부의 의지에 달려 있었기 때문이다.

9.19 선언, 남북 간 종전선언이 되었나?

남북은 4.17 판문점선언을 통해 한반도 평화를 위한 군사적 긴장상태를 해소하기로 했다. 9.19 평양선언에서는 ‘판문점선언 군사분야 이행합의서’를 부속합의서로 채택하면서, 남북간에 실질적으로 ‘종전선언’을 했다는 의미까지 부여받았다.

실제 남북은 판문점 선언 제 2항에서 “남과 북은 한반도에서 첨예한 군사적 긴장상태를 완화하고 전쟁 위험을 실질적으로 해소하기 위하여 공동으로 노력해 나갈 것”을 합의했다. 또 “남과 북은 지상과 해상, 공중을 비롯한 모든 공간에서 군사적 긴장과 충돌의 근원으로 되는 상대방에 대한 일체의 적대행위를 전면 중지”하기로 했다. 제 3항에서는 “남과 북은 한반도의 항구적이며 공고한 평화체제 구축을 위하여 적극 협력해 나갈 것”을 합의하고, “불가침 합의를 재확인하고 엄격히 준수”하며, “군사적 긴장이 해소되고 서로의 군사적 신뢰가 실질적으로 구축되는 데 따라 단계적으로 군축을 실현해 나가기로” 했다.

‘판문점선언 군사분야 이행합의서’에서는 “쌍방은 상대방을 겨냥한 대규모 군사훈련 및 무력증강 문제 등에 대해 ‘남북군사공동위원회’를 가동하여 협의해 나가기”로 했다. 또 “단계적 군축을 실현해 나가기로 합의한 판문점선언을 구현하기 위해 이와 관련된 다양한 실행 대책들을 계속 협의”하기로 했다. 즉 9.19 선언은 ‘비무장지대를 비롯한 대치지역에서 군사적 적대관계 종식’을 선언하고, ‘상대를 겨냥한 대규모 군사훈련과 무력증강 문제’, 그리고 ‘단계적 군축을 위한 실행계획’을 협의해 나가기로 했다. 9.19 선언을 남북 간 종전선언이라 부른 이유도 이 때문이었다.

그러나 2년이 지난 지금, 9.19 군사합의는 종이 쪼가리가 되어 버렸다. 공동경비구역(JSA)의 비무장화, 상호감시초소(GP) 철수 등은 이뤄졌지만, 나머지는 진척되지 않았다. 현재 남북간 모든 통신선과 대화테이블은 중단됐고, 상대방을 겨냥한 대규모 군사훈련 및 무력증강 문제, 단계적 군축문제는 협의되기는커녕 남북은 치열한 군비경쟁 상태에 있다.

휴지조각 된 ‘한미연합군사훈련 중단, 단계적 군축’

북한은 이미 작년부터 ‘방사포 무기체계’ 고도화를 위한 시험발사를 몇 차례 시행했고, 새로 건조한 ‘SLBM(잠수함발사 탄도미사일) 잠수함’을 공개하기도 했다. 남한은 더 앞서(?) 갔다. “쌍방은 상대방을 겨냥한 대규모 군사훈련 및 무력증강 문제”를 협의하기로 했음에도, 작년 문재인 정부는 북한이 체제위협으로 받아들이며 가장 경계하는 한미연합군사훈련을 지속했다. “단계적 군축” 역시 무시하고, 이명박근혜정부 때보다 더 큰 규모로 국방비를 증액해 왔다(2020년 국방예산은 역사상 처음으로 50조원 돌파). 결국 지난해 7월,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미사일 발사를 지도하는 자리에서 “남조선 당국자들이 사람들 앞에서는 평화의 악수를 나누고 합의 문서를 만지작대다가 돌아가서는 최신형 무기를 도입하고 미국과 공동 군사훈련을 하는 이중적 행태를 보이고 있다”면서 “하루빨리 4월과 9월의 ‘바른 자세’로 돌아오라”고 ‘권언’했다.

이런 권언에도 불구하고 문재인 정부는 올해도 연합훈련과 군비증강을 지속했다. 6월 북한의 강경행동으로 남북관계가 일촉일발의 위기상황에 놓인 8월에, 그것도 미군 내 코로나 확진자가 발생하는 등 위험한 코로나 정세인데도, 미폭격기가 6대나 동시 출격한 가운데 연합군사훈련을 실시했다. 올 8월 국방부는 북한의 방사포를 잡는다며 수도권을 방어할 수 있는 ‘한국형 아이언돔(Iron Dome, 장사정포 요격체계)’ 개발에 본격 착수한다며 ‘2021~2025 국방중기계획’을 확정했다. 이를 위해 향후 5년간 총 300조7000억 원을 투입할 예정이다.

문재인 정부는 말할 것이다. 남북합의에서 ‘쌍방은 상대방을 겨냥한 대규모 군사훈련 및 무력증강 문제’를 “협의”하기로 했으니, 연합군사훈련이 남북합의의 위반은 아니라고 말이다. ‘단계적 군축’ 역시 “쌍방은 군사적 긴장 해소 및 신뢰구축에 따라”라는 전제조건이 붙었으니, 북미-남북관계 진전이 이뤄지지 않아 이 전제조건이 해소되지 않았으니 문제 될 게 없다고 말이다.

그러나 북미관계와 남북관계 개선에서 한미연합군사훈련 문제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다. 북한은 그동안 한미연합훈련에 대해 깊은 우려를 표명해왔는데, 이는 최근 발간된 밥 우드워드의 <격노>(Rage)에서도 재확인된다. 하노이 노딜 이후 이뤄진 작년 판문점 북미회동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한미연합군사훈련 중단을 약속했으나, 이를 지키지 않자, 김정은 위원장은 작년 8월 트럼프 대통령에게 보낸 친서에서 강한 불만을 표출했다 한다. 실망한 김정은 위원장은 판문점 북미회동의 합의 사항이었던 북미 실무회담을 뒤로 미루었고, 이후 북미관계는 교착상태에 빠졌다. 북한은 앞서 언급한 7월 김정은 위원장의 대남 ‘권언’을 통해서도 남한에 일침을 놓았다. 한미 양국을 향해 연합군사훈련을 중단하라고 동일한 시그널을 보낸 것이다. 그런데 이른바 깡패국가로 불리는 제국주의 국가인 미국은 그렇다 치더라도, 판문점 선언과 평양선언에 합의한 문재인 정부마저 이런 북한의 요구를 철저히 무시한 것이다.

군비증강 문제 역시 마찬가지다. 남한과 북한의 군사력 격차가 더욱 벌어지고 있다. 올 7월 미국의 군사력평가기관인 글로벌파이어파워(GFP)에 근거하면 한국은 국가별 군사력 순위에서 세계 6위를 차지했다. 이는 지난해 7위보다 한 단계 올라간 것이다. 이에 비해 북한은 올해 25위를 차지해 전년보다 7계단 추락했다. 이는 남한이 군비증강을 하지 않더라도 남북 간 군사력 차이는 매우 크다는 것을 말한다. 북한이 중국과 함께 남한을 겨냥한 합동군사훈련을 감행하지 않고 있는 상황, 남북 간의 현격한 군사력 격차는 남북 간의 힘의 비대칭 상황을 극명히 보여주는 것이다. 혹자는 북한은 핵을 보유하고 있지 않냐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이는 남한은 미국의 핵우산 아래 있다는 것을 망각하는 것이다. 따라서 북한 측이 북한에 대한 선제핵공격까지를 포함하고 있는 한미연합군사훈련에 대해, 남한 측의 군비증강에 대해 남북합의 위반이라고 강한 불신의 눈길을 보내는 것은 매우 당연하다. 이는 남한이 선도적으로 한미연합군사훈련 중단과 군비증강을 중단해야, 북한이 남한에 대한 불신을 거두며 대화의 장에 나올 수 있으며, 남북 간 단계적 군축의 기반을 마련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4.27 판문점 선언과 9.19선언이 휴지 조각이 된 것에는 문재인 정부의 책임이 크다.

헛다리 짚는 일, 이제 그만 둘 때

그런데도 정부는 계속 헛다리만 짚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올 광복절 경축사에서 가축전염병과 코로나19, 집중호우 등을 거론하면서 ‘남북 생명공동체’를 강조했다. “한반도에서 살아가는 모든 사람의 생명과 안전을 보장하는 것이 우리 시대의 안보이자 평화다”라고 역설했다. 남북생명공동체를 위한 방안으로 방역 협력, 보건의료와 산림협력 등을 제안하면서, 특히 남북 철도연결이 중요성을 강조했다. “남북이 이미 합의한 사항을 하나하나 점검하고 실천하면서 ‘평화와 공동번영의 한반도’를 향해 나아가겠다”라고 밝혔다. 북한에 ‘남북협력을 다시 시작하자’고 제안한 것이다.

7월에 새로 임명된 이인영 통일부 장관 역시 남북 물물교환 추진(대북제재로 결국 무산됨), 인도적 지원 협력 추진, 남북교류협력을 활성화하기 위한 ‘남북교류협력법 개정안’ 마련 등, 인도적·경제적 교류 활성화로 남북관계 교착을 뚫겠다는 행보를 보이고 있다. 그가 8월 한미연합군사훈련 중단을 요구하거나 국방부의 ‘2021~2025 국방중기계획’에 날을 세웠다는 보도는 보이지 않는다.

문재인 정부는 남한의 선도적 군비 동결이나 축소 같이 독자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은 안 하면서, 그리고 한미연합군사훈련을 중단시키려는 노력도 안 한 채, 또 그동안 미국의 대북제재를 뚫을 결기도 보여주지 않았으면서도 남북 교류협력 추진으로 남북관계를 개선하겠다고 한다. 북한은 군사-정치적 문제로 남한에 대해 문을 걸어 잠그고 있는데, 작은 교류협력을 위해 문을 열라고, 열릴 수 있다고 말한다. 이는 현실을 주관적으로 해석하면서 헛된 꿈을 꾸거나 북한과 남한 국민을 기만하는 것과 다름 바 없다. 완전 ‘헛다리 짚기’다.

한마디 덧붙이자. 문재인 대통령은 8.15 경축사에서 ‘남북 생명공동체’를 강조했다. 그런데 남북합의를 안 지켜 생기는 한반도 전쟁위기의 방치야말로 남북생명 공동체를 위협하는 가장 큰 위협이 아닌가? 이를 해결하겠다며 문재인 대통령이 이끈 9.19 공동선언 2주기에, 과연 8천만 겨레와 전 세계에 천명한 약속은 어디로 갔는지 곱씹어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