훔치고, 도용하고, 불법 채취하고...윤리 없는 대학원

“연구·생명윤리 감독하는 통합 기구 설치해야”

대학원과 연구기관에서 연구 저작물을 도용하고, 아이디어를 탈취하고, 심지어 유전자를 불법 채취하는 사건까지 발생하면서 연구 윤리 위반에 대한 해결책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대학원생들은 연구·생명윤리 위반 사건에 대한 관리 감독 능력을 갖춘 통합적인 기구 구성을 요구하고 나섰다.


한국연구재단에 대한 국회 국정감사가 열린 13일, 공공운수노조 전국대학원생노동조합지부는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 및 IRB의 신뢰성 회복을 위한 방안을 마련할 것을 촉구했다. 이들은 “대학원생을 착취하는 식으로 연구윤리를 위반하는 사례, 그리고 이것이 말뿐인 경고로 그치는 상황은 학계에 대한 사회의 신뢰를 해칠 뿐 아니라 신진 연구자들의 연구 의지를 해치는 큰 해악이 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실제로 대학원생노조에 접수된 제보에 따르면, 교수가 대학원생의 연구 저작물을 도용하는 등의 부정행위가 잇따르고 있었다. 대학원생 A씨의 경우, 그의 논문이 공동연구자와 교수의 실적으로 발표됐다. 그가 속한 대학의 연구윤리위원회에 사건을 제보했지만 ‘윤리적 문제가 없다’는 대답을 받았다. 대학원생 B씨 역시 그가 작성한 글이 모 교수의 이름으로 출판됐으며, 대학원생 C씨는 교수로부터 같이 프로젝트를 하던 동료에게 모든 데이터를 넘기라는 지시를 받았다. 이후 동료의 이름으로만 논문이 발표됐고, 동료가 해당 교수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이 밖에도 지도교수가 저서 대필을 지시하거나. 선배의 대리 실험 및 논문을 대필하는 피해 사례도 있었다. 논문 데이터를 조작했음에도 교수가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았고, 동물 실험이 끝난 후 교수가 동물 사체를 그냥 땅에 묻으라고 지시하는 일도 있었다.

기자회견에 참석한 이승주 씨는 아이디어 탈취와 특허침해 피해를 입었다. 2012년 그가 냈던 특허와 연구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D교수, E연구원과 합작으로 프로젝트를 추진했는데, 이듬해 D씨가 돌연 프로젝트에서 하차하며 연구가 수포로 돌아갔다. 이 씨는 이후 연구개발 중단을 확인하고, 자신이 배제된 채 연구가 진행된다면 특허권 침해 등 중대문제가 발생한다는 사실을 D교수와 E연구원에게 이메일로 알렸다. 하지만 지난해 10월, D교수와 E교수가 이 씨의 특허와 연구기획으로 국가연구과제를 수행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이 씨는 “최초 제목만 살짝 바꾸고 내용은 같았다. 두 명이 56억 원의 수주를 받아 자기 실적으로 가져갔다. 현재 고소장을 제출한 상태”라며 “대학원생이 특허와 아이디어를 빼앗기지 않도록 국가가 철저히 재발방지를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올해에는 고려대 의대에서 대학원생을 포함한 이십여 명이 교수로부터 유전자 불법채취를 당한 사건이 폭로되기도 했다. 윤희상 고려대 유전자불법채취사건 대책위원회 위원은 “대책위가 피해자들을 만나본 결과 이 사건은 성희롱과 갑질, 생명윤리법 위반까지 얽힌 중차대한 문제였다”라며 “다수에게 동의서를 받지 않고 유전자를 채취하고, 이 같은 불법채취 자료에 실명을 명시한 채 보관하고 있었다. 피해자에게 지속적인 모욕과 폭언 등 정신적인 학대도 가했다”고 설명했다.

강태경 대학원생노조 정책위원장은 “대학원생 인건비로 공동기금을 운영하며 이를 착복하고, 대학원생의 아이디어와 특허를 빼앗고, 대학원생들로부터 불법적으로 유전자를 채취하는 등의 문제가 이어져 왔지만 많은 기관들이 자기 책임이 아니라고 한다”며 “과기부, 교육부 등이 전체 연구진들의 연구 윤리를 확립하고, 이를 통합적으로 감시, 조사할 수 있는 기구를 설립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대학원생노조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연구·생명윤리 위반 사건에 대한 피해자 구제 및 사후조치 강화 △연구·생명윤리심의위원회 투명성 제고와 해당 조직 구성원 내 다양성 확보 및 정보 공개 활성화 △각 연구기관별로 설치된 연구·생명윤리 담당조직을 실질적으로 관리, 감독, 조사할 중앙 상위기관 설치 등을 요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