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는 대학원생 10만 명, 노조로 오세요

[인터뷰] 국회 앞 농성 돌입한 신정욱 대학원생노조 지부장 인터뷰


2019년 형사정책연구원의 <대학 내 폭력 및 인권침해 실태와 개선방안에 대한 연구>에 따르면 80.8%의 대학원생이 스스로 ‘학생노동자 또는 노동자’라고 인식하고 있었다. 대학원생의 자기정체성은 크게 변화했지만, 여전히 법제도는 일하는 대학원생을 그저 ‘학생’으로 두고 있다.

대학원생노조는 일하는 대학원생의 노동권 보장을 목표로 2018년 출범했다. 지난 10월 6일 대학원생노조는 안전한 대학과 대학 공공성 확대를 요구하며 국회 앞 농성에 나섰다. 이들은 연이은 대학실험실 폭발 사고, 대학 내 갑질 및 괴롭힘, 성폭력 문제 등 대학원생 인권 문제가 꾸준히 발생하는 이유는 대학원생의 노동자성이 부정되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지난해 경북대 화학관 실험실에서 폭발사고가 발생해 크게 다친 학생연구원들도 근로계약관계가 아니었기에 산재보험 적용을 받지 못했다. 막대한 치료비를 두고 학교 측이 지원 중단을 밝히며, 큰 논란이 벌어지기도 했다.

대학원노조는 이에 실험실 안전 강화 및 정부·민간과제 참여 학생연구원의 산재 적용, 권력형 성폭력 근절을 위한 각종 대책 등을 입법화해 대학원생들의 기초적 안전을 확보해야 한다고 말한다. 전면에 건 요구사항은 학생연구원에게 산재보험을 적용하라는 요구다. 대학원생노조의 구체적인 요구사항을 듣기 위해 지난 16일 오후, 신정욱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전국대학원생노동조합지부(대학원생노조) 지부장을 농성장에서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신정욱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전국대학원생노동조합지부(대학원생노조) 지부장

지난 6일 농성을 시작해 11일째다. 부쩍 날씨가 쌀쌀해졌는데 농성은 언제까지 지속하나?

입법 투쟁은 정기 국회가 끝날 때까지 할 예정이다. 국감이 끝나는 10월 26일까지는 주간에 상주하는 농성을 지속하고, 11월 초부터는 노숙농성으로 확대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대학원생노조가 생소하기도 한 분들을 위해 간략한 소개를 부탁드린다.

조교, 학생연구원, 학회 간사, 강사의 온전한 노동기본권 보장을 목적으로 만든 노조다. 전국적으로 35개 대학 소속의 대학원생들이 가입해있고, 전체 규모는 200여 명 쯤된다. 올해 코로나19 때문에 현장 활동이 힘들다보니 조합원 확대가 주춤했는데, 하반기 입법 투쟁을 계기로 다시 활동을 활성화하려고 한다.

4개 직군에 해당하는 ‘일하는 대학원생’은 전국적으로 얼마나 있나?

교육부나 과기부가 통계를 내지 않아 정확한 수치는 알 수 없지만 대략 8만에서 10만 명으로 추산하고 있다. 전국 33만 명의 대학원생 중 전일제 대학원생들이 15만 명 정도다. 이 중 인문사회 계열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이공계열대학원생들은 실험실 생활을 하고 있기 때문에 학생연구원이라 볼 수 있고, 이공계열 비율을 따져봤을 때 8~10만 명 정도를 예측할 수 있다.

2017년 동국대에서 조교 임금을 미지급해 법적 다툼을 했고 노동부는 일부 조교의 노동자성을 인정하기도 했다. 현재 조교 직군의 경우 노동자성을 확보받고 있나?

조교도 세부 직군으로 나눌 수 있는데 수업조교라 불리는 TA, 연구조교 RA, 행정조교 GA등이 있다. 그 당시엔 행정조교의 노동자성이 선명하게 부각됐다. 이후 대학에서 대학원생 조교를 노동자로서 고용했어야 했지만, 다른 방식으로 이를 피해갔다. 행정조교에 대학원생이 아닌 1년 짜리 계약직을 채용하는 수를 썼다. 수업조교나 연구조교 역시 여전히 장학금을 주면서 노동자성을 인정하지 않는 방식으로 운영 중이다. 최근 수업조교들이 코로나 방역 관리까지 맡아 일이 몰리면서 학교에 문제제기를 새로 하고 있다. 수업조교들이 온라인 수업을 준비하면서 건물마다 체온, 발열 관리 등의 업무까지 전담했는데, 이런 수많은 업무에도 불구하고 노동이 아니라고 하니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었다.

오는 19일 과방위 국감에선 경북대 폭발사고 관련한 문제를 다룬다. 경북대학교가 최근 미지급 치료비 지급을 위한 규정을 만들고, 재정위에선 치료비 지급을 의결했는데 문제점도 있다고 들었다.

미지급 치료액이 3억5,000만 원 정도다. 그리고 중상을 입은 두 학생은 퇴원의 경우 계속 치료가 필요한 상황이다. 앞으로 계속 치료비가 발생할 것이고, 언제까지 치료를 받아야 하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경북대 측 치료비 관련 규정을 보면 요양비 지급 기간과 지급액을 학교의 재정을 고려해 정한다는 조항이 있다. 또 피해학생을 대상으로 나중에 치료비를 돌려받는 ‘구상’을 청구할 가능성도 열어뒀다. 지금까지 경찰, 국과수 등의 조사에서 학생들에게 혐의가 없다고 나왔다. 경북대 측에서 지난 5월에 치료비 지급 중단을 결정했을 때, 구체적 혐의를 찾을 수 없으니 학교 측과 학생 측의 과실이 함께 있는 것 아니냐는 취지의 말을 한 적이 있는데 또 다시 학생 과실을 핑계삼아 구상을 청구할 수 있다는 점이 우려스럽다. 피해자 가족들도 이 부분을 우려하고 있다. 지금은 이 사건이 주목받고 있지만, 시간이 지나 잊혀졌을 때 학교 측의 태도 변화 등을 짐작해 볼 수도 있는 것이다.

그동안 대학원에서 중대재해가 발생한 사건들은 모두 어떻게 처리됐나?

2018년 서강대에서 폭발사고가 있었고 2017년에 이화여대에서도 사고가 있었다. 이 사건들이 다 묻혔을 것이라고 본다. 국립대인 경북대에서조차 이런 식으로 부실한 처리를 하는데 사립대에선 더욱 심한 책임 회피를 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그동안 대학원생들이 사고를 당해도 조직적 조력도 없었을뿐더러 도와줄 만한 조직도 없었다. 대학원생노조는 경북대 사고를 계기로 대학 소속 학생연구원들에게 산재적용을 적용할 수 있도록 산재보험법 개정을 요구하고 있다. 현재 조치할 수 있는 유일한 구제 방안으로 보기 때문이다.

  참세상 자료사진

예산 문제가 필연적인데, 대학원생노조는 이를 어떻게 풀어야 한다고 보나?

그래서 고등교육재정 교부금 확대를 이야기하고 있다. 교부금 확대가 있어야 대학 구성원의 처우를 개선할 수 있다. 비리 사학에 재정을 퍼주자는 게 아니다. 목적을 지정해서 교부금을 내리면 된다. 등록금 무상화, 구성원 처우 개선, 권리 개선 등의 구체적 목적을 세우는 것이다. 예산뿐 아니라 이데올로기도 일하는 대학원생의 발목을 잡고 있다. 학생과 노동자의 역할이 병행될 수 있다는 사고의 확장이 필요하다. 대학원생뿐 아니라 학습과 노동의 경계를 구분하기 어려운 직군들이 실제로 있지 않나. 이를테면 가장 가까운 교수라는 직군이 한 예시일 것이다. 이 두 권리를 배치하지 않고 동시에 보호하는 방안으로 재구성할 때 학내 구성원 모두가 보호받을 수 있을 것이다.

법안과 관련해선 산적한 과제들이 많다. 고등교육법 개정과 국가연구개발과제혁신법 또한 개정돼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는데 이 두 개의 법안 개정과 대학원생이 노동자로 인정되는 것은 어떤 관련이 있나?

우선 고등교육법을 통해 대학원생을 명확하게 노동자라고 명시해주는 작업이 필요해 보인다. 현재 고등교육법을 살펴보면 교직원 하위 범주에 조교가 들어가 있는데 교직원은 노동자고, 이 논리대로라면 조교 역시 노동자다. 이 법에서 더욱 명확히 노동자라고 인정을 해야 한다고 본다. 또 국가연구과제 혁신법은 학생연구원 문제와 관련이 있다. 정부가 주도하는 국가연구개발의 1/4 정도를 대학에서 수행하고 있다. 국가연구개발은 현재 25조 원까지 예산이 투입되고 있고, 대학에서 5~6조 원 규모의 프로젝트를 수주 중이다. 일반 연구소도 비정규직이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일하는 사람은 노동자로 세팅돼 있다. 그런데 학생연구원의 노동은 노동으로 취급되지 않는다. 대학원생 본인의 연구에 도움이 된다는 건데, 대학원생들이 자기가 하고 싶은 연구과제를 선택할 수도 없는 구조다. 임금에 대한 부분이 인건비로 퉁쳐지면서, 시행령과 시행규칙에도 없는 제도가 만들어져서 운영돼 오고 있다. 국가연구개발과제혁신법에서 연구개발에 참여하는 대학원생의 근로계약을 의무화하는 장치들이 만들어져야 한다.

대학 내 성폭력 문제도 상당하다. 노조에선 문제 해결을 위해 어떤 활동을 하고 있나?

대학원생 대상으로 발생하는 성폭력 사건 특징은 성적 폭력과 노동력 착취가 함께 결합한다는 점이다. 피해자를 프로젝트에서 배제한다든가, 각종 논문 지도에 소홀히 하면서 몇 년을 낭비하게 하고 있다. 형사정책연구원은 대학 내 각종 인권 침해, 성폭력 문제 해결 키워드가 노동권 보장일 수 있다고 강조하고 있다. 또 노동권 자체가 가진 방어권적 성격이 있기 때문에 더욱 적극적으로 노동권 보장을 주장하는 것이다. 사인과의 관계가 아닌 노사 관계에서만 성희롱 문제가 처벌되지 않나. 노사 관계를 명확히 한다면 문제를 명확하게 제기할 수 있고, 교수 등 가해자 처벌을 제대로 이끌 수 있다. 허술하긴 하지만 직장 내 괴롭힘방지 법안도 있지 않나. 이를 활용할 수 있는 토대를 만들기 위해선 노동권이 선결적으로 획득돼야 한다.
태그

로그인하시면 태그를 입력하실 수 있습니다.
박다솔 기자의 다른 기사
관련기사
  • 관련기사가 없습니다.
많이본기사

의견 쓰기

덧글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