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속된 검사를 통해 본 한국 검찰

[1단 기사로 본 세상] 라임 펀드로 구속된 윤갑근 전 대구고검장

[편집자주] 주요 언론사가 단신 처리한 작은 뉴스를 곱씹어 세상을 보는 눈을 키우려고 한다. 2009년 같은 문패로 연재하다 중단한 것을 이어 받는다. 꼭 ‘1단’이 아니어도 ‘단신’ 처리한 기사를 대상으로 한다.

‘라임 펀드’ 판매 재개 청탁 혐의(알선수재)로 구속된 윤갑근 전 대구고검장의 딸(29)이 지난 4일 오전 5시 58분께 충북 청주시 상당구 모 아파트 7층에서 투신을 시도했다. 다행히 나무와 차량 보닛에 부딪히며 119구급대가 설치해놓은 에어매트 옆에 떨어져 목숨을 건졌다. 딸은 구속된 아버지의 처지를 비관해 극단적 선택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매경 2021년 1월 5일 27면

딸의 투신으로 윤갑근 전 대구고검장이 다시 조망 받았다. 1993년 초임검사를 시작으로 2017년 초까지 검사였던 그는 2018년 초 변호사 개업을 하고 국민의힘(미래통합당) 소속 정치인으로 변신했다. 짧았던 변호사와 정치인보다는 그에게 어울리는 ‘검사’란 직함으로 그의 행적을 추적해 ‘한국 검찰’의 현주소를 짚어본다.

황교안의 후배, 우병우의 동기

윤 검사는 박근혜 정부 왕수석 우병우와 사법연수원 동기이자, 황교안의 성균관대 후배다. 윤 검사는 지난해 4월 15일 21대 총선에서 청주 상당구에 미래통합당(현 국민의힘) 후보로 출마해 43.9%를 얻어 아깝게 낙선했다. 민주당 정정순 후보가 47.1%를 얻어 신승했다.

윤 검사는 정의당 김종대 현직 의원이 진보 표를 6.9%나 가졌는데도 낙선했다. 이 지역구엔 4선의 정우택 의원이 건재했는데도 당 공천관리위원회가 정 의원을 민주당 현역(도종환) 의원이 있는 청주 흥덕으로 밀어버리고 윤 검사를 공천했다. 황교안 당 대표와의 인연 때문이란 말이 무성했다. 총선 결과 정우택과 윤 검사 모두 떨어져, 국민의힘은 지역구 의석만 날렸다.

  조선일보 2016년 11월 7일 1면.

우병우 전 민정수석은 2016년 11월 7일자 조선일보 1면에 실린 사진 한 장으로 ‘법꾸라지’라는 존재의 의미를 확인해줬다. 조선일보는 이 사진에 ‘우병우를 대하는 검찰의 자세’라는 제목을 붙였다.

우 전 수석은 2016년 11월 6일 밤 9시25분께 서울중앙지검 11층에서 자신을 조사한 김석우 특수2부장실 옆에 딸린 부속실에서 점퍼 지퍼를 반쯤 내린 채 팔짱을 끼고 여유 있게 웃었다. 옆에는 수사검사와 수사관(한겨레 표현)이 ‘배꼽에 두 손’을 모은 채 꼿꼿한 자세로 우 전 수석을 바로 보며 서 있었다. 조선일보가 인터넷에 공개한 다른 사진에는 우 전 수석이 다가서자 수사검사와 수사관이 벌떡 일어나는 모습과 우 전 수석 변호인 곽병훈 변호사가 바지에 손을 넣은 채 파안대소하는 모습도 포착됐다. 수백 미터 떨어진 건물 옥상에 자리 잡고 11월 밤의 한기를 견디며 건진 이 사진은 조선일보 객원기자의 작품이었다.

수사를 맡은 윤 검사(특별수사팀장)는 검찰에 불려온 옛 동기(우병우)를 만나 차를 나눠 마셨다. 검찰 관계자도 두 사람의 차담회를 “국민적 비판 여론이 높은 상황이었다면 조심했어야 한다”고 했다.

  한겨레 2017년 12월16일 9면.

박근혜 정부의 특별감찰관이었던 이석수 변호사가 2016년 7월 우 전 수석의 여러 비리 의혹을 조사하면서 권력 내 갈등이 불거졌다. 최순실 게이트의 문은 이렇게 열리기 시작했다. 당시 우 전 수석은 아들의 의경 복무 관련 의혹(“코너링이 좋아” 서울경찰청 차장 운전병 발탁)과 가족회사 ㈜정강의 회삿돈 유용 의혹을 받았다. 박근혜 정부 검찰총장은 우병우-이석수 사건 특별수사팀장에 윤갑근 대구고검장을 임명했다. 우 전 수석과 함께 정윤회 문건 유출 사건에 호흡을 맞춰 승승장구했던 윤 검사를 수사팀장으로 임명하자 언론은 ‘우병우 라인에 맡긴 우병우 수사’라고 비웃었다. 결국 우병우는 빠져 나가고 이석수 특별감찰관만 이상한 사람이 됐다.

우 전 수석은 이석수 특별감찰관 수사 의뢰로 수사대상이 된 2016년 7~10월 법무부 검찰국장과 1000여 차례, 검찰총장과 12차례 통화했다. 그런데도 검찰 수사는 계속 헛발질을 했고, 결국 수사팀장 윤 검사는 혐의점을 찾지 못했다고 물러섰다.

윤 검사와 검찰이 잘못 끼운 첫 단추는 오래 갔다. 우 전 수석은 ‘법꾸라지’라는 별명을 얻어가며 네 차례 수사 끝에 2017년 12월 15일 구속됐지만 국민은 이미 검찰에 등을 돌린 뒤였다. 윤 검사는 우 전 수석 자택은 물론 휴대전화와 사무실 압수수색도 안 했다. 우 전 수석 아들의 의경 보직 의혹에도 통화내역조차 조회하지 않았다.

악덕 사채업자와 마약사범 잡던 검사

윤 검사가 처음부터 ‘정치검사’였던 것은 아니다. 사시 29회에 합격해 사법연수원을 19기로 졸업한 윤 검사는 1993년 경주지청에서 검사 일을 시작했다. 부산지검으로 옮긴 윤 검사는 형사사건에 능해 1995년 5월 가짜 매출전표를 만들어 신용카드 회원들에게 돈을 빌려주고 10억 원의 수수료를 뜯은 악덕 사채업자 7명을 구속했다.

석 달 뒤 윤 검사는 한국은행 부산지점의 지폐 유출사건을 수사하면서 사건을 축소하고 은폐하려는 한국은행 본점까지 압수수색했다. 90년대 후반엔 서울지검 강력부로 옮겨 1998년 9월 중국에서 만든 350억 원에 달하는 히로뽕 7kg을 밀반입한 마약사범 일당을 구속했다. 훗날 박근혜 국정농단 사건을 수사한 박영수 특별검사가 당시 윤 검사의 직속상관인 서울지검 강력부장이었다.

윤 검사는 2002년 고향인 청주지검에서 부부장 검사로 일하다가 수원지검 성남지청 형사3부장으로 옮겨선 2004년 총선을 앞두고 이장단 단합대회에 참석해 밥값을 내는 등 사전선거운동을 한 한나라당 박혁규 의원(경기 광주)을 기소했다. 경기도 광주시 개발 인허가와 관련 부동산 업자에게 금품을 받은 광주시 공무원을 구속하기도 했다.

윤 검사는 2005년 2월엔 부도가 나 월급을 못 주는 경기도 하남시 한 섬유회사의 어용 근로자대표가 근로복지공단에서 받은 중국과 태국, 필리핀 등 이주노동자 20명분의 체당금(체불임금) 6871만 원을 착복하자 이들을 구속했다.

  한겨레 2008년 6월 7일 8면(왼쪽)과 11월 6일 12면.

이명박 정부 들어 윤 검사는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장으로 참여정부 인사들을 수사했다. 먼저 2008년 5월 신성해운의 국세청 세무조사 무마 로비 사건에 연루된 정상문 전 청와대 총무비서관을 불구속 기소했다. 이 사건엔 이광재 의원도 연루돼 조사를 받았다. 2008년 7월엔 참여정부의 마지막 해수부장관을 지낸 강무현 전 장관을 구속했다. 강 전 장관은 참여정부 장관급 인사로는 처음 구속됐다.

영국 웨일즈대학에서 해운경영학 석사를 받은 강 전 장관은 해양을 전공한 전문가였지만 여러 곳에서 돈을 받아 ‘해피아’의 전형이기도 했다. 강 전 장관은 2004∼2006년 해수부 차관과 2007∼2008년 해수부 장관 때 △여객선업체 △항만준설공사 건설업체 △해수부 발주공사 설계업체 △선박조합 △항운노조 등에서 7850만 원을 받은 혐의로 1심에서 징역 2년, 항소심에서 징역 1년을 선고 받았다. 해수부 관련 업계에서 두루 뒷돈을 받았다.

2008년 참여정부 정치자금 적극 수사

2008년 들어 윤 검사는 참여정부 인사들을 주로 수사했지만 이때만 해도 할 만한 수사였다. 윤 검사가 참여정부만 뒤진 것도 아니다. 2008년 가을엔 납품업체로부터 3억여 원을 받은 남중수 KT 사장도 구속했다.

그러나 검찰의 참여정부 정치자금 수사가 시작되면서 윤 검사는 2008년 11월 김민석 민주당 최고위원을 구속했다. 김민석 위원은 검찰 수사가 ‘표적수사’라며 한 달간 당사 농성 끝에 여론에 떠밀려 출두했지만 구속됐다. 김 위원은 2009년 3월 1심에서 집행유예로 나와 2015년까지 피선거권을 잃었다. 참여정부로 향한 검찰 수사는 2009년 5월 노무현 전 대통령의 비극적 죽음까지 계속됐다. 이 과정에 윤 검사는 상당한 역할을 했다.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 윤갑근 부장은 2008년 연말 KTF 사장에게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이강철 전 청와대 시민사회수석과 노무현 전 대통령의 형 노건평 씨를 구속하고 우리들병원과 태광실업을 뒤지는 등 참여정부 수사를 총괄하는 정치검사가 됐다.

참여정부 정치자금 수사는 돈이 오갔으니 수사할 명분이라도 있었다. 그러나 시국선언한 교사들 징계를 미룬 김상곤 경기도교육감을 기소할 때부터 윤 검사는 서서히 한쪽으로 기운 정치검사로 변해갔다. 수원지검은 2010년 3월 김상곤 교육감을 직무유기로 기소했다. 윤 검사는 당시 수원지검 2차장이었다.

참여정부 수사엔 맹렬히 달려들었던 윤 검사는 2010년 가을 이명박 정부 비리 의혹엔 꼬리 자르기 수사로 일관하면서 정치색을 더해갔다. 검찰은 2010년 여름에 구속한 금융 브로커들이 청와대 인사에게 돈을 줬다는 진술을 확보하고도 추가 단서가 없다며 수사를 접었다. 당시 윤갑근 서울중앙지검 3차장은 “구체적 인술이 없다”며 청와대 쪽을 수사할 의지가 없음을 명확히 했다.

검찰은 2012년엔 신한은행 횡령과 배임사건을 수사하다가 사라진 3억 원이 이명박 대통령의 형 이상득에게 흘러갔다는 증언을 듣고도 재수사를 외면했다. 당시 윤갑근 서울중앙지검 3차장은 기자간담회에서 “새로 조사를 시작할 정도에 이르지 못했다”며 덮었다.

이런 일화도 있다. 민주당이 2011년 1월 “한명숙 전 총리에게 9억 원을 줬다고 진술했다가 법정에서 번복한 한만호 씨의 부모를 검찰이 따로 만나 협박했다”고 공격하자, 윤갑근 서울중앙지검 3차장은 “검찰이 한 씨 부모를 카페에서 만났지만 회유나 협박을 한 사실이 없다”고 해명했다. 이즈음 윤 검사는 여야 공방에서 한쪽을 노골적으로 편들었다.

2010년부턴 이명박 정부 ‘감싸기’ 수사

  한겨레 2010년 3월 6일 1면 톱(왼쪽)과 2012년 7월 17일 10면.

윤 검사에겐 정치검사라는 꼬리표를 뗄 기회도 있었다. 윤 검사는 대검 강력부장 때인 2013년 탈북 서울시 공무원 유우성 씨를 국정원이 증거까지 조작해 간첩으로 만든 사건의 진상조사팀장을 맡아 “사실과 다른 내용을 흘린다”며 국정원을 향해 강한 불만을 드러냈다.

그러나 윤 검사는 증거를 조작한 국정원 김모 과장을 구속하고도 국가보안법상 날조 혐의를 적용하지 않은 채 수사를 끝냈다. 국정원과 검사의 잘못된 초동 수사를 바로잡을 기회였지만 덮고 말았다.

  한겨레 2014년 3월 19일 9면.

2013년 4월 검사장 승진에서 탈락해 검사복을 벗었던 우병우 전 수석과 달리 윤 검사는 2015년 대검찰청 반부패부장으로 영전해 박근혜 정부를 뒤흔든 성완종 게이트 특별수사팀을 총괄하면서 사건을 교묘히 덮는 데 한몫 했다. 그해 12월 대구 고검장에 임명됐다.

윤 검사는 2016년 8월 우 전 수석을 수사하는 특별수사팀장으로 역시 사건을 덮었다. 당시 윤 검사는 통화내역도 뒤지 않다가 세 달 가까이 지나 우 전 수석 부부의 휴대폰을 확보했지만 아무것도 없었다. 윤 검사는 이 수사를 끝으로 정권이 바뀌자 검사복을 벗고 고향 청주에서 출마를 준비했다. 때마침 대학 선배 황교안이 당권을 장악해 쉽게 지역구를 받았지만 3% 차로 졌다.

문재인 정부에서도 검찰은 여전했다. 부동산 투기를 대하는 국민들 따가운 시선을 피하려고 돈 있는 이들은 사모펀드를 즐겨 활용했지만 검찰은 오직 조국 때려잡기에만 사모펀드 수사력을 집중했다. 검찰은 사모펀드 가해자들이 여야 양쪽에 고루 포진해 있는데도 선별 수사로 일관했다.

  한겨레 2020년 12월12일 6면.

지난해 4월 라임 펀드의 물주였던 김봉현 전 스타모빌리티 회장과 이종필 전 라임 부사장을 구속한 검찰은 윤 검사(국민의힘 충북도당위원장)가 라임에 연루된 진술을 확보하고도 반 년 넘게 미적거렸다. 라임은 우리은행이 2019년 4월 라임 펀드 판매를 중단하자 판매 재개를 위해 당시 우리은행장과 성균관대 동문인 윤 검사(당시 변호사)를 통해 로비를 시도했다는 것이다.

검찰은 마지못해 지난해 12월 윤 검사를 구속했다. 윤 검사는 “정상적 법률자문 계약을 체결하고 자문료를 받았다”고 했지만 법원은 “도주와 증거인멸의 우려가 있다”며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검사장에 대검 반부패부장까지 맡았던 윤 검사는 이제 옥중에서 자신의 결백을 증명해야 하는 처지가 됐다.

그나저나 윤 검사를 가까스로 이기고 당선된 더불어민주당 정정순 의원도 지난해 11월 3일 21대 국회의원 중 첫 구속자 신세가 됐다. 청주 부시장과 충북도 행정부지사를 지낸 정 의원은 선거 때 불법 정치자금 수수와 회계부정 혐의를 받고 있다. 정 의원마저 의원직을 잃으면 청주 상당구는 국회의원을 다시 뽑아야 한다.

검찰이 김기춘과 홍준표를 롤모델로 여기는 세상을 끝내려면 민주당 권력으론 어림없다. 더러운 손으론 국민의 검찰로 만들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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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경락

    원인이 무엇인지 알아야 치료가 되어 증상이 좀 가라앉을텐데....정치는 99%의 말과 1%의 정의(행동)로 이루어진다라는 에디슨의 말이 생각납니다.....늘 건강하시기를

  • 니가 머신디

    문경락 얄마
    대통령을 하고 싶으면 곱게 하던가
    개나 소 친구 주제에 까불고 자빠졌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