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사람이 있습니다”

[연정의 바보같은사랑](129) 대구 일원 도시가스 검침·점검 노동자들의 파업 투쟁 이야기④

[필자주] 대구시와 경북 경산시·고령군 등에서 도시가스 검침·점검 안전관리 업무를 하고 있는 여성노동자(이하 ‘검침·점검 노동자, 공공운수노조 대구지부 대성에너지서비스센터지회 소속) 240명이 지난 4월 2차 파업에 이어 도시가스 검침기간인 5월 1일부터 8일까지 3차 총파업을 하고 있다. 이번 3차 파업에는 AS기사 노동자들도 함께 할 예정이다. 파업에 참여하는 노동자들은 노동조합 인정과 연장근로수당 지급, 적정업무량, 유급병가 부여, 차량유지비 지급 등을 요구하고 있다. 회사는 3월에 이어 4월에도 파업에 참가한 노동자들의 급여를 70~80만원 삭감했다. 하지만, 대성에너지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이에 굴하지 않고 힘 있게 3차 파업을 전개하고 있다. 이들의 네 번째 이야기를 독자들과 나누고자 한다.

회장님, 우리도 사람입니다

4월 2일 오후, 대구 중구 남산동 대성에너지 앞. 대구지역 도시가스 검침·점검 노동자들의 2차 파업 두 번째 날 투쟁 결의대회가 한창이다. 6개 센터 중에 3개 센터 99명의 노동자가 이월드에서 3km 거리를 행진해서 왔다. 초여름 같은 날씨에 그늘 한 점 없는 땡볕 아래 여성노동자들이 ‘문화노동자’ 연영석 씨가 부르는 노래에 맞춰 깃발을 흔들고 어깨춤을 추며 집회에 함께 한다.

50시간 60시간 70시간 80시간 뺑이 쳤지
때로는 친구처럼 때로는 가족처럼 하자기에
아침부터 새벽까지 몸 버리고 속 버리고 일했는데
이제 와서 필요 없다 이제 와서 나가라니 웬 말이냐
이씨 니가 시키는 대로 내가 다 할 줄 아나
이씨 니가 시키는 대로 내가 당할 줄 아나
- 연영석, <이씨 니가 시키는 대로 다 할 줄 아나>

  4월 2일 대구 대성에너지 앞에서 2차 파업 투쟁 집회를 진행하고 있는 대성에너지서비스센저지회 조합원들 [출처: 연정]

그랬다. 소속된 센터와 동료, 그리고 고객에게 작은 피해라도 갈까봐 가족 같은 마음으로 친구 같은 마음으로 새벽부터 밤까지 몸이 부서지도록 일해 왔다. 하지만, 회사는 20년 만에 처음으로 ‘법 좀 지키라’는 요구를 했다고 차량유지비를 빼고 나면 최저임금도 안 되는 임금을 삭감했다. 한 번 앉고 일어날 때마다 ‘아이구’ 소리가 절로 나오는 중년 여성노동자들이 이 자리를 지킬 수밖에 없는 이유다.

대성에너지 건물 앞에는 ‘축 수상 대성그룹 김영훈 회장 2020년 은탑산업훈장 한국에너지대상’이라는 현수막이 걸려있다. (김영훈 회장은 세계 민간에너지기구 세계에너지협의회(World Energy Council, WEC) 회장을 맡고 있다.)

“대성그룹 김 영자 훈자 회장님이 은탑산업훈장을 받으셨다고 합니다. 여러분, 그거 우리가 뼈 빠지게 일해서 받은 상입니다. 우리가 뼈 빠지게 일해서 회장님이 상 받았는데, 거기에 일조한 우리 노동자들 뭐 하나 있어야 되는 거 아닙니까? 우리가 언제 연봉 억 이상 달라고 했습니까? 본사로 정규직 시켜달라고 했습니까? 법이 정한 연장수당 꼭 주십시오. 일하다 다치면 아픈 것도 서러운데 나가라고 하지 마시고 마음 편하게 치료받고 다 나으면 꼭 돌아오라고 격려해주십시오. 우리가 투쟁하는 게 그거 아닙니까? 사람을 사람 취급 좀 하면서 사십시오. 우리도 사람입니다. 여기 이 앞에 사람이 있습니다.” (대성에너지서비스센터지회 이상환 사무국장)

“맞습니다!”

  대구 중구 남산동 대성에너지 사옥에 붙어있는 현수막 [출처: 연정]

시민 세금으로 기부금 내고 채용 갑질까지

대구지역 도시가스 검침·점검과 AS업무는 대구광역시가 대성에너지에 수의계약으로 용역을 주고, 대성에너지가 다시 대성에너지서비스센터에 재용역을 주는 2중 하도급으로 운영되고 있다. 대성에너지는 대구시와 경북 일부 지역 120만 가구에 독점적으로 도시가스를 공급하여 연간 1조 원에 가까운 매출을 올리고 있다.(1983년에 설립된 대구도시가스(주)는 2009년 대성홀딩스(주)에서 물적분할 하면서 회사명을 대성에너지로 변경했다) 대성에너지는 2020년 매출액만 7,410억 순이익 144억으로 대구지역 매출액 3위 기업이다(2019년, 대구상공회의소). 올해 대성에너지 주주총회에서 결정한 주주 배당 총액만 68억7천5백만 원에 달한다.

이처럼 30년 가까이 대구지역에서 독점적으로 도시가스를 공급하며 막대한 수익을 챙겨온 대성에너지를 바라보는 지역사회의 시선은 곱지 않다. 대성에너지는 이번 문제 뿐만 아니라 그동안 갑질과 부도덕성에 관해 대구지역 시민사회와 시의회 등으로부터 비판과 비난을 지속적으로 받아왔다. 타 지역에 비해 도시가스 요금이 비싸다는 문제제기가 있었는가 하면, 가스 공급 원가에 대성에너지가 후원금으로 지출하는 기부금을 포함시켜 시민들이 낸 세금으로 ‘착한 기업’ 이미지를 만들었다는 비난을 받기도 했다. 대성에너지는 공급비용 산정 시 기부금이 제외되자 기존에 후원하던 시민 구단에 대한 후원을 중단하여 비난을 받았다. (<경안일보> “가스 독점 대성에너지에 비난 가열” 2013년 8월 18일 기사 참조)

그런가하면 대성에너지는 2015년 직원 채용 시험에서 예정에도 없던 영어 프리젠테이션 면접을 포함한 세 차례 면접을 하고도 지원자를 한 명도 채용하지 않아 채용 갑질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온라인 취업 커뮤니티를 통해 이 사실이 밝혀지면서 취업 준비생들이 공분하게 되고, 대구청년유니온에서는 대성에너지 본사 앞에서 ‘희망고문상 시상식’을 진행하기도 했다.

  2015년 9월 3일, 대성에너지 본사 앞에서 ‘대구청년유니온’ 주최로 대성에너지의 채용 갑질과 관련한 ‘2015년 희망고문상 시상식’이 진행되고 있다. [출처: 대구청년유니온]

이러한 대성에너지의 행태에 대해 대구시청 물에너지과 담당자는 도시가스 업무를 여러 명이 하기 때문에 본인은 관련된 내용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얘기하기 어렵다고 했다. 도시가스 사업은 조건만 맞으면 허가가 나가는 것이고, 대성에너지가 그 조건에 맞아 허가를 받은 것이라며 대성에너지가 대구지역 도시가스를 독점하는 게 아니라고 했다. 담당자는 도시가스 사업이 배관 구축 등 자본이 많이 들어가는 업이기 때문에 다른 회사들이 들어오기 힘든 거 아니겠냐고 했다. 또, 노동조합과 필자가 잘못 알고 있는 내용이 있다고도 했다

용역 회사가 적자 나면 이 사업을 누가 하겠어요?

지난해 11월 노동조합 설립 이후 노조는 사측과 단체교섭을 진행했으나 회사는 노동조합이 제시한 단체협약안 92개 조 중에 90개 조를 거부하며 시간을 끌었다. 회사는 돈이 없다며 돈이 들어가는 요구는 단 한 개도 들어줄 수 없다고 했다. 연장근로수당도 차량유지비도 안된다고 했다. 돈이 안 들어가는 두 가지만 들어줄 수 있다고 했다. 그것은 공정한 직원 채용과 임산부 노동자에 대한 업무 조정이다. 검침·점검 노동자들의 경우 중년 이상이 거의 대부분인 현실을 고려할 때, 후자는 지금 당장의 실효성은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

“대구시 하청의 재하청인 대성에너지서비스센터는 노동조합과의 교섭 내내 적자 상황이 지속되어 자본잠식 상태라 해줄 수 있는 게 아무 것도 없다는 얘기만 계속 했어요. 용역업체가 적자가 나는 구조라는 게 말이 됩니까? 공장처럼 원자재가 필요해서 재고를 쌓아두는 것도 아니잖아요. 사무실, 펜, 일하는 사람만 있으면 그 수수료로 먹고사는 게 용역회사에요. 그런 용역 회사가 돈이 없고 적자라서 해줄 수 있는 게 없다고 해요. 용역 회사가 적자 나면 이 사업을 누가 하겠어요? 대성에너지는 매년 흑자가 나고 배당도 은행 이상으로 어마어마하게 하고 있거든요.” (대성에너지서비스센터지회 최규태 지회장)

보통 대성에너지에서 퇴직한 임원들이 대성에너지서비스센터 센터장으로 오는데(노동자들은 대성에너지 임원들이 마치 파견근무를 나오듯이 대성에너지서비스센터 센터장으로 왔다고 이야기한다) 이들이 ‘몇 년 만에 다 건물 사고, 사촌까지 먹여 살린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검침·점검 노동자들 사이에는 센터장 자리 한 개 없어지면 노동자들 월급이 10만원 오른다는 농담 아닌 농담이 있다고 했다. 그런데도 회사는 늘 적자라고 했다. 수십 년간 대구에서 독점적으로 도시가스 공급을 하여 막대한 수익을 올리고 있는 회사가 지분 100%를 갖고 있는 회사에서 매년 적자가 난다니 이상한 일이다.

최규태 지회장은 매년 대성에너지서비스센터에서 대성에너지의 장기 체납 세대 채권을 사오고 있는데, 그것이 서비스센터 적자의 원인일 수 있다고 했다. 매년 서비스센터로 채무금액을 몰아 장기 적자로 자본잠식 상태를 만들고 대성에너지는 이익률을 올려 배당금 잔치를 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그러면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는 실질적으로 최저임금도 안 되는 임금을 주며 해마다 업무량을 늘리며 계속 쥐어짰다.

5년째 검침·점검 업무를 하고 있는 마주현 씨는 그 어렵다는 점검율 100%를 서너 번 달성해 봤다고 했다. 점검율 100% 달성 비법을 묻자 고객 시간에 무조건 다 맞춰주면 된다고 한다. 고객에게 계속 연락하고 점검을 거부하는 고객은 설득까지 했다는 것이다.

“빨리 갈 때는 새벽 6시 40분부터 밤 9시 반 정도까지 했어요. 99% 하시는 분들은 진짜 많은데, 100%가 힘들거든요. 그러니까 더 열심히 매달리는 거예요. 상금, 포상 저희는 그런 거 없어요. 그 당시에는 뿌듯했죠. 점검을 3번 받지 않으면 계량기를 잠그게 되는데, 그러면 어차피 저희가 다시 그 고객 시간 맞춰서 가야돼요. 그러느니 차라리 처음에 한 번 맞춰주는 게 낫다고 생각하고 일을 하는 거죠. 그런 게 일하는 사람들끼리 경쟁처럼 되기도 해요.” (마주현, 검침·점검노동자)

이렇게 죽어라 일을 해서 100% 달성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회사는 “잘 했다”는 칭찬 한 마디 하지 않았다. 그리고 적자라며 더 열심히 하라고 헸다. 주현 씨는 요즘 검침을 나가면 코로나 때문에 각 세대마다 사용량이 엄청난데도 회사는 적자 타령을 멈추지 않았다고 했다.

  대구 중구 남산동 대성에너지 사옥 [출처: 연정]

남의 회사에 이래라 저래라 할 수 없다?

대성에너지 앞에서 검침·점검노동자들이 이틀 동안 집회를 하는 내내 대성에너지 정문 셔터는 내려져 있고, 주차장 쪽 입구 역시 출입문이 닫혀 있었다. 밖에 나와 집회 내용을 메모하던 대성에너지 직원은 대성에너지서비스센터는 대성에너지의 계열사로 대성에너지와는 별개 회사라고 했다.

“저희도 빨리 처리 되었으면 좋겠지만, 전혀 관계 없는 남의 회사에 가서 이래라 저리라 할 수는 없잖아요. 대성에너지는 검침원들이 일을 할 수 있도록 위탁을 맡기는 거죠.”

대성에너지 직원은 법을 위반하면 그 회사가 잘못한 게 맞겠지만, 대성에너지가 그걸 판단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니라고 했다. 다른 사안들에 ‘남의 회사 일’이라는 말로 일관하던 이 직원은 검침·점검 노동자들의 연장수당 등 체불임금 이야기가 나오자 이것만은 참을 수 없다는 듯이 정색을 하며 그런 이야기를 처음 들어본다고 했다. 그리고 검침·점검 노동자들이 법적으로 출퇴근 시간이 일정하지 않은 간주근로자에 들어간다고 힘주어 이야기했다.

회사(대성에너지) 측 입장이 궁금하다고 하자 대성에너지 직원은 담당자 연결을 해주겠다고 했다. 그런데 뜻밖에도 대성에너지서비스센터에서 연락이 왔다. 서비스센터의 담당자라고 하는 직원은 검침·점검 노동자 문제와 관련해 아는 내용이 별로 없었다. 노동자들의 요구와 관련해서는 대구시에서 용역을 하고 있는데 그 결과가 나와 봐야 알 수 있다고만 했다. 대구시에서 에너지경제연구원을 통해 적정 인력과 인건비 금액, 기타 운영경비 등에 관한 비용 산정을 하는 용역을 진행하고 있는데, 윗선에서 이루어지는 내용이라 하청회사인 서비스센터는 정확하게 모른다고 했다. (대구시에서는 공급비용 산정용역은 본인들이 하는 게 맞지만, 서비스센터 인력운영과 임금 등에 대해서는 대성에너지가 에너지경제연구원 용역을 진행하고 있고 그 결과에 따라 결정될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대성에너지 직원은 전혀 모르고 관련 없는 일이라고 했다.)

서비스센터 직원은 3월 임금 삭감과 관련해서 “태업(준법투쟁)과 파업 기간에 생산성(검침, 점검)이 떨어진 부분에 대해 무노동 무임금 적용을 하고 산정을 했던 부분”이라며, 점검보다 검침 쪽 삭감 금액이 크다고 했다. 만약 3월 파업 기간 전체에 대해 급여 공제가 되었다면 주휴수당을 포함한 일주일 치 임금이 빠지게 되어 삭감 금액이 더 컸을 거라고 이야기했다. 똑같이 파업에 참여한 노동자 중에도 업무량이 더 많았던 노동자가 더 많이 삭감되는 등 기준이 불명확한 점에 대해 묻자 서비스센터 직원은 디테일한 것은 따지기가 어렵다고 했다. 그리고 다른 언론사와 통화를 해야 한다며 통화 종료를 요청했다. 노동자들은 서비스센터가 임금 삭감 기준을 누구에게는 파업 참가 때문이라고 하고, 또 누구에게는 업무량 때문이라고 하는 등 일관되지 않은 답변을 하고 있다고 했다. 정당성이 없기 때문에 그러는 거 아니겠냐고.

  5월 4일, 대성에너지 본사 앞에서 3차 파업투쟁 집회를 기다리고 있는 검침.점검 여성노동자들 [출처: 연정]

공공운수노조 법률원 호명진 노무사는 검침량이나 점검량에 미달되었다는 이유로 임금 삭감을 하는 것은 근로기준법 위반이라고 지적한다.

“근로기준법 상 임금이라는 건 기본 소정 근로시간의 대가로 지급을 하는 것이기 때문에 검침량 점검량 수준에 따라 차이가 날수는 없는 겁니다. 그걸 별도로 성과급 수당으로 주었던 게 아니고서야 검침량 점검량에 미달되었다고 해서 특정한 달의 월급을 더 적게 준다는 건 말이 안 되는 겁니다.” (호명진 노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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