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계를 쓰지 않고 농사짓고 싶다

[유하네 농담農談] 가을 농사를 시작하며 밭에 트랙터를 올리다

  트랙터로 갈아 뒤집은 밭 [출처: 이꽃맘]

땡볕에서 준비하는 가을

24절기 중 13번째. 1년 365도를 도는 지구가 135도에 도착하는 가을의 입구. 입추가 지났습니다.

아침저녁으로 부는 바람이 시원해졌습니다. 매일의 날씨를 위성 지도로 확인하는 요즘. 조상들의 절기가 잊히고 있지만, 자연과 더불어 사는 유하네에게는 날씨 앱만큼 중요한 것이 절기입니다. 낮의 길이가 길어지는 춘분이면 감자를 심고, 낮의 길이가 가장 긴 하지에는 감자를 캡니다. 중복 즈음인 소서에는 들깨를 심고, 가을을 시작하는 입추가 오면 가을 농사를 시작합니다. 찬 이슬이 내리는 한로가 되면 땅속에서 겨울을 날 마늘과 양파를 심습니다.

24절기 중 13번째 절기인 입추를 지나니 신기하게도 아침저녁으로 시원한 바람이 붑니다. 절기에 맞춰 가을 농사를 시작합니다. 감자를 심었던 밭을 정리합니다. 마늘과 양파, 감자를 캔 밭에는 여름 내 풀들이 자랐습니다. 가슴 높이만큼 자란 풀들이 밭을 가득 채웠습니다.

유하 파파는 낫을 들고, 유하 엄마는 외발 수레를 끌고 밭에 발을 딛습니다. 유하 엄마는 엄두가 안 난다며 밭 앞에서 어물어물하지만, 유하 파파는 잘 간 낫 한 자루를 들고 “내가 먼저 치고 나갈 테니 뒤에 오면서 두엄장으로 옮겨”라고 합니다. 전장에 나가는 장수 같습니다. 쓱쓱 풀을 베는 소리가 유쾌합니다. 레이크를 들고 누운 풀을 긁습니다. “풀도 다 재산이야”라며 열심히 두엄장으로 옮깁니다. 신나게 풀을 치고 있는데 앞집 아저씨가 혀를 끌끌 차십니다. “야! 그렇게 해서 언제 풀을 다 치우냐.” 걱정 어린 목소리입니다. 땡볕에 두 시간쯤 열심히 낫질했지만 밭의 10분의 1 정도밖에 풀을 치우지 못했습니다.

트랙터를 밭에 올리다

퇴근하던 대추밭 삼촌이 “내가 트랙터를 가져올 테니 밀어버리자”라고 합니다. 대부분의 농부는 보통 한 작물을 키워 수확하고 나면 작물 부산물들은 모두 치워버리고 다음 작물을 심기 위해 트랙터로 밭을 갑니다. 트랙터가 지나간 자리에는 언제 무엇이 자랐는지 모르게 풀하나 남지 않습니다. 그 위에 다시 이랑을 만들고 비닐을 치고 새 작물을 심습니다.

나무만큼 자란 명아주 줄기를 낫으로 베며 유하 파파는 “기계 안 쓴다니까요”하고 웃습니다. 유하네는 농기계가 딱 두 개 있습니다. 강릉에 사는 선배 농부가 그냥 갖다 쓰라고 주신 오래된 관리기 하나, 일을 도와주러 와서 온종일 낫질을 하던 유하 파파 후배가 이렇게는 안 된다며 선물로 사준 부탄가스 예초기 하나. 아! 하나 더 생겼네요. 올해 ‘여성 농민 노동 경감 지원사업’에 당첨돼 받은 60리터짜리 충전 분무기입니다. 도저히 손으로는 어려운 작업을 하는 최소한의 농기계입니다.

유하네 밭을 두고 영산마을 웃담에서 한바탕 토론이 벌어집니다.

“트랙터로 갈아버리면 편하지만, 땅이 딱딱해져요. 사람이 밟고만 지나도 땅이 딱딱해지는데 저 무거운 트랙터가 밭 위에 올라가면 어떻겠어요.”

“그래도 지금은 풀들이 너무 심해. 너 풀 치우다가 배추 못 심고 가을 지나간다.”

“위에 있는 풀들을 치운다고 해도 뿌리들은 어쩔 거야? 저거 다 어찌 뽑아낼 거야?”

“그나마 가벼운 관리기로 치면서 레이크로 긁어내야죠.”

“야! 그러다 가을 된다니까!”

사실 중간중간 풀을 베 주며 관리했어야 하는데 다른 밭에 신경 쓰느라 배추 심을 밭을 돌보지 못했습니다. 나무처럼 자란 풀을 치우며 시간 내 할 수 있을까, 유하 엄마는 몰래 한숨을 쉬기도 했습니다. 채소는 시기에 딱 맞춰 심지 않으면 수확량이 현저히 떨어지기 때문에 마음이 급해집니다. 열띤 토론에 유하 엄마는 “우리 이번 한 번만 트랙터 쓰자. 다른 일도 많은데 시간 내에 배추를 심으려면 써야 할 것 같아”라고 유하 아빠에게 솔직한 마음을 털어놓습니다. 고민하던 유하 파파가 드디어 결단을 내립니다. 유하 파파도 걱정이 됐나 봅니다. “딱 한 번만 쓰자”하고 웃습니다. “그래, 그래….” 유하 엄마도 웃습니다. 유연한 원칙 적용입니다.

  배추싹을 심었습니다 [출처: 이꽃맘]

결국 트랙터가 도착하고 한 시간도 못 돼 밭을 정리했습니다. 커다란 트랙터가 몇 번 왔다 갔다 하니 큰 풀들이 끊어져 땅속으로 들어가고 포슬포슬한 밭이 완성됩니다. 퇴비를 뿌리고 몇 번 뒤집어 이랑과 고랑을 칩니다. 배추와 무, 쪽파를 심고 열무며 총각무까지 뿌리고 나니 가을 농사의 시작이 금세 완성됐습니다. 시기에 딱 맞춰 심으니 그간 안 왔던 비도 내려줍니다. 오랜만에 내린 비에 배추도 뿌리를 잘 내려 잎을 올리고, 쪽파도 삐죽삐죽 파란 잎을 올립니다. 이번 가을 농사는 풍년일 듯합니다.

기계를 쓰지 않고 오롯이 두 손으로

유하네가 기계를 최소한으로 사용하는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일단 지구를 힘들게 하는 화석연료를 사용하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지구가 뜨거워지는 가장 큰 이유가 탄소 때문이라지요. 그래서 석탄발전소를 없애고, 태양광이며 바람을 이용해 에너지를 만들어야 한다고 합니다. 자연과 더불어 살기로 한 유하네도 되도록 화석연료를 사용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유하네는 트랙터 대신 삽질로 땅을 뒤집고, 낫으로 풀을 멥니다. 물론 삽으로는 어려운 밭은 작은 관리기의 힘을 빌리기도 합니다.

또 하나의 이유는 땅의 힘을 살리기 위함입니다. 트랙터로 가는 밭이나 논은 보기엔 흙이 포슬포슬해 보이지만 땅속 20~30cm만 들어가도 딱딱한 경반층이 나타납니다. 경반층은 무거운 농기계 사용으로 만들어진 딱딱한 땅입니다. 땅이 다져져서 식물의 뿌리가 뚫고 들어갈 수 없으니 공기도, 물도 통하지 않고 퇴비며 농약 찌꺼기들이 쌓여 썩어갑니다. 농부들이 늙어가니 기계를 사용하지 않고서는 농사를 지을 수 없습니다. 썩어가는 땅 위에 다시 퇴비를 뿌리고 딱 필요한 만큼의 땅만 갈아 쓰는 악순환이 계속됩니다. 유하네는 악순환을 깨고 싶습니다.

악순환을 깨자!

정부는 농촌의 노령화를 극복한다며 각종 첨단 기계들을 선전합니다. 농약 칠 사람도 부족하니 드론을 띄워 농약을 치겠다고 합니다. 첨단기계들을 사용해야 부자 농부가 될 수 있다고 합니다. 빚을 지고 화석연료를 팡팡 쓰며 땅을 죽이는 기계를 늘리는 것으로는 농부들을 살릴 수 없습니다.

“유기농처럼 무기계 채소도 인정해줬으면 좋겠다. 무기계로 채소를 키울수록 비싸게 제값을 쳐주면 기계사용이 줄지 않을까?” “진짜 그랬으면 좋겠다. 그럼 우리 배추가 제일 비싸게 팔리겠다. 히히.” 호미와 낫을 든 초보 농부의 손에 힘이 들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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