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부문, 정부 고용안정·근로조건 대책 ‘위반 사례’ 속출

공공운수노조, 사례 발표…고용노동부에 해결방안 촉구

공공부문 비정규직 노동자의 고용안정과 근로조건을 보호하기 위해 마련된 정부 대책을 위반하는 사업장이 속출하고 있다. 노조는 고용노동부가 이를 알고 있음에도 수수방관하고 있다며 규탄하고 나섰다.


공공운수노조는 13일 오전 서울고용노동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정규직 전환 가이드라인 △용역근로자 근로조건 보호 지침 △민간위탁 노동자의 근로조건 보호 가이드라인 등을 제대로 지키지 않은 사업장이 전국적으로 확인되고 있다고 밝혔다.

노조가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가이드라인을 위반했다며 공개한 사업장과 업무는 △경산시 상하수도수도검침 △경산시 생활폐기물 수집·운반 △한국수력원자력 월성원전 방사선 관리 △청주시 생활폐기물 수집·운반, 음식물 폐기물 수집·운반 △법원 전산직 △국민건강보험공단 고객센터 등이다. 더구나 이 중에는 용역근로자 근로조건 보호 지침과 민간위탁 노동자의 근로조건 보호 가이드라인도 따르지 않는 곳도 있었다.

“근거 없는 민간위탁 결정…
업체, 계약직 사용으로 인건비 착복“


경산시 생활폐기물 수집·운반의 경우 민간위탁 운영 방식을 유지하기로 결정된 상태다. 이에 대해 노조는 경산시가 정부의 민간위탁 정책추진방향의 민간위탁 적정성 판단 기준으로 제시된 공공성 측면에 대한 조사와 분석 없이 민간위탁 현행 유지를 일방 추진해 고용노동부에 보고했다고 지적했다. 서비스의 중요성, 수혜 대상, 서비스 공급의 지속성, 서비스 중단의 파급효과 등이 검토 대상이지만 이에 관한 내용이 없다는 것이다. 노조는 “이를 충실히 수행한 서천군과 무안군의 경우엔 직접 수행으로 결정했다는 점을 비교하면 경산시의 민간위탁 유지 결정은 근거도 없으며 절차적으로 문제가 있다”라고 했다.

또한 노조에 따르면 경산시의 생활폐기물 수집·운반 업무를 수행하는 민간위탁 업체는 계약직을 고용하는 식으로 노동자들의 인건비를 갈취하고 있었다. 정부의 용역근로자 근로조건 보호지침은 “예정 가격 산정 시 적용한 노임에 낙찰률을 곱한 수준 이상의 임금을 지급할 것”이라고 명시하고 있다. 하지만 업체는 경산시로부터 해당 금액을 받으면서도 일부 노동자를 계약직으로 고용해 상술한 임금에 미달하는 금액만 지급했다.

최종현 경산환경지회 지회장은 “경산시는 민간위탁 유지 방안을 답으로 정해놓고 심층논의기구를 무력화시켰다. 이 때문에 37일간 경산시청 앞에서 천막 농성을 하고 있다”라며 “이 과정에서도 민간위탁 업체는 계약직 노동자들 해고했다. 그리고 이들은 계약직을 쓰면서 인건비를 착복하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경산시는 수도 검침 업무에 대해서도 민간위탁을 유지하겠다는 입장이다. 정부는 상하수도검침원의 경우 정규직 전환 가이드라인과 오분류 판단 등을 통해 1단계 전환 절차에 따른 전환을 권고한 바 있다. 이에 따르면 전환 예외 사유에 해당하지 않을 시 노사전협의체를 구성해 정규직 절차를 추진해야 한다.

정우철 수도검침분회 사무장은 “경산시는 수도 검침 노동자들을 정규직 전환할 수 없다는 이유에 대해 우리를 정규직 전환하면 다른 곳도 해줘야 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말도 안 되는 근거를 들고 있다”라고 말했다. 이어 “고용노동부는 2019년도에 수도 검침 업무를 1단계 대상으로 정정했다. 그래도 정규직 전환은 이뤄지지 않았다”라며 고용노동부의 관리·감독이 필요하다고 촉구했다.

생명·안전 업무 노동자도 비정규직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 월성원전 방사선 관리 노동자들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이들의 업무는 정부 가이드라인의 1단계 전환 대상인 ‘2년 이상 지속’되는 상시·지속 업무에 해당하지만, 정규직 전환 논의는 멈춰있다. 노조는 2년 이상 지속되는 업무임에도 한수원과의 계약 종료로 고용 단절이 반복된다고 설명했다. 특히나 정부가 생명·안전 업무에 대해 직접고용을 강조했던 만큼 방사선 관리 업무는 직접고용이 원칙이 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학현 월성원자력방사선관리지회 지회장은 “방사능 유출 사고 시 최일선에서 국민의 생명을 지켜야 할 노동자는 비정규직 노동자다. 지난해 월성원자력발전소 방사능 검출 논란 당시 방사능 물질을 측정·처리하는 방사선 안전 관리 노동자는 비정규직 노동자였다”라며 “올해는 2년 계약이 종료되는 전국 14개 원자력 발전소의 방사선 안전관리 용역업체 입찰이 진행되는 해다. 어떤 업체가 입찰 되느냐에 따라 실직자가 되기도 하고 임금이 깎이기도 한다”라고 전했다.

민간위탁 정규직 전환, 지자체·노동부 서로 떠넘기기

민간위탁 사무의 경우 직접고용으로 정규직 전환이 된 사례는 사실상 없었다. 정부가 지난 2019년 발표한 ‘민간위탁 정책추진방향’을 통해 ‘개별 기관이 자율적’으로 민간 위탁 사무의 타당성을 검토해 적정 수행방식을 결정하도록 했기 때문이다.

노조는 민간 위탁 운영의 비용 관련 문제 등 외주화로 인한 문제점을 들었다. 현재 폐기물 수집·운반 사무를 대행하는 민간업체들은 전문적인 기술과 장비, 시설을 갖추지 않은 사실상 인력공급업체인데 이들에게 들어가는 비용이 과하다는 것이다. 노조는 “이 업체들에는 매년 전체 수수료의 약 10%에 해당하는 이윤, 약 5%에 해당하는 일반관리비가 지급된다”라며 “이는 분명 과다한 수준”이라고 했다. 이어 “다수의 업체에서 산출표에 명시된 인원 중 일부만을 채용하고 임금대장과 종업원 명부를 허위로 보고해 남는 노무비를 착복했다는 제보가 들어온다”라며 이는 “세금 낭비일 뿐 아니라, 적정 인원보다 적은 인원으로 주어진 구역의 폐기물을 수거·운반해야 하는 노동자들의 업무상 부담으로 직결되고 있다”라고 했다.

상황이 이렇지만 청주시 생활폐기물 수집·운반, 음식물 폐기물 수집·운반 노동자들에 대해서도 정규직 전환 논의는 이뤄지지 않았다. 이지형 청주환경지회 지회장은 “지금까지 지자체에서 생활폐기물 수반·운반 사무를 고용노동부 절차에 따라 정규직 전환한 곳은 단 한 군데도 없다”라며 “이들이 책임을 서로 떠넘기는 가운데, 민간위탁의 비리는 나날이 늘어가고 있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삼권분립’ 이유로 관리·감독 안 하는 고용노동부

정규직 전환을 회피하는 것은 헌법기관도 예외가 아니다. 법원은 전산직이 민간의 고도 기술을 활용한다며 정규직 전환이 불가하다는 답변을 한 바 있다. 하지만 노동자들은 컴퓨터, 모니터, 프린터 외에 고도의 장비가 없고, 이외의 장비는 법원이 별도로 입찰 계약을 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이뿐 아니라, 인력도 용역 업체가 바뀔 뿐 노동자들은 그대로 일해왔다며 정규직 전환이 이뤄져야 한다는 입장이다.

또한 노조에 따르면 법원 전산직 노동자들에 대한 인건비 착복 문제도 만연하다. 노조 자료를 보면 법원은 노동자들의 임금 총액 중 지난해 기준 40%를 할인율 명목으로 삭감해 입찰 공고를 하고 있다. 최저입찰제도 행정부 산하 국가기관에서는 사라졌지만, 법원에서는 시행되고 있다. 심지어 이와 관련해 지난해 노조가 고용노동부에 질의를 했으나 “공공부문 용역·민간 위탁 노동자 근로조건 보호는 헌법기관에도 적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면서도 “사법부 등 헌법기관에 행정부의 대책을 적용토록 하는 것은 삼권분립 원칙상 한계가 있다”라고 답변해 노조의 반발을 사기도 했다.

노사 갈등 부추기는 고용노동부

국민건강보험공단 고객센터는 공단 소속기관으로 정규직 전환이 결정됐는데 이후 노사전협의체 구성에서 노사 갈등을 겪고 있다. 공단 측이 비조합원을 근로자대표로 참석시키겠다고 하면서다. 정규직 전환 가이드라인에는 노사전협의체에 무노조 대표도 참여토록 하지만, 실제 공단에는 무노조 대표가 없다고 노조는 반박하고 있다. 공단의 모든 하청업체에는 노조가 있고, 기관에도 정규직 노조가 있기 때문이다.

이은영 국민건강보험고객센터지부 지부장은 “공단은 고용노동부에서 유선상 노사전협의회에 비조합원도 참석시킬 수 있다는 답변을 받았다고 했다”라며 “공단은 노사 간 쟁점에 대해 공식 질의 회신 문서와 다르게 유선으로 응답해 노사 간 갈등을 증폭시키고 있다”라고 비판했다.

한편 기자회견이 끝나고 노조는 고용노동부에 문제가 발생한 사업장에 대해 대책 마련을 촉구하는 요구안을 전달했다. 노조는 오는 18일 예정된 노조와 고용노동부 간 면담에서 고용노동부가 구체적인 답변을 하지 않으면 투쟁을 벌일 수밖에 없다고 경고했다.

정용재 공공운수노조 부위원장은 “정부는 1·2·3단계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정책을 발표하고 전환 대상에서 제외된 노동자들에게 보호 지침을 만들어 차별을 해소하겠다고 했다. 그런데 5년이 지난 지금 비정규직은 임금을 중간에서 떼이고, 고용불안에 시달리고 있다”라며 “1차 책임 주체는 고용노동부”라고 책임을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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