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식하는 ‘예수들’의 투쟁 “국회는 평등으로 데뷔하라”

[어서 와요, 소소부부네]

  차별금지법 제정을 요구하며 차린 국회 앞 농성장 [출처: 소소부부]

우리 부부의 동료 중에는 마치 성경에 나오는 일화처럼 40일을 단식하며 기도한 ‘예수’들이 있다. 15년 동안 국회가 외면했던 차별금지법을 제정하기 위해 단식투쟁으로 앞장선 종걸과 미류, 인권 활동가들이다. 지난 4월 11일, 인권 활동가들은 국회 정문 앞에 차별금지법 제정을 요구하며 농성장을 마련했다. 인권활동가들은 밥 먹기를 포기하고 집에서 편히 잠자기를 포기하며, 차가운 바닥 위 텐트로 마련한 농성장을 집 삼아 끊임없이 국회에 차별금지법 제정의 필요성을 전달했다. 종걸은 단식투쟁 39일째 되는 날 심히 악화한 건강 상태에 따른 의사의 강력한 권고로 단식을 중단했다. 미류는 40일 넘도록 단식투쟁을 이어가고 있다. 비록 예수를 믿는 일부 종교 세력이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혐오와 차별을 선동하며 기승을 부리지만, 그리고 국회의 정치인들이 그들의 눈치를 보고 있는 현실이지만…. 저들은 왜 바로 눈앞의 예수는 보지 못할까.

2007년 차별금지법이 처음 발의된 후 지금까지 15년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15년, 국회가, 한국의 정치가 평등을 외면한 시간. 차별과 혐오의 고통에 수많은 이들이 희생되는 것을 방치한, 아니 공조하며 더 심각한 사태를 야기해온 정치인들이 약속을 어긴 시간. 지방선거를 앞두고 또다시 수많은 약속을 늘어놓는 정치인들을 향해, 차별금지법 제정이라는 약속을 먼저 지키라고 미류와 종걸이 숟가락을 내려놓은 투쟁을 지속하는 동안에도 시곗바늘은 야속하게 계속 움직였다. 성경 속의 예수가 금식한 시간만큼, 그 시간보다도 더 긴 시간 동안 숟가락을 들지 않은 우리 동료들에게 ‘밥 먹었냐’는 인사 한마디를 건넬 수 없는 것에 우리 부부는 매일매일 통탄했다.

(소소부부) “안녕~ 괜찮아요? 잘 잤어요? 오늘은 컨디션이 좀 어때요?”

(종걸) “어 왔어요? 괜찮아요, 잘 잤어요.”


  이종걸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 사무국장 [출처: 소소부부]

사실 괜찮지 않다. 단식은 건강을 해치기에 괜찮을 수가 없다. 알면서도 물어본다. 그리고 알면서도, 우리 부부는 종걸과 미류의 대답을 듣고 고개를 끄덕인다. 괜찮지 않은 이 사회가 떠오른다. 아니, 불평등과 혐오, 차별과 낙인이 난무하지만, 차별금지법 하나 만들지 않은 무책임한 이 나라의 더러운 정치를 떠올린다. ‘민주’라는 이름을 건 정당이 얼마나 오랫동안 그 민주주의를 배반해왔는지 떠올린다. 그 오랜 시간 차별금지법 제정을 요구하며 온 마음, 온몸의 에너지를 쏟아낸 우리에게 고작 공청회 날짜 하나 겨우 잡고서 생색내는 오만무례한 정치인의 두꺼운 낯짝을 떠올리고는 분노한다.

(소소부부) “변(똥)을 좀 봤어요?”

(미류) “아~주 조금. 아쉽지만 그래도 이게 장운동이 여전히 되고 있다는 게 확인되니 다행인가(웃음)”

(소소부부) “별로 남아있지도 않을 몸의 지방, 열량을 아주 박박 긁어서 다 쓰고 있나 보네”

(미류) “어? 저기 걸어가는 저 사람 국회의원 같은데?”


  미류 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 [출처: 소소부부]

물과 소금, 효소만 먹으며 단식투쟁하는 종걸과 미류와 때때로 화장실 가는 길을 동행했다. 끔찍한 말로 만들어진 피켓을 가지고 혐오를 선동하는 이들의 앞을, 종걸은 일부러 지나고 당당히 걸었다. 종걸은 자신의 몸자보에 적힌 평등의 언어로 차별의 말들을 조금이라도, 잠시라도 덮어 안 보이게 하려는 것처럼 보였다. 미류는 국회의원들의 얼굴을 다 외우기라도 한 것처럼 화장실을 다녀오는 길에도 우연히 지나는 국회의원을 기가 막히게 알아봐 붙잡고 말을 걸며 매 순간순간 최선을 다했다. 미류와 종걸은 먹는 것을 안 하면서도, 화장실을 다녀오는 길 위에서조차 차별금지법을 제정하고야 말겠다는 투쟁을 지속했다.

(종걸) “안녕하세요! 항문성교, 합의 하에 동성 간 성관계를 하고자 노력하는 게이 이종걸입니다. 반갑습니다!!”


단식투쟁이 13일 차 되던 날 열린 ‘평등으로 승리하자’ 문화제에서 무대에 선 종걸은 아주 힘찬 목소리로 저렇게 인사했다. ‘항문성교’. 국회의원들이 알아야 하는 말, 온 세상이 알아야 하는 말, 우리가 모두 입 밖에 당당히 꺼내도 욕먹지 않을 수 있어야 하는 말, 하지만 아직 혐오 공격에 가장 큰 타깃이 되는 것 중 하나인 말로 종걸은 본인을 소개했다. 무대 아래에서 지켜보던 우리 부부는 종걸이 저 말을 꺼낼 때 사실 조금, 아주 잠시 멈칫한 것을 포착했다. 종걸에게 대놓고 물어보진 않았지만 아마 순간적으로 여러 생각이 스쳤나보다 싶었다. 종걸의 그 용기는 ‘더럽고’, ‘문란한’ 우리 모두에게 온전하게 찾아와 우리의 용기가 됐다.

(미류) “오늘부터 지방선거 공식선거 운동 기간이 시작됩니다. 선거 때문에 (차별금지법을) 제정하기 어렵다는 이야기도 하더라고요. 그 선거 왜 할까요. 선거는 민주주의의 꽃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모든 인간이 동등하게 존엄하다는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 하나 선언하지 못하는 나라에서, 그 꽃이 다 무슨 소용일까요. 민주주의에 의미가 없다면 그게 꽃인들, 장식용 조화의 색이 붉을지 푸를지를 결정하는 투표일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게 우리 삶에 무슨 의미가 있죠?”


단식투쟁 39일 차가 된 날, 미류가 기자회견에서 한 말이다. 민주주의의 꽃이라는 선거 뒤로 숨고 도망가며 진짜 ‘민주주의’와 ‘평등’은 외면하기 바쁜 정치인들이 반드시 들어야 할 말. 한국의 정치는 표를 ‘계산’하며 권력만을 호시탐탐 노릴 것이 아니라, 지금 당장 차별금지법 제정이라는 행동으로 우리의 투쟁에 응답해야 한다. 한 사람, 한 사람이 헌법기관이라는 국회의원의 자리를 170여 석이나 차지하고 있는 거대정당이 진정 민주주의와 평등의 가치를 지키며 국민과 더불어 가고 싶다면,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한 실질적 행동으로 사죄해야 하지 않겠나. ‘차별금지법이 있는 나라에서 투표하겠다’라고 준엄히 선언한 시민들의 요구를 회피하는 안하무인들에 우리는 우리의 현재와 미래를 맡기지 않는다.

종걸은 단식을 중단한 후, 건강 회복을 위해 복식 하는 것조차 복식 ‘투쟁’이라며 투지를 불태우고 있다. 국회는 단식투쟁, 복식 투쟁하는 동성애자 종걸의 요구에 응답해야만 한다. 우리가 기꺼이 건네는 평등에도 숟가락 대기를 거부하는 정치 때문에, 본인도 밥술 뜨기를 멈춘 여성 미류에게 국회는 지금 당장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한 실질적 계획을 갖고 찾아와 예의를 갖춰 사과해야 한다. 미류와 종걸, 인권 활동가들, 그리고 이들과 함께 힘을 모으는 수많은 시민이 차별금지법 제정 논의에 참여하지 않는 국민의힘과 그런 국민의힘을 핑계 대며 차별금지법 제정을 또다시 ‘나중’으로 미루려는 더불어민주당을 똑똑히 지켜보고 있다. 거대양당은 차별금지법을 나중으로 미루려면 정치도 나중에나 하시라. 차별금지법 제정을 원하는 시민들은 ‘지금’을 살고 있으니.

미류와 종걸은 결연하다. 우리의 투쟁은 결연하다. 종착지는 이미 차별금지법 제정이다. 우리의 결연함이 그렇게 만들었다. 21대 국회, 평등의 정치로 합류할 것인가, 차별에 굴복해 도태될 것인가.

“평등길 중에 한 참여자분이 나에게 ‘데뷔’를 어떻게 정의 내리는지 물어보셨다. ‘데뷔’란 게이 커뮤니티에서 자주 쓰는 커뮤니티 언어로, 나는 그 분에게 나와 같은 동성애자를 만나며, 자신을 드러낸 순간이 아니겠느냐고 답했다. ‘데뷔’란 말을 성소수자 커뮤니티 모두가 쓰는 것은 아니지만, 아마도 자신의 성 정체성을 여러 과정 끝에 결정하고, 이를 나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 드러낼 때 배우 또는 가수들의 화려한 데뷔처럼 환대를 기대하는 마음으로 커뮤니티에서는 ‘데뷔’란 말로 대신해서 표현하는 것 같다.”
- 지난해, 부산에서 서울로 평등길을 걸어내며 종걸이 남긴 글 中


국회는 평등으로 ‘데뷔’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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