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협 "근로조건 저하는 유효" 문구가 키운 서울사서원 노조 갈등

돌봄서비스노조 5일 단협 체결, 병가·휴직 임금 삭감…공공운수노조 "노동자 처우 후퇴 폭거"

최근 서울시사회서비스원(사서원)이 공공운수노조 측에 단체협약 해지 통보를 하면서 논란이 된 가운데, 같은 상급 단체에 속한 다른 노조가 사측과 기존보다 후퇴한 단협을 맺으면서 노조 간 갈등을 빚고 있다. 공공운수노조와 함께 민주노총에 속해 있는 소수노조인 서비스연맹 돌봄서비스노조는 5일 "협약에 따른 근로조건 저하는 유효"하다는 문구가 담긴 단협을 체결했다.

"협약에 따른 근로조건 저하는 유효"

앞서 지난달 16일 사서원이 공공운수노조에 단협 해지를 통보함에 따라 단협의 효력은 오는 2023년 3월 15일까지 유지될 예정이었다. 그러나 사서원이 단협 해지를 통보한 지 한 달도 되지 않아 돌봄서비스노조는 병가, 휴가 시 임금 등이 깎이는, 취업규칙보다도 부족한 단협을 체결했다. 서울시사회서비스원 재단 규정(취업규칙)에는 휴직과 병가에 대해 각각 기본연봉, 통상임금 100%를 지급하게 돼 있다. 그러나 돌봄서비스노조는 사측과 △휴직 시 1년 이하는 통상임금의 70%, 2년 이하는 통상임금의 50% △병가시 통상임금의 70% 등의 삭감안에 합의했다. 이에 따라 타노조원이나 비노조원을 제외한 돌봄서비스노조 조합원들은 휴직과 병가에서 기존보다 낮은 임금을 받게 됐다. 뿐만 아니라, 기존 단협과 비교해 수십 개 조항이 삭제되기도 했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가 22일 기자회견을 열고 "단체협약 해지 통보가 어리석은 판단이었음을 인정하고 즉각 철회하라"라고 요구했다. [출처: 공공운수노조]

이에 대해 공공운수노조는 5일 "전국의 여러 사회서비스원의 통폐합이 발표되고, 윤석열 정부는 민간 중심의 사회서비스를 더욱 민간 중심으로 강화하겠다는 정책을 발표했다"면서 "돌봄서비스노조는 이와 같은 상황에서 사측의 공세에 굴복하고, 돌봄 공공성을 포기하고, 돌봄 노동자의 처우를 앞장서서 후퇴시키는 폭거를 저질렀다"라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공공운수노조는 "사측이 돌봄 노동자의 권리를 후퇴시키기 위해 밀어붙이는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을 돌봄서비스노조가 단체협약 체결로 대신해 줬다"면서 "단협 2조에 '협약에 따른 근로조건 저하는 유효하다'는 전무후무한 조항을 만들어서 단협으로 조합원의 권리를 보장하는 것이 아니라, 권리 저하를 노조가 대신하겠다고 한다"라고 했다.

또한 "체결된 단체협약의 내용을 보면 아연실색하는 내용으로 가득 차 있다"면서 "기존 단체협약의 많은 조항이 삭제되면서 노조 활동 축소, 노동안전 후퇴, 성폭력 대응 및 예방조치 후퇴, 징계 및 인사의 노조 참여 배제, 기관 운영에 대한 노조 참여가 배제됐다"라고 지적했다.

이에 돌봄서비스노조는 같은 날 반박 성명을 통해 "민주노총 중집의 결정대로 민주노조가 함께 교섭을 진행할 수 있었다면 훨씬 상황이 나았을 것"이라며 "그러나 현재 각각 개별교섭해야만 하는 상황에 내몰리게 된 책임은 공공운수노조의 반노동적·무원칙적 행태에 있다"라고 비판했다. 돌봄서비스노조에 따르면, 그동안 사서원은 4개 노조와 개별교섭을 해왔다.

돌봄서비스노조, 노동자 처우 후퇴 지적에 "한 달 안식휴가 확보했다"

돌봄서비스노조는 유급병가에 대한 임금 축소로 노동자 처우가 후퇴했다는 지적에 대해 "업무상 질병 100%, 업무 외 질병 70%의 병가조항을 받고 3년 근속 시 한 달의 안식휴가 조항을 추가했다"라며 "산업재해를 예방하기 위한 조항으로서 일괄적 휴식권을 확보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그러면서 "노인 노동자가 대부분인 상황에서 한 번 근골격계 질환의 사이클 안으로 들어오면 좀처럼 나가기가 쉽지 않다. 유급병가를 다 쓰고 나서 요양 현장을 떠나야만 하는 상황도 부지기수"라고 했다.

돌봄서비스노조가 맺은 단협의 제5장 '안전, 보건 및 업무환경'에는 '안식휴가'가 포함돼 있다. 전문서비스직 직원의 근골격계 질환을 예방하고, 지속 가능한 근로환경을 조성하자는 취지다. 안식휴가의 부여 기준은 노동시간이다. 직군별 안식휴가 조건은 △요양보호사(전일제), 연 1,335시간(1,385시간-교육 50시간) 이상 직접 서비스를 제공한 경우 3년마다 30일(공휴일 포함) △장애인활동지원사(전일제), 연 1,570시간(1,620시간-교육 50시간) 이상 직접 서비스를 제공한 경우 3년마다 30일(공휴일 포함) 등으로 합의했다. 시간제의 경우 요양보호사, 장애인활동지원사 각각 2.5시간, 3시간 직접 서비스를 제공했을 때 5년마다 30일의 안식휴가가 주어진다. 안식휴가 시 임금 역시 통상임금의 70% 수준이다.

이에 대해서도 공공운수노조는 '휴일 없이 장시간 노동을 강요하는 제도'라고 비난했다. 안식휴가를 받기 위해서는 높은 직접 서비스 제공시간 기준을 채워야 하는데, 매칭률과 실제 근무를 고려하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점에서다. 사측이 안식휴가를 도입하겠다고 해도 반대하거나 서비스 제공 시간을 대폭 축소해야 했다는 것이 공공운수노조의 지적이다. 단협 대로면 안식휴가를 가기 위해서는 요양보호사, 장애인활동지원사가 공휴일·연차를 제외하고 각각 하루에 6시간, 7.1시간을 직접 서비스해야 한다.

한편, 돌봄서비스노조는 '발전전략위원회' 구성 등을 단협의 성과로 보고 있다. 돌봄 공공성 모델의 확대 및 안정화를 꾀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내부 위원은 노사 동수로 하기로 했으며, 해당 단협 조항에는 "사회서비스원은 초고령 사회를 준비하는 운영 주체로, 설립 취지에 맞게 서울특별시 25개 구 전체에 대한 사업 확대 계획을 마련하도록 노력한다"라고 적혀있다.

이밖에 돌봄서비스노조는 "이번 단협은 무급 노동조합 활동을 보장받았을 뿐만 아니라, 2024년 이내 호봉제 도입, 촉탁기간과 정년 연장, 촉탁직 가족수당 지급, 이동교통실비 연내 지급 등 현장의 노동자들에게 절실하게 필요한 고용안정과 처우개선에 관한 내용이 담겨있다"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돌봄서비스 공공성 강화와 국가 책임 확대를 위해 투쟁하는 우리 노조를 모욕한 점에 깊은 분노를 표한다"면서 공공운수노조에 공식적 사과를 요구했다.

공공운수노조는 돌봄서비스노조의 단협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이에 실질적으로 해당 단협을 무력화하기 위한 투쟁을 전개하겠다고 밝혔다. 아울러 서울시사회서비스원의 단체협약 해지 통보와 노원센터의 장애인활동지원사업 폐업 조치에 대해 파업 투쟁 등 총력 투쟁을 벌일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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