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오는 12월 10일은 태안화력발전소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로 일하다 컨베이어벨트 사고로 목숨을 잃은 김용균의 4주기이다. 김용균의 죽음 이후 간신히 제정된 중대재해처벌법은 최근 다시 위기를 맞고 있다. 윤석열 정부는 중대재해처벌법 시행령 개정을 예고했고, 국민의힘 또한 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모두 책임자 처벌을 약화하는 개악안이다. 아들의 죽음 이후 노동운동에 뛰어든 김미숙 김용균재단 이사장의 특별기고문을 싣는다.
▲ 고 김용균 1주기 추모대회에 참석한 김미숙 김용균재단 이사장(가운데) [출처: 참세상 자료사진] |
사무치게 그리운 내 아들 용균아!
갑작스런 참사에 우리 서로 못 본 지도 벌써 4년이 다 지나가고 있단다. 엄마는 아직도 그날 그 시간에 머물러 있어서인지 네가 없다는 것을 인정하기가 쉽지 않구나. 평생 얼굴 한번 못 볼지라도 먼 타지에서 목소리라도 들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남들은 “엄마”라고 불리는 것조차 평범한 일상인데 나에게는 이마저도 너무 부러운 처지가 돼 버렸어.
아들아!
네가 그렇게 떠난 뒤 엄마는 지금까지 정신없을 정도로 많은 일을 겪었어. 반평생 가정에 충실했던 내가 너를 잃고 하늘이 무너지는 깊은 절망에 빠지면서 신조차 원망스러웠어. 도대체 내가 무얼 얼마나 잘못하고 살았기에 이토록 가혹한 형벌을 받는지 그 이유를 알고 싶었어. 그래서 지난 삶을 되돌아보았지. 내 가정만 중요시하고 남한테 피해를 주지 않으면 잘 사는 거라 여긴 것이 잘못이었나? 나와는 관계없다고 생각하며 이웃들의 아픔을 살기 바쁘다는 핑계로 관심조차 없었던 것이 결국 내 인생을 망친 요인이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이르게 되었어. 남들도 다들 그렇게 사니까 그게 현명하게 사는 길인 줄 알았던 거지.
그런데 소중한 너를 잃은 뒤 사회의 어둠이 하나둘씩 보이기 시작했어. 세계 경제 강국 10위권이라는 타이틀은 강한 빛으로 어둠을 가렸고, 그 안에는 진실과 핏빛 아픔이 숨죽여 있었다는 것을 너무 늦게 알아버린 거야. 약육강식. 옮고 그름이 사고방식의 핵심이 아니라 힘의 논리로 비틀어진 정의. 유전무죄 무전유죄가 난무하고 기업은 이윤을 위해서라면 안전장치 없이 시민들을 무수히 죽여도 국가로부터 아무런 제재가 없었다. 위험한 일터가 약자의 생존에 얼마나 위협을 가하는 것인지 인식조차 없는 것 같았어. 국민을 위해 국가를 운영해야 하건만 어떤 이유든 간에 오로지 이윤이 중심이고 사람의 가치나 기본적 권리는 빠져있다는 것이 지금의 비정규직 같은 저질 일자릴 만드는 주요 요인이었다. 사람을 심각하게 훼손할 수 있는 지금의 구조적 모순이 회복하기 어려울 정도로 사회를 오염시켜 버렸다는 생각이 든다.
▲ 고 김용균 1주기 추모대회 [출처: 참세상 자료사진] |
그래서 많이 늦은 감은 있지만 현시대에 맞도록 30년 전에 개정한 산업안전법을 다시 개정하는 일이 필요했어. 죽음에 이르게 한 경영책임자를 처벌하라고, 중대재해처벌법을 미비하나마 제정하려고 했지. 더 이상 우리처럼 회복 불가능한 피해자가 없어야 하니까. 안타까운 죽음의 고리를 끊어버리고 싶었어. 불행 중 다행인 것은 여론이 들끓어 국민 72%가 법 제정에 찬성한다는 설문조사 결과가 나왔어. 정세에 밀려 마지못해 통과시킨 법은 엉망이었다. 50인 미만 사업장을 유예하고, 5인 미만 사업장은 제외하면서 나는 분통이 터졌지. 50인 미만 사업장에서 산재 사망사고 80%가 발생하니 앞으로도 처참한 죽음들을 계속 볼 수밖에 없는 조건이잖아. 억울한 죽음들과 억장이 무너질 유족들 생각만으로도 땅을 치며 통곡할 노릇이었지.
안 그래도 아들 죽음에 지금도 한 많은 인생인데 요즘은 왜 그리 참사가 많은 건지. 이중고, 삼중고를 겪는 느낌이야. 아마도 예전엔 수면 위로 드러나지 않던 사건들이었으니 사고가 더욱 많게 보이는 거겠지.
지난 9월이었던가 지하철 신당역 화장실에서 순찰을 돌고 있던 여성 노동자가 같은 날 입사한 남성 노동자에게 스토킹을 당한 것도 모자라 무참하게 살해까지 당했다는 뉴스를 보고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어. 얼마 지나지 않아 10월에는 SPC 계열사에서 일하던 여성 노동자가 혼자 일하다 소스 배합기에 끼는 끔찍한 죽음이 보도됐고, 그러던 중에 이번에는 핼러윈을 맞아 이태원에 간 젊은 아들, 딸들 무려 158명이 초대형 압사 참사의 희생자가 됐더구나. 그런 참사가 일어날 줄 어찌 꿈엔들 생각했겠어. 그러고도 모자라 11월에는 오봉역에서 지하철 노동자가 일하다 열차에 치여 사망했어. 20, 30대 새파란 청년들이 안전장치 하나 없이 죽음에 내몰린 끔찍하고 비참한 현실은 너를 잃은 후에도 지속되고 있더구나. 그 바람에 엄마도 무력감에 시달리다 결국은 며칠을 앓아누웠어.
그런데 정부의 사고 수습 과정이 이상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닌 거야. 시신을 지방 각지로 분산하는 것도 모자라 피해자들 연락망도 차단하고, 국민에게는 지금은 애도할 때라고 애도만 강요하면서 책임 문제는 회피하는 모습이었어. 사고 책임자들은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아무런 잘못이 없다는 해괴망측한 허튼소릴 했는데, 그런 소리를 또 듣게 될 줄 누가 알았겠어. 참사 3일 만에 대책이라고 내놓은 것이 저급하게도 보상금 지급이었다. 유족들한테 죽은 자식 상대로 위로 차원에서 돈을 주겠다고 한 거야. 안 그래도 슬픔과 분노로 휩싸였을 유족들일 텐데, 절대로 하지 말아야 할 천박하고 모욕적인 정부의 태도에 나 또한 열불이 났지. 유족들이 진심으로 바라는 것은 유족 앞에서 진실되게 사과하고, 사고 발생 경위를 설명하고, 흩어진 유족들이 한곳에 모일 장소를 제공하고, 정부 차원에서 소통창구를 마련해 제대로 된 진상규명의 기초를 다지는 일일 텐데 말야. 그리고 책임자 처벌도 중요하지만 마지막으로 강조하고 싶은 것은 재발 방지 대책을 내놓기 위한 컨트롤타워를 세우는 일이야.
이번 사태를 겪으면서 세월호 참사가 오버랩되었어. 국민 모두가 세월호 참사 이전과 이후는 확연히 달라질 줄 알았는데 달라진 게 없다는 것이 더 가슴 아팠지. 그러고 보니 산재 사망사고도 별반 다를 게 없더구나. 산재 사망을 막겠다고 산업안전법을 개정하고 중대재해처벌법 제정을 위해 쉼 없이 4년을 달려왔지만 산재 사망사고가 전혀 줄어들지 않고 있고, 오히려 늘어났다는 통계가 들리니 기가 막혔지. 이 죽음의 숫자를 확연히 줄이기 위해 해내야 할 일이 산적해 있으니 아직 갈 길은 먼 것 같아.
▲ 2018년 12월 11일 사망한 태안화력발전 비정규직 고 김용균 씨를 추모하는 문화제가 같은 달 13일 저녁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열렸다. 추모제에 참여한 사람이 고인에게 전한 메시지. [출처: 참세상 자료사진] |
용균아!
엄마는 노동재해나 시민재해 모두가 사회적 참사라 생각해. 충분히 막을 수 있는 죽음이었는데 지휘 책임자들이 안전을 무시해서 발생한 게 분명하니까.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윤석열 정부는 반노동-친기업을 주장하면서 중대재해처벌법 완화를 시도하고 있어. 공무원 인원까지 파격적으로 줄이겠다 겁박하니 안 그래도 살기 힘든 노동자들이 더 위험에 내몰리게 생겼어. 사회 구성원 대다수가 노동자인데 말이야. 그렇다면 정부가 노동자의 적이라 해도 과언은 아닐 거야. 그러니 노동자들이 더 이상 이렇게는 못 살겠다 여기저기서 들고 일어나 난리법석 피우는 것은 살기 위해 당연한 일이 되었고, 언론까지 탄압의 대상이 되어버렸어. 이러다간 국민 모두 누려야 할 기본적 인권마저 심각하게 훼손당하게 생겼어. 이런 사실들을 견주어 볼 때 민주주의가 거꾸로 퇴행하고 있다는 생각에 잠을 못 잘 정도로 암담하고 참담하기 이를 데가 없구나. 네가 내 곁에 있다면 이런 현안을 주제로 머리를 맞대고 심각하게 고민하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이럴 때 서로를 위로해 주었을 텐데 평생 함께하지 못함이 여전히 서럽구나. 언젠가 너를 볼 수 있다면 못다 한 이야기도 시시콜콜 나누고 싶어. 그런다면 나는 더 바랄 게 없을 것 같아.
사랑하는 아들 용균아!
네가 어디에 있는지 모르겠지만 네가 언제나 건강하고 행복하기만을 바라는 엄마, 아빠가 있다. 너를 사랑하고, 여전히 너만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잊지 않기를 바란다.
▲ 고 김용균 1주기 추모대회. 노동자 약 2천 명이 대회를 마치고 청와대로 행진했다. [출처: 참세상 자료사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