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레스타인 해방운동을 주도하는 전혀 새로운 세대가 등장했다. 기존의 어떤 팔레스타인 정치세력과도 연계되지 않은 20대 중심의 무장투쟁 조직들이다. 불과 지난 몇 개월 사이 서안지구 제닌을 필두로 나블루스, 예루살렘, 라말라, 헤브론 등 서안지구의 주요 도시에 자생적인 청년 무장투쟁 그룹이 급속도로 생겨났다. 이와 함께 팔레스타인 민중 투쟁의 흐름이 급격히 바뀌고 있다. ‘피다인(فِدائيّين, Fedayeen)’,즉 팔레스타인 게릴라 투사들의 부활로 2022년은 팔레스타인 저항운동의 역사에 주요 분기점으로 기록될 한 해가 됐다.
이스라엘 점령군은 올해 3월, 서안지구 주요 도시에서 이른바 “물결 파괴 작전(Operation Break the Wave)”이라 불리는 군사작전의 횟수와 강도를 높이며 팔레스타인 저항 세력을 살해하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제닌에 취재하러 갔던 팔레스타인의 저명한 기자 쉬린 아부 아클레가 지난 5월 점령군에 살해되기도 했다.1 이스라엘 점령 당국은 팔레스타인의 저항 세력을 뿌리 뽑겠다는 계획이었지만, 물결은 오히려 걷잡을 수 없이 번지고 있다. 저항군에게 가담하는 사람은 늘고, 대중적인 지지도 폭발적이다.
대중적 지지에는 이유가 있다. 2022년은 이미 10월까지의 통계만으로 2005년 이후 서안지구 팔레스타인 주민에게 가장 살인적인 한해로 기록됐다.2 새로운 무장 그룹들은 이스라엘 점령군과 정착민의 공격에 맞서 게릴라식 작전을 펼치고 있다. 이때 정착민은 흔히 생각하는 민간인이 아니다. 서안지구 불법 유대인 정착촌은 존재 자체로 제4차 제네바협약을 위반하는 전쟁범죄다. 점령군의 보호를 받으며 자신도 무장한 정착민이 팔레스타인 주민에 대한 방화, 폭력, 살인을 지속하고 있어, 이스라엘 사회 내에서도 오랫동안 팔레스타인과의 협상을 가로막는 걸림돌로 인식되고 있다.
팔레스타인 무장투쟁 약사(略史)
팔레스타인 정당은 각각 산하에 무장 조직을 두고 있다. 우리로 치면 의열단이나 경성콤그룹 등과 유사하다. 팔레스타인은 독립국을 세우지 못한 채 이스라엘에 식민화되기 시작했고, 때문에 지금도 단일한 팔레스타인군은 존재하지 않는다. 팔레스타인의 무장투쟁은 1967년 이스라엘이 3차 중동전쟁으로 동예루살렘 · 서안지구 · 가자지구를 군사점령한 뒤 본격화했다. 대표적인 세력이 ‘파타’와 ‘팔레스타인해방인민전선(PFLP)’이다.
아라파트라는 저명한 민족 지도자가 이끈 파타는 소위 평화 협상이라는 1993년 ‘오슬로 협정’에 따라 무장을 해제했고,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를 세웠다. 이스라엘에 투항한 거나 다름없다. 파타는 현재 팔레스타인에서 명실상부 가장 부패한 정치세력이다. 마르크스레닌주의를 표방하는 PFLP는 3차 중동전쟁 후 비행기 납치 사건을 통해 전 세계의 이목을 끌며 팔레스타인의 대의를 알렸다. 비행기 납치로 붙잡은 승객들은 이스라엘 감옥에 수감된 팔레스타인 정치범과 맞교환했다. 자치정부 탄생에 비판적이면서도 이에 참여하는 한편 무장투쟁 노선도 고수한 PFLP는 이스라엘의 끈질긴 탄압으로 주요 지도부가 다수 살해·체포되며 세력이 많이 약화했다.
지금 이스라엘은 그와 같은 탄압을 ‘하마스’와 ‘이슬람 지하드’에 가하고 있다. 1987년 1차 인티파다(민중봉기) 때 등장한 두 이슬람주의 정당 역시 각자의 무장 조직이 있다. 이들은 오슬로 협정을 인정하지 않았고, 때문에 그 산물인 자치정부를 보이콧했지만, 하마스는 2006년 보이콧을 철회하고 자치정부 선거에 출마했다. 그리곤 최대의석을 얻어 집권당이 됐다. 하지만 선거 결과에 불복한 파타의 쿠데타로 두 정당 간에 내전에 유사한 충돌이 있었고, 서안지구는 파타 중심의 자치정부가, 가자지구는 하마스가 통치하는 형태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파타와 하마스는 십여 년간 주변국들의 중재 속에 ‘화해’ 협상을 거듭했지만, 팔레스타인 민중의 염원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합의에 이르지 않고 있다. 가장 큰 두 정치세력의 불화는 전체 저항운동을 약화시켰고, 그 사이 이스라엘의 식민화도 가속했다. 팔레스타인 민중의 절망은 더없이 커졌다.
2006년 이후로 팔레스타인에선 선거가 치러지지 않고 있다. 더 이상 어떤 세력도 대표성을 가질 수 없는 것이다. 게다가 새롭고 청렴한 세력으로 급부상했던 하마스였지만 통치자가 되자 가자지구의 파타 당원을 비롯해 비판자들을 강경 탄압하고 있다. 반면 자치정부 참여 보이콧 기조를 유지하는 이슬람 지하드는 기득권 다툼에 낄 여지가 없고, 때문에 그 청렴함을 유지하고 무장투쟁의 최전선에서 다른 그룹들과 함께 싸우며 팔레스타인 민중의 높은 지지를 받고 있다.
이후 서안지구와 가자지구가 처한 상황은 다르다. 이스라엘은 하마스의 집권을 구실로 2007년 가자지구 육해공을 전면 봉쇄했고, 그 후 주기적으로 대규모 폭격을 가하고 있다. 이에 맞서 가자지구의 모든 정당이 합동군사작전본부를 만들어 군사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반면 예루살렘과 서안지구에서는 조직된 무장투쟁이 거의 불가능했다. 우선 이스라엘도 무장 세력에 폭압적으로 대응했지만,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역시 무장세력 검거에 힘을 쏟았다. 앞서 언급한 이스라엘과의 ‘평화 협상’ 체결 결과 자치정부는 팔레스타인의 치안을 유지할 의무를 떠안게 됐다. 이때의 치안이란 물론 이스라엘에 대한 위협의 제거를 의미한다. 파타는 산하의 군대를 해산시켰고, 자치정부는 다른 정당들도 파타처럼 군대를 해산하길 원한다. 그것은 이스라엘이 요구하는 바이기도 하다. 미래 팔레스타인 독립국을 예비하는 자치정부는 팔레스타인 내에서 폭력을 독점하는 기관이 되고자한다. 자치정부에는 이스라엘의 요구대로 군대는 없지만, 경찰이 있다. 자치정부는 이스라엘과의 ‘안보 공조’라는 기조를 최우선시하며, 팔레스타인 저항 세력을 붙잡아 때론 이스라엘에 넘기고,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도시에서 군사작전을 펼칠 수 있게 방조하며 저항운동을 분쇄하고 있다.3 이런 상황에서 특히 서안지구와 동예루살렘의 팔레스타인 민중은 가자지구의 무장투쟁을 당연히 지지하면서도, 기존의 저항 세력들에 염증을 느끼고 있었다.
2015년에는 팔레스타인에 또다시 인티파다가 일어날 듯 분위기가 고조됐다. 서안지구와 동예루살렘 주민들은 일상에서 이스라엘 점령군을 마주치며 그들의 통제 속에 살아간다. 때문에 물리적으로 충돌할 일도 잦다. 2015년 10월 이후 이스라엘 군인과 정착민을 칼로 찌르거나 차로 치어 살해를 기도하는 팔레스타인 청년들이 눈에 띄게 늘어났다.4 이스라엘 점령군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전연 무고한 팔레스타인 주민에게 발포한 뒤 시신 옆에 칼을 두고는 해당 주민이 칼로 이스라엘 군인을 공격했다고 사건을 조작하는 일이 시작된 것이다. 이후로도 이스라엘은 운전 미숙으로 궤도를 이탈한 차량의 운전자들에 발포·살해하며 이들이 군인을 공격하려 했다고 조작하는 주요 수법이 됐다. 자기 몸을 무기 삼아 홀로 공격을 감행하는 이들이 속출해 이 시기를 ‘나이프(knife) 인티파다’라 부르기도 한다. 이런 공격으로 상대를 죽일 가능성은 희박하고, 자신이 죽을 확률은 100%다. 이스라엘 점령 당국의 정책이 현장 사살이기 때문이다. 누구나 자신이 죽을 걸 알았다. 알고도 공격을 감행했다. 이들은 해방이라는 적극적인 청사진 없이, 깊은 절망 속에 스러져간 개인들이었다. 기존 정치세력에 염증을 느낀 세대는 조직된 저항의 일원이 되는 대신 절망적인 죽음을 선택했다.
그 뒤로도 목숨을 건 개인들의 공격이 간헐적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조직된 세력은 없었다. 그런데 올 들어 기존의 어떤 정치세력과도 연계되지 않은 초정파적 청년 그룹들이 등장한 것이다. 대표적인 세력이 나블루스의 ‘사자굴’이다.
‘사자굴’은 누구인가
사자굴(عرين الأسود · 아린 알-우쑤드, Lions' Den). 나블루스의 청년들로 구성된 무장투쟁 조직이다. “나블루스의 사자”라고 불리던 투사 이브라힘 알–나불시를 점령군이 암살한 것을 계기로 올해 8월 결성됐다. 나블루스에 기반을 뒀지만, 사자굴의 영향력은 서안지구와 예루살렘을 넘어 가자지구로, 팔레스타인 전역으로 급속히 확대됐다.
사자굴의 뜻은 이렇다. 이스라엘 점령군과 불법 유대인 정착민은 사자 소굴로 걸어들어온 침략자다. 그리고 이 침략자를 사냥하는 자신들은 사자다. 침략에 대한 방어의 의미를 분명히 하면서도, 자신들은 침략자들에 먹히는 먹이가 아니라고, 사냥꾼이라고 정체화했다.
사자굴은 “당파적 이해관계를 따르지 않는다”며 초정파성을 내세우고, 팔레스타인 민중의 단결을 호소한다. 각 구성원은 파타일 수도5 하마스, PFLP, 이슬람 지하드일 수도, 무당파일 수도 있다. 사자굴은 전투 중 사망한 자에게 소속 정당이 있더라도, 해당 정당의 깃발로 수의를 만들어 시신을 감싸는 팔레스타인의 관습을 거부한다. 특정 정파의 행동이 아니란 뜻이다. 완전히 자생적이며 기존의 저항 세력과 단절된 이들이 나타나자 점령 당국은 당황했다. 이스라엘 언론은 도대체 이들이 누구냐는 분석을 쏟아내며 배후 세력 찾기에 급급했다. 신생 조직이 각 정당과 연결고리가 있는 듯한데 그 어떤 세력의 지도 하에도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블루스 올드시티에서 호스텔을 운영하는 바셀 키따네 씨는 나블루스 주민들이 처음부터 사자굴을 환영한 건 아니라고 말한다.6 올드시티를 돌아다니는 무장한 청년들을 살해하러 이스라엘 점령군이 올 테고, 그로 인한 피해가 뻔히 예상됐다. 때문에 이들의 존재를 위험하게 여기는 이들도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10월 11일, 사자굴이 이스라엘 군인 한 명을 살해하자 분위기는 돌변한다. 이들이 진짜 저항군이라고 여기게 되면서 주민들은 경제적 손실과 안전에 대한 위협을 수용하며 이들을 지지하게 된다.
이스라엘 점령 당국은 즉각 나블루스를 통째로 봉쇄했다. 도시의 삶이 마비되면 사람들이 불만을 품고 책임의 화살을 돌리게 마련이다. 점령지를 관할하는 이스라엘 군사정부는 페이스북에 이렇게 썼다. “누가 그들의 삶에 지장을 주는가? 노동자 수천 명이 일터에 가지 못한다. 상인 수백 명은 상품을 배송받지 못한다. 테러는 당신들의 삶을 파괴한다.”
하지만 점령 당국의 바람과 달리 사자굴의 인기는 더 치솟았다. 기존 정치세력의 응답이 없었음에도, 사자굴이 제안한 10월 12일 총파업에 나블루스를 넘어 여러 도시, 대학이 참여해 시위를 조직하며 거리로 나왔다. 앞서 이스라엘 점령군이 예루살렘의 슈아팟 난민촌을 봉쇄해 슈아팟 주민들이 이에 맞서 투쟁 중이었는데, 총파업은 이에 대한 연대를 목적으로 했다. 사실 슈아팟은 나블루스와 비슷한 상황이었다. 10월 9일, 우데이 타미미라는 22세 슈아팟 난민이 슈아팟 군사검문소에서 이스라엘 군인 한 명을 살해, 현장에서 사살되지 않고 도망치는 데 성공했다.7 열흘 후 타미미는 또다시 서안지구 최대 규모의 불법 정착촌 ‘말레 아두밈’에서 군사작전 중 사망했다. 타미미를 잡겠다며 중무장한 이스라엘군 700명이 슈아팟 난민촌에 쳐들어가 타미미의 가족들을 체포하고, 난민촌을 봉쇄했다.
사자굴을 저지하기 위해 점령군은 한밤중에 나블루스 시내에서 여러 차례 군사작전을 펼쳤고, 10월 25일엔 사자굴 대원 5명을 살해했다. 11월 3일, 점령군은 나블루스 봉쇄를 해제하고 바통을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에 넘겼다. 자치정부는 곧바로 “사자굴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고 발표했다.
‘희생의 세대’
자치정부는 앞서 계속해서 사자굴 대원들에게 무기를 내려놓으라고 강요하며 대원 체포도 불사했다. 나블루스에선 자치정부에 맞선 시위도 여러 차례 일어났다. 나블루스 도지사는 사자굴 지도부를 만나 자수하라며 여러 차례 설득 작업을 벌였다. 조악한 무기, 점령군의 암살 리스트에 등재돼 언제 죽을지 모르는 상황 속에 몇 사람은 실제로 자수했다. 자수한 이들은 이스라엘에 사면받고 자치정부의 경찰로 편입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사자굴은 자수한 이들의 개인적인 선택일 뿐, 사자굴은 건재하다며 또 다른 작전을 예고하고 있다. 애초 사자굴은 죽음을 각오하고 조직됐다. 이들에게 싸우다 도망치는 작전이란 없다. 사자굴은 신속하고 결정적인 승리란 없다는 걸 알고 있다고 말한다. 장래 살해당한 숫자로 기억되는 “숫자의 세대”가 아닌 “해방의 세대”의 도래를 예고하며, 자신들은 “희생의 세대”로서 마지막 순간까지 싸우다 죽을 것을 각오했다는 것이다.
지속성이 있을 수 없고, 화력의 열세도 너무 뚜렷하기 때문에(이스라엘은 미국으로부터 매년 38억 달러의 군사 지원을 받고 있다) 사자굴로 대변되는 현상이 시작부터 실패했다고 논하는 평자들이 있다. 하지만 나블루스의 정치분석가 사메르 아납타위는 사자굴이 제시한 모델이 “단순한 현상이 아니라 하나의 이념을 창안했다”고 분석한다. 팔레스타인 무장투쟁의 물결로 “초당적인 청년들이 우리를 협상의 광장에서 다시금 점령에 대한 저항으로 끌어내고 있다”는 것이다.
사자굴을 비롯한 청년 무장투쟁 운동의 흐름은 팔레스타인 국내외 활동가들로부터도 강력한 지지를 받고 있다. 미국 단체 ‘팔레스타인 페미니스트 집단(Palestinian Feminist Collective)’은 이렇게 논평한다.
“사자굴은 정착형 식민주의(settler-colonialism)라는 폭력적 삶의 조건 속에 태어난 젊은 혁명가들이다. 이들은 팔레스타인 민중이 끝없이 견뎌내야 하는 폭력으로부터 민중의 삶을, 땅을, 민중 자체를 방어한다. 팔레스타인 민중은 우리의 ‘공식 지도부’에 계속 배신당했고, 이들에 공모한 세계의 국가 행위자들에게도 배신당했다. 사자굴은 이런 팔레스타인 민중에 희망을 준다.”
아무도 태어날 시대와 지역을 고르지 못한다. 우리가 분단된 한반도에 태어나 한국인으로 사는 것은 순전히 우연이다. 우리가 지금 여기 한국이 아니라 팔레스타인에 살고 있다면 우린 어떤 선택을 마주해, 어떤 결정을 내리고 있을까.
<각주)
1. 《워커스》 2022년 6월호, “이스라엘에 살해된 팔레스타인 기자, 쉬린 아부 아클레”
2. 유엔 인도주의 업무조정국(UNOCHA) https://ochaopt.org/poc/11-24-october-2022
3. 팔레스타인 청년의 죽음, 오로지 이스라엘 때문인가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201705051182819667
4. 이스라엘 점령군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전연 무고한 팔레스타인 주민에게 발포한 뒤 시신 옆에 칼을 두고는 해당 주민이 칼로 이스라엘 군인을 공격했다고 사건을 조작하는
일이 시작된 것이다. 이후로도 이스라엘은 운전 미숙으로 궤도를 이탈한 차량의 운전자들에 발포·살해하며 이들이 군인을 공격하려 했다고 조작하는 주요 수법이 됐다.
5. 파타는 공식적으로 무장 조직을 해산했지만, 파타 당원 중 무장투쟁 노선을 지지하고 실천하는 이들이 여전히 있다.
6. Palestine: Nablus rallies around the Lions' Den despite setbacks https://www.middleeasteye.net/news/israel-palestine-lions-den-nablus-rallies-setback
7. 열흘 후 타미미는 또다시 서안지구 최대 규모의 불법 정착촌 ‘말레 아두밈’에서 군사작전 중 사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