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만 보지 말고!

[미디어택] 로비 대상이 된 언론 그리고 무너진 기자윤리

“악취”, “좌파의 이중성”, “폐간”. 최근 ‘한겨레’ 뒤에 따라붙는 말들이다. 대장동 개발 화천대유 대주주 김만배 씨가 본인들의 불법 행위가 드러나는 것을 피하기 위해 기자들한테 향응을 제공하고 금품을 수수한 정황이 포착됐다. 이 과정에서 한겨레 간부급 기자가 김 씨와 9억 원의 금전거래를 한 것으로 확인됐다. 해당 기자는 곧바로 업무에서 배제됐고, 인사위원회를 거쳐 해고됐다. 한겨레는 현재 외부 인사가 참여하는 진상조사위원회를 꾸려 금전 거래가 보도에 영향을 미쳤는지 여부를 살펴보고 있다. 이 사건으로 한겨레 류이근 편집국장을 비롯해 김현대 대표이사, 백기철 편집인과 이상훈 전무 등이 줄이어 사퇴 의사를 밝혔다. 한겨레는 창간 이래 최대의 위기에 직면한 셈이다.


한겨레 기자는 김만배 씨와 거액의 금전거래를 하면서 ‘차용증도 없이’, ‘계좌거래가 아닌 수표’로 돈을 받았다고 증언했다. 홍세화 선생은 ‘한겨레 창간 정신이 퇴색됐다’며 1인 시위에 나섰다. 창간 정신까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그동안 한겨레가 밝혀왔던 지향점을 고려할 때, 한겨레의 도덕성과 신뢰도는 큰 타격을 받을 것임이 틀림없다. 한겨레가 이번 사건을 엄중하게 봐야 하는 이유다.

한겨레만의 문제가 아니다

한겨레가 뼈를 깎는 성찰이 필요한 건 사실이다. 다만, 한겨레에만 ‘집중’된 시선은 조심해야 한다. 어느 때보다 대장동 개발 사업과 그를 둘러싼 로비 그리고 로비를 가능하게 했던 ‘언론 권력과 기자 윤리’라는 전체 틀을 봐야 한다. 한겨레라는 한 언론매체가 아닌 언론사회 전체 문제로 인식해야 한다.

20대 대통령 선거의 핵심 키워드는 ‘대장동’이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성남시장 재적 시절 민간 업자에게 편의를 제공해 4천억 원이 넘는 수익을 몰아줬다는 의혹과 윤석열 대통령이 주임 검사로 담당했던 부산저축은행 부실 수사가 종잣돈이 됐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논란은 시작됐다. 이렇듯 정치 진영 내 싸움으로 불거진 대장동 개발 사건은 ‘50억 클럽’ 실체가 드러나면서 정관계 로비의 문제로 확장됐다. 화천대유를 통해 고위층 인사 6명한테 대장동 개발 이익을 챙겨줬다는 의혹인데, 곧바로 곽상도 국민의힘 의원(검사 출신), 권순일 전 대법관, 김수남 전 검찰총장, 박영수 전 특검, 최재경 전 인천지검장, 머니투데이 홍선근 회장의 이름이 공개됐다. 곽 의원 아들의 경우, 화천대유에 취업했던 일이 드러나기도 했다.

언론매체들은 빠르게 ‘법조 게이트’를 중심으로 대장동 사건을 파고들었다. 하지만 중요한 걸 놓치면 안 된다. 이 시기에 이미 언론계에도 로비가 진행됐다는 점이다. 머니투데이 홍선근 회장의 이름은 그 실체 중 하나다. 또 검찰이 이 같은 내용이 담긴 ‘정영학 녹취록’을 입수한 건 2021년 9월의 일이라고 하지 않던가. 그렇게 보면, 김만배 씨가 기자들을 대상으로 벌인 로비 행각이 현시점에서 불거진 것은 늦었다고 보는 게 옳다.

한겨레뿐만이 아니다. 중앙일보와 한국일보 기자 또한 김만배 씨와 각각 1억 9,000만 원, 1억 원의 금전거래를 한 정황이 드러났다. 채널A 기자는 명품 신발을 받았다고 한다. 김 씨는 언론인 출신 인사들에게 화천대유 홍보 및 고문 등의 명목으로 수천만 원의 급여를 지급했고, 수십 명에 달하는 기자들한테 골프 접대를 하는 등 많게는 수백만 원을 뿌린 정황도 등장한다. 정영학 녹취록에 나타났듯, 대장동 개발로 얻은 이익은 전 방위적인 로비자금으로 사용됐고 그 안에 언론인들이 있었다. 그것도 모자라 법조 신문과 민영 뉴스통신사까지 사들여 직접 운영하려 했다.

김만배 씨는 본인이 관리하는 ‘언론인 그룹’을 ‘지회’라고 불렀다. 정영학 녹취록에서도 “(김만배가) 기자분들 먹여 살린다”, “비용 좀 늘면 어때. 수사 안 받지, 언론 안 타지”라는 대화 내용이 등장한다. 김 씨가 평소 ‘언론’, ‘기자’들을 어떻게 인식했고, 취급했는지 드러나는 대목이다. 한 마디로, 언론 그리고 기자라는 직업을 물로 본 것이다.

김만배 씨는 기자였을까?

김만배 씨는 아이러니하게도 기자였다. ‘50억 클럽’에 등장한 머니투데이가 그의 직장이었다. 김 씨를 중심으로 언론계 로비가 쉽게 이뤄진 배경이기도 하다. 이번 사태에서 가장 무거운 책임을 져야 할 곳이 머니투데이여야 하는 이유다.

‘정영학 녹취록’을 보면, 김만배 씨는 머니투데이 법조기자였던 2014년 11월부터 대장동 사업에 참여한 것으로 보인다. 정영학 씨는 그런 김 씨를 ‘인허가 로비스트’, ‘검찰수사 무마 로비스트’라고 썼다. 흥미로운 점은 그가 머니투데이를 그만둔 것은 2021년 9월, 사건이 수면 위로 드러난 때라는 점이다. 머니투데이에서는 김만배 씨가 대장동 개발에 개입해 있다는 사실을 몰랐을까? 그런 질문이 자연스럽게 떠오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렇지 않아 보인다. 김 씨는 주간경향과의 인터뷰에서 회사(머니투데이)에는 ‘(대장동 개발의)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된 다음에 말씀드렸다’라고 말했다.

머니투데이 측은 부인하고 있다. 하지만 머니투데이 홍선근 회장에게 건너간 49억 원의 돈을 생각하면 의아한 건 사실이다. 김만배 씨가 회사를 그만둔 과정도 석연치 않다. 머니투데이는 김 씨를 비롯해 화천동인 7호 지분 100% 소유했던 배성준 법조팀장도 퇴사 처리했다. 징계받고 해고된 게 아니다. 이것만 보더라도 머니투데이라는 언론사가 어떤 언론관을 가진 곳인지 정확히 보여준다. 그 안에서 김 씨의 그릇된 언론관이 자라났다.

손뼉도 마주쳐야…언론 로비가 통했다

손뼉도 마주쳐야 소리가 난다고 했다. 김만배 씨 혼자의 문제가 아니라는 얘기다. 로비 대상이 됐던 언론인들의 비뚤어진 기자 윤리가 더해지지 않는다면, 이렇게 논란까지는 일지 않았을 거다. 대상 기자들이 좀 더 경각심을 가졌더라면…. 이번 사태에서 가장 심각하게 바라봐야 할 부분이다.


이번 사태가 과거 사건들과 다른 점이 없는 건 아니다. 동료 사이의 금전거래였다는 점이 그것이다. 맞다. ‘돈 거래’를 할 만큼의 친분이 쌓였다면 가능할 수도 있다. 하지만 본인 스스로 더욱 잘 알 것이다. 그 친분이 무엇을 기반으로 쌓였는지. 그리고 김만배 씨가 정말 ‘기자 동료’가 맞기는 했는지.

언론이 로비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 그 자체로도 ‘언론’은 이미 ‘권력화’했다는 점을 보여준다. 기자 윤리가 이번만 문제 된 건 아니다. 2016년, 조선일보 송희영 주필은 홍보대행사 뉴스컴 박수환 전 대표로부터 금품과 골프 접대 등 총 4,947만 원을 받은 혐의로 기소됐다. 대우조선해양으로부터도 유럽 왕복 1등석 항공권 등 초호화 접대를 받은 것으로 확인돼 논란을 빚었다. 2018년, 삼성 미래전략실 장충기 전 사장의 문자가 공개되면서 삼성에 줄 선 언론인의 행태가 고스란히 드러나기도 했다. 문제는 계속 반복된다는 사실이다. 그 기자들이 돈을 받고 판 것은 무엇인가. 이 질문이 꼭 필요한 오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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