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 시대와 비정규직

[질라라비]풀어쓰는 비정규직 운동

자동차산업은 우리나라 제조업 고용과 생산, 수출에 있어 매우 큰 비중을 차지하는 국가 주력 산업입니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가솔린, 디젤, LPG 등 화석연료로 구동되는 내연기관 자동차는 지난 100여 년간 세계무대를 주름잡고 있었죠. 그러나 길고 긴 내연기관 자동차 전성시대도 머지않아 저물게 될 것이 확실해 보입니다. 배터리와 모터만으로 차량을 구동하는 전기차 시장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기 때문이죠.


지난해 국내 전기차 판매량은 전년 대비 63.6% 증가한 16만 4,000여 대로, 시장점유율이 9.8%에 달했습니다. 내연기관 엔진과 배터리를 이용한 전기모터를 동시 탑재한 하이브리드 계열 전기차 판매량(27만 4,000여 대, 점유율 16.3%)까지 합하면 전체 시장점유율은 26.1%에 달해, 전기차 시대는 이미 개막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세계시장으로 고개를 돌려 보아도 이러한 추세는 확연합니다. 글로벌 완성차 판매량이 코로나19 시기를 경유하면서 주춤한 사이 전기차 판매량은 꾸준히 상승세를 기록했습니다. 지난해에는 전 세계에서 802만 대(전년 대비 68% 성장)의 전기차가 팔려 완성차 세계시장점유율 9.9%를 차지했습니다.

이처럼 최근 몇 년 동안 전기차 시장이 괄목할 만한 성장세를 보인 까닭은 무엇 때문일까요? 지금부터 ‘풀어쓰는 비정규운동’이 차근차근 그 이유를 설명해 드립니다. 그리고 이 같은 변화가 자동차산업에 종사하는 부품사 및 하청업체 노동자들에게 미칠 영향에 대해서도 짚어 보겠습니다.

1. 날개 단 전기차 시장, 왜?

전기차 시대가 우리의 생각보다 빠르게 진행되는 이유는 다음의 두 가지 큰 변화가 물줄기를 바꿔 놓았기 때문입니다.

첫째, 각국 정부가 탈(脫)탄소 정책을 강도 높게 펼치면서 전기차로의 전환이 가속화되었습니다. 2021년 그린피스의 보고서에 따르면 전 세계 탄소 배출량의 약 24%는 수송 분야에서 발생하며, 자동차는 그중 45%를 차지한다고 합니다. 그에 앞서 2016년 국제사회는 지구온난화에 따른 기후위기에 적극 대처하기 위해 파리기후변화협정1)을 체결했는데요. 유럽2), 미국, 중국 등 주요 탄소 배출국들은 파리협정을 통해 약속한 탄소감축 계획에 따라 이르면 2025년부터, 늦어도 2040년까지는 내연기관차 판매를 중단한다고 발표했습니다. 한국 정부도 2050년 탄소중립을 선언한 뒤, 2021년 2월에는 “2030년까지 자동차 온실가스를 24% 감축한다”는 계획을 담은 ‘제4차 친환경자동차 기본계획(2021~2025년)’을 내놓았습니다.

한국 정부의 경우, 2050년 탄소중립을 선언하면서 수송 분야에서 사용되는 화석연료 비중을 2018년 97.4%에서 2050년 4.3~7.7%로 감축한다는 계획을 내놓았습니다. 이처럼 각국 정부가 탄소배출 규제 정책을 강화하면서 내연기관차의 퇴출 및 전기차·수소차 등 이른바 ‘그린 모빌리티’3) 보급에 가속도가 붙기 시작했습니다. 여기에서 자세히 다루지는 않겠지만, 이와 같은 생산 메커니즘의 일대 변혁은 현재 인류가 직면한 기후위기뿐만 아니라 글로벌 에너지 위기, 이윤율 저하 압력을 극복하기 위한 자본의 신산업 진출 필요 등 복합적 요인이 맞물려 있기도 합니다.

둘째, 자동차산업의 주도권이 전통적인 제조업 중심에서 인공지능 기술과 서비스 중심으로 옮겨 가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전기차 시대의 도래는 기술변화가 야기한 필연적 결과라는 것이죠. 이를 가시적으로 보여 주는 것이 바로 자율주행차 개발과 차량공유서비스 확산입니다. 특히 자율주행차는 복잡한 부품과 엔진이 탑재되는 내연기관차에 비해 차량구조가 비교적 단순한 전기차와 궁합이 잘 맞습니다. 자율주행에는 인공지능 기술이 적용된 소프트웨어를 비롯해 다양한 디지털시스템이 갖춰져야 하므로, 엔진처럼 공간을 많이 차지하는 부품을 없앤 전기차가 더 적합하다는 것입니다. 좀 더 풀어서 설명하면 이렇습니다. 자동차를 우리 인체에 비유하면, 내연기관차에서 심장과 혈액 같은 구실을 했던 엔진과 화석연료가 전기차엔 더 이상 필요하지 않다는 뜻이죠. 화석연료를 연소시켜 구동 에너지를 얻는 내연기관차와 달리, 전기차는 배터리에 저장된 전력으로 모터를 회전시켜 주행하기 때문인데요. 이렇게 내연기관차와 전기차의 동력원이 다르기 때문에 자동차에 탑재하는 필수 부품도 당연히 달라집니다. 엔진·배기·연료계 부품들은 내연기관차에서 가장 중요한 부품들이지만, 전기차엔 들어갈 이유가 없게 되었죠. 그래서 내연기관차는 2만 5,000~3만 개의 부품이 필요한 반면, 전기차는 그 절반 수준인 1만 5,000개의 부품이 들어간다고 해요.

그런데 자율주행과 카쉐어링으로 대표되는 미래차 시대에는 지금처럼 완성차업체들이 주도권을 발휘하기란 쉽지 않으리란 전망이 우세합니다. 실제로 자동차산업과는 별 인연이 없었던 구글, 애플 같은 기업들도 전기차 시장에 속속 출사표를 던지고 있는데요. 어차피 이 시장을 선점하려면 핵심기술 확보가 관건이라서 완성차업체들도 이들 기업과의 협업 또는 경쟁이 불가피해졌습니다. 오늘날 거대 기업들에 미래차는 중요한 ‘미래 먹거리 산업’으로 인식되고 있는 것입니다. 완성차업체들도 전기차 껍데기만 만드는 하청업체로 전락하지 않기 위해 너 나 할 것 없이 공격적인 투자를 감행하고 있습니다. 이는 시장 지분을 둘러싼 자본 간 경쟁이 향후 자동차산업에서 더욱 심화될 것임을 예고합니다.4)

2. 완성차 자본이 주도하는 산업재편 밑그림

격변의 소용돌이 속에서 한국 정부도 수출과 내수의 대들보인 자동차산업 살리기에 발 벗고 나섰습니다. 산업재편기를 맞아 정부가 구사하는 전략의 핵심은 민간의 산업전환을 뒷받침하겠다는 것입니다. 이를 좀 더 정확히 표현하면, 현대기아차의 전기차·수소차 핵심기술 개발 및 부품사들의 미래차 부품 개발·생산을 위한 사업 전환 등에 국고 지원을 약속한 것입니다. 문재인 정부 시절이었던 지난 2021년 7월 관계부처 합동으로 발표한 ‘디지털전환·탄소중립 대응을 위한 선제적 사업구조개편 활성화 방안’과 ‘산업구조 변화에 대응한 공정한 노동전환 지원방안’이 대표적인 예시입니다. 이 같은 정부 정책은 기업과 노동 양측에 산업전환에 따른 지원을 표방하고 있지만, 구체적인 내용을 살펴보면 관련 기업에 대한 각종 지원과 규제 완화에 치중되어 있습니다. 반면 산업전환에 맞닥뜨린 노동자들에게는 그저 단순한 직업훈련 지원 정도를 약속하고 있을 뿐입니다.

여기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은 국내 완성차업체의 맹주 격인 현대기아차그룹의 행보입니다. 완성차 내수와 수출 부문에서 압도적 수위를 달리고 있는 현대기아차의 전기차 등 미래차 전환계획은 사실상 국내 자동차산업의 재편을 판가름하는 결정적 위치에 있습니다. 아시다시피 현대기아차는 내연기관차에서 수직계열화된 생산체제를 매우 견고하게 구축해 왔습니다. 가령 자동차 강판은 현대제철이 생산해 공급하고, 엔진, 변속기 같은 주요 부품들은 현대위아, 현대모비스 같은 계열사들이 생산해 공급하는 구조가 그렇습니다. ‘쇳물에서 자동차까지’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죠.


앞으로도 현대기아차는 내부기업이나 다를 바 없는 계열사와 자회사, 그리고 부품사들을 총동원하는 체제를 고수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러한 동원 체제는 현대기아차 입장에서는 원활한 부품 조달과 비용 절감의 일등공신이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원청에 납품을 하는 부품사 입장에서 이는 각종 비용과 위험을 고스란히 떠안게 되는 구조에 다름 아닙니다. 현대기아차를 비롯한 대기업들은 전방위적인 동원 체제의 장점으로 일사불란하고 빠른 의사결정을 손꼽지만, 이 또한 부품사의 생사여탈권을 누가 쥐고 있는가를 분명히 보여 주는 대목입니다.

이처럼 피라미드 구조의 정점에 있는 현대기아차는 전기차 시대를 준비하는 과정에서도 실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습니다. 이미 수직계열화가 완성된 내연기관차 생산체제에서 독자적인 사업재편 전망과 역량을 갖춘 부품사들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5)

3. 미래차 시대, 완성차 비정규직과 부품사 노동자들의 불안한 미래?

내연기관차의 생산 축소는 이미 시작되었고 판매 금지 역시 곧 다가올 미래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완성차 7개 사 노동자 12만 6,000명과 9,000여 개 부품사 노동자 23만 5,000명의 고용불안 문제도 갈수록 심각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업계에서는 내연기관차의 전기차 전환으로 해당 산업 고용 인원의 약 30%가 줄어들 것으로 전망하고 있습니다.

결국 내연기관차의 전기차 전환 문제는 일자리 측면에서 접근할 수밖에 없습니다. 글로벌 경쟁력을 강화한다는 미명하에 노동자들에게 일방적인 희생을 강요하는 전환 말고, 안정된 고용, 더 나은 노동조건을 요구하는 전환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당장 고용위기에 직면한 석탄화력발전소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상황은 또 어떨까요?

자동차산업과 크게 다를 바 없습니다. 정부가 지난 1월 발표한 제10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따르면, 전국 58기의 석탄화력발전소 중 28기가 2036년까지 단계적으로 폐쇄될 예정입니다. LNG복합발전소를 새로 지어 일자리 전환을 진행한다는 계획이지만, 폐쇄되는 28기 발전소 인원 중 절반가량은 실직이 불가피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LNG 발전의 특성상 석탄화력발전만큼 많은 인력이 필요하지 않다는 게 그 이유라지요. 전기차로의 전환이 일자리 상실로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과 결과적으로 같은 말을 하는 것입니다.

발전산업과 하나 다른 점이 있다면 자동차산업은 민간 영역에 속한다는 사실이겠죠. 정부가 내연기관차 시대의 종식과 미래차 시대로의 도약을 국가 차원에서 예비한다고 선언했지만, 말 그대로 선언에 그쳤을 뿐입니다. 그래서 자동차산업의 재편이 현대기아차 등 민간자본 주도로 강도 높게 진행된다면, 정부는 공적 책임에서 발뺌할 소지가 다분합니다.

4. 정의로운 전환으로 가는 길

자동차산업, 발전산업을 막론하고, 화석연료를 대체하는 에너지의 등장과 기술 진보가 오히려 해당 산업 노동자들의 삶을 옥죄고 있는 형국입니다. 자본은 그중에서도 산업생태계의 주변부에 자리한 불안정노동자들을 가장 먼저 공격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시차를 두고 벌어지는 구조조정 꼼수를 효과적으로 막아 낼 수 있는 수단은 결국 공동의 요구와 투쟁뿐입니다.

최근 발전산업 원하청 노동자들의 작지만 소중한 단결의 움직임이 꿈틀대고 있습니다. 지난해 12월 태안화력발전소에서는 ‘정의로운 에너지 전환을 위한 태안화력 노동자모임’이 결성되어 ‘현장 노동자들이 주도하는 정의로운 산업전환과 기후정의 실현’을 기치로 한 캠페인과 토론회 등의 활동을 꾸준히 이어가고 있습니다.

이렇듯 방향은 분명합니다. 기후위기를 가속화하고 불안정노동을 양산한 자본에 그 책임을 묻고, 전체 노동자들의 고용보장을 비롯한 민주적 제 권리의 쟁취로 나아가는 운동을 아래로부터 만들어가야 합니다.

오는 4월 14일, “민주적이고 생태적이며 공공성을 보장하는 체제를 만들어내는 전환의 주체”로 함께 나서기 위한 싸움이 준비되고 있습니다. 한 줌 재벌의 이익을 위한 산업전환이 아니라, 지속가능한 생산체제로 전환, 정의로운 전환을 요구하는 그 출발점에서 노동자의 이름으로 만납시다!

*이 글은 질라라비 235호(2023.3.)에 실린 글입니다.

---------------------------------------------------------
1)<각주>
‘파리기후변화협정(Paris Climate Agreement)’은 산업화 이전 수준 대비 지구 평균온도가 2℃ 이상 상승하지 않도록 전 지구적 온실가스 배출량을 단계적으로 감축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감축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각국은 기후변화 대응 기본계획을 5년 단위로 제출하고 이행해야 한다.

2) 지난 2월 14일 유럽의회는 2035년부터 EU에서 휘발유, 디젤 등 내연기관차 판매를 금지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3) 사실 전기차가 ‘친환경적’이라는 말은 일종의 편견에 가깝다. 차량 운행 단계에서 탄소 배출이 없더라도, 전기를 생산하고 배터리를 제조하는 과정에서 탄소를 발생시키기 때문이다. 또한 자동차의 생산과 폐차, 혹은 리사이클 단계에서도 탄소 발생은 피할 수 없다.

4) 2021년 기준 전 세계 전기차 모델은 2015년 대비 5배인 450개로 증가했으며, 전 세계 전기차 정책 지원금의 규모 역시 2021년 전년 대비 2배인 300억 달러로 증가했다. (자세한 내용은 다음 문헌을 참조 바람.)

김꽃별(2022.9.), 『코로나 이후 주요국의 전기차 시장 동향』, TRADE BRIEF No.16,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

5) 국내 내연기관차 부품사의 83%가 매출 100억 원 미만의 영세기업이며, 특정 완성차(1개사)에 대한 전속거래 비중도 44%에 달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처럼 기업 규모의 영세성, 완성차 자본에 대한 높은 종속성으로 말미암아 상당수 부품사들은 외부충격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자세한 내용은 다음 문헌을 참조 바람.)

관계부처 합동 보도자료(2021.6.), “자동차 부품기업 미래차 지원 전략”


[참고문헌] 하바라·오민규(2021.12.), 『한국 자동차 산업 노동자의 기후위기 및 정의로운 전환 인식 연구』, 그린피스 동아시아 서울사무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