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의 ‘집’이 일터인 노동자와 성폭력

[여성, 노동의 기록] 돌봄 노동자가 안전한 일터와 돌봄의 책임은 국가에게 있다


누군가의 ‘집’이 일터인 노동자들이 있다. 서비스 이용자의 집을 방문하는 요양보호사, 장애인활동지원사, 가사노동자 등 돌봄 노동자들은 집이라는 사적 공간이 일터다. 그리고 이들 대다수가 50대 이상 중년 여성이다.

서울시는 사회적 돌봄의 공백과 민간 사회서비스의 한계 상황에서 돌봄의 사회화를 목적으로 2019년 서울시사회서비스원(이하 서사원)을 설립했다. 서사원은 종합재가센터를 설치해 방문요양, 장애인활동지원, 방문간호, 긴급돌봄서비스 등의 사회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일터에서 발생한 성추행

서사원에 소속돼 파트타임으로 일하는 장애인활동지원사 ㄱ씨는 지난 2월 16일 이용자의 방을 청소하던 중 성추행을 당했다. 시각장애인인 이용자는 항상 청소한 걸레를 가까이 보여달라고 요구했는데 그날도 그랬다. 그런데 갑자기 이용자가 ㄱ씨의 오른쪽 엉덩이를 때렸다. ㄱ씨는 “이러시면 안 돼요. 성추행입니다”라고 말하고 우선 방문 밖 부엌으로 몸을 피했다.

성희롱이나 성폭력에 대한 제대로 된 교육을 받은 적이 없었기에 성추행 이후 ㄱ씨는 바로 가해자와 분리되지 못했다. 이용자는 서비스 제공 시간이 남았다며 은행 업무를 요구했다. ㄱ씨는 “심장이 벌렁거리고 다리가 후들거리는” 마음과 한 편 일을 잘 마쳐야 한다는 책임감에 성추행을 당하고도 바로 서비스를 종료하지 못했다. ㄱ씨는 일단 부엌으로 피해 떨어뜨린 물건들을 정리했다. 은행에 가기 위해 집 밖으로 나오면서 센터 파트장에게 전화로 상황을 알렸고 은행 업무까지 마쳤다. ㄱ씨는 성추행을 당한 지 약 한 시간이 지나서야 그곳에서 나올 수 있었다.

안 일어날 수 있었는데

ㄱ씨는 성추행 사건 이전에 관리자에게 여러 번 SOS를 보냈기 때문에 충분히 막을 수 있었던 사건이었다고 했다. ㄱ씨는 이번 이용자 매칭이 된 첫날 팬티만 입고 있는 이용자의 모습에 놀랐고 퇴근할 때쯤엔 성희롱성 발언을 들었다.

“안아보자고 해서 안 된다고 했더니 악수를 하자고 해요. 파트장한테 말할 거라고 했어요. 그랬더니 그렇게 요구 사항을 안 들어주면 자기하고 일하기 힘들다고 그래요. 그래서 나는 뭔지 모르겠고 그냥 안 된다고 그랬어요. 그리고 퇴근하면서 파트장에게 전화했어요. 파트장이 (이용자에게) 전화한다고 했는데 저는 전화했는지 몰라요.”

근무 첫날 이후 ㄱ씨는 파트장에게 계속 연락해 이용자가 반바지만이라도 입게 해달라고 요구했다. 업무를 보고하는 근무일지에도 썼다. 그러나 센터에서는 아무런 대응이 없었고 ㄱ씨는 불안 속에서 계속 일해야 했다. 성추행 이후 ㄱ씨는 서사원의 구제신청 절차를 밟고 있고 자신의 요구를 통해 심리 상담을 받고 있다.

성추행·성폭력의 전조를 ㄱ씨가 보고했음에도 현장에 변화는 없었다. 관리자를 통한 문제 해결이 어려울 만큼 조직은 체계적이지 않았다. ㄱ씨는 이번 이용자를 만나기 전에도 두 번 성추행을 당한 경험이 있었기에 조심했다. 그러나 성폭력은 피해자가 조심한다고 될 일이 아니다.

서울시사회서비스원 감정노동 컨설팅 결과보고서(2020)에 따르면, 서사원에서 성희롱 등이 발생했을 때 구체적인 대응이 미흡한 것으로 조사됐다. 예컨대 성희롱적인 발언을 들었을 경우 언제 서비스 제공을 종결할 수 있는지, 누가 종결할 수 있는지 매뉴얼이 부재했다. 이에 대해 보고서는 성폭력 가해, 전과 이력, 서비스업무 내용상 민감한 서비스 등이 있는 이용자에게는 동성 매칭하고 2인 1조 매칭과 이용자·보호자 예방 교육을 강화할 것을 권장하고 있다.

그러나 서사원은 방문 돌봄 노동자의 성폭력 문제 해결에 전혀 무관심해 보인다. ㄱ씨의 사건 이전 서사원 장애인활동지원사의 성폭력 피해가 있었고 관련한 언론 보도가 나오자 서사원은 녹음기 도입을 대응책으로 내놨다. 사실 활동지원사는 언제든 녹음이 가능한 핸드폰을 소지하고 있으나 한편 이용자의 사생활·프라이버시를 침해할 수 있기에 녹음기 사용은 제한된다. 녹음기가 근본적인 문제 해결은 아니다.

공공운수노조 서울시사회서비스원지부 (이하 지부)와 서사원이 맺은 단체협약(2020)은 성희롱·성폭력에 대해 서사원이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명시돼 있다. 80조는 “동일 성별의 이용자를 배정하도록 최대한 노력해야 한다”라고 규정해 젠더 위계로 발생하는 성폭력을 예방하고 있다. 또한 78조는 “긴박한 피해 상황(폭행, 욕설, 성폭력 등)에 처하는 직원에 대한 보호와 정상적 업무 복귀 지원에 최대한으로 노력하여야 한다”라며 사건 발생 시 피해를 당한 활동지원사를 보호할 수 있도록 되어있다. 하지만 단체협약은 제대로 이행되지 않았다.

장애인활동지원사의 안전과 돌봄 공공성의 상관관계

“인력 자체가 필요한데 오히려 통폐업을 했잖아요. 제가 보니까 (성희롱·성폭력이) 안 일어나려면 (활동지원사와 이용자를) 동성끼리 하거나 2인 1조로 해야 하는 것 같아요. 또 센터에서 현장을 직접 봐야 하는데 잘 안 나오니까. 현장에 나와서 계속 얘기도 나누고 해야 하는데.”

서울시와 서울시의회는 올해 서사원 예산 210억 중 142억 원을 삭감했다. 삭감된 예산으로 현재 서사원은 올해 7월에 문을 닫아야 할지도 모르는 존립 위기에 있다. 서사원의 존립 위기는 노동자의 안전한 일터와 공공돌봄의 위기로 이어진다.

2인 1조 현장 방문 체계를 시행하고 이용자·보호자에게 성폭력 예방 교육을 하기 위해선 인력과 체계적인 성폭력 대응 매뉴얼, 지원체계가 필요하다. 지부에 따르면 성희롱·성폭력을 겪고 힘들어하는 활동지원사들이 많고 혼자서 참다가 퇴사하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그러나 서사원은 활동지원사를 성폭력으로부터 보호할 수 있는 단체협약을 일방적으로 해지했다.

또한 지난해 9월 공공돌봄기관인 서사원은 장애인활동지원을 위한 종합재가센터 두 곳 중 하나인 노원종합재가센터(이하 노원센터)를 폐업했다. 이제 서사원 12개 종합재가센터 중 장애인활동지원을 지원하는 곳은 단 한 곳뿐이기에 장애인 공공돌봄의 공백이 더욱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실제로 노원센터 폐업 이후, 한 지체장애인은 노원센터에서 월 120시간 이용하던 활동지원서비스가 뚝 끊겼다고 토로했다.

115주년 세계여성의날을 기념하며 전국활동지원사노동조합(이하 지원사노조)은 민간 장애인활동지원사의 성폭력 피해에 대한 최초 산업재해 인정을 알리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지원사노조는 “장애인활동지원사가 이용자에게 성폭력을 당해도 방치되는 일터는 공공성이 결여된 사회서비스 전달체계의 필연적 결과”라며 성폭력으로부터 노동자의 안전이 보장되는 것이 장애인 활동지원의 공공성으로 이어지는 것이라고 짚었다.

장애인활동지원사를 비롯한 집을 방문하는 돌봄 노동자들은 외부 시선이 차단된 공간을 일터로 삼고 있다. 특히 여성이 다수인 돌봄 노동자들은 이용자의 요구 사항을 들어줘야 하는 업무 관계에서 오는 위계와 남성 이용자의 경우 발생하는 젠더 위계로부터 발생하는 폭력에 안전하지 않다.

돌봄의 책임이 국가에 있는 것처럼 돌봄 노동자의 안전을 책임져야 할 의무도 또한 국가에 있다. 돌봄에 대한 사회적 관심과 중요성이 커진 만큼 돌봄 노동자들에 대한 관심도 커지면 좋겠다. 여성 돌봄 노동자가 성폭력으로부터 안전해지면 공공돌봄은 강화된다. 나아가 공공돌봄에 대한 국가책임이 늘어나는 것은 돌봄 노동자의 안전한 일터로 이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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