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고 길었던 29일 환노위, 그 안과 밖

평가와 결정은 거리에서 싸우는 사람들의 몫

환노위 회의장에 양대노총 간부 총출동

국회 안의 타워크레인 47미터 상공에서는 비정규노동자 4인이 고공농성을 벌이고 있고 국회 밖에는 비정규철폐를 요구하는 천막과 집회가 열리고 있는 상황에서 국회 본회의장 513호실에서는 노동자들의 운명과 밀접한 연관이 있는 환경노동위원회가 열렸다.


양대노총 관계자 수십 명은 이 날 환노위 회의장과 주변을 오가며 자리를 지켰다. 또한 정부안이 법안심사소위로 넘어가면 12월 2일부터 무기한 총파업에 돌입하겠다고 공언한 이수호 민주노총 위원장과 역시 법안 강행시 총파업을 공언한 이용득 한국노총 위원장도 각 노총 간부들과 함께 이경재 환노위 위원장을 면담해 법안 '유보'를 호소했다.

희망 섞인 전망과 다른 국회 분위기에 당황한 모습

양대노총 위원장은 정회시간 동안 이경재 환노위 위원장에게 정부안을 법안심사소위로 넘기지 말 것을 강력하게 요구했으나 이경재 위원장은 난색을 표했다. 양대노총 위원장들의 요구에 대해 이경재 환노위 위원장은 "단병호 의원 법안은 심사소위로 넘기고 정부안은 안 넘길 수 는 없다"며 "법안을 안 넘기긴 힘들고 넘기긴 넘기지만 본회의에서 통과되기 힘들 것이란 뉘앙스를 이해해달라"고 답했다.

환노위 여당 간사인 제종길 의원은 "공감대 형성과 대화의 틀 마련에는 뜻을 같이 한다"고 답했으나 "법안 소위에는 넘기고 공청회 등을 실질적으로 열어서 처리하면 어떻겠냐"고 덧붙였다.

강승규 민주노총 수석부위원장이 "실질적 의견수렴들을 해서 다음 회기로 넘겨야 한다. 법안 소위 넘어가면 우리는 총파업이다"라며 다급한 마음을 표했지만 별 소용이 없었다.

배일도 의원의 정확한 지적

오히려 배일도 한나라당 의원이 법안이 실질적으로 통과되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과 별개로 이 사람들은 '유보'라는 말 자체가 중요한 것이라고 정확히 지적했다. 양 노총 간부들은 애타는 심정으로 이경재 위원장의 입만 바라봤지만 이경재 위원장은 "노동계 입장을 잘 알겠고 우리가 법과 원칙에 대해 결정하겠다고 답한 후 오후 회의를 속개했다.

사실 노동계 안팎에서는 거대 양당의 충돌 등으로 인해 이 번 정기국회 회기에서는 비정규개악안이 법안 소위 등을 통해 처리되지는 않을 것이라는 전망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그 희망 섞인 전망과 다른 국회 분위기에 양대노총 관계자들은 안절부절 하지 못했다. 노동자들의 투쟁이 정부와 의회를 압박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환노위 위원장의 말 한마디에 투쟁일정과 전망이 결정되는 어이없는 장면이 연출된 것이다.

면담이 진행될수록 정부안이 법안소위로 넘어갈 공산이 짙어지자 민주노총 한국노총 할 것 없이 간부들은 좌불안석하기 시작했다. 민주노총은 법안소위로 넘어가면 12월 2일 파업 돌입이고 한국노총은 법안 강행시 파업돌입이라는 입장인데 법안소위로 넘어가는 것을 강행이라고 판단하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긴장된 표정으로 급하게 담배를 몰아 피우던 한국노총의 한 간부는 "일정대로 가는 것 아니겠냐"는 답을 맥없이 내놓았다.

결국 공청회 회부로 낙찰, 법안 회부는 확정

오후 다섯시 경 정부 법안 제안 설명을 앞두고 이경재 위원장은 10여 분간 정회를 선언했다. 정회 기간에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 간사와 위원장은 잠시 모임을 가졌다. 그 모임 직후 어떤 언질을 받았는지 양대노총 관계자들은 다시 안도의 표정을 짓기 시작했다.

결국 지리한 질의가 이어지던 오후 7시 30분 이경재 환노위 위원장은 정부 법안을 공청회에 회부할 것을 선언했다. 선언 직후 이경재 위원장은 정확한 의미를 묻는 미디어참세상의 질문에 "법안소위에 안 올라간다는 것이 아니라 공청회를 거치면 어차피 이 번 정기국회 회기 내에선 처리가 안 된다는 의미"라는 답을 내놓았다. 수십 년의 보수정치 경력을 가진 다선 의원다운 노회한 답변이었다. 이해 당사자들이 모두 자신의 승리로 주장 할 수 있는 절묘한 선택이라는 지적이다.

평가와 결정은 싸우는 사람들의 몫

양당 간사 합의를 통한 이경재 위원장의 선언 이후에도 설왕설래는 이어졌다. 결국 비정규개악안을 비롯한 오늘 상정된 모든 법안은 법안심사소위로 상정이 확정됐다. 이번 회기냐 다음 회기냐의 문제만이 남았을 뿐이다.

환노위 회의가 끝난 후 단병호 의원실 강문대 보좌관은 15일부터 임시국회가 개원될 예정이라며 정부 여당이 마음만 먹으면 그 때 법안을 올릴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결국 힘이 바탕이 되지 않고서는 정부와 의회 일정에 계속 질질 매달릴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어쨌든 정부의 비정규법안이 유보되기는 했다. 하지만 오늘 환노위 결정으로 정부의 비정규 법안 두 개를 포함한 27개 법안이 결국 법안소위에 올라가게 된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리고 전례로 보건데 공청회라는 자리는 눈가리고 아웅하기 식으로 끝날 가능성이 매우 높다. 환노위 회의 직후 이수호 위원장의 투쟁보고 대로 '이제는 입법투쟁으로 전환해야 할 때' 인지 아니면 '법안 폐기를 위해 싸워야 할 때인지'는 거리에서 싸우는 사람이 결정할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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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규 , 환노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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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나다

    국회 법안처리과정을 자세히 안다면 '유보'라는 말이 나올리가 없는데요. 법안소위에 올라간 것(상임위 상정이 아니라고 하지만 이건 상정이 된 거에요)은 법안 처리의 과정이지요. '법안소위'에서 정부의 비정규직 개악안과 단병호 의원실에서 제출한 비정규직 관련 법개정안을 두고 심사를 하게 되겠지요. 이번 회기이냐, 임시국회냐, 2월 임시국회냐 라는 시기의 문제가 있지만, 명확하게 정부와 국회는 비정규직 개악안을 처리하기 위한 법률적 과정을 밝고 있다는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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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임위 상정은 이미 됐구요. 이 날 아침에 환노위 위원장이 27개 법안의 상정을 선언했지요. 그리고 비정규개악안도 법안소위에 올라가게 됐다고 기사에 명시하고 있습니다. 유보란 말의 해석에 차이가 있는 모양인데 시기적으로 볼 때 이번 정기국회에서 처리하게 되진 않는다는 뜻으로 이해하시면 될 듯 합니다. 혼란 드렸다면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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