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갚는 것이 아니라네, 영원한 사랑의 징표이지"

[백원담의 시와 모택동](4) - 연인이여 벗이여

1956년 모택동은 전용차를 타고 북대하(北戴河, 북경 위에 있는 지명)에 가서 회의를 하게 되었다. 그때 여비서 요숙현(姚淑賢)이 수행을 했는데, 요숙현은 남자친구와 약속이 있었지만, 그 회의로 인해 약속장소에 나갈 수가 없었다. 사정을 안 모택동은 미안해하며 그녀에게 말했다. “아휴, 어쩌지, 자네들 만남을 방해놓았군!”

그리고 그날 저녁 요숙현에게 전했다. “내 자넨에게 글 한편 써 줄테니, 돌아가거든 그걸 가지고 가서 남자친구에게 주고, 약속을 지키지 못한 이유를 잘 설명해주게” 그리고는 책상에 엎드려서 붓을 잡고, 한편으로는 써내려가고 다른 한편으로 즐겁게 읊조리며 시 한 수를 정성스레 써서 요숙현에게 건네주었다. 그때 요숙현에게 미안한 마음으로 써준 시가 바로 시경의 국풍에 담겨있는 패지방에서 유전되던 다음과 같은 시다.

얌전한 아가씨 곱기도 하지, 성 모퉁이에서 나를 기다린다네.
사랑하는데 보이지는 않으니 머리 긁적이며 서성이네.
얌전한 아가씨 예쁘기도 하지, 붉은 피리를 내게 주네.
붉은 피리가 빛나 보이는 건 그녀의 아름다움에 기쁘고 즐거워서지.
들에서 삘기(띠풀) 뽑아 돌아오니, 아름답고 남달라 보이네.
삘기가 아름다워서가 아니라, 고운 님이 가져다준 것이라 그런 게지.
靜女其姝, 俟我于城隅. 愛而不見, 搔首踟躕(搔, 긁을 소)
靜女其孌, 貽我彤管. 彤管有煒, 說懌女美(懌 기쁠 역, 순종할 역)
自牧歸荑, 洵美且異, 匪女之爲美, 美人之貽
(詩經·邶風·靜女)


1956년이면 반우파투쟁이 일어나기 한 해 전, 모택동이 유명한 스탈린평가를 감행한 해이다. 모택동은 스탈린을 한 사람의 위대한 맑스레닌주의자였지만 그러나 동시에 그것들이 오류였다는 것을 깨닫지 못한 채 많은 오류를 범한 맑스레닌주의였으므로 역사적 관점에서 그를 보아야 하며, 그를 위해 전면적 분석의 필요성을 제기했었다. 스탈린에 대한 전면적 분석의 요구는 스탈린을 한사람의 범죄자로서보다 역사적 평가 속에서 스탈린시대를 세계사의 국면에 재맥락화해내고자 하는 역사적 필요에 의한 것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후르시초프에 의한 스탈린격하운동이 모택동의 입장에서 보면 중국에서의 개인숭배와 관련한 어떤 우려 또한 감지하고 있었을 것이라는 문제가 제기되어 왔던 바와 같이 스탈린의 격하가 자칫 현실사회주의와 중국, 그리고 자기자신에 미칠 파급효과까지를 긍정적이던 부정적이던 고려하지 않았다고는 볼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 미국기자 에드가 스노와의 대담에서 밝힌 바와 같이 모택동 개인적으로는 이 시기까지 개인숭배에 대한 강렬한 저항감을 가지고 있었던 것 또한 사실이었다. 모택동은 스스로를 도를 수행하는 구도승으로 표현한 적이 있는 것처럼 개인숭배에 관한 한 문화대혁명 발발 시기를 제외하고는 거부감을 가졌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렇게 본다면 모택동에 대한 중국민의 애증, 그러나 대다수 중국민에게 있어서 영원한 연모의 정은 사람에 대한 애틋하고 따뜻한 배려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었을까.

수행원이 급작스런 회의일정으로 인해 연인과의 한때를 보내지 못한 것에 대한 모택동의 마음씀과 세심한 배려에서 느낄 수 있듯이. 그러나 그 모든 과정이 그에게 있어서는 또하나의 즐거움이 되고 시가 되고 있다는 사실을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시를 읽는 모택동, 좋아하는 시들을 자주 읽을 뿐만 아니라 열심히 써서 나누어주는 시적 관계상.

위 노래는 시삼백 중 애정을 표현한 노래이다. 시삼백의 시편들에는 앞서 소개한 것처럼 대다수 인민들의 현실사회에 대한 강렬한 비판과 열망을 담는 사회시들이 많지만, 다른 한편 이와 같은 애정시편 특히 연애시들이 많다. 시삼백을 정리했다는 공자가 그런 남녀간의 애정을 주제로 한 시편들을 시삼백에 그대로 둔 것은 공자 역시 인간적 정리를 가장 우선시하였기 때문일 것이다. 유가사상의 근본인 “인(仁)”에 대해 공자는 다름아닌, 애인(愛人), 사람을 사랑하는 것, 사람이 서로 사랑하는 것으로부터 비롯되는 것으로 풀이하였다.

  중국 북경 모택동기념관 앞에 핀 연꽃, 그 옆으로 연인들이 지나간다. 2003 여름

1965년 6월26일 모택동은 장사조(章士釗)에게 한통의 편지를 썼다. “대작을 받고 보니 뜻이 바르고 글이 엄한 것이, 정말 감복했습니다. 옛사람이 이르기를 ‘복숭아를 던지니 옥구슬로 답하리’라고 했지요. 이제 복숭아와 살구 다섯근씩을 보내드리니, 자 받아드세요! 던지고 받고 상반되지만 양해를 구합니다.”

장사조는 사실 1926년 북경여사대사건 당시 교육부총장으로 북경여사대의 폐교시킨 보수적 지식인으로 중국의 문호 노신(魯迅)과는 정적이었다. 노신이 좌파적 입장을 가지게 되는 것은 두가지 역사적 사건을 겪으면서 비롯되는데, 하나는 노신의 두 제자들이 친일파 단기서(段祺瑞) 북양군벌정부에 반대하다 그 총에 맞아 죽은 북경여사대사건이고, 다른 하나는 장개석(蔣介石)이 국공합작을 결렬시켰던 4.12 반동쿠테타이다.

뿐만 아니라 노신은 보수적 지식인들의 복고운동과 지속적으로 치열한 논쟁을 벌였는데, 장사조는 문학혁명 당시 보수적 입장을 대변하던 <갑인>잡지의 편집장이었으며, 1920년대 백화문운동이 고양되는 와중에서 “문장은 불변의 고문을 써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함으로써 노신 등 문학혁명·혁명문학 진영과 쳠예한 대립을 이루었다. 그리고 이후 북경여사대의 교장이었던 양음유(楊陰楡)·진원(진원) 등 <현대평론>파 계열로 중서조화(中西調和)를 주장하며 문화보수주의를 고집한 바 있다.

그러나 중국공산당과 모택동에게 장사조는 적지 않은 도움과 좋은 관계를 유지함으로써 모택동은 장사조를 평생의 지기의 한사람으로 사귀었고, 사회주의건설 이후에도 많은 배려를 아끼지 않았던 인물이다. 장사조가 그의 저서 《유종원 문장 요지 柳文指要》(당나라때 고문운동을 주도했던 柳宗元의 문장풀이집, 장사조는 고문운동을 제창하였고, 그중에서도 유종원의 치밀하면서도 ‘雄深雅健’의 문장을 흠모하였고, 고문의 모범으로 삼고자 하였다)를 모택동에게 보내자, 모택동 역시 유종원의 시문을 즐겨보고 좋아했던 바, 장사조의 작업에 대해 높이 평가하고, 그에 대한 평을 시경의 시편으로 대신한 것이다.

모택동은 장사조에게 이 시로 쓴 서신을 보내기 엿새 전, 상해에서 중국문학사가 유대걸(劉大杰)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유종원의 시작 <하늘에 대함天對>를 두고 모택동이 가장 좋아했던 굴원(屈原)의 초사(楚辭, 초나라 시가, 시경과 버금가는 중국 전국시대 남방문학총집) <하늘에 묻다 天問> 이후 천년이 지나고서야 이런 글이 나오니 유종원의 배짱이 대단하다고 평가하고 있었다. 그리고 일찌기 1933년 유종원에 대하여 유종원이 <천론 天論>에서 인간과 하늘이 서로 상승(相勝)한다는 논점을 제출하며 천명론에 반대하였다고 지적하면서 그를 유물주의자로 명명한 바 있다.

그런데 장사조가 《柳文指要》를 출간하여 보내오자, 그것을 읽고 장사조의 작업이 갖는 의미를 부여하며 그에 대한 화답의 시를 써보낸 것이니, 이는 모택동의 폭넓은 인간관계의 단면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리고 보다 중요하게는 모택동이 평시 지인들과 교류하는 방식, 중국 전통문인사대부들이 주고받던 시문화답식의 관계지움의 진경을 보여주고 있기도 하다. 그것이 ‘문(文)을 통해 강고한 봉건중국을 이어오는 결정적 고리, 봉건이데올로기의 유지·온존방식이기도 하였지만 말이다.

중국 고전에 대한 모택동의 심도있는 이해와 통찰, 중국문화현대화과정 속에 그가 가지고 있었던 중국의 전통문화유산에 대한 재맥락화 기획은 어쩌면 민주와 과학이라는 계몽신화에 매인 중국 근현대시기의 지식인들의 고민과 노력을 거대한 수원지처럼 빨아들이고 그 문제를 보면서 중국식 문화현대화의 도정으로 만들어가는 모택동식 긴 문화혁명의 한 여정으로 읽을 수 있겠다. 거기서 전통에 대한 강한 부정을 통해 전통의 핵질을 가장 분명하게 거머쥐었던 노신과 모택동의 역사적 만남, 노신의 정적이었던 장사조와의 관계상이 그리는 음영은 노신과 모택동을 통해 문화중국을 읽는 참으로 어렵고도 흥미로운 주제가 아닌가 한다.

그녀가 나에게 모과를 던져주었네, 나는 옥고리로 보답하였지.
갚는 것이 아니라네, 영원히 함께 하자는 사랑의 징표이지
그녀가 나에게 복숭아를 던져주었네, 나는 아름다운 옥돌로 보답하였지.
갚는 것이 아니라네, 영원한 사랑의 징표이지
그녀가 나에게 오얏을 던져주었네, 나는 아름다운 옥구슬 패물로 보답하였지.
갚는 것이 아니라네, 영원한 사랑의 징표이지
投我以木瓜, 報之以瓊璩, 匪報也, 永以爲好也(瓊璩, 경옥 경, 고리 거)
投我以木桃, 報之以瓊瑤, 匪報也, 永以爲好也(瑤, 아름다운 옥 요)
投我以木李, 報之以瓊玖, 匪報也, 永以爲好也(玖, 옥돌 구)
(詩經·衛風·木瓜)


  북경 노신박물관 안에 있는 서점에 놓여있는 노신과 모택동 엽서, 그들의 역사적이고 운명적인 만남은 장사교라는 인물에 대한 두 사람의 관계상에서도 가늠해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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