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 사과 대신 기만을 택한 노무현 대통령

기동단 해체와 책임자 처벌, 진정성을 담은 사과를

노무현 대통령이 대국민 사과를 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10분 가량 사과문 형식의 발표와 세 개의 질문에 답변하는 형식으로 기자회견을 마무리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인권위 결정을 환기하는 가운데, "국민여러분께 머리 숙여 사죄드립니다. 그리고 돌아가신 두 분의 명복을 빕니다"라고 사과 발언을 시작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인권위 권고에 따라 '책임자의 응분의 책임', '피해자 국가 배상', '재발이 없도록 (경찰) 교육' 등을 하겠다고 말하면서도 '경찰관계자'와 '자식을 전경으로 보낸 부모님'의 불만과 우려를 거론했다. 또한 폭력 시위를 주도한 사람들이 공권력의 이성을 잃도록 원인을 조성했다는 입장을 거론하기도 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또 공권력의 책임은 무겁게 다뤄야 하지만 "쇠파이프를 마구 휘두르는 폭력시위가 없었다면 이런 사고도 없었을 것이라며 이에 따른 대책을 마련하겠다"는 이야기를 마지막으로 대국민 사과를 마쳤다.

27일 오전 허준영 경찰청장이 대국민 사과를 한 데 이어 노무현 대통령이 직접 사과한 것은 인권을 강조해온 참여정부로서 사태를 더 이상 끌지 않는 것이 좋겠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알려졌다. 국가인권위원회의 결정이 내려진 데다 두 농민의 죽음에 따른 사회적 반발이 수그러들지 않은 데 따른 사고수습책임을 의미한다.

그러나 노무현 대통령의 사과는 사과로서의 일고의 가치도 없다. 사태의 본질을 짚고 진정한 사과를 요구해왔던 유가족과 농민, 범대위와 사회구성원 모두를 모독했다. 사과문은 그 어디를 뜯어봐도 두 농민이 어떤 상황에서 무엇에 의해 죽임을 당했는지에 대한 언급을 찾아볼 수 없다. 농민이 무엇 때문에 여의도에서 물대포를 맞아가며 절박한 시위를 벌였는지, 5-600여 명의 농민이 왜 중경상을 입으면서까지 처절하게 저항할 수밖에 없었는 지에 대한 언급도 안 했다.

책임자 처벌 요구에는 발을 빼는 코미디 같은 장면을 연출했다. "폭력 시위를 주도한 시위대가 공권력의 이성을 잃게 만들었다"며 이같은 폭력 시위가 없도록 "시민사회단체와 정부가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두 농민의 죽음에 대한 사과인지, 농민의 존재 자체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선전포고인지조차 헷갈릴 지경이다.

두 농민의 죽음은 이 땅에서 농민의 존재 자체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노무현정권의 세계화 정책이 부른 필연의 결과이다. 죽어간 농민의 수는 셀 수조차 어려운 지경이며, 쌀비준동의안의 국회 처리는 농민 전체의 마지막 목줄을 잡아당기는 사건이었다. 저항은 불가피했다. 농민은 생존을 위해서 살을 애는 추위에도 불구하고 여의도로, 광화문으로 나서야 했다. 농민의 모든 행동은 폭력이 아니라 자신의 삶에 대한 마지막 애착이었다.

여기서 노무현정권은 두 농민을 때려죽이는 희대의 범죄를 저질렀다. 이성을 잃은 것은 공권력이 아니라 노무현정권이었다. 노무현정권이 곧 공권력이었다. 평상심을 잃어버린 노무현정권의 심리는 두 농민의 죽음 앞에 내놓은 허무맹랑한 사과문에도 명명백백하게 드러난다.

오늘 노무현 대통령의 대국민 사과는 무효다. 일부 지배세력을 제외한다면 우리 사회구성원 그 누구도 오늘 노무현 대통령의 사과를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진정으로 사과할 의사가 있다면, 최소한의 이성을 회복하기를 원한다면, 무엇보다 농민이 우리 사회 주요 구성원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동시에 쌀비준동의안 통과로 파행을 부른 지난 과오를 뼈저리게 반성해야 하며, 농민을 죽음으로 몰아세운 기동단 부대의 해체와 경찰청장 등 책임자 처벌을 즉각 천명해야 한다. 이 최소한의 조치만이 그나마 구중심처를 떠도는 두 농민의 죽음 앞에 사죄를 구하는 길임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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