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 김근태 의장, 정치 패배 수습 못할듯

하나 정도는 사태 원인 진단과 해결의 정곡을 짤렀어야

5.31 지자체 참패 이후 당권을 이어받은 김근태 열린우리당 의장이 지난 주말 언론과의 인터뷰를 가졌다. 연쇄 인터뷰에서 정치 현안에 대한 견해와 구상을 두루 밝혔다. 김근태 의장은 연쇄 인터뷰에서 당정 관계, 부동산, 한미FTA, 연기금, 사립학교법 등 중요한 현안에 종합적인 의견을 피력했다.

김근태 의장은 참여정부가 신자유주의 흉내를 내다가 실패했다는 언급을 했다. 이와 함께 노무현 대통령의 보고라인 전체를 모피아(경제출신관료)들이 장악해서 통찰력과 분별력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도 내놓았다. 위기 수습에 나선 김근태 의장으로서는 청와대와 거리두기가 불가피하기도 하거니와 관료체제에 대한 불만을 드러냄으로서 일정하게 각을 세우는 모습일 수도 있다.

그러나 총론 수준의 이러한 지적조차 각별한 의미를 갖기는 어려워 보인다. 가령 김근태 의장이 연기금을 통한 경영권 보호 방안으로 기업의 투자 의욕을 고취할 수 있다고 말하는데, 경영권 보호는 법적으로나 시장에서나 이미 제대로 작동되고 있다. 집단소송제나 이중대표소송제, 출자총액제한제, 금융산업구조개선법 따위를 재검토하겠다는 것이 아니라면, 스스로 언급한 "강요된 신자유주의 방식으로 인한 저투자 -> 저성장 -> 저고용의 악순환"을 해결하기 난망한 일이다. 새로운 케인즈가 백마타고 나타나 구원해줄 것을 원하지만 안타깝게도 케인즈가 다시 부활하는 일이란 건 벌어지지 않을 테니까.

더욱이 김근태 의장이 총론을 이야기할 처지는 아니다. 노무현정권이 지난 선거에서 사실상 탄핵을 당했고, 그동안 추진해왔던 국정 총론이 민중들로부터 외면받았다고 볼 때, 김근태 의장으로서는 각론 처리조차도 힘겨운 상황에 처해 있다고 보는 것이 맞겠다.

김근태 의장은 물론 여러 각론에 대한 의견을 피력했다. 부동산 문제에 대해 보유세나 양도세에 손을 대지 않겠다며 1가구 1주택 종합부동산세 완화 등 보유세 조정 의견에는 부정적인 입장을 취했다. 한미FTA 협상에 대해서는 미국이 정한 시간표에 구속될 경우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는 신중론을 펼쳤다. 사립학교법 재개정 여부에 대해서도 시행해보고 문제가 있으면 바꿔야 한다며 재개정 의사가 없음을 시사했다. 그밖에 정계 개편이나 당청 관계 등에 대한 의견도 두루 제시했다.

각론에서 볼 때 김근태 의장의 태도는 기존 열린우리당의 정책을 유지하는 입장에 서 있다. 이로서 김근태 의장은 취임 일주일 만에 정치적으로 패배하고, 정책적으로 실패한 열린우리당이지만 명맥을 이어 책임을 다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셈이다. 만년 2인자라고는 하지만 재야 개혁세력의 본산을 자처하는 김근태 의장의 행보로 보면 연민의 요소도 없지 않다. 더욱이 김근태 의장이 짊어지고 가야 할 현안이란 게 답이 이미 없다고 판명된, 즉 실패한 국정방향의 잣대를 규정하는 핵심 문제에서 이탈한, 실패하거나 누더기가 된 각론들 뿐이기 때문이다.

열린우리당과 개혁세력은 정치 실패의 교훈을 객관화조차 못하고 있다. 그들은 사회적 빈곤을 부추겨온 신자유주의 정책과 전략적 유연성 합의와 한미FTA 추진과 같은 것이 선거 패배와 정치 실패의 핵심이었다는 진실한 목소리를 듣지 않았다. 노무현정권은 선거를 한 달도 안 남겨놓고 KTX 승무원에 공권력을 투입하고, 평택에 군인을 투입하고, 묻지마 한미FTA 협상 추진에 올인했다. 민중이 노무현정권을 심판한 것을 총론 탓으로만 볼 일은 아니다. 각론에 대한 분노가 훨씬 구체적이며, 사회구성원들은 지난 선거에서 그 분노를 참지 못했던 것이다.

김근태 의장이 이러한 정치적 패배와 정책적 실패의 원인 진단을 정확히 하고 있는지는 알 길이 없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김근태 의장이 총론을 뒤집어 문제 해결의 방향을 제시할 능력이 없다면, 각론 차원에서라도 한 가지 정도는 쿨한 정치적 선택을 했어야 했다.

횡설수설 연기금 이야기나, 불량한 부동산 이야기나, 너덜너덜해진 사학법 유지 같은 낡은 정책을 강조하는 것으로는 재야 개혁 본산의 자존심조차 세울 수 없는 상황이란 걸 뻔히 알지 않는가. 다시 가르쳐 줄까? 한미FTA 협상 중단, KTX여승무원은 전원 복직, 문정현 신부의 요구 전면 수용. 이 중 하나 정도 정곡은 찔렀어야 한다. 그 정도도 안 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