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에 갔다왔습네다

[유영주의 전망좋은談](3) - 개성평양방문기

평양 전쟁 중

8월 28-30일, 3일간의 평양 방문, 나는 전쟁터 참호 한 가운데 있었다.


이즈음 미국은 7월 4일 북 미사일 시험 발사 이후 유엔안보리 제재 1695호를 강조하며 더 강경한 후속 조치를 예고했다. 31일날 MD 실험도 한다고 밝혔다. 북은 노동신문과 조선중앙TV를 통해 "사회주의 신념이 강한 인민은 불패"라며 "자위적 군사력 강화, 자주권 수호"를 힘주어 말하고 있었다.

"유엔안보리 결의? 우습지요. 물러서면 이라크 꼴 난다는 게 우리 생각이거든. 여기서 물러서면 사찰 나오네 마네 그럴 거야... 쥐도 도망 갈 곳을 열어주고 쫓아야지. 경제 봉쇄 안 풀어서 죽이려 하는데요... 노무현 대통령요? 미국이 동맹 이야기하면 너희는 친구가 될지언정 북은 형제다 라는 신호를 분명히 보내야지..."

평양에서 만난 민족경제협력연합회(민경련) 고위 간부, 그는 미국의 대북봉쇄 정책에 강한 불만을 피력했다. 북에서 만난 그 누구도 이 정세인식에는 차이가 없다.

북은 작년 12월부터 6자회담의 전제조건으로 금융제재 철회를 요구했지만, 미국은 조건 없는 6자회담 재개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미국은 1년 전부터 방코델타아시아(BDA) 북 계좌에 있는 2400만 달러 동결을 비롯, 베트남, 몽골, 싱가폴, 홍콩 등 북의 달러 유통이 가능한 모든 계좌를 틀어막아왔다. 북은 미국의 봉쇄정책으로 쌀, 전력, 기름 등 기초적인 자원이 턱없이 부족한 데다 큰물(홍수)까지 겹쳐 큰 고통을 당하고 있었다. 그 간부는 이런 와중에 남에서 유엔안보리 결정을 이유로 쌀과 비료 지원을 중단하겠다고 한 데 대해 몹시 화가 났다고 말했다.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원망의 목소리도 감추지 않았다.

평양 방문을 마치고 서울로 돌아오자, 예상한 대로 미국이 대북 경제제재 조치를 강화한다는 발표 보도를 접했다. 방코델타아시아 조사결과에 따라 2000년 해제했던 경제제재 조치들을 원상 복원한다는 입장을 곧 발표한다는 관측이었다. 이는 추가 제재를 통해 본격적인 '북 체제 변환(regime transformation)' 작업에 나섰다는 걸 의미한다.

또한 8월 28일에는 북 미사일을 목표로 가정한 미사일방어체제(MD)를 31일에 실험한다고 발표했다. 알려진 대로 북은 미국 독립기념일인 7월 4일 미사일을 쏘아올렸다. 그러자 미국은 기다렸다는 듯이 MD체제를 가동했다. 북 미사일을 구체적인 목표로 정했다고 명시적으로 말한 건 내가 알기로는 처음이다. 미국은 지난 20년간 미사일 요격 시스템 구축에 공개된 것만 910억 달러를 쏟아 부었다. 알래스카주 포트 그릴리에 9기, 밴던버그 공군기지에 2기 등 모두 11기의 요격 미사일을 배치했다. 2002년 10월 MD 실험은 성공했지만 그해 12월과 2004년, 2005년 2월 등 세 차례 실험에서는 요격에 모두 실패했다. 그러나 예정보다 이틀 늦은 9월 2일 새벽에 실험한 MD는 성공했다고 밝혔다.

목표 미사일은 알래스카의 코디액섬에서 발사됐고 요격 미사일은 캘리포니아 반덴버그 공군기지에서 발사됐다. 익히 알려졌듯이 MD는 목표 미사일을 격추시키는 것을 명분으로 하지만, 때에 따라서는 언제든 모든 목표물을 요격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MD가 계속되면 중국과 러시아가 다탄두를 장착한 대륙간 미사일 개발에 박차를 가하게 된다. 군비 경쟁에 따른 한반도 긴장 고조는 불을 보듯 훤하다.

주지하듯이 미국은 노골적이다. 금융제재와 추가 제재를 통한 대북 체제 전환 작업을 노골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동시에 미사일방어체제와 신속기동군화를 통한 전쟁 책동을 획책한다. 한미일 동맹을 기반으로 동북아지역 질서 재편 과정에 정치적, 군사적 헤게모니를 틀어쥐고 있다. 현재 금융제재만도 북의 인민의 생존을 위협하는 심각한 문제인데, 여기에 추가 제재 조치와 MD 실험과 을지포커스훈련 등 전쟁 실험까지 몰아붙이는 형편이니, 비행기에 오를 때부터 평양이 평화로울 거라는 기대는 애시당초 하지 않았다.

북의 저항 의지는 노동신문에서 쉽게 확인된다. 8월 30일만 봐도 그렇다. 우선 미국에 대한 적대적 인식이 분명하다.

"미국은 다른 나라들에 대한 선제공격을 새로운 군사전략으로 확정하고 일을 실천에 옮기려고 광분하고 있다. 미 국방성은 선제공격전략을 실행하기 위한 새로운 '전쟁계획씨나리오' 수십 건을 이미 작성해놓고 있다. 이 '전쟁계획씨나리오'들은 자주적인 나라들에서의 '유사시'를 가상한 것, '반테로전'의 확대 등을 예견하고 있다. 이를 통해서 알 수 있는 것은 미국이 '반테로전'을 통해 저들의 세계지배체제를 확립하기 위하여 침략무력의 재배치와 현대화, 새로운 형의 핵무기 개발과 생산에 열을 올리고 있다. 임의의 지역과 나라가 미제의 '반테로전'의 목표로 되고 있다."

노동신문은 미국이 일으킨 반테러전쟁을 일일이 짚어가며 나라와 민족의 흥망은 결국 자위적 군사력에 달려 있다고 강조한다.

"1980년대의 그레네이더와 빠나마에 대한 침략, 1990년대의 유고슬라비아 공습, 21세기에 있은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 대한 침공은 자기를 지켜낼 힘이 약하면 결국 침략자들에게 먹히우고 노예의 운명을 강요당하게 된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만수대 조형물. 북에서 만난 사람들 대부분은 미국의 경제 제재에 강한 불만과 저항 의지를 피력했다.

예컨대 북미간 대결의 일차적 원인은 명백히 미국의 대북 봉쇄정책에 기인한다. 부시정권 등장 이후, 특히 9.11 사태를 거치면서 더욱 분명해졌다. 그러나 미국의 대북 봉쇄정책이 성공할지 여부는 아무도 장담하지 못한다. 미국은 전쟁과 야만, 폭력과 착취로 헤게모니 구축을 시도하고 있다. 아프가니스탄 침공, 이라크 전쟁, 팔레스타인 침략으로 지구촌 곳곳에서 전쟁을 일으키고, 그 과정에서 이란, 리비아, 북을 향한 공공연한 전쟁 협박을 거듭했다. 그러나 최소한 지금까지는 어느 곳에서도 미국의 성공은 확인되지 않는다. 앞으로도 불투명하다. 미국의 침략이 벌어지는 현장에는 어느 곳에서나 침략보다 더 큰 저항이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썩 괜찮은 대통령 차베스, 그는 9월 21일 유엔 총회 연설에서 부시를 악마로 비유했다. 21세기에 미국은 반드시 몰락할 것이라고 예언했다. 유쾌통쾌하기도 하거니와, 어서 빨리 그런 날이 와야 마땅하다.

평양 방문동안 북에서 만난 민경련 참사들 대부분은 미국의 봉쇄정책에 분노했다. 쥐도 도망 갈 곳을 열어놓고 내쫓는 법이라며 분개했다. 미국이 경제제재를 중단하지 않으면 자위권을 발동해서 끝까지 버틴다는 입장이다. 북 인민은 지난 시기 '고난의행군'으로 단련하고 '타도 제국주의' 80년 동안 선군사상으로 무장해왔다. 북 인민의 반제 저항의 이력을 만만하게 본다면 큰 코 다친다. 삶의 밑바탕에 반제 민족운동, 그 저항의 자존심과 자신감이 바탕에 깔려 있다. 이 고위 간부는 "2천만이 단결해도 자존심을 지켜내는데, 남쪽의 5천만이 함께 하면 미국 쯤은..."이라며 말을 줄인다. 큰 말 안에 작은 말들이 다 모여 있을 따름이다.

8월 28-30일, 평양은 그렇게 미국과 전쟁을 치르고 있었다.


정세 해치고 비행기 띄우다

평양을 방문하기 닷새 전인 8월 23일 나는 개성을 방문했다. 작년 말 남북경협사업자로 선정된 (주)대동무역의 김영미 전무의 배려 덕분이다. 그녀가 민중언론 참세상에 강서청산수 공장 준공식 취재를 제안해주었다. 평소 남북경협 사업 취재에 큰 관심을 두지 않아 약간의 부담이긴 했다. 그러나 개성과 평양을 방문한다는 건 그 자체로 흥미로운 일이었다. 나는 편집국의 양해를 얻어 다녀오기로 했고, 23일은 준공식 협의차 개성에서 민경련 관계자들을 만나기로 예정된 날이었다.

최초에는 8월 15일을 전후해서 강서청산수 공장 준공식을 가질 예정이었다. 그러나 북의 요청으로 일정이 미뤄졌다. 큰물과 정세 탓에 비행기를 띄울 수 없고, 따라서 공장 준공식을 연기한다는 것으로 전해들었다. 방북 예정자들도 그러려니 하며 별 불만 없이 이해하는 형편이었다. 7월 4일 미사일 시험 발사와 을지포커스렌즈 훈련 등으로 한반도 정세가 경색국면으로 치닫는 상황에서, 북과 남과 유엔까지 허락해야 가능한 전세기를 띄운다는 것 자체가 쉬운 일이 아닐 거라 보았다. 그런데 일정이 미뤄진 속사정은 딴 데 있었다.

8월 23일 개성에서 만난 민경련 간부는 강서청산수 공장 준공식을 하자면 공장 전체를 돌릴 전력이 있어야 하는데, 북은 8월 15일까지 그만한 전력을 확보하기 어려운 사정이 있었다고 털어놓았다. 실제로 북은 공장 준공식을 위한 방북단 초청에 호의적이었다. 김영미 전무에 따르면 통일부에서도 적극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고 한다. 그날 개성에서 앉은자리에서 28일로 날짜를 확정했다. 험한 정세에도 불구하고 전세기를 띄울 수 있었던 배경은 (주)대동무역이라는 남북경협 사업자에 대한 북의 신뢰와 통일부의 지원이 있었기 때문이다. 아무튼 이날 결정으로 7월 4일 이후 처음으로 김포-평양간 전세기가 뜨게 되었다.


하루에 군사분계선을 여섯 번 왔다갔다

  개성공단관리위원회 건물 전경

8월 23일, 대수롭지 않은 일일 수도 있겠지만 나는 분단사에 새로운 기록을 하나 남겼다. 나는 이날 하루동안 군사분계선을 세 번이나 넘나들었다. 나를 포함해서 김영미 전무, 이재익 팀장, 양규헌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대표 등 네 명이었다. 남에서 북으로 다시 남북남북남을 오갔다. 통일부가 하루 세 번 방문하는 건 전례도 없고 허락해줄 법 규정도 없어서 망설였다고 했지만, 김영미 전무가 "안 된다는 법 규정 있으면 가져와 보라"고 상냥하게 다그쳐 허락을 받았다는 후문이다.

사연인즉 23일은 강서청산수 공장 준공식 협의 약속과 함께, 송이버섯을 운송할 1톤 냉동탑차 10대를 북으로 전달하기로 한 날이었다. (주)대동두하나는 올해 북에서 생산되는 송이버섯 100톤을 남에 공급하는 독점사업자로 선정된 바 있다. 이날 네 명이 냉동탑차 10대를 운전해서 북으로 옮기자니 개성을 세 번 방문하지 않을 수 없었고, 응당 군사분계선을 여섯 번 통과하게 된 거다.

감흥은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누구한테나 그러하듯 아직까지 북은 미지의 땅이다. 통일부 통계에 따르면 지난 60년간 남북 왕래인원이 85,400명인데 비해 2005년에만 88,341명이 왕래했다고 한다. 금강산 관광객은 2005년 6월에 1백만 명을 돌파한 걸로 되어 있다. 요즘도 개성공단 방문자는 하루 500명이 넘는다. 그러나 숫자는 숫자고 현실감은 현실감이다. 북은 보통 사람들에게 여전히 손에 잡히지 않는 먼 미래의 땅이다. 남북교류 하는 사람이나 통일운동 하는 사람들에게는 상대적으로 익숙할지 모르나, 이른바 '좌파' 언론활동을 하는 내 입장에서도 군사분계선을 넘는다는 건 이색적인 경험이 아닐 수 없다.

일산을 거쳐 자유로, 차를 계속 몰아 임진각에 이르면 곧 '통일의관문'을 만나게 된다. 물론 민간인은 출입 사유가 없으면 들어가지 못한다. 그래서 '통일의관문'은 마음속 휴전선, 심리적 저항선으로 기억된다. 운전대를 돌리는 건 본능이다. 분단을 인지한 시점을 내 나이 20으로 잡는다면, 지난 20년이 그랬다. 임진각 앞에서는 발걸음이든 핸들이든 남쪽이나 동쪽으로 돌려야 했고, 그것은 관습이었고, 관성이었고, 그리고 거부할 수 없는 상식이었다. 분단 60년 동안 일방적으로 학습된 거였다.

그래서인 듯 하다. 개성을 세 번 갔다 온 날 밤, 나는 심한 피로감에 밤잠을 뒤척여야 했다. 분단에 대한 공간적, 심리적 저항선이 무너진 탓이다.

닷새 후 평양 방문 때 보통강 여관에서 이재익 팀장과 양규헌 대표를 만나 소통한 일이지만, 두 사람도 유사한 피로감를 느꼈다고 한다. 피로감... 그날 그 피로감을 글로 표현하는 건 내 실력으로는 역부족이다...

8월 23일 아침, 가랑비가 부슬부슬 내리던 '통일의관문' 앞, 개성 가는 화물차량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었다. 현대택배 차량들이다. 그렇지, 정주영의 현대... 잠시 기다리는데 북으로 건네줄 냉동탑차 10대가 도착했다. 운전기사 10명이 서울에서부터 남측 출입사무소(CIQ : customs, immigration and quarantine)까지 와서 우리한테 인계해주었다. 우리는 오전 8시경 CIQ에서 방문증명서를 받아들었다.

오전 9시 방문증에 도장을 받고, 냉동탑차를 운전했다. 남쪽의 군용 지프가 컨보이를 했다. 시속 3-40킬로, 경의선 4차선을 따라 북으로 향했다. 남의 건장한 병사들이 서 있는 초소를 거쳤는가 했는데 뚱뚱한 양키 병사가 보이더니, 어느새 가무잡잡한 피부의 북 병사가 눈에 들어왔다. 순식간이다. 뚱뚱한 양키 병사를 사이에 놓고 남의 지프가 유턴을 하자 불과 1-200미터 거리를 두고 기다리던 북의 지프가 컨보이 하기 시작했다.

  경의선 도로를 따라 군사분계선을 넘는 차량들 [출처: 통일부]

남과 북이 대치하는 중간에, 햄버거 비린내 같은 걸 풍기는 그 뚱뚱한 양키 병사라니! 이게 말로만 듣던 그 분단 현장이던가...

쉬엄쉬엄 왔는데 걸린 시간은 10분... 나는 눈 깜짝 할 새 북에 와 있었다. 녹슨 기차도, 북의 최남단 기정동 마을도 보였다. 민둥산과 벌판을 가로지른 경의선 도로는 한산하고 평화로웠다. 남방한계선과 북방한계선을 통과하고 북측 CIQ에 도착했다. 북측 CIQ에서 보는 송악산은 개성을 품고 있었고, 개성공단은 지척에 자리잡고 있었다. 북의 위관급으로 보이는 장교와 병사가 짝을 이뤄 무뚝뚝한 표정으로 차량을 검색했다. 내 나이 서른아홉에 처음 만난 '머리 뿔달린 괴뢰군(민족해방군)'이다.

CIQ를 통과하자 민경련 참사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인사를 나누고 개성공단 경제협력협의사무소 앞까지 냉동탑차를 운전했다. 남으로 돌아가야 할 시간은 11시 50분, 민경련과 (주)대동두하나 측이 강서청산수 공장 준공식과 관련한 회의를 했다. 그 자리에서 전세기 띄우는 문제를 결정했다. 간단하게 결정이 나서 좀 놀랐다. 미국의 북 제재, 북 미사일 시험 발사, 남쪽의 을지포커스훈련으로 경색될 대로 경색된 국면인데, 북의 민경련과 남의 경협사업자가 격의없이 만나 전세기를 띄우자고 결정하는 현장이었다. '정치 정세와 관계없이 남북경협은 가야 한다'는 데 이론이 없었다. '공동의 이익과 번영을 위해'.

우리 일행은 다시 북 CIQ와 군사분계선을 넘어 남 CIQ로 돌아왔고, 통일촌에서 점심을 먹었다. 빈 시간 동안 평양 방문 예정자와 일정 조율을 한 뒤, 다시 같은 방법으로 군사분계선을 넘었다. 오후 2시 출발, 역시 건장한 남 병사와 뚱뚱한 유엔군 병사와 가무잡잡한 북 병사의 무표정한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이번에는 3시 30분까지 돌아와야 했다. 세 번째는 4시 출발이었다. 그런데 4시에 들어갔지만 4시 10분에 도착했고, 5시까지 돌아와야 했지만 4시 50분에 출발하면 됐다. 세 번째 들어가니 무려 40분이라는 여유로운 시간이 생기더라. 얄궂다. 오전 첫 방문 때는 세 시간 여유를 갖고 왔지만 숨돌릴 틈 조차 없었는데...

  북측 CIQ에서 바라본 개성공단 전경

하루동안 세 번 방문하니 만나는 북 장교와 병사의 표정도 바뀌었다. 일 처리도 훨씬 간편하고 부드러워졌다. CIQ에 근무중인 꽤 연륜 있어 보이는 한 장교가 친근하게 말을 건네 왔다. 남과 북의 담배 맛 이야기며, CIQ 옆으로 흐르는 실개천 낚시 이야기를 잇다가, 자연스레 남쪽 정세를 물어오기도 했다. 노무현 정부가 을지포커스렌즈 훈련에 반대하는 공무원을 탄압한다고 귀뜸 했더니 반색하며 관심을 보였다.

그는 마주하고 있는 남의 대성동 마을과 북의 기정동 마을, 두 마을에 경쟁하듯 우뚝 서 있는 태극기 철탑과 인공기 철탑을 가리켰다. 그리고는 한마디로 '구시대 유물'이라 짤라 말했다. 무려 160미터 높이라 한다. 체제 선전 도구... 지금도 마주보며 자웅을 겨룬다. 그저 불쾌하다고만 말하기엔 세월이 수상하다. 얼마나 많은 남과 북의 청년들이 저 철탑을 보며 시름과 고통을 달랬으려나. 아.. 저건 때가 되면 철거해야 하나, 내비둬야 하나 상념에 빠지는데 일행이 얼른 차에 오르라 한다.

참사들과 CIQ 근무 장교들을 하루에 세 번씩이나, 그것도 군사분계선을 넘나들며 만나고 헤어지는 걸 반복하다보니 헤어짐이 유달리 아쉽다. 사람 사는 연리인 까닭이다. 한 장교는 "통일은 이렇게 해야 하는 거다" 라고 하는데 코끝이 찡하다. 서로 곧 다시 보자고 인사했지만, 밝은 표정의 얼굴 한편에 깊은 수심의 골이 패어 있다. 분단의 골, 인고와 저항의 세월을 어찌 쉬 감출 수 있으랴...


개성공단의 역설, 자본이 만드는 평화 허브

  개성공업지구협의회 경제협력협의사무소 건물 전경. 남에서 가져온 버스가 운행되고 있다.

개성공단은 1999년 10월 정주영, 정몽헌 부자가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두 번째 만났을 때 합의함으로써 태동했다. 북은 2002년 7.1 조치 이후 11월 특구로 지정하고, 2003년 6월 착공했으며, 지금은 1단계 1백만 평 부지 조성공사가 거의 마무리되고 있다. 눈으로 봐도 남쪽의 어지간한 공단보다 훨씬 커보인다. 현대아산은 이 일대 2천만 평을 놓고 8백만 평을 공단으로, 현재 개성 시가지 4백만 평을 포함한 1천2백만 평을 배후도시로 건설한다는 계획이다. 남쪽의 개성공단 3단계 개발 계획에 따르면 앞으로 5-6년 후면 14만5천 세대, 인구 45만 명의 국제자유신도시가 조성된다. 예의 북의 노동자와 가족 등 대규모 인구이동이 예고된다.

이것이 의미하는 게 뭘까... 7,80년대 이농, 그리고 음...

지난 봄, 나는 한 아카데미 강연에서 (주)신원의 박 머시기 회장의 강연을 들을 기회가 있었다. 북에서 처음 패션쇼를 하기도 하고, 올해 2공장, 3공장 투자도 계속한다며 개성공단 경험을 설명하는 자리였다. 그는 개성공단 투자 1년 만에 노동자들이 빠르게 달라지더라고 했다. 인센티브에 따라 알아서 잔업을 더 하기도 하고, 남에 대한 인식도 바뀌더라며, 북의 개방 개혁이 훨씬 빨라질 것이라 내다보기도 했다.

장로이기도 한 그는 공장 일을 시작하기 전 예배를 보도록 했는데 처음에는 북 당국도 저항하더니 결국 양보하더라며, 종교가 먼저 가고 자본이 가고 그렇게 세상이 바뀌게 되는 거라며 호언을 하더라. 그가 강연 도중 북의 노동자도 돈이면 녹더라고 말할 때는 참 기분이 더럽더라. 오리온 초코파이 한 개가 개성공단 노동자들의 생산량에 영향을 미치더라며 의기양양하게 경영실적을 이야기할 때는 기분 정말 더럽더라. 그런 거다. 남이든 북이든 시장 논리가 관철되고, 경쟁과 효율의 이데올로기가 장악하는 동안 누군가가 그걸 어찌할 수단이 없다면, 그걸 어찌할 전략과 전술이 없다면 억울해도 그저 괴로워 할 밖에 도리가 없는 거다. 이런 원초적 본능의 표출이 무슨 의미가 있겠냐마는...

  개성공단 모습, (주)신원 등의 건물이 보인다.

  개성공단 공사장 장면

얼핏 본 개성, 나한데 온 개성공단의 느낌은 뜻밖이었다. 평양처럼 전쟁의 참호라는 느낌도 들지 않더라. 남쪽의 여느 공단처럼 그냥 그렇게 느껴지더라. 이색적이지도, 이국적이지도 않는, 그저 그냥 그런 노동자가 일하는 그냥 그런 공단.

"머리 좋고 일 잘하는 노동자들 넣었지요. 대부분 외지에 사람들이고 4년제 대학 나온 사람들이 절반이나 되고.... 8천 명 가까이 되는데, 그러니 남측 기업이 일 하는 것만큼은 불만이 없어요. 개성공단의 성공은 북남 모두가 공동의 리익과 번영을 위한 거니까. 이럴수록 남쪽에서는 내수업체를 많이 넣어야지요. 남조선에서 쓰는 걸 우선으로 만들고, 나중에 봐서 수출산업으로 가는 게 좋겠지요. 처음부터 수출할 걸로 하지 말고..."

평양에서 만난 민경련 간부의 이야기다. 북이 개성공단을 보는 인식의 단면... 큰 기대감이 묻어 있다. 민경련 참사들은 '북남 공동의 리익과 번영'이라는 말을 거의 수사로 사용한다. '우리민족끼리'의 정서가 작동하는 것이기도 하겠다. 한마디 한마디 우리 민족에 대한 열망이 묻어 있다.

그에게 한미FTA 협상에서 개성공단 문제가 중요한 의제로 다뤄지고 있다고 말을 붙였더니 실감나지 않아 했다. 단둥무역대표부 대표를 역임하는 등 남북경협 일을 8년째 하고 있다는 그는 한미FTA 문제에는 별 관심을 둔 적이 없다고 했다. 한미FTA는 남쪽 땅을 들었다 놨다 하는 문제인데, 더욱이 전략적 유연성 합의에 따른 직접적인 반미 문제인데 소홀하다니 한반도 정세 현안에 대한 체감차가 느껴지는 대목이다. 다만 전략물자수출입 규정 등 현실적인 문제를 고려, 남쪽의 내수를 우선하는 업체가 많이 들어와야 한다고 주문한 대목에서는, 역시 '남북 공동의 이익과 번영'을 수사로만 생각지는 않는구나 하는 느낌을 받았다.

개성공단은 후일 수도권에 대규모 공단이 형성되는 의미와 북의 7.1조치에 부응하는 개방경제를 촉진하는 의미를 갖는다. 개성공업지구법과 하위 규정 제개정으로 법적 제도적 장치도 마련된다. 한반도 긴장 완화와 남북경제공동체의 기반 조성으로 이어질 터이다. 현재는 유로화와 달러화가 사용되고 있으나 향후 남북한 원화가 동시에 사용될 경우 남북 공동의 무역지대로, 경제통합의 과도적 차원으로서의 '공동시장'으로 자리매김 될 수도 있다는 전망이다.

아닌 게 아니라, 무역협정을 이야기하는 한, 한중이니 한일이니 한미니 따지지 말고 북과 무역협정을 우선 구체화하는 게 최선 아닐까? 지리적으로 가장 가까운 이웃과 무역협정을 못 챙기면서 어찌 먼 나라와 경쟁이네 국익이네 호들갑을 떨며 난리 브루스를 추더란 말인가.

노무현 대통령은 개성공단 만큼은 성공하겠다는 의지를 갖고 있고, 이종석 통일부장관도 남북경협은 정세와 관계없이 간다고 누차 강조한 바 있다. 유엔안보리 제재 이후 쌀과 비료 지원 중단이라는 어처구니없는 결정을 내리긴 했지만, '평화와 번영의 동북아시대 구상'에 따른 교류협력-평화정착-남북연합의 거시적 그림을 완성하기 위한 토대를 개성공단을 통해 구축해놓겠다는 게 현 정부의 의지인 것만큼은 분명해 보인다. 좋은 일이다.

최근 권영세 의원이 철지난 북의 우리은행 계좌 요청 일을 터뜨리는 소동을 벌이기도 하고, 조선일보가 금강산 관광 경비에 웃돈을 주며 거래하고 있다는 둥, 북에 준 달러(매달 50만 달러 정도의 개성공단 노동자 임금)가 핵무기를 만드는데 사용된다고 떠드는 둥 냉전 찌질이들의 딴지가 계속되긴 하지만, 내가 보기에 이런 정도의 찬물 끼얹기로 개성공단의 대세를 되돌리기에는 이미 턱없어 보인다. 냉전 찌질이들의 딴지도 그저 정치공세로나 쓰겠다는 거지 별게 없어 보인다.

  패미리마트 개성공단점. 남에서 파는 물건 대부분이 진열되어 있다.
  패미리마트 안쪽 1층에 자리잡은 그린닥터스병원. 이날 남측 노동자 한 명이 산재를 당해 팔에 기브스를 하고 있었다.

미사일과 MD가 왔다갔다하고 경제제재, 금융제재로 고립정책이 어쩌니 해도, 개성공단 시계는 따로 돌고 있었다. 포크레인 소음 소리와 분주하게 오고가는 노동자의 모습이 그렇다. 남쪽의 공단 어딘가에 와 있는 듯 하다. 패미리마트와 그린닥터스병원, 그리고 최근 계좌 개설 논란의 정점에 있는 우리은행 개성지점이 한 건물에 자리잡고 있다.

병원에 들렀더니 남에서 올라온 한 노동자가 작업 중 산재를 당해 팔에 기브스를 하고 있었다. 개성공단에 근무중인 한 의사는 남쪽에서도 면식이 있는 양반이다. 개성에서 그렇게 만나니 이산가족 상봉 분위기다. 짧게 정담을 나누다 산재가 많이 일어나냐고 물어보니 거의 없다고 했다. 내가 야속한 놈이지, 믿을 만한 의사 양반임에도 불구하고 곶이 곶대로 안 들리더라. 환자를 옆에 두고 보니 남이나 북이나 노동자가 하는 일이란 응당 위험에 노출될 수밖에 없는 운명이구나 하는 생각에 기분이 언짢다.

부시정권이 볼 때 개성공단은 눈엣가시다. 부시정권의 전략은 간단하다. 북을 고립시켜 북 정권을 무너뜨린다는 거다. 전쟁 시나리오도 그렇게 짜여있다. 작계5026, 5027, 5029에는 대북 선제공격 전략도 포함돼 있다. 그러니 개성공단을 통해 남북경협이 이뤄지고, 사람들이 왔다갔다하고, 대북지원이 이루어지는 것은 적이 못마땅할 거다. 한미FTA 협상에서 개성공단 원산지규정에 대해 시종일관 불허 입장을 갖는 것도 부시정권의 대북 적대정책에 기인한다.

한미FTA 협상은 이윤에 눈이 벌개 설쳐대는 자본가들과 반동들의 작당이므로 즉각 중단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개성공단 원산지 문제를 한미FTA와 연동해서 이야기하는 것은 곤란하다. 정부는 앞으로 어느 나라와 어떤 무역협정을 맺더라도 개성공단 원산지 규정을 적용하며 가야 한다. 개성공단 생산품에 원산지 규정을 적용하는 것과 개성공단에서 비롯될 투자에 따른 노자 문제 또는 노동자의 권리 문제는 별개의 문제이고, 또 지금으로서는 그것까지 고려하기에는 먼저 처리해야 할 일이 산더미처럼 쌓여있기 때문이다.

아무튼 미국이 방코델타아시아 은행 계좌를 동결한 지 1년, 북은 미국에게 금융제재를 풀 것을 요구하며 대화를 시도했지만 미국의 반동들은 당췌 들어먹질 않았다. 북이 미사일 시험 발사를 통해 저항하자 유엔안보리 결정을 통해 추가 금융제재 조치를 취해버렸다. 그런데 딱한 것은 북과 미국이 저렇게 전쟁을 치르고 있는데 노무현정권은 정신을 못 차리고 있다는 거다. 노무현 대통령은 어쩌면 저렇게 최소한의, 눈꼽만큼의 자존심도 없나 모르겠다. 한미정상회담 한다고 '공동의 포괄적 접근방안' 어쩌고 하며 원맨쇼를 하고, 그걸 한미동맹의 성과라고 떠들어대는 송민순 안보정책실장 같은 친구도 보면 딱하다 못해 괘씸하기까지 하다.

노무현 대통령이 부시를 만나기 전에 민중언론 참세상 논평을 통해 '조건없는 북미대화 재개'와 '금융제재 중단'을 주문하고 오라고 했는데도 도대체가 말을 안 듣는다. 각을 세우기는커녕 유엔안보리 제재 결정에 따라 한국도 쌀과 비료 지원을 중단하는 등 제재에 동참했으니 다음 단계인 '대화'와 '6자회담'을 가져가자며 애걸복걸하고 돌아온 게 전부다. 한미FTA 다 퍼주고, 돈 쓸 일만 남은 전시작통권 티켓 받아쥐고 와서 그걸 '성공적인 한미동맹'이라며 떠들어대는 꼬락서니라니.

  9월 14일 한미정상회담. '공동의 포괄적 접근방안'을 내놨다 하나 양측의 입장을 확인했을 뿐이라는 분석이 우세하다. [출처: 청와대브리핑]

어제오늘 일이 아니지만 도대체 뭐 이런 양반이 대통령을 하고 있나 모르겠다. 최근에는 북이 요청해온 개성공단 추가 분양 일정도 뜨뜨미지근하게 대처하고, 이종석 장관은 "개성공단도 중요하지만 한미동맹도 중요하다"며 줏대도 없는 말을 계속 해대고 있다. 실로 딱한 노릇이 아닐 수 없다.

한편 북이 개성공단에 갖는 태도는 상당히 개방적이다. 6월 29일 통일부 발표에 따르면 개성공단을 방문한 미국인은 올해 들어 6월까지만 무려 56명, 북은 미국에 대해서도 문을 열어놓고 적극적인 초청 의사를 보이고 있다. 내가 개성을 갔다온 지 딱 한 달 되는 9월 23일, 앙헬 구리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사무총장도 개성공단을 방문했다. 레프코위츠 특사도 조만간 개성공단을 방문한다니 그 자체로 나쁠 게 없다. 방문 목적이 북 인권 문제에 꽂혀 있어 불순하긴 하지만, 북 인권 문제는 인권 문제대로 이야기하더라도, 개성공단에서 본 팩트를 팩트 자체로만 이야기해도 다행인 거니까.

  개성공단 장면. 새 건물을 짓기 위해 노동자들이 일을 하고 있다.

지금은 8천명 가까운 북 노동자가 일하고 있지만, 조만간 10배 규모로 늘어나게 되면 그때 개성공단은, 북은 어떤 모습일까... 1단계, 2단계를 거쳐 3단계 개성공단 건설 사업이 완료되는 2012년까지는 불과 5-6년... 미 제국주의의 대북 적대정책이 어디로 튈지 모르고, 노무현정권 다음 정권이 어떤 대북정책을 펼지 단정적인 예측을 하기는 어렵다. 그렇지만 개성공단은 이미 한반도 평화를 촉진하는 허브로 작동할 만한 기반을 갖추고 있다는 것이 내 느낌이다. 구체적인 데이터를 들지 않더라도 개성공단의 현장 분위기는 그걸 실감케 해준다. 자본 투자가 확대되고, 노동자가 늘어나면 노자 관계도 복잡해지겠지. 그렇지만 이건 최소한 현 정세로서는 한반도 평화 다음의 문제다.

휴전선을 세 번 넘나들며 차량 검색중 잠깐 이야기나눈 현대택배 소속 한 화물노동자, 화물연대 소속이라고 밝힌 그는 개성이 여수나 부산 가는 것과 별다른 느낌이 안 든다고 말했다. 출입절차상 약간의 시간이 걸리는 점이 불편하다는 것만 빼고는.


3일간의 평양 방문

  고려민항 전세기. 51명의 방북단을 싣고 김포에서 평양까지 직항했다.

  평양... 양규헌 대표, 김영미 전무, 정성희 민주노동당 기관지위원장

나는 8월 28일 고려민항 전세기 편으로 북을 방문했다. 강서청산수 공장 준공식 취재차였다. 방북단은 모두 51명, 언론으로는 KBS와 민중언론 참세상이 참가했는데, 앞서 말했듯이 사업자 측에서 참세상을 배려해준 덕택이다. 방북단은 주로 (주)대동두하나 직원과 방북사업을 추진중인 사업자들이 한 그룹을, 민주노동당, 한국노총, 6.15공동선언실천남측위원회 등 단체가 한 그룹을, 취재단 등이 한 그룹을 이루었다.

평양 방문 첫날에는 만수대 김일성 주석 동상과 만경대 생가를 거쳐 남포에 위치한 공장 준공식에 참가했다. 둘째 날에는 묘향산 국제친선관람관을 둘러보고 저녁에는 민족식당에서 만찬을 가졌다. 셋째 날에는 주체탑, 개선문 등 평양 시내를 둘러보고 다시 서울로 돌아왔다. 북과 방북단이 미리 마련해둔 일정으로, 말하자면 관광코스였던 셈이다.

3일간의 평양 경험은 짜릿했다. 서울로 돌아가면 바로 방문후기를 써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글을 마무리하고 보니 한 달이 지났다. 양규헌 대표와 늦은 밤 보통강여관에서 방문 후기를 잘 써보겠다고 약속한 바 있는데 차일피일 미루다 시간만 잡아먹었다. 세상에 약속을 못 지키는 것 만큼 괴롭고 힘든 일은 없다. 힘들 긴 했다. 코끼리 다리 슬쩍 만져보고 코끼리 이야기를 한다는 게 보통 부침이랴... 평양냉면 맛이나 거리 풍경 이야기를 늘어놓자니 한가하다는 생각이고, 3일간 둘러본 북을 두고 체제나 정세 이야기와 연결하자니 이 또한 낯간지러운 생각이라...


위대한 인민과 냉전 찌질이들

28일 평양. 순안공항에서 평양 시내까지는 약 30분, 방북단 51명은 버스 3대에 나눠 타고 평양을 행했다. 처음 차가 멈춰선 곳은 만수대 의사당 앞, 김일성 주석 동상이 있는 곳이다. 혁명열사릉이나 애국열사릉, 금수산궁전 코스는 생략했는데, 민경련 참사는 "참배나 헌화는 중요하지만 남쪽에서 자꾸 소동이 일어나는 게 남북경협에 별 도움이 되지 않는 것 같아서"라고 설명했다. 만수대 의사당은 순안 공항에서 평양으로 들어오면 자연스레 만나는 '관광코스' 중 하나이다. 아닌게 아니라 김일성 주석에 대한 참배와 헌화는 숱한 논란이 되었다.

혁명열사릉, 애국열사릉, 금수산궁전, 그리고 만수대는 방북의 필수 방문지다. 이곳에서 참배와 헌화를 하고 돌아오면 남에서는 응당 국가보안법이나 색깔론 시비에 휘말리기 마련이다. 동방예의지국의 생기초도 안 된 냉전 찌질이들이 난리법석을 피우기 때문이다. 지난 메이데이 행사 때 민주노총과 한국노총 소속 조합원 50여 명이 혁명열사릉을 참관하고, 그 중 일부가 헌화와 묵념을 했을 때도 그랬다. 햇볕을 보지 못하고 냉전 이데올로기에 찌들어있는 찌질이들이 물 만난 듯 설쳐댔다.

  북의 학생들이 김일성 주석 동상에 묵념하고 있다. 평일인데도 묵념과 헌화 행진이 이어진다.

  왼쪽으로 '타도 제국주의' 구호가 선명하게 보인다.

만수대 김일성 주석 동상 앞에 섰다. 나는 평소 갖고 있던 주체사상에 대한 비판적 생각과 관계없이 기꺼이 묵념을 하고 헌화를 했다. 가소로운 냉전 찌질이들... 그리고 동상 옆으로 세워진 사회주의혁명탑과 109명의 학생과 영웅의 군상을 형상한 조형물을 둘러보며 본격적으로 평양 거리를 눈에 담기 시작했다. 차창 밖으로 보이는 큰 건물, 큰 도로 어귀에는 어김없이 독특한 서체의 구호가 자리잡고 있다.

자주평화전선으로
김일성동지는영원히우리와함께계신다
조국의맹세의지에심장이불탄다
경외하는김정일장군님을결사옹위보호하자
선군의위력으로사회주의사수하자
위대한장군님만계시면우리는이긴다
위대한장군님의선군사상으로사회주의사상실현하자
모두다3대혁명붉은기쟁취운동으로
......


  어딜 가나 쉽게 만날 수 있는 구호

  혁명의 수뇌부...

차창 밖 평양 풍경은 이국적이다. 지극히 이국적이 아닐 수 없다. 차에서 뛰쳐나가 지나는 사람을 붙잡고 이것저것 말 걸어보고픈 욕심을 주체하기 어려웠다. 차에 함께 타고 있는 참사는 꼭 필요한 것 외에는 알려주지 않았고, 공장 준공식 취재차 방문한 나로서도 어지간히 표정 관리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지난 3월 말 참세상 국제포럼 참석차 한국을 방문했던 마이클 앨버트가 "한국은 미국과 같다"고 말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그와 차를 타고 경부고속도로를 이용해 평택 대추리를 갈 때 나눈 대화였다. 마이클 앨버트는 "서울이 마치 미국의 어느 도시와 다르지 않은거 같아요. 단지 한글로 된 간판이 좀 많을 뿐"이라고 했다. 마이클 앨버트의 말이 맞는다면 나는 미국에 편입된 어느 도시, 미 제국주의가 만들어놓은 풍경을 끼고 산다. 조만간 한미FTA가 되면 산업이고 서비스고 문화고 모두 미국식으로 표준화, 단일화 된다지만, 내가 발딛고 사는 이 도시는 한미FTA 체결과 관계없이 이미 미국식으로 변모되어 있는 지도 모른다. 여기서 먹고살며 익숙해진 내 시각을 고려할 때, 평양 풍경이 이국적으로 느껴지는 건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다.

2002년 북은 사회주의강성대국 건설을 위한 경제조치를 결정했다. 7.1경제관리개선조치가 그것이다. 사회주의강성대국 건설 결의 4년, 북이 정말 강성대국으로 가고 있는지, 또는 중국이나 베트남식 모델로 가고 있는지, 아니면 이도 저도 아닌 제3, 제4의 길을 가는지 지금으로서는 단정하기 어렵다. 미국의 봉쇄정책 탓에 경제적인 돌파구를 찾기 어려운 상황이 계속되고, 2008년까지 3년을 버텨보겠다는 것도 임계점에 다다르게 된다면, 북으로서도 여간 만만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2002년 이후 배급제를 폐지하고 가격 자율제를 도입했지만 시장을 통한 소득 재분배는 잘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알려졌다. 개혁 조치가 체제 전환의 물적 단초를 이룰 것이라는 전망도 성급해 보인다. 배급제를 폐지했다고는 하나 북은 의식주와 교육 의료 등 기초적인 인민의 삶의 요소를 국가가 책임지는 방식을 유지하고 있다. 그래서 이를 밑받침할 공공재가 부족해서 이러저러한 문제가 발생할 뿐 다른 문제는 아니라는 진단이 설득력을 갖는다. 다만 북이 버티기 위해서는 외부로부터의 지원에 기대야 하는데, 당장 경제적인 돌파구를 찾기가 힘든 문제가 있다. 이런 상황에서 북의 경제를 책임지다시피 하는 민경련 참사들이 '우리민족끼리'를 말하고 '북남 공동의 리익과 번영'을 말하며 남북경협에 적극 임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인 셈이다.

차창 밖 평양 거리는 평온해 보였다. 아파트는 비슷한 크기로 나뉘어져 있고, 화려한 주택과 화려하지 않는 주택의 차이가 별반 없어 보였다. 인민의 기초적인 삶의 터전이 공평하다는 것은 부러움의 대상이 아닐 수 없다. 평양시 주택의 속을 살펴보지는 못했지만 외관만큼은 그렇게 눈에 들어왔다. 평양 시민은 북에서 선택된 사람이라는 말을 감안한다 하더라도, 또 북의 인민의 삶의 구체적인 실상이 반드시 그렇지 않다고 하더라도, 최소한 포이동 266번지와 타워팰리스로 상징되는 남의 양극화의 현실을 떠올릴 때 비교할 게 아니라는 생각이다.

첫날 밤 보통강 여관에서 여장을 풀었다. 여장이래야 카메라와 옷가지 정도. 양규헌 대표와 둘이 쓰는 방에 정성희 민주노동당 기관지위원장이 찾아왔다. 맥주를 한 잔 나누었다. 북 방문이 세 번째라는 정성희 위원장은 북의 매력에 흠뻑 취해 보였다. 그는 2000년 북을 방문했던 울브라이트 전 국무장관이 북의 대형 공연을 직접 보고서는 북을 무력으로 제압할 수 없겠다는 말을 했다고 전한다. 북의 인민은 '타도 제국주의' 기치 80년에 '고난의행군'을 거쳐 사회주의강성대국 건설에 나선 사람들이라는 설명이다. 그런 인민들이 수령-당-대중의 신념을 삶의 현장인 거리와 건물과 마을 어귀에 구호로 표현하는 건 자연스러울 수밖에 없다는 거다. 흔쾌히 동의되지는 않아도 이해는 되는 대목이다. 낯선 구호들, 건물마다 마을 어귀마다 자리잡고 있는 그 구호들의 의미란...

호텔 창밖에 비친 평양의 밤은 암흑처럼 어둡더라.. 흐르는 듯 마는 듯 보통강 물살과 함께 평양의 밤은 깊어가고...


북이냐 남이냐

8월 28일 청년절, 노동신문의 1면 카피는 "선군의 기치높이 조선청년의 혁명적 기상을 힘있게 펼치자"였다. 8월 29일 노동신문의 1면 카피는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 김정일동지께서 조선인민군 제1643 군부대를 시찰하시였다"였다. 8월 30일 노동신문의 1면 카피는 "사회주의 신념이 강한 인민은 불패이다"였다.

  8월 28일 자 노동신문 1면

직업을 속이랴. 3일동안 매일 본능적으로 노동신문을 집어들었다. '유일한' 미디어, 노동신문은 북 인민의 아침을 깨운다. 하루 삶의 지침을 제공한다. 겪지 않아도 느껴진다. 당원들은 노동신문의 기사 이야기로 하루 각오를 다질 테고, 북 인민은 노동신문의 지침에 따라 생산 현장에서 땀흘려 일할 것이다. 저녁에는 조선중앙TV가 노동신문을 한 번 더 반복 학습시킨다. 예상대로 8시 뉴스는 노동신문을 그대로 TV로 옮겨놓았다. 28일 밤에는 청년절을 기념한 듯 청년영웅도로 건설 이야기를 담은 드라마를 방영했고, 평양 방문중에 폐막된 제2차 국제무도대회를 중계하기도 했다. 노동신문, 조선중앙TV, 조선중앙TV, 노동신문...

29일 머릿기사로 올라온 1643 부대 시찰 소식 기사를 꼼꼼하게 읽었다. 골자는 이러하다.

"최고사령관 김정일 동지를 현지에서 군부대지휘관들이 영접하였다... 김정일 동지께서는 군부대의 지휘관, 병사들이 당의 훈련방침의 요구대로 훈련을 과학화, 정상화하여 모두가 일당백의 용사들로 억세게 자라고 있는데 대하여 커다란 만족을 표시하시면서 부대의 전투력을 더욱 강화하는데서 나서는 과업들을 제시하시였다... 김정일 동지께서는 갖가지 나무들로 무성한 숲을 이룬 병영구내와 주변의 산발들을 바라보시며 원림화, 수림화 정형을 료해하시고 부대에서 지난 기간 50여 정보의 산림을 조성하고 정성껏 가꾼데 대해 치하하시면서 그들의 애국심을 높이 평가하시였다... 경애하는 최고사령관 김정일 동지께서는 부대의 군인들이 조국보위성전에서 자랑찬 위훈을 떨쳐가리라는 확신을 표명하시면서 쌍안경과 기관총, 다종보총을 기념으로 주시고 그들과 함께 기념촬영를 하시였다."

종이신문이니 당연히 활자다. 그런데 글을 읽으면 자연스레 조선중앙TV 아나운서의 목소리가 연상된다. 가끔 '남북의창'을 시청하긴 하지만, 막상 접하니 맞춤법도 어법도 낯설기만 하다. 주요 관광지에서 안내하는 여성 접대원의 목소리도 다르지 않다. 그런데 낯설지만 경상도, 제주도 사투리처럼 또 하나의 우리 말이라는 생각에 이르자 유쾌하긴 하다. 우리 민족의 말이어서가 아니라 같은 말인데 다양한 사회구성원에 의해 다양하게 살아있으니 그래서 유쾌하다는 거다. 문화다양성에 언어다양성 만한 것이 또 없으니, 천년이고 만년이고 잘 간직했으면 하는 생각이다. 행여 미국식 단일화 표준화 공세에 떠밀려 침해되고 훼손되는 일이 없어야 한다. 북의 언어와 어법은 북쪽 사회구성원들의 생활이고 삶이고 곧 정신이 아니겠는가.

물론 이질적인 생각도 없지 않다. 나는 높이 23미터의 만수대 김일성 주석 동상 앞에 기꺼이 머리를 조아렸지만. 유감스럽게도 '우상'을 보았다. 북 인민에게는 먹을 것과 잘 곳과 입을 것을 책임진 위대한 수령이었을지 몰라도, 남에서 뼈가 굵은 미천한 좌익 언론활동가인 나로서는 도무지 이해관계가 없는 까닭이다. 저 동상을 만드는데 얼마나 많은 인민이 땀 흘리고 고통 받았을까 하는 생각에 이르자 그저 인상만 찌그러질 뿐이다. 다만 김일성 동상 옆으로 가로질러 적당하게 자리잡은 조형물, '백전백승의 맑스-레닌주의 만세'라는 문구가 쓰여있다. 아, 가슴이 트인다.

  백전백승이라니 일단 기분은 좋다.

신자유주의 세계화라는 자본운동이 대세를 이룬 오늘날, 맑스도 레닌도 좀처럼 세상 어디서나 환영받지 못하는 현실을 모르지 않으나, 그들이 당대 만국의 노동자에게 외친 세계 변혁의 메시지는 시퍼렇게 살아있을 따름이니까. 그들의 이름이 학생과 영웅 109명의 형상과 함께 평양의 한 복판에 의연한 모습으로 자리잡고 있다는 것은 참으로 흥겨운 광경이 아닐 수 없다.

국가가 인민의 생 기초적인 삶의 문제를 해결한다는 건 흐뭇한 일이다. 말하자면 의식주 문제를 해결하되 차이와 차별을 두지 않고, 인민은 그 기초 위에서 시민으로서의 의무와 권리를 다하면서 동시에 자율적인 공동체의 삶을 영위할 수 있다면! 그것이 사회주의든 공산주의든 그도 아닌 또 다르게 호명되는 사회든 누가 감히 마다하랴.

지금 국가도 소멸되어야 하네 마네 도서관에서 하는 이야기를 하자는 게 아니다. 국가는 인민의 뒷통수를 쳐서 자기 배를 불리거나 또는 인민의 호주머니를 털어 자본한테 팔아 넘기는 따위의 짓거리를 하면 안 된다. 그저 인민에게 봉사하는 걸로 만족해야 한다. 노무현 대통령이 나쁜 놈이란 건 두 가지 이유에서다. 하나는 돈 될 만한 게 있으면 어떻게 죄다 팔아먹을까 궁리만 한다는 거고, 또 하나는 자본이 돈 될 만한 게 있으면 넘겨달라고 요구하면 무조건 오케이 하기 때문이다. 이놈의 한미FTA 협상을 떠올리면 아주 복창이 터진다.

  판매대, 북에서 만든 술이 전시되어 있다.

물론 북은 잘 모르겠다. 북이 그 최소한의 조건을 구비하고 있다면 나는 기꺼이 북에 한 표를 던질 것이다. 그러나 3일간의 평양 경험으로 무언가 가치 판단을 한다는 건 미천하기 짝이 없고, 따라서 섣부르고 위험하다.

북 인민의 90%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지지한다. 한편 남 인민의 10%는 노무현 대통령을 지지한다. 천하에 몸쓸 짓이 양비론을 펴는 일, 남과 북을 사이에 두고 아슬아슬한 벽 위를 걷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다. 그렇지만 어느 한 쪽으로 뛰어내리라고 한다면 나는 망설여 좀처럼 결정하지 못할 것이다. 어느 쪽이 더 숨 쉴만한, 살만한 사회인지 분간하기 쉽지 않은 까닭이다.

하나. 분명히 말하건대 90%의 인민이 어느 누군가 한 명을 지지한다는 건 부당하다. 10%의 인민이 지지하는 사람이 대통령을 계속 하고 있다는 건 불쾌한 일이다. '부당'과 '불쾌'의 이 양비적 생각에 이르니, 침통한 마음을 주체하기 어렵다.

둘. 배고파도 많이 못 먹지만 먹어도 되는 음식을 먹으며 사는 곳과, 음식물 쓰레기가 연간 몇조 원이네 하지만 광우병 소와 유전자조작농산물(GMO)의 부작용까지 감수하며 먹고 살아야 하는 곳, 두 곳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셋. 선군사상과 주체주의 이데올로기를 기반으로 권력과 체제가 인민의 삶의 90%를 지배하는 곳과, 효율과 경쟁 이데올로기를 기반으로 자본과 시장이 인민의 삶의 90%를 지배하는 곳, 두 곳 중 역시 어느 하나를 선택해야 할 상황이라면?...

지독한 감상일지 모르지만, 해방과 함께 만주에서 귀국하여 남과 북을 넘나들었던 '광장'의 명준이 떠오르더라. 60년이나 지난 지금, 설마 누군가 명준이 겪었던 운명을 강요받는 일이 생기진 않겠지. 그러나 이것이 이미 현실에 펼쳐져 있는 것이라면, 그렇다면 이건 비극이다.

명준의 운명처럼 중립국을 택하지는 않을 터, 그러나 아무리 멀어도 이 간극을 메우거나 해소할 계급운동이 출현만 한다면 무슨 다른 욕심이 있겠는가. 그날이 온다고 이미 20년을 다그쳐왔는데, 남은 20년 더 가는 거야 뭐...


'만경대정신'... 방명록 하나 써볼래요?

청년영웅도로. 강서청산수 공장이 있는 남포로 가려면 청년영웅도로를 타고 가야 한다. 평양에서 남포를 잇는 청년영웅도로는 폭 72m, 길이 42.216km로, '고난의행군' 때 청년들이 아무 장비도 없이 열정만으로 만들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28일 밤 조선중앙TV는 청년영웅도로를 만든 청년들의 일화를 담은 영화를 방영했다. 28일은 1년에 한 번 있는 청년절이었다.

가는 길에 김일성 주석의 생가가 자리잡고 있는 만경대를 들렀다. 강정구 교수가 방명록에 '만경대 정신 이어받아 통일위업 이룩하자'고 썼다가 남쪽의 냉전 찌질이들과 자본가 나부랭이들한테 마구 시달림을 당했던 바로 그 만경대. 여느 관광지와 마찬가지로 여성 접대원의 친절한 안내에 따라 생가 곳곳을 살폈다.

동행하던 민경련 참사에게 왜 오늘은 방명록 쓰는 데가 없냐고 넌지시 물었다. 역시 만수대 김일성 동상 앞에서 들었던 것과 같은 대답이다.

"뭐라도 쓰겠다면 가져다 놓겠지만 자꾸 쓸데없는 논란을 불러 사업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쳐서..."

솔직한 답이다. '만경대정신'보다 경협 사업이 먼저 가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자 좀 씁쓸해지긴 하더라. 누군가 '만경대정신'은 강정구 교수가 고안한 단어라고 귀뜸하는데 그게 뭐 중요한가. 강정구 교수는 자신의 신념에 따라 발언하고 행동하고 실천해온, 남에서도 살아있는 몇 안 되는 유기적 지식인이 아니던가.

  만경대 입구. 만경대정신이 뭐라고... 냉전 찌질이들이 떠올라 짜증난다.

"방명록 하나 써볼래요? 기사 잘 써 줄게요."

동행한 양규헌 대표에게 넌지시 물었다. 그저 흐뭇하게 웃는다. 이심전심이리라. 남북 노동자계급이 평등세상 만듭시다...


남북 공동의 이익과 번영이란

평양 방문 첫날 오후 4시경, 강서청산수 공장 준공식에는 민족경제협력연합회(민경련) 등 북측 인사와 노동자, 지역주민 등 150여 명이 참석했다. 준공식 연설자들은 하나같이 6.15 남북공동선언의 취지를 강조하며 남북경협에 대한 의지를 내비쳤다.

김춘근 민경련 부의장은 기념사에서 "북과 남이 힘을 모아 강서청산수 공장을 꾸려놓은 것은 민족자주통일의 이정표인 615남북공동선언의 정당성과 미제를 비롯한 반통일세력이 아무리 발악을 하여도 경협사업을 끝까지 밀고나간다는 확고한 의지 발현으로 우리 민족사에 자랑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강서청산수 공장 준공식

김춘근 부의장과는 첫날 일정 내내 같이 했다. 그는 강서청산수 공장 준공식에 각별한 의미를 부여했다. 청산수 공장 일대, 원수가 콸콸 쏟아지는 앞마당에서 담소를 나누었다.

"이 사업이 잘 돼야지. 공장 건설만이 의미가 있는 게 아니고 남북이 실질적으로 이용할 수 있도록 하자. 이 약수는 국가나 인민 모두에게 좋은 거니까. 쓸 데 없는 데 돈 쓸 것 없어"

강서청산수에 대한 그의 자부심은 대단했다. 이야기나누던 일행 중 다수가 대부분 감옥에 한두 번씩 다녀왔다는 이야기를 건네자, 김춘근 부의장은 "두세 번씩 더 갔다 와야지" 라며 농을 던졌다. 이대식 (주)대동두하나 회장은 1971년 구속되었다가 1990년 석방된 장기수이고, 이재형 회장도 위장취업에 80년대 이후 오랜 노동운동으로 뼈가 굵은 데다, 김영미 전무는 구로총파업을 이끈 노동운동사에 산인물로 기억된다. 남북경협 사업자로 선정된 대동무역은 북의 민경련과 매우 우호적인 관계를 맺고 있었다. 역시 떠오르는 문구, '남북 공동의 이익과 번영'...

8년간 남북경협을 해왔다는 민경련 간부, 그는 남북경협의 효시라 할 정주영에 대해서도 다소 인색한 평을 내놨다. 정주영 씨가 처음 북을 방문했을 때 전국에 공장 40여 군데를 돌아보며 이것저것 투자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제대로 안 지켜 신뢰가 떨어졌다고 한다. 중국에 신의주와 압록강철교로 연결된 단둥이라는 도시가 있다. 남북경협 초기에 단둥무역대표부의 대표로 일한 그는 남북경협에 대한 좋지 않은 일도 많았다고 터놓는다.

  김영미 전무(왼쪽)와 오랜 기간 남북경협 일을 해왔다는 민경련 간부

"막상 자리를 같이 하면 1억이네 10억이네 투자하겠다고 해놓고, 돌아서면 허풍뿐이더라고요. 그런 일이 수도 없었죠. 지금은 많이 좋아졌어요. 지금은 남북경협의 속도가 많이 난 건데... 그래도 첨단기술은 생각도 못하고 노동집약형만 하고 있어 북이 기술적으로 득을 못보고 있어요."

남에서 대북 사업을 타진하러 오는 사람들은 대부분 투자에 대한 담보부터 내놓으라 한다는 거다. 투자란 게 돈을 벌려고 하는 건데 중국에서 하든 필리핀에서 하든 하다 안 되면 잃을 수도 있는 건데, 그게 투자인데, 시작부터 담보 이야기를 하는 건 이해할 수 없다며 시큰둥한 표정을 했다.

평양을 함께 간 김영진 (주)전원클럽 대표는 "강서청산수는 좋은 결과를 예상한다. 한약재나 버섯 등 농산물 쪽으로는 질적으로 좋은 상품이 많아 남에서 사업성이 기대되지만 수산업은 양식이나 조업능력, 운송 문제 등으로 어려움이 많다"며 사업 품목 선정에 신중해하는 모습이었다. 더군다나 농산물 수입은 국내 농산물 보호 때문에 농산물유통공사를 통해서만 수입하는 등 정부의 통제도 만만치 않은 실정이라며 사업성 타진에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는 의견이다.

최인식 한일외식문화교류협회장은 "대기업 차원의 경협도 중요하지만 중소기업에게 중요한 의미가 있다. 그런데 문화 차이가 빨리 극복되어야 한다"는 의견이다. 말하자면 남쪽에서 요구하는 상품으로서의 품질을 북에서 잘 모르기 때문에 그에 따른 혼선과 어려움이 많이 생긴다는 이야기다. 실제로 북의 판매대에 가면 상황버섯의 경우 1-2년산을 내다 팔고 있는데, 버섯 유통에 관심을 갖고 방북한 한 사업자는 4년쯤 키워서 잘 포장해서 내놓아야 남쪽에서 상품성이 있겠다며 북 참사들에게 조언을 하기도 했다.

최인식 회장은 문화적 차이와 관련 "중국은 이런 점에서 많이 좋아졌는데, 중국 사람들이 직접 경영하는 곳은 큰 문제가 안 생기는데 한국 사람이 하는 곳은 김치파동처럼 문제가 생긴다"며 같은 남쪽 사람들에 대해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기도 했다. 관광학 교수이기도 한 그의 말에 따르면 자신도 평양 방문은 처음인데, 접대원이나 호텔 서비스 등을 보면 관광서비스 수준은 상당하다는 평을 내놓기도 했다.

2005년을 경과하며 남북교역 규모 1조 원 시대를 맞았다. 한국 정부 예산으로 보자면 푼돈이다. 하지만 북으로서는 전체무역액 40억 달러의 1/4 수준에 해당하는 거액이다. 최근 노무현정권이 어리버리 대처하느라 비료와 쌀 지원을 중단하기도 했지만, 남은 95년 이후 매년 식량 50만톤, 비료 30만톤을 북에 지원해왔다. 북 전체 주민 석 달치 규모의 식량이다. 경수로와 개성공단을 제외한 민간투자도 누적 25,757만 달러이고 2005년에만 4,456만 달러에 이른다. 가령 강서청산수 공장 준공에 (주)대동두하나가 투자한 돈은 300만 달러로 북으로서는 결코 작지 않은 금액이다. 수치와 규모로만 보면 중국과 남이 그나마 북 경제의 숨통을 틔워주고 있는 실정이다.

강서청산수 공장 준공식을 돌아보며 다시 '남북 공동의 이익과 번영'을 생각해본다. 김춘근 부의장의 말이나 이대식 (주)대동두하나 회장의 말대로 6.15 정신을 살려 시작하는 강서청산수 사업이 남북 공동의 이익과 번영에 얼마나 기여할 지는 잘 모르겠다. 사업자로서는 응당 성공해야 하고 그러기를 바라지만, 나로서는 '이익과 번영'보다 크고작은 남북경협이 어떤 방식으로든 한반도 평화에 기여하고 있다는 정세적인 측면에 더 큰 의미를 부여하고 싶더라. 이 점은 방북 기회를 제공해 준 김영미 전무가 다소 섭섭하게 생각한다 해도 가릴 수 없는 속마음이다.


여기도 전쟁터

  묘향산 국제교류관람관. 동행했던 양규헌 대표

둘째날, 민경련은 우리 일행을 묘향산으로 안내했다. 능선과 계곡을 둘러보려면 한 달이 걸린다 하니 산 욕심마저 앞선다. 묘향산 '국제친선관람관'은 북 관광의 필수코스, 듣던 대로 북의 현대사가 압축되어 있는 현장이다. 국제친선관람관은 스탈린부터 울브라이트까지, 카스트로부터 김대중 전 대통령까지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보낸 선물이 전시된 곳이다. 1개당 1분씩 보면 1년이 걸린단다.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김대중 전 대통령이 보낸 선물도 자리잡고 있었다. 김영삼 전 대통령 것만 없어서 물어보았는데 접대원도 잘 모르겠다 한다. 그 쫀쫀한 성격 어디가나 싶더라. 지척에 보현사를 둘러보고 아름드리 그늘에 앉아 술상을 보는데 산삼주가 올라오니 이런 호사가 어디 없다. 이거 이래도 되나.. 에라 모르겠다...

셋째 날에는 주체탑과 개선문을 거쳐 판매대를 들렀다. '하나'와 '금강산' 담배 두 보루, 산삼주 두 병을 샀다. 사무실에 상주하는 안프로 규만 배트 생각에 묘향산에서 마신 술보다 더 비싼 걸로다 있는 대로 마음을 썼는데, 넘들이 알기나 하고 마셨는지 모르겠다.

다시 고려민항을 타고 김포로 돌아왔다. 8월 30일 저녁... 공기가 다르다. 일행과 헤어지고 공항에서 몇 푼 안 되는 남은 유로를 환전하는데 갑자기 정처 없는 설움이 북받쳐 오르더라. 이놈의 남쪽 땅덩어리는 한미FTA 3차협상을 앞두고 정신을 못 차리고 있는 게 아닌가, 곧 대추리, 도두리의 집들을 철거한다 하질 않는가, 추석이 지나면 광우병 소가 식탁에 오른다 하질 않는가.

'남북경협'이, '남북 공동의 이익과 번영'이 이 문제 해결에 얼마나 도움이 될까. 희망과 절망이 교차되는 평양 3일 방문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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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추리

    잘 읽었습니다. 참세상의 앞날에 밝다고 생각합니다. 솔직함도 넘치는 글입니다. 좀 따뜻하기도 하고.

  • 모험가

    긴글이지만 재미난 글이네요. '미지'에 대한 모험을 감행하셨군요. 한반도, 참 복잡한 동네지요! 그 만큼 할 일도 많고 세밀하게 따져야 할 일도 많은 곳이지요.

  • 강철새잎

    내용이 길어서 반으로 나누어서 연재를 해 주시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만,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참세상도 이런류의 글들이 많이 올라왔으면 좋겠습니다.

  • 양다슬

    규만이형 아직도 계시는군요. 잘 지내시기를.

  • 음..

    남한사람으로서의 깊은 고민과 발랄함이 느껴집니다.

  • ㅉㅉ

    쓰레기 공산당 추종자들

  • 조은진

    도계새마을금고304동203호
    경동달전아파트16동206호

  • roxodid1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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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ㅋㅋㅋ

    이런 넘들 다 북한으로 보내야 하는건데 말이야 참한심한 글을 쓰고도 뭐 평화통일을 한다고 잡소릴 하고 있네 한번 북한에서 실제로 살아보면 되는데 말이지 이명박은 왜 저런 넘을 잡고있는지 몰라 다 보내면 되는데 그러면 북한에서도 환영하겠는데 말이지 아야 다 잡아서 보내버려면 되는 쉬은 일가지고 힘들게 언론이고 인권이고 하는 넘들이 떠드는 소리에 귀를 기울일 것이 없다는 것은 뻔한 일이야

  • 암스텔담

    좌파인사들은 모두다 반미를 이상으로 추구하면서
    무조건 현실을 부정하는데서부터 논리를 시작한다
    남쪽이나 미국의 문화는 속속들이 체험하여, 그모순점만 부각한다. 북측의 이데올로기는 북측의 현실속을 모르니 막연히 동경하고있다
    한마디로 아는것들은 송두리체 부정하고싶고,모르는것은 강상적으로 동경하는 철부지같군
    북에가서 10년만 살다오세요. 그런다음에 다시논평을 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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