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물과 소금을 주는 것 뿐”

[연정의 바보같은사랑](1) - 우진산업지회 단식농성장의 밤

월 150시간 이상의 살인적인 연장근로와 최저임금을 10원 초과하는 시급 3,160원의 저임금. 이 노동조건을 개선하기 위해 노조를 만들자마자 해고를 당한 화섬노조 우진산업지회 노동자들이 현장으로 돌아가기 위한 투쟁을 시작한지 3백 일이 넘었다.
그러나 이들의 실질적 사용자인 세계 거대 다국적기업 라파즈한라는 이 조합원들을 원직복직 시키라는 지노위의 판결도, 화섬노조와 성실하게 교섭하라는 판결에도 응하지 않고 있다.
이런 가운데 화섬노조 곽민형 수석부위원장과 채희진 우진산업지회장이 라파즈한라가 있는 서울 강남구 삼성동에 위치한 아셈타워 앞에서 성실교섭과 원직복직을 요구하는 단식농성을 진행하고 있다. 2월 12일. 단식농성 8일 째 밤, 짧은 기록을 싣는다.


  차안에서 8일째 단식농성을 시작하는 곽민형 수석부위원장과 채희진 우진산업지회장 [출처: 화섬노조우진산업지회]

단식농성 8일 째 밤. 저 멀리 천막이 보이니 반갑다. 단식자와 조합원 전체 삭발을 한 다음 날, 강남구청 직원들이 백 명도 넘는 전경들과 함께 단식자들이 있는 천막을 발로 밟고 이에 저항하는 조합원들을 구타했었다. 결국 천막은 철거당하고 그날 밤, 단식자들도 조합원들도 차 안에서 추운 밤을 보내야했다. 한바탕 실갱이를 하고 나서야 강남구청과 경찰은 밤에는 천막을 쳐도 된다는 말을 했다 한다.

오늘 낮에 구청에 가서 빼앗긴 단식자들의 텐트를 찾아왔다. 다 망가진 텐트를 5만 원 과태료를 내고 찾아왔으니 그 속이 어땠겠는가. 구청 철거반에 항의했지만, 그들은 모르는 일이라고 했다. 방송차 바퀴에 천막을 묶어 놨다. 며칠 전 바람이 세게 불던 날, 천막 뚜껑이 날아간 적이 있기 때문이다.

천막 안에 들어가니 우진 동지들과 화섬노조 간부들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내일 있을 집회며 이후 투쟁 계획이며 논의할 것이 많은 모양이다. 내일 비가 올 것이라는 예보도 적잖이 신경이 쓰이는 모양이다.

이제 며칠만 있으면 설 연휴다. 설에도 싸울 각오를 하고 있는 조합원들이지만, 그 전에 끝나길 바라는 마음이야 매한가지일 거다. 작년 이맘때, 설을 앞두고 유서까지 쓰고 상경투쟁을 하던 하이닉스.매그나칩 사내하청지회 조합원들의 모습도 떠오른다. 그 동지들도, 이 동지들도 설 전에 끝내겠다는 마음 절실했겠지만, 막상 새로운 고강도 투쟁을 시작하고 나니 그 설이 목에 가시처럼 걸려온다.

  2월12일, 단식농성 8일째밤, 아셈타워 앞

단식 농성자들은 차 안에 있다한다. 자리에 앉고 나서 보니 최철규 사무장이 팔과 목에 기브스를 하고 있다. 오늘 낮에 라파즈한라가 있는 아셈타워 18층에 올라가는 투쟁을 하다가 저지하는 경비용역들에 의해 다친 것이라 한다. 조합원들은 그림 잘 그리는 사무장이 다쳐 선전 작업에 지장이 많을 거라는 반응이다.

“저녁은 드셨어요?”

단식농성장에서 밥 먹었냐는 인사말은 묻는 이도 대답하는 이도 어색하기만 하다. 요즘, 우진 동지들은 컵라면에 김밥 한 줄 씩 하루 두 끼만 먹는다. 하루가 다르게 말라가는 단식자들을 옆에 두고 도저히 밥을 넘길 수가 없는 게다. 며칠 전, 저녁을 먹으러가면서 몇 걸음 걷다가 뒤를 돌아보고 또 몇 걸음 걷다가 뒤를 돌아보던 조합원들이 생각난다.

“수발하면서 살빠지고 눈에 초점 없는 모습을 보면 정말 애처롭다. 이렇게 사람이 죽어가는 모습을 보며 뭐라도 해주고 싶은데, 내가 해줄 수 있는 거라곤 물과 소금을 주는 것 뿐”이라며 진종길 조합원이 자신의 아픈 마음을 이야기한다.

공기 좋고 물 맑은 강원도 옥계에서 올라온 조합원들에게 서울 생활이 쉽지만은 않다. 매연과 낯선 거리, 낯선 사람들이 투쟁을 시작한지 일 년이 다 되어가지는 지금까지도 적응이 되지 않는다. 가끔 지나가다가 자신들에게 욕을 하는 이들을 볼 때면 서글픈 생각도 든다.

진종길 조합원은 아침에 대표이사집 앞에 일인시위 하러 갈 때마다 분노가 치민다고 한다. 자신들은 그저 대표이사와 대화를 하고 싶어서 갈 뿐인데, 언제나 그 앞에는 자신들을 범죄자 취급하는 정보과 형사들과 용역들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채희진 지회장님이 천막 안에 들어와 앉는다. 내일 있을 집회며 이후 일정이며 걱정이 많은 모양이다. 처음 계획들이 제대로 진행이 안 되는 것에 대해서도 한 마디 한다.

  2월9일 단식농성자와 전체조합원 삭발식, 아셈타워 앞

지난 8일, “해고노동자 7명이 일할 자리가 없어 안 된다”는 라파즈한라 측의 이야기를 들은 이후 대화는 중단된 상태다. 잠시 후, 곽민형 화섬노조 수석부위원장님이 들어온다. 그도 이후 방향과 관련된 의견들을 이야기한다. 가끔 목소리 톤이 높아지기도 한다. 조합원들은 단식 농성자들이 언성을 높일 기력이라도 있는 것이 꼭 나쁘지만은 않은 모양이다.

단식농성은 ‘적들’을 움직이기 위해서만 하는 것이 아니다. 단식농성은 나와 우리를 조직하고 움직이기 위해 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래서 쉽지 않고, 또 때로는 무모해보이기마저 하는지도 모른다. 장기투쟁은 천막만 지키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을 지켜야 하는 것이기에 고단하지만 더욱 빛나는 것인지도 모른다.

내일, 비가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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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노동자

    이빨만 나불대서 죄송합니다. 힘내십시요 투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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