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 잃어버린 노동자계급을 부른다

117주년 노동절에 부쳐

2007년 117주년, 어김없이 노동절을 맞았다. 민주노총은 올해 노동절 기념 노동자대회를 수도권(서울,인천,경기,강원)은 대학로 노동자대회로, 영호남 지역은 창원통일대회로 집중한다는 참가지침을 내렸다. 창원에서는 29일부터 3박4일 일정으로 5.1절 남북노동자통일대회가 열리고 있다.

올해 노동절은 두 가지 점에서 각별하다. 우선 87년 노동자대투쟁 20주년이라는 계급투쟁의 연대기적 의미가 그렇다. 그리고 한미FTA 협상 타결이라는, 장차 노동자의 삶에 가공할 변화를 예고하는 정세 속에 치러진다는 점이 그러하다.

20년 세월은 간단하지 않다. 그때 구로에서 거제까지 누비던 그 청년노동자들은 중년의 늙은노동자로 변모했고, 세상은 두 번이나 바뀌었지만, 오늘날 노동자의 처지는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다. 무성한 87년체제 진단과 진보 논쟁 속에도 노동자가 무엇을 위해 무엇과 싸워 왔는지에 대한 평가는 찾아보기 어렵다. 그러나 지난 20년간 한국의 민주주의와 진보를 위해, 신자유주의 정책에 맞서 가장 많은 땀과 피를 흘린 주체가 노동자임을 부정하는 사람은 없다. 특히 10년 전 96,97년 총파업투쟁은 노동자계급이 이 세상의 중심이고, 한국 사회를 움직이는 기관차라는 사실을 온 하늘 아래 확인해 주었다. 자본의 위기를 노동에게 전가한 외환위기 정세 한가운데서 노동자계급은 구조조정과 공공부문 민영화에 맞서 저항했고, 비정규직 확산을 가져온 참여정부의 노동정책에 맞서 쉬지 않고 싸웠다. 이 장구한 투쟁의 성과를 바탕으로 오늘날 민주노총은 상당한 정치적, 사회적 영향력을 갖게 되었고, 한반도 평화 무드와 함께 남북 노동자가 한 자리에 모여 공도 차고 통일대회도 치르는 시대를 맞이할 수 있게 된 거다.

하지만 2007년 노동절 정세는 뭐니뭐니 해도 한미FTA 타결을 비껴갈 수 없다. 정부와 자본의 생각은 향후 5년간 지식집약산업과 고부가가치산업 중심으로 경쟁력을 갖춰 10년을 내다보며 세계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한다는 데 있다. 2012년 경 북의 시장체제로의 편입을 포함한 동북아 단일시장 형성으로 자본운동의 활로를 개척한다는 구상이다. 이처럼 한미FTA의 성공은 산업구조의 고도화, 규제의 선진화, 노동의 유연화와, 그리고 개성공단을 포함한 북 전역에 대한 신자유주의 산업체제로의 재편을 강제하는 개념이다. 따라서 한미FTA의 성공은 명백하게도 이 땅 노동자의 희생을 전제하는 것이고, 노동자계급의 패배를 의미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117주년 노동절은 지난 20년의 연대기적 의미를 새기고 기념하는 자리이기보다는, 다가올 5년, 10년의 계급투쟁의 지평을 살피는 연대의 노동절로 맞아야 마땅하다.

27일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 한국개발연구원(KDI), 노동연구원, 금융연구원 등 11개 연구기관은 '한미FTA의 경제적 효과 분석'을 내고, 한미FTA가 이행되면 10년 동안 실질 국내총생산(GDP)이 6%(80조 원) 증가하고 34만 개의 일자리가 늘어날 것으로 내다봤다. 거시경제효과와 산업별 효과를 중심으로 분석한 이 자료에는 한미FTA 타결에 대한 긍정적인 판단 위에 향후 10년 또는 15년의 전망을 담고 있다. 이 예측이 현실이 되고 안정된 일자리가 창출될 수만 있다면 반대할 이유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정태모형, 자본축적모형과 관련, 작년 말 '쌈' 논쟁에서 보듯 성장률 7%로 내다본 KIEP의 주장에 대해 미 무역위원회가 같은 모형으로 낸 결과도 다르게 나오는 등 문제점이 확인된 바 있다. 생산성 증대를 고려한 자본축적모형에 따라 임의로 산출된 이번 보고서도 곧이곧대로 신뢰하기는 어렵다. 한미FTA에 따른 관세철폐 효과뿐만 아니라 생산성 증대 효과까지 모두 고려한다고 하지만, 미국으로부터 수출이 는다고 생산성이 높아진다는 주장도 이론적으로 검증되지 않은 문제이다.

보고서는 일자리를 늘리는 키를 '경쟁력'에서 찾는다. "생산성 향상, 즉 경쟁력을 얼마나 확보하느냐가 고용규모의 변화를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라는 결론이다. 그러나 지난 10년간 경험했지만 자본의 경쟁력이 곧 양질의 고용 창출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신자유주의축적체제가 안정화될수록 경쟁력은 오히려 노동유연화로 이어졌고, 여러 다른 비정규직 이름의 불안정노동의 양산을 불러왔을 뿐이다. 치밀한 노무관리는 노동자와 노동자를 분할하여 하나의 노동자를 둘, 셋, 넷으로 쪼개놓았고, 노동유연화의 법제화로 불리는 비정규법 시행을 앞둔 지금 비정규직 노동자가 현장에서 겪는 고충은 갈수록 커지는 추세다. 한미FTA가 자본에게 성공일 수 있어도 노동에게 재앙이라는 것은 이미 현장에서 사실로 확인되고 있다.

생산성과 경쟁력인가 연대와 저항인가. 117주년 노동절은 오늘 한국 노동자계급에게 묻는다. 자본이 펼쳐놓은 5년의 구도, 10년의 미래에 순응할 것인지를 묻고, 자본의 노동자 분할과 개량의 품에 안주할 것인지를 묻고, 자본이 주도하는 한반도 구상에 마냥 따라만 갈 것인지를 묻는다. 그리고 자유무역협정이 가져올 가혹한 노동유연화의 현장에서 변혁의 세계화 그 가능성을 타진하고 실천할 것이지를 묻는다. 노동해방의 꿈으로 한미FTA에 녹아든 자본 논리를 간파했던 허세욱 열사의 심장 박동소리와 함께, 오늘 117주년 노동절은 부른다. 학습하고 조직하고 선전하는 '잃어버린' 노동자계급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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