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이버시(Privacy)라는 용어는 '사람의 눈을 피하다'라는 뜻의 라틴어 Privatun에서 유래된 말로 프라이버시권에 대한 본격적인 논의는 19세기 말 시작되었다. 1888년 미국의 토마스 쿨리 판사는 프라이버시를 "혼자있을 권리"(Right to be let alone)라는 정의하였는데 2년 뒤인 1890년 Warren과 Brendeis라는 두 변호사는 자신들의 논문 "The Right to Privacy"에서 프라이버시권을 본격적으로 다루면서 민주주의에서 가장 중요한 자유로서 헌법에 반영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정보통신기술의 발달로 개인의 신상정보에 관한 수집·분석·검색·복제·유통이 훨씬 용이해지면서 프라이버시의 개념은 '혼자 있을 권리'라는 소극적 개념에서 '자신에 관한 정보를 통제할 수 있는 권리'라는 적극적 개념으로 확대되었다. 즉, 한 개인이 자기에 관한 정보를 언제, 어떻게, 어느 정도 타인에게 유통시키느냐를 스스로 결정하는 권리로서 이해되기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정보통신의 기술의 발달속도에 비해 프라이버시권에 대한 우리사회의 인식은 아직 초보적인 수준에 머물러 있다.
현재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계류되어 있는 ‘통신비밀보호법 일부 개정법률안’은 21세기 대한민국에 프라이버시가 존재하는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통신비밀보호법의 내용을 간략하게 살펴보면 첫째, 통신서비스 사업자는 감청을 위한 장비·시설·기술·기능을 의무적으로 갖추어야 하고(법안 제15조의2 제2항) 그 비용은 국가가 부담한다.(동조 제4항) 둘째, 인터넷 사업자는 인터넷 이용자들의 IP주소, 로그기록 등 통신사실 확인자료를 1년간 의무적으로 보관하도록 하고 있다. 통신사실확인자료에는 가입자의 전기통신일시, 전기통신개시·종료시간, 발·착신 통신번호 등 상대방의 가입자번호, 사용도수, 컴퓨터통신 또는 인터넷의 사용자가 전기통신역무를 이용한 사실에 관한 컴퓨터통신 또는 인터넷의 로그기록자료, 정보통신망에 접속된 정보통신기기의 위치를 확인할 수 있는 발신기지국의 위치추적 자료, 컴퓨터통신 또는 인터넷의 사용자가 정보통신망에 접속하기 위하여 사용하는 정보통신기기의 위치를 확인할 수 있는 접속지의 추적자료 등이다.
이는 현재를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이 정보통신기기를 활용하지 않고는 도저히 살아 갈수 없는 환경에서 자신의 일거수일투족을 낱낱이 감시당할 수 있는 상황에 내몰리고, 법적인 강제력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조지오웰은 소설「1984년」에서 개인을 감시·통제하는 빅브라더의 출현을 예고한바 있다. 또한, 빅브라더는 「트루먼쇼」라는 영화에서 드디어 그 모습을 들러냈다. 더 나아가 토니 스콧 감독은 영화「에너미 오브 스테이트(Enemy of State)」에서 프라이버시는 이미 죽었다고 표현했다. 그러나 빅브라더의 출현은 더 이상 소설이나 영화 속의 이야기만은 아니다. 현재 국회에서 논의되고 있는 ‘통신비밀보호법 개정법률안’은 개인정보의 데이터처리를 통한 감시와 통제를 일상화시키고 있고, 그러한 정보통신기술을 활용해서 감시와 통제의 국가로 가고 있는 것이다. 2007년 대한민국은 소설속의 빅브라더가 아닌 현실의 빅브라더가 출현한 것이다.
현재 국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통신비밀보호법의 개정논의는 국민의 기본권을 심각하게 제한하고 있고, 더불어 국회의원들의 임무 방기 행위인 것이다. 통신비밀보호법은 국민의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를 보장하는 방향으로 “개정”되어야하며, 과도한 통신제한조치의 범위를 최소한의 범위까지 축소하는 방향으로 개정되어야 할 것이다. 지식과 정보가 곧 권력이 되는 사회에서 개인정보의 집중은 그 자체로서의 위험성을 지니게 된다. 때문에 지식과 정보가 한곳으로 집중되는 것을 막고, 정보가 개인의 통제를 벗어나 마음대로 수집되고, 이용되는 것을 적절히 견제하는 일, 그것이 바로 조지오웰의 "빅브라더"로부터 벗어나는 것이고, 토니 스콧 감독의 "프라이버시는 죽었다"명제로부터 자유로워지는 일일 것이다.
- 덧붙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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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용진 님은 문화연대 사무처장으로 진보전략회의(준) 회원으로 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