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선옥, 배부른 자들의 토대를 뿌리부터 흔들 수 있는 문학

[리얼리스트 작가 선언](2) - 현실을 외면하지 않음을 넘어서 진실의 속살 속으로

선망의 시선을 깨라

세상 사람들이 너무나 돈들을, 그 돈의 배경이 되는 조건들인 학력을 쫓아가는 삶에 젖어 있어서인지 잘 팔리는 작가를 바라보는 시선에도 그저 선망만이 있을 뿐이다.

그 선망의 시선을 깨는 것이 작가가 할 일이다. 그래야만 작가다. 내 작품 얼마나 팔렸다는 것을 자랑하는 작가는 봤어도, 많이 팔리는 것을 두려워하고 많이 팔려서 끼치는 영향력에 대해서 조심스러워 하는 작가를 나는 보지 못했다.

기존의 세속적 욕망에 충실한 사람들의 마음을 불편하게 하는 글을 쓰는 것, 그것이 사실은 ‘작가’인 것이다.

다른 사람들은 모두 많은 돈과 고학력과 좋은 집과 좋은 음식과 좋은 배필을 찾는데 혈안이 되어 있을 때, 그렇게 혈안이 되어 있는 것에 대해 전혀 문제의식을 느끼지 않는 삶을 살아갈 때, 문제의식 없는 것을 자각조차 하지 않는 삶을 살아갈 때, 아니 오히려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을 문제 있는 사람으로 몰아가는 삶을 살아갈 때, 작가는 어떤 포지션을 취해야 하는가.

  소설가 공선옥 [출처: 오도엽]
그것이 아니라고 멱살을 잡을 수는 없다. 문제의식이라는 가시 돋친 글을 쓰면 된다. 그 가시가 주류담론이 되어 있는 돈과 출세주의에 몽롱하게 젖어 있는, 책을 사볼 수 있는 여력과 자금과 교양과 지식이 있는 자들을 찔러 그곳에서 나온 피가 보통의 ‘선량한 시민’들에게 스며들어가야 한다.

작가는 장사꾼이 아니다

보통의 선량한 시민이란 그러나 누구인가. 소위 주류담론을 생산해 내고 있는 자들이 만들어 놓은 구조 속에서 힘겨운 삶을 살아가고 있지만 왜 힘겨운가, 자신을 힘겹게 하는 구조에 대한 물음은 물을 줄 모르는 사람들이다.

자신들을 힘겹게 하는 구조에 대한 물음 대신 힘겨움을 숙명처럼 받아들이는 사람들이다. 자신들을 힘겹게 하는 구조에 대한 물음을 묻는 대신 그것을 숙명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들 대신 우리가, 우리 리얼리스트 작가들이 대신 물어줘야 한다.

물어주기는커녕 그 구조에 편승해서 자신의 이득을 챙기는 작가의 이득은 기실, 부당이득이요, 양심불량의 이익이다. 그는 이미 작가가 아니면서 작가소리를 듣고 있고 그럼에도 자신의 작가호칭에 부끄러워할 줄 모른다. 작가는 장사꾼이 아니다.

상업주의 다시 말해 돈 만능주의에 절여진 사회에서 그렇게 돈 만능주의에 절여져 있는 사람만이 정상적인 삶으로 치부되고 있는 세상에서 진정한 작가가 취해야 할 포지션에 대하여 언급하였다.

노동자에겐 정치적 표현의 자유는 없는가

그러나 포지션만으로 되는 문제가 아니다. 두 번째는 싸워야 한다. 행동해야 한다. 돈은 사람의 영혼을 분열시킨다. 돈과 돈을 가진 자본가는 노동과 노동자를 돈으로 분열시킨다.

현대차노조가 한미 에프티에이 반대 파업을 벌였다. 정치파업이란다. 대통령은 대통령도 정치적 견해를 피력할 권리가 있다고 헌법소원까지 냈다. 그런데 정치적 표현의 자유는 대통령만 있고 노동자에게는 없는가.

노동자는 맨날 임금 얼마 인상 건만을 가지고 파업해야 하는가? 먹을것 더 달라고 칭얼대는 어린애나 짐승취급이 아니고 무엇인가. 사람은 그가 대통령이든, 자본가든, 노동자든, 어린아이든, 자신의 이해관계를 넘어서는 일까지에 사고하고 동참하고 행동할 수 있다. 그럴 수 있으니까 사람이다.

노동자들이 정치파업을 하고 있다, 라고 여론을 선동하는 것은 자신의 이해관계를 넘어선 정치파업을 할 수도 있는 ‘숭고한 인간성’을 파괴하는 폭력적 언설이다.

노동자가 파업이라는 형태로 겨우 표현할 수 있는 한계란 언제나, 고용불안정, 임금동결건, 해고라는 경제주의에 국한된 선에서만이라야 하는가. 그러나 기실은 생존권조차도 짓뭉개는 현실임에랴.

폭력에 맞선 저항의 문학

정치권력은 물리적 폭력이다. 그러나 자본권력은 홍세화씨도 말했듯이 부드러운 폭력이다. 부드러워서 더 노회한 폭력이다. 80년대 리얼리즘이 물리적 폭력 앞에서 저항한 문학이었다면 이제 이천년대의 리얼리즘은 부드럽고 노회한, 그래서 더 치명적인 폭력의 폭력성을 간파하고 드러내고 저항하는 문학이어야 한다.

에프티에이로 대변되는 신자유주의체제가 그나마 겨우겨우 유지되고 있는 우리민중공동체를 어떻게 파괴시키고 있는가. 멕시코, 브라질 농민들의 예를 보듯이, 제나고 자란 땅에서 소박한 꿈을 일구고 소박한 행복을 누리며 살 수 있는 권리를 빼앗는 것이 자유무역체제다.

신자유주의체제란 오직 돈, 자본만이 자유를 누리는 체제다. 작가는, 이유라곤 오직 힘이 없고 돈이 없다는 이유만으로 소박한 삶과 꿈이 산산조각 나는 삶을 강요받는 우리의 인간가족들을 위해 글로써 싸워야 한다.

자본은 결코 가난한 사람들을 보호하지 않는다. 정치권력이 가난한 사람을 보호하지 않는다는 것을 자본이 먼저 간파하고 있다. 정치권력은 자본가의 가방 든든한 빽이고 자본가는 정치권력의 가장 든든한 동지다.

최근의 이랜드사태를 보라. 악용할 소지가 있는 법을 만들어놓고 자본가가 그것을 악용했다. 악용할 소지가 있는 법을 만든 ‘원죄’가 있어서일까. 대통령, 장관, 국회의원 중 어느 누구도 악용된 법 때문에 고통 받고 있는 국민의 한사람들인 노동자들에게 악용될 소지가 있는 법을 만들어서 미안하다고 하지 않는다.

지금 노동자인 국민들이 고통 받고 있는데도 정치권력을 가진 그래서 악용의 소지를 제공한 자들 중 어느 누구도 악용될 소지 없는 법을 만들자는 소리 하지 않는다. 법을 악용한 자본가를 비난하지 않는다. 그리고는 합법적으로 법을 악용한 자본가 대신 불법적으로 권리를 주장한 노동자들에게 연행, 구금 ,실형선고, 손배소라는 물리적 폭력을 가하는 것이다.

다시 리얼리즘을 생각한다

자, 현실은 이렇다. 후안무치한 인간들이 정치와 돈으로 권력을 잡고서 힘없는 민중들에게 호령한다. 이런 현실에서 작가는 어떤 글을 써야 하는가.

그래서 다시 리얼리즘을 생각한다. 진정한 리얼리즘정신이란 단순히 현실을 반영한 문학인가? 그나마 있는 그대로의 현실조차도 외면하는 문학이 문학의 모든 것으로 되어 있는 작금인지라 단순히 현실을 반영한 문학이 리얼리즘문학이 될 수도 있겠으나, 진정한 리얼리즘문학이란 완강한 현실이라는 표피를 뚫고 들어가 현실의 이면에 감춰진 진실을 캐내는 문학이라야 할 것이다.

그래서 ‘자기들만의 리그’를 위한 장치들을 법과 상식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하기 좋아하는 배부른 자들의 토대를 뿌리부터 흔들 수 있는 문학이야말로 진정한 리얼리즘 문학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더 쓰기도 목이 터져 버릴 것 같고(피가 들끓어서) 손도 빠개질 것 같아서 그만 쓰기로 한다. 대신 말하고 싶다. 자본의 달콤한 유혹 앞에 흔들리지 않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가난한 사람들의 가장 큰 핸디캡인 돈이 어떻게 우리의 인간성을, 우리의 공동체를 황폐화시키고 파괴시키는지를 우리는 글로써 고발해야 한다는 것을. 그러자면 좀 냉정해져야 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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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목에 어째서 공선옥이 들어가죠? 오도엽이겠죠? 어서 수정해주세요

  • 음님께

    소설가 공선옥의 글이 맞습니다. 기사 등록 중에 오류가 있었습니다. 죄송합니다.

  • 너른들

    기대하겠습니다.
    앞으로 좋은 작품 많이 써 주십시오.

  • 그날

    공선옥 님의 이전 소설을 읽으면서 언제가는 함께 가는 길에 서게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곤 했습니다.

  • 무심

    너무 감사하게 읽고 갑니다

  • 민노충

    ‘아줌마 눈물’ 뒤의 민주노총 / (동아일보 2007.07.23 월)

    이랜드 계열사 유통매장에서 벌어졌던 ‘비정규직 대리전(戰)’이 장외(場外)로 옮아가고 있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은 장기 점거농성 중인 노조원들을 경찰이 강제 해산하자 불매운동 등 준비해 둔 2단계 투쟁에 들어갔다.
    민주노총은 이랜드 사태가 더 오래, 더 복잡하게, 더 치열하게 전개되기를 원하는 모양이다. 그런데 ‘싸움’을 크게 벌이는 최대 목적은 비정규직 처우 개선이 아니라 민주노총 자체의 위기 극복인 것 같다.

    민주노총 인터넷 홈페이지에 띄워진 ‘비정규직 조직화를 위한 50억 원 기금조성사업’은 그들의 속뜻을 짐작하게 해 준다. 민주노총은 ‘정규직 중심의 조직으로서의 한계 등 노동자 전체에 대한 대표성의 위기를 맞고 있다’고 자체 진단하면서 ‘민주노총의 재창립에 맞먹는’ 특단의 조직화를 통해 비정규직을 흡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모은 돈으로 전국에 센터를 설치해 비정규직의 조직화를 촉진하겠다는 것이다. 누구를 위한 조직화인지 금세 알 수 있다.

    결국 민주노총의 비정규직 걱정은 화장술이 아닌가 싶다. 민주노총은 해마다 ‘비정규직의 정규직화와 차별 철폐’를 주장해 왔지만, 실제로 차별을 없앤다면 산하의 정규직 노조들이 ‘절대 반대’라는 생얼굴을 보여 주지 않을까.

    정규직 노조의 이기주의는 이미 드러날 만큼 드러났다. 작년 노동연구원의 조사 결과, 직접고용 비정규직에게 노조 가입 자격을 주는 노조는 15%에 불과했다. 비정규직도 받아 주자는 노조 규약 개정안이 대의원회 거부로 무산된 노조도 여럿 있다. 비정규직을 ‘갑자기’ 받아 준 경우는 대부분 파업을 앞두고 파업력을 키우려는 계산의 결과였다.

    민주노총이 비정규직 문제를 치고 나오는 또 하나의 속셈은 ‘아줌마의 눈물’로 국민의 지지를 얻어 보려는 것으로 보인다. 대기업 노조를 중심으로 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반대 총파업은 ‘투쟁을 위한 투쟁’이라는 비난을 받은 터다. 그러니 이랜드 매장의 비정규직 아줌마들을 앞세워 국민 지지를 구걸이라도 하고 싶었을 것이다.

    며칠째 가족과 떨어져 쇼핑몰 점거농성을 벌여 온 비정규직 여성 근로자들이 결국 경찰에 잡혀가는 장면은 보기에 딱하다. 남성이 일하는 시간의 97%를 일하지만 임금은 63%에 불과한 현실 등 처우 문제를 국민이 새삼 인식하는 계기가 됐을 것이다.

    그러나 이번 사태의 핵심은 ‘무엇을’이 아니라 ‘어떻게’다. 외환위기 이후 부쩍 증가한 비정규직 문제는 한쪽 주장대로 풀릴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해답은 고용의 유연성과 안정성 어느 쪽도 크게 해치지 않는 방안이어야 한다. 그런데 지금 민주노총은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라’는 등 구호만 외치고 있다. 문제 해결에 참여하지 않겠다는 소리나 마찬가지다. 회사 측과 대화하는 노조에 강경한 대응만 조언한다니 정해진 각본대로 장외투쟁으로 이끌려는 의도 아니겠는가.

    비정규직 문제 해결에는 큰 비용이 든다. 이 비용을 ‘어떻게’ 조달할지가 관건이고 정규직 노조가 분담하지 않고는 조달이 거의 불가능한 게 현실이다.

    ‘아줌마의 눈물.’ 노무현 대통령은 성급하게 닦아 주려다 상처만 키웠고 민주노총은 그 눈물을 ‘몸보신’에 쓰려고 한다. 민주노총은 사용자에게 항복을 강요하는 투쟁이 아닌, 고통 분담의 해법을 내놓을 때다.

  • 민노충

    지난 20일 매장을 점거 중이던 이랜드 노조원들이 강제 해산당한 후 또다시 이랜드노조가 민주노총, 한총련 등과 함께 서울 뉴코아 강남점을 점거했다. 비정규직 문제가 이슈가 된 이번 이랜드사태는 오랜 노사 협상 끝에 사측이 ‘외주화 중단, 18개월 이상 비정규직 고용 보장, 계약 만료된 비정규직 70여 명에 대한 재계약’ 등 많은 양보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파국으로 치닫고 있다.

    새로운 법의 허용치보다 훨씬 더 많은 이익을 얻어낸 이랜드노조가 왜 이렇게 무작정 강경 투쟁을 계속하고 있는 걸까. 노조 집행부가 권력화되고 이의 장악을 둘러싼 내부 경쟁이 심화되면서 한국 노동계는 강경 투쟁 만능주의가 휩쓸고 있다. 타협적 노조 지도부는 차기 선거에서 선명성을 앞세운 반대파의 공격에 무력화되기 쉽기 때문이다. 생산 현장에서 벗어나 있지만 급료를 받고, 사측의 임원들에게 대우를 받으며, 운이 좋으면 민노당을 통해 정치인으로의 진출도 가능한 노조위원장 등의 지위는 이미 봉사와 희생과는 거리가 먼 신분 상승의 발판이 되어버렸다.

    또한 민주노총의 실적주의도 이랜드 파국의 책임을 결코 면할 수 없다. 민주노총은 산하 노조들의 투쟁이 격화되어 자신들이 개입할 여지가 생기는 것을 바라는 직업적 이해관계를 갖고 있다. 특히 최근 금속노조가 산별 노조 중심의 노사 교섭을 관철시키려다 산하 노조의 불참 등으로 실패하게 되자 더욱 이랜드사태에 집착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정규직 중심의 민주노총은 평소 비정규직에 대해 고통 분담을 거부하던 위선적 모습을 이번 기회에 희석시켜 보려는 속셈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최근 환자의 생명을 담보로 한 세브란스병원의 파업도 장기화되고 있는데, 한국노총 산하 사업장인 이 병원에도 세력 확대를 꾀하는 민주노총이 개입해서 사태를 더욱 복잡하게 만들고 있다. 노사는 기업의 발전이라는 공동 이익을 추구하기 때문에 이해 갈등을 타협으로 풀어나가는 것이 현명한 선택이라는 것은 민주적 상식에 속한다. 이러한 상식에 도전하는 민주노총의 ‘투쟁업자’들은 정작 일반 조합원들이 노사 공멸의 파국에 처했을 때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는다.

    한편 노조의 불법 투쟁을 막아야 하는 책무는 일차적으로 정부에 있으며, 사법부의 역할도 적지 않다. 하지만 경찰은 초기 단계에서 불법 주동자들을 격리시키는 데 주저했으며, 그 결과 사태가 점점 더 커지게 되고 구속해야 할 숫자도 늘어나게 되었다.

    법원의 영장 기각이 있자마자 불구속된 이랜드노조 간부 13인은 민주노총과 함께 기자회견을 개최하였고, 법원의 영장 기각이 ‘ 투쟁의 정당성’을 입증한다는 명분을 내세워 재점거 계획을 예고했었다. 결국 이러한 민주노총의 계획에 따라 7월 29일 뉴코아 강남점이 재차 점거되는 상황에 직면하게 된 것이다. 이와 같이 불구속된 노조원들이 다시 불법행위를 저지르고 피해를 준다면 그 책임은 누가 져야 하는가?

    영장이 기각된 사람들은 위법행위를 자발적으로 중지한 것도 아니었으며 공공연히 불법행위를 계속할 것을 밝히고 있는 이상 애초에 ‘불구속 수사’의 원칙을 견지한 사법부의 관용은 철저히 농락당하고 말았다. 인권 보장을 위한 법원의 판단이 자칫 위법행위에 대한 고무로 간주된다면 ‘머리띠 두르고 투쟁을 외치면 이익이 생긴다’는 민주화시대의 한국병의 치유는 난망해질 수밖에 없다.

    이랜드 노조원들은 투쟁업자들인 노조 집행부와 민주노총의 ‘그들만의 이해관계’를 이제는 읽어내야 한다. 유통업체의 매출 중단은 일반 제조업보다 훨씬 더 치명적이라서 진짜 파국이 머지않았다.

  • 꿈별

    우리시대 공선옥이라는 작가가 있다는게 정말 기쁩니다. 좋은글 감사합니다.

  • 이종성

    생각이 초등학생 수준이네요, 현대차 노조가 돈이 없는 노조 인가요?? FTA반대가 정치적 이유가 없는 것인가요.전국민에게 고통을 주는 파업입니다. 이미 그들은 시민단체에 폭력을 행사하고 고소를 해놓은 상태입니다. 이미 자본가보다 더 더러운 자들입니다.그들은 연봉 6000만원이 넘는 신 이기주의 부루조아 돼지 집단입니다.

  • 이중성

    윗글을 쓴 사람은 '노동자는 가난해야한다'고 생각하는군요. 그들의 정확한 연봉을 알 수는 없지만 자본주의사회인 이 나라에서 제 노동의 댓가를 제대로 받고 착취받지않는 노동자가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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